광물자원의 불균형적인 매장량을 고려할 때 특정 국가가 독립적으로  안정적인 공급망을 만드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사진 셔터스톡
광물자원의 불균형적인 매장량을 고려할 때 특정 국가가 독립적으로 안정적인 공급망을 만드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사진 셔터스톡
최용민 WTCS 대표 광운대 경영학 박사, 한국무역협회 전 FTA통상연구실장·전 베이징 지부장· 전 국제무역통상연구원장
최용민 WTCS 대표 광운대 경영학 박사, 한국무역협회 전 FTA통상연구실장·전 베이징 지부장· 전 국제무역통상연구원장

특정 국가가 외부 영향을 받지 않는 글로벌 공급망(supply chain)을 구축하는 것은 가능한가. 최근 세계 최고의 경제 강국인 미국을 비롯해 거의 모든 나라가 외부 환경에 흔들리지 않는 안정적인 공급망을 구축하기 위해 총력을 다하고 있다. 

코로나19는 시간이 흐르면 극복할 수 있지만 허술한 공급망은 기업은 물론 국가를 글로벌 경제전쟁에서 패배의 늪으로 내몰리게 만드는 최고의 위험 요소로 작용할 수 있어서다. 그러나 얽히고설킨 수출입 구도와 광물자원의 불균형적인 매장량을 고려할 때 특정 국가가 독립적으로 안정적인 공급망을 만드는 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특히 저탄소를 근간으로 하는 미래 경제는 더욱 다양하고 많은 광물자원이 필요하므로 배타적인 공급망을 구축하려는 공격적인 통상정책은 한계를 보일 수밖에 없다. 정치나 국제기구로 자원 분포도를 바꿀 수 없어, 공급망 관리는 배타적 자세보다 낮은 자세로의 협력을 원한다.

2021년 2월 미국의 텍사스주는 사상 초유의 정전사태를 겪으면서 사회의 기본 인프라인 전력 공급망에 대한 안정이 얼마나 중요한지 일깨웠다. 미국에서 따뜻한 지방으로 손꼽히는 텍사스가 미국에서 가장 추운 알래스카보다 더 추웠을 정도로 30년 만의 한파라고 했지만, 전력수요는 증가하는 반면 전력망은 노후화된 것이 결정적인 원인이라고 지목됐다. 

미국 정부는 노후 전력망을 보강하고 청정에너지 인프라를 강화한다면서 새로운 변압기 생산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변압기는 미국 내 생산 기반이 약해 동남아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갑작스러운 현지 생산 증대는 해당 제품의 핵심 원료인 철강과 구리 가격이 발목을 잡았다. 더구나 동남아는 코로나19로 물류가 여의치 않고 공장은 록다운(봉쇄)돼 있었다. 인건비가 저렴한 멕시코로 이전하는 작업을 진행했지만 납품 시기는 오히려 길어질 수밖에 없었다.

코로나19로 가장 각광을 받고 있는 산업 분야가 냉난방 공조다. 공기의 질을 높여 쾌적한 환경을 유지하고 나아가 멸균 효과도 제고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들 품목은 최첨단 에너지 절감 기술이 경쟁력의 핵심으로 등장해 제조 업체 간 혁신 경쟁이 뜨겁다. 그런데 제품 제조에 필요한 원자재 공급망이 복병으로 등장했다. 주요 자재로 알루미늄이 필요한데 그 원료인 보크사이트(bauxite)는 전 세계의 3분의 1이 아프리카에서 채굴되고 있다. 이에 따라 미국 등 어느 나라도 리쇼어링(reshoring)은 물론 인근 지역으로 공급 루트를 옮기는 게 마땅치 않다. 물류비가 뛰면서 다른 곳에서 정제 및 제련시설을 찾는 것도 쉽지 않다.

전 세계적으로 전기차에 대한 수요가 늘면서 핵심 부품인 배터리 생산도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 특히 신형 전기차의 평균 주행거리가 2015년 230㎞에서 2020년 380㎞로 늘면서 배터리 셀의 성능 향상을 위해 핵심 원재료인 니켈, 리튬, 코발트 등의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이들 배터리 생산기지는 대부분 한국, 중국, 일본 등 아시아에 집중돼 있으나 원재료 생산지역은 완전히 다르다. 리튬의 경우 칠레, 호주, 아르헨티나에 분포돼 있다. 특히 호주가 전 세계 리튬 생산량의 46%를 점하고 있다. 코발트의 경우 콩고민주공화국이 가장 많이 생산하고 있다.


