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자베스 2세 장례식에 참석한 각국 정상들. 사진 연합뉴스
엘리자베스 2세 장례식에 참석한 각국 정상들. 사진 연합뉴스
왕관과 보주(寶珠)를 올린 엘리자베스 2세의 관이 찰스 3세 등의 배웅을 받으며 장례식이 열린 웨스트민스터 사원을 나서고 있다. 사진 AFP연합
왕관과 보주(寶珠)를 올린 엘리자베스 2세의 관이 찰스 3세 등의 배웅을 받으며 장례식이 열린 웨스트민스터 사원을 나서고 있다. 사진 AFP연합

“장례식장이 그 자체로 유엔 총회였다.” 워싱턴포스트는 9월 19일(이하 현지시각) 치러진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장례식을 이렇게 표현했다. 전 세계 200여 개국의 국가 원수와 정부 수반, 왕족 등 글로벌 VIP가 500명이나 한자리에 모인 것은 올림픽이나 주요 20국(G20) 정상회담 같은 어지간한 국제 행사에서조차 좀처럼 볼 수 없는 장면이다.

9월 8일 96세의 나이로 서거한, 70년간 영국의 얼굴이었던 여왕을 위한 ‘세기의 장례식’은 현재의 국제 외교·정치 흐름을 한눈에 보여준 외교 무대 축소판이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부부,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부부,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독일 대통령, 세르조 마타렐라 이탈리아 대통령,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 등 서방 주요국 수반들은 거의 빠짐없이 행사에 참석했다.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 앤서니 앨버니지 호주 총리, 드라우파디 무르무 인도 대통령 등 영연방 국가 혹은 과거 영국의 식민지 국가였던 나라 정상들도 과거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서의 마지막 영광을 누렸던 여왕이 가는 길을 배웅했다. 윤석열 대통령 부부도 해외 정상들에게 배정된 구역 14번째 줄에 바이든 미 대통령과 함께 착석해 여왕의 장례를 지켜봤다.

서구 대부분 국가가 정상들이 장례에 참석한 것과 달리 중국은 공산당 최고지도부인 상무위원회 내 직급이 없지만 서열 8위 의전을 받는 왕치산(王岐山) 국가 부주석이 특사로 장례에 참석했다. 중국은 자국에 우호적인 외국 인사를 일컫는 공식 칭호인 ‘중국 인민의 오랜 친구(中國人民的老朋友)’ 해당 여부에 따라 조문 의전에 차이를 두는 관례를 따라왔는데, 엘리자베스 2세는 중국 인민의 오랜 친구에 해당하는 인물이 아닌 데다, 10월에 5년 만에 열리는 중국 최대 정치 행사인 중국공산당 20차 당 대회를 앞두고 있어 최고위급 특사를 파견하지 않은 것으로 해석된다.

영국 역시 중국 특사단의 방문을 환영하지 않았다. 장례식 사흘 전인 9월 16일 BBC는 “(영국) 하원이 중국 대표단의 여왕 관 참배를 허락하지 않으려 했다”고 보도했다. 작년 중국 정부가 신장위구르 인권 탄압 문제를 비판한 영국 의원 7명을 제재했고, 이에 대해 영국 의회가 중국 대사의 영국 출입을 금지하기로 결정한 데 따른 조치다. 하지만 결국엔 중국 특사단의 방문을 허용했는데, 이는 장례식에 참석하려는 손님을 거부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는 지적을 의식한 결정인 것으로 보인다.

한편 우크라이나와 전쟁으로 인해 국제적으로 고립된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아예 장례식 초청장도 받지 못했다. 초청장을 받지 못한 나라는 러시아, 벨라루스, 미얀마, 시리아, 베네수엘라, 아프가니스탄 등 극소수다. 러시아와 벨라루스는 우크라이나 침공을 이유로, 미얀마는 군부의 민간인 학살 문제로 초청받지 못했다. 북한과 니카라과는 국가원수 대신 대사만 초청됐다. 2001년 영국과 수교한 북한은 장례식에 대사급 조문단을 파견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 밖에도 세계 왕족들이 총출동했다. 엘리자베스 2세의 8촌이자 여왕의 서거로 유럽 최장수 군주가 된 덴마크의 마르그레테 2세는 82세 고령에도 직접 장례식에 참석했다. 필리페 6세 스페인 국왕 부부, 칼 구스타브 16세 스웨덴 국왕 등 유럽 국가 군주 대부분과 카타르 국왕, 바레인 국왕, 요르단 국왕 부부 등 서방 세계와 우호적 관계를 맺은 중동 왕실도 대거 동참했다.

