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2위 인구 대국에 IT와 우주 분야 첨단 기술을 보유한 인도는  인도·태평양 전략에서 중요한 협력 파트너로 부각되고 있다. 사진 셔터스톡
세계 2위 인구 대국에 IT와 우주 분야 첨단 기술을 보유한 인도는 인도·태평양 전략에서 중요한 협력 파트너로 부각되고 있다. 사진 셔터스톡
이준규  아산정책연구원 이사장 서울대 법학 학·석사,  전 인도·일본·뉴질랜드  대사, 전 외교안보원장,  전 한국외교협회장
이준규 아산정책연구원 이사장 서울대 법학 학·석사, 전 인도·일본·뉴질랜드 대사, 전 외교안보원장, 전 한국외교협회장

아산정책연구원은 2023년도 국제정세 전망의 주제어로 복합경쟁(Complex Competition)을 제시했다. 미·중 간의 전략경쟁은 무역, 미래성장동력의 확보, 국제질서 재편의 경쟁을 넘어 가치와 체제의 경쟁으로 격화되고 있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민주주의 대(對) 권위주의 세력 간의 진영대립’으로 확대되고 있다. 다른 질서와의 병존을 꾀하기보다는 국제질서 내에서 경쟁자를 소외시키고 배제하려는 시도가 부각되기 시작했고, 기존에 세계를 하나로 잇는 역할을 했던 경제문제 역시 이제 안보의 영역에서 해석되기 시작했다. 경쟁이 ‘투쟁’의 성격을 띠면서 중견국들은 이제 조정 역할보다는 선택을 강요받는 위치에 놓이게 됐으며, 군비경쟁 역시 양과 질 공히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지난 수년간 산발적으로 나타났던 이러한 현상들은 하나의 추세가 됐고, 이제 세계는 다차원적이고 다면적인 경쟁을 경험하고 있다. 글로벌 중추 국가로서의 가치 중심 외교를 표방하고 있는 우리나라도 이 국제적 복합경쟁의 와중에 어떻게 국가 안전과 번영을 추구해 나갈 것이냐 하는 과제에 직면해 있다.

 

우리 앞에 놓인 과제들

올해도 북한의 도발은 계속될 것이고, 7차 핵실험을 할 가능성이 상존하고 있다. 북한으로서는 3년 이상 계속되는 코로나19 봉쇄로 경제적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고, 연속되는 도발에도 불구하고 미국과의 대화 재개 기미는 보이지 않고 국제제재 완화의 기대도 할 수 없는 상황이 무척 답답할 것이다. 북한이 상황 타개를 위한 불장난을 할 가능성에 철저히 대비할 필요가 있다.

윤석열 정부는 미·중 사이에서의 전략적 모호성이 아니라 한·미 동맹 강화라는 선택을 확실히 했기 때문에 중국과의 관계를 어떻게 관리해 나갈 것이냐가 중요하게 됐다.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배치 문제로 비롯해 어긋나기 시작한 한·중 관계는 이제 정치적으로는 물론이고 경제적으로도 1990년대 말~2000년대 초의 황금기로 돌아가기는 불가능해졌다. 그러나 여전히 중국과의 관계는 정치·경제적으로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악화하지 않도록 최선의 노력을 할 필요가 있다. 동시에 우리 기업들은 중국의 대안을 찾아야 하는 필요성에 직면해 있는데, 이를 위해 정부의 역할이 필수적이다. 

윤석열 정부 출범 후 심혈을 기울여 추진해 온 한·일 관계 개선은 이제 어느 정도 탄력을 받고 있는데, 정부의 징용공 문제 해결방안에 대한 피해자들의 반발을 잘 무마하면서 일본 측의 성의 있는 협조를 얻어 내야 하는 과제가 남아있다.

우리가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으로 비롯된 대러 제재, 제한적이지만 우크라이나 지원에 참여함으로써 서먹해진 러시아와의 관계를 어떻게 관리해 나가느냐도 중요한 문제다.

 

글로벌 중추 국가의 인도·태평양 전략

정부는 작년 말 ‘자유, 평화, 번영의 인도·태평양 전략’을 발표했다. ‘대한민국이 인도·태평양 국가임을 명백히 하고 글로벌 중추 국가로서 지속 가능하고 회복력 있는 역내 질서를 만들기 위한 협력 의제를 적극 발굴하고 역내·외 국가 간 협력 논의를 주도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는 그동안 지역적으로는 한반도와 그 주변의 동북아에 머물렀고, 내용적으로는 안보와 경제에 머물렀던 우리 외교의 지평을 대폭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정부의 발표문에는 인도양, 태평양 연안의 수많은 나라와 협력이 나열돼 있지만, 결국은 동맹인 미국과 일본, 호주 등 우방국들과의 협력 강화가 그 첫걸음이 될 것이다. 이 나라들은 이미 상당히 오래전부터 인도·태평양이라는 개념을 도입해 전략적 사고를 해 왔고, 상호 간의 의견교환과 협력의 틀을 만들어 왔다. 특히 인도·태평양 전략에 관해 일본과 긴밀히 협조를 할 수 있다면 우리에게는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인도, 새로운 외교 지평 열 마법의 문