저탄소 경제, 희토류 등 광물자원 현재보다 4배 이상 더 필요해 

청정에너지 전환에 필요한 풍력발전기 모터를 생산하기 위해 더 많은 희귀 원자재 투입이 필요한 상황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파리협정 목표인 탄소 중립(net zero·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만큼 흡수량도 늘려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늘어나지 않는 상태) 달성을 위해 사용되는 희토류 등 광물이 현재보다 4배 이상 더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런데 이들 광물은 특정 국가에 편중돼 있어, 원자재 무역 없이 특정 국가 중심의 배타적인 공급망으로 제품 생산은 쉽지 않다. 중국은 희토류에 압도적인 우위를 갖고 있다. 생산량 기준으로 세계 시장 점유율이 65%이고, 가공 및 처리량 기준은 85%를 웃돈다. 구리는 전 세계 수요량의 25%가 페루에서 생산되고 리튬은 호주의 비중이 절반을 넘나든다. 니켈은 인도네시아 비중이 약 3분의 1이고 코발트에 대한 콩고 점유율은 무려 80% 안팎이다. 더욱이 이들 수치는 생산량 편중이 지속돼 향후에도 거의 변화가 없을 전망이다.

코로나19 속에서 경제 회복이 절실한 경제 강국들은 공급망 애로를 극복하기 위한 정책에 총력을 경주하고 있다. 파격적인 세제 및 금융 혜택을 제공하면서 해외에 나갔던 자국 기업에 돌아오라고 손짓하고 있다. 이런 리쇼어링 정책은 일자리도 늘려 환호의 대상이지만 원자재 확보가 힘들고 인건비가 높아져 해당 기업의 경쟁력을 잃게 만드는 우를 범할 수 있다. 미국 기업이 동남아에서 멕시코로 이동하는 니어쇼어링(Near-shoring)은 운송비를 크게 줄이고 상대국 규제에서 보다 자유로운 것처럼 보이지만 기초 광물 운송이 길어지고 제조 여건은 크게 후퇴해 경쟁력은 뒷걸음칠 수밖에 없다. 

기업 현장에선 보다 구체적인 대책도 강구되고 있다. 물류난 완화를 위해 트럭 운전자의 임금을 올리는 등 근로 여건을 개선하고 비용 절감을 위해 재고를 최소화하는 적시 제조(Just-in-Time)를 버리고 선제적으로 충분히 부품과 소재를 확보하는 전략을 강구하고 있다. 이를 통해 자국의 공급망을 안정화해 코로나19, 지진, 홍수, 허리케인에 대한 극복은 물론 다른 나라의 견제에서도 보다 자유롭도록 노력하고 있다. 또한 비용이 더 들더라도 거래선을 복수화해 특정 국가 및 거래선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고 있다. 특히 그동안 등한시하던 자국 내 광물 개발에 나서기도 한다.

그러나 자국 위주의 공급망 안정화는 곧바로 한계에 부딪힌다. 극심한 편중 현상을 보이는 광물은 원천적으로 해결할 대안이 없고, 설사 자국에 자원이 매장돼 있는 경우라도 생산에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뿐만 아니라 생산 효율이 극히 낮거나 환경 문제로 득보다 실이 많은 경우가 부지기수다. 더욱이 독자적으로 먼저, 그리고 많이 원자재나 부품을 확보하려는 경쟁은 여타 국가와 충돌을 야기해 가격이 천정부지로 뛰거나 아예 물류 봉쇄에 내몰릴 수 있다. 복수의 원자재가 필요한 첨단 제품 특성상 한두 가지 원자재 부족으로 공장 가동이 멈추고 국가 간 긴장도도 높아질 수밖에 없다.

자유무역으로 대표되는 세계화가 후퇴하면 그 결과는 국가 간 충돌로 이어진다는 것은 역사가 증명한다. 일차적으로 미래로 나가는 혁신이 뒷걸음치고 첨단제품도 설계도에만 그려질 뿐 시장으로 나오지 못할 수 있다. 이어 긴장 관계가 높아지면서 제1·2차 세계대전과 같은 끔찍한 결과를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힘을 못 쓰고 있는 세계무역기구(WTO)에 의한 규범 중심(rule-based) 다자주의를 다시 살려 광물에 대한 자유무역을 보장하고 광물 봉쇄가 아닌 기술 진보를 두고 선의의 경쟁을 할 때 글로벌 경제는 나아지고 보다 안전한 공급망을 모든 나라가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