일본에선 나루히토(德仁) 일왕 부부가 장례식에 참석했다. 일왕이 외국 왕실 장례에 참석한 건 1993년 아키히토(明仁) 당시 일왕이 벨기에 국왕 국장(國葬)에 참석한 이후 역사상 두 번째다.

전 세계가 한자리에 모인 장례식장에서 ‘조문 외교’도 활발히 이뤄졌다. 특히 유럽 각국 정상들과 중동 왕족들이 장례식을 기회 삼아 활발히 교류한 것으로 전해진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으로 인해 러시아 가스에 의존하던 유럽 국가에 에너지난이 심화됨에 따라 중동 국가들과 긴밀히 협력해 에너지 위기를 타개하려는 의도라는 해석이 나온다. 윤석열 대통령도 장례식 전후 주위에 앉은 각국 외교 정상들과 인사를 나누며 조문 외교에 나섰다. 영국 언론 매체들은 전 세계 약 40억 명이 이날 여왕의 장례식을 지켜본 것으로 추정했다. 

왕세자 책봉 64년 만에 왕위에 오른 찰스 3세. 사진 로이터연합
왕세자 책봉 64년 만에 왕위에 오른 찰스 3세. 사진 로이터연합

연결 포인트 1
밝지만은 않은 찰스 3세 시대

엘리자베스 2세의 서거로 찰스 왕세자가 왕위에 오르면서 드디어 ‘찰스 3세의 시대’가 열렸다. 1958년 열두 살 나이로 왕세자(Prince of Wales) 자리에 오른 지 64년 만이다.

하지만 찰스 3세 앞에는 해결해야 할 국내외 문제들이 산적해 있다. 국민 지지도가 낮은 찰스 3세가 왕위에 오르면서 오랫동안 지속돼 왔던 군주제 찬반 논란이 또다시 불거지고 있다. 올해 5월 영국 여론 조사 업체 ‘유고브(YouGov)’가 진행한 여론 조사에 따르면, 영국 국민 27%가 군주제 완전 폐지를 지지한 것으로 조사됐다. 21세기 들어 대부분 15% 언저리에 머물던 비율이 10%포인트 이상 상승한 것이다. 특히 젊은 세대에서 군주제를 폐지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해가 지지 않는 나라’의 후광을 등에 업고 여왕이 됐던 엘리자베스 2세와 달리, 브렉시트(Brexit·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등으로 인해 영국 위상이 과거와는 매우 달라졌다는 점 역시 찰스 3세에겐 약점으로 작용한다. 

앤드루 홀니스 자메이카 총리는 지난 3월 윌리엄 왕세손 부부가 자메이카를 방문했을 때 자메이카가 영국 왕실과 결별해 공화정으로 독립하고 싶다는 뜻을 이미 전한 바 있다. 벨리즈, 바하마 등에서도 공화제 전환 움직임이 진행되는 중이다.

‘불륜녀’ 딱지 떼고 왕비에 오른 카밀라. 사진 로이터뉴스1
‘불륜녀’ 딱지 떼고 왕비에 오른 카밀라. 사진 로이터뉴스1

연결 포인트 2
‘불륜녀’에서 ‘왕비’로

찰스 왕세자가 엘리자베스 2세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르면서 아내 카밀라 파커 볼스는 ‘콘월 공작부인(Duchess of Cornwall)에서 왕비(Queen Consort)로 승격했다. 여기까지 이르는 과정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카밀라에 대한 영국 국민의 뿌리 깊은 반감 때문이다.

고(故) 다이애나빈이 1992년 발표한 자서전에서 찰스와 카밀라의 불륜을 폭로한 뒤 영국 국민 사이에선 찰스의 왕위 계승권을 박탈해야 한다는 비판 여론까지 일었다. ‘불륜녀’인 카밀라에 대한 비난은 더 심했다. 

카밀라가 2005년 찰스와 결혼한 뒤에도 그녀에 대한 시선은 호의적이지 않았다. 다이애나빈이 생전에 사용했던 ‘웨일스의 프린세스(Princess of Wales)’라는 칭호 대신 콘월 공작 부인이라고 불렸던 것도 이 때문이다. 카밀라가 왕비라는 칭호를 가질 수 있었던 데는 엘리자베스 2세의 역할이 절대적이었다. 엘리자베스 2세는 지난 2월 즉위 70주년 기념식 때 “적절한 때가 오면 카밀라를 왕비로 불리게 하는 것이 내 가장 신실한 소망”이라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 지난 6월엔 카밀라에게 여왕이 개인적으로 수여하는 최고의 기사도 훈장인 가터 훈장(Order of the Garter)도 수여했다. 이는 다이애나빈도, 케이트 미들턴 왕세자빈도 받지 못한 것이다.

오윤희 기자
이코노미조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