새로운 인도·태평양 전략에서 중요한 협력 파트너로 주목해야 할 나라는 인도다. 정부의 전략 발표문에서는 ‘역내 핵심 국가이자 우리와 가치를 공유하는 인도와 특별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강화할 것이다. 인도는 세계 2위의 인구와 IT, 우주 분야에서 첨단 기술을 보유한 성장 잠재력이 큰 국가다. 외교·국방 고위급 교류 등을 통해 전략적 소통과 협력을 강화하고, 한·인도 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CEPA)을 개선해 양국 간 경제협력 기반을 공고히 구축해 나갈 것’이라 했다.

인도 인구는 올해 세계 1위가 되고, GDP(국내총생산) 규모는 작년에 영국을 앞서 세계 5위가 됐다. 지금의 추세로는 2030년 전에 일본을 추월해 세계 3위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인도는 원래도 비동맹의 리더로서 외교적으로 상당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최근 급속히 신장되는 경제력을 바탕으로 국제사회에서의 목소리와 영향력이 날로 커지고 있다. 서로 대립하고 있는 미국, 중국, 러시아 등 여러 나라와 모두 좋은 관계를 맺고 있는 유일한 대국이기도 하다. 일본은 일찍이 인도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좋은 관계를 맺기 위해 노력을 기울여 왔다. 인도는 미국, 일본, 호주와 쿼드(QUAD)의 일원이며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의 창립 멤버이기도 하다. 올해 인도는 G20(주요 20개국) 의장국으로서 9월 델리에서 정상회의를 개최할 예정인데, 급속히 신장하는 경제력을 바탕으로 자신감 있는 리더십을 보여줄 것으로 예상된다. 인도를 우리의 ‘절친’으로 삼을 수 있다면 인도는 새로운 외교의 지평을 열어 줄 마법의 문이 될 수 있다.

 

수교 50주년 맞은 한·인도 관계

한국과 인도는 올해로 수교 50주년을 맞이했다. 서기 48년 인도 공주가 한반도에 와서 김수로왕과 결혼했다는 허황옥 설화로 시작되는 양국 관계는 불교를 통한 교류, 6·25 전쟁 시 인도의 의료부대 파견 등 좋은 기억과 함께 오랜 세월 좋은 관계를 유지해 왔다. 양국 정상이 방문할 때마다 격상되어 온 양국 관계는 ‘미래에 대한 비전을 공유하는 특별전략적동반자’가 되어 있지만 발전 잠재력에 비하면 아직도 갈 길이 멀다. 양국은 무역액이 각각 1조달러(약 1230조원)가 넘지만 두 나라 간 교역액은 200억달러(약 24조6000억원) 남짓밖에 되지 않는 것이 단적인 예다. 인도는 오랫 동안 우리나라를 동방정책의 대상 국가로서 협력 강화를 꾸준히 추진해 왔는데, 우리가 적극적으로 호응하지 못해 온 측면이 크다. 한국이 적극적인 인도·태평양 전략과 함께 중국과의 디커플링(decoupling·탈동조화)을 모색하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인도와의 협력을 강화해 나가야 할 때다. 

우리 기업들은 인도에 대한 편견과 두려움을 떨쳐내고 보다 더 진취적인 자세로 인도 시장에 진출할 필요가 있다. 인도 정부는 취약한 제조업 분야 진흥을 위해 ‘Make in India’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는데, 제조업 강국인 우리로서는 이를 기회로 삼아야 한다. 인도가 꼭 하이테크 제조업만을 원하는 것이 아니므로 인도에 대한 기술 이전을 두려워하지 말고 인도 기업들과의 과감한 합작투자에 나서는 것이 필요하다.

정부는 기업의 진출을 지원하는 구체적 정책을 추진할 필요도 있지만, 인도를 경제만이 아닌 포괄적 협력 대상으로 생각해 명실공히 ‘특별전략적동반자’다운 협력을 추진해 나가야 한다. 한·인도 수교 50주년인 올해 인도가 G20 의장국으로서 9월에 정상회담을 개최하는 것도 우리에게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 우리 대통령의 인도 방문과 함께 인도의 나한드라 모디 총리의 방한도 적극 추진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인도에 대해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자세를 갖는다면 인도는 우리의 ‘절친’이 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믿는다. 

코로나19로 인한 제약이 완화되면서 양국 간 인적 교류도 증가하고 있다. 급속히 부상하고 있는 인도에 대한 막연한 편견을 버리고 인도를 있는 그대로, 가급적 호의적인 눈으로 바라보면서 인도에 친밀감을 가지고 다가갈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