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드리언 쳉 부회장은 미술품 수집가로 유명하다. 그는 “예술 작품 수집은 중국의 소프트파워를 해외에 알리는 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사진 : 조선일보 이태경 기자>
에이드리언 쳉 부회장은 미술품 수집가로 유명하다. 그는 “예술 작품 수집은 중국의 소프트파워를 해외에 알리는 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사진 : 조선일보 이태경 기자>

“한국 사람들은 나이에 너무 민감하다. 그렇게 나이에 집착하면서 어떻게 소비시장의 중심인 밀레니얼 세대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겠는가.”

세계 최대 귀금속 체인 저우다푸(周大福) 등을 거느린 홍콩 뉴월드부동산그룹의 에이드리언 쳉(鄭志剛·38) 부회장은 우리 식으로 표현하면 ‘금수저를 입에 물고 태어난’ 재벌 그룹 상속자다. 그의 조부인 뉴월드부동산그룹 창업주 쳉위통(鄭裕彤)은 생전 리카싱(李嘉誠) 쳉쿵허치슨홀딩스(長江和記實業) 회장, 궈더성(郭得勝) 선홍카이 그룹 회장, 리자오지(李兆基) 핸더슨부동산 회장, 궈허녠(郭鶴年) 샹그릴라호텔앤드리조트 회장과 함께 ‘홍콩 5대 부호’로 꼽혔다. 지난해 세상을 떠났을 때 그가 보유한 재산(포브스 추정)은 166억달러(약 18조8000억원)에 달했다. 뉴월드그룹은 현재 쳉위통의 아들이자 에이드리언 쳉의 부친인 헨리 쳉(鄭家純) 회장이 이끌고 있다.

홍콩에 본사를 둔 뉴월드부동산그룹은 홍콩과 중국, 동남아시아 등지에서 백화점과 리조트, 카지노 개발 등으로 40조원이 넘는 연 매출을 올리고 있다.


“한국 기업, 중국 젊은세대 눈높이 맞춰야”

에이드리언 쳉 부회장은 그러나 거대 그룹의 상속자라는 이유만으로 자신을 한국의 재벌 2세에 비교하는 것이 못마땅한 듯했다. 중고등학교와 대학(하버드대 동아시아학) 시절 10년을 미국에서 혼자 지냈고, 이후 세계 최대 투자은행(IB) 골드만삭스에서 근무하는 등 독자적으로 역량을 쌓아왔다는 자부심 때문이다. 2009년부터 예술 전시와 쇼핑센터를 결합한 초대형 복합 쇼핑몰 ‘K11’을 홍콩과 상하이 등 9개 도시에 설립해 운영 중이다. 지난달 조선일보 아시안리더십콘퍼런스(ALC) 참석차 방한한 쳉 대표를 인터뷰했다.


그룹의 주력인 부동산과 귀금속 사업이 중국 경기 둔화로 어렵지 않나.
“두 사업 모두 내수 소비가 중요한데 홍콩을 포함해 중국에서 내수 소비의 중심인 중산층과 밀레니얼 세대(1980~2000년 초반 출생)의 소비심리는 아직 죽지 않았다. 밀레니얼 세대가 내수 소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40%대인데 2020년에는 50%대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매년 1~2%씩 증가하는 셈이다.”

홍콩 침사추이의 K11 쇼핑몰에 있는 백미당 팝업스토어에 아이스크림을 사기 위해 줄을 선 사람들. <사진 : 트위터 캡쳐>
홍콩 침사추이의 K11 쇼핑몰에 있는 백미당 팝업스토어에 아이스크림을 사기 위해 줄을 선 사람들. <사진 : 트위터 캡쳐>

1929년 설립된 저우다푸는 시가총액 기준 세계 최대 규모의 귀금속 전문 기업이다. 중국 전역에 2000개의 매장을 운영 중이며 국내에도 서울과 인천, 제주 신라면세점 등을 통해 판매망을 확보하고 있다.

중국 밀레니얼 세대의 소비 성향 특징은.
“특정 브랜드에 집착하지 않고 제품에 따라 취향이 쉽게 변한다. 따라서 밀레니얼 세대의 마음과 지갑을 열려면 상품과 서비스를 끊임없이 업그레이드해서 매 순간 뭔가 독특하게 느껴지게 만들어야 한다. 한류 콘텐츠도 마찬가지다. 케이팝(K-POP)이 홍콩에서 인기 있다고 해서 이런 노력 없이 안이하게 접근한다면 머지않아 인기는 시들해질 것이다.”

한국 기업이 중국 밀레니얼 세대에 어필하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한국인들은 나이에 너무 민감하다. 그렇게 나이에 집착하면서 어떻게 소비시장의 중심인 밀레니얼 세대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겠는가. 중국은 다르다. 20대, 30대 창업자가 많이 나온다. 왜 그럴까? 리더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는 ‘비전’을 제시하는 것인데 부쩍 어려진 핵심 고객층과 눈높이를 맞출 수 있어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 점에서 한국 사회는 지금보다 많이 유연해질 필요가 있다.”

얼마 전 남양유업과 함께 디저트 카페‘1964 백미당’을 홍콩에 론칭했는데 초기 반응은.
“이전에도 신라면세점과 이랜드, CJ 등 여러 한국 기업의 중화권 진출 파트너로 함께했다. 그래서인지 한국의 어떤 상품이 중화권에서 통할지에 대한 감이 좋은 편이다. 백미당 아이스크림을 처음 접하는 순간 홍콩에서 인기 있을 것이라는 느낌이 왔다. 이후 백미당 설립자(홍원식 남양유업 회장) 댁에서 부인 이운경 여사 등과 점심을 함께하며 홍콩 진출에 대해 논의했다. 홍콩 팝업스토어는 지난 7월 1일 홍콩 침사추이에 위치한 K11에 문을 열었는데 하루 총 1400개의 아이스크림을 팔아치웠다. 1시간 가까이 줄을 서서 기다린 사람들도 많았다.”

어떻게 성공을 직감했나.
“설명하기 어렵다. 한국 사람이 왜 매운 음식을 좋아하는지 설명할 수 있겠나? 그건 ‘취향’과 관련된 문제다. 홍콩과 중국에도 그런 취향이 분명히 있다. 감으로 느낄 뿐이다. 백미당이 홍콩에서 성공적으로 데뷔했지만, 아직 중국 본토에 진출할 타이밍이 아니라는 것도 감으로 느끼고 있다. 하지만 본토 소비자의 취향이 빠른 속도로 변하기 때문에 앞으로 1~2년만 지나도 상황이 어떻게 달라질지 알 수 없다.”

홍콩에 진출하는 한국 기업에 조언한다면.
“현지 사정에 밝은 좋은 사업 파트너를 찾는 게 중요하다. 한국인 사업가는 한국에 너무 익숙하기 때문에 중화권에서 통할 상품과 서비스를 결정하는 감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현지인의 입맛과 소비 트렌드, 경쟁 기업 등에 익숙한 파트너의 역할이 중요하다. 중국은 땅덩어리가 큰 나라인 만큼 지역적 특성도 자세히 살필 필요가 있다. 상하이(上海)와 선전(深圳), 광저우(廣州) 등 남부의 주요 도시는 홍콩과 여러 가지로 비슷하지만, 베이징은 매우 다르다.”

미술작품 수집가로도 유명한데.
“취미 삼아 시작한 지 20년이 됐다. 예술작품 수집이 중국의 ‘소프트파워’를 해외에 널리 알리는 데도 도움이 된다. 물론 회사 홍보에도 도움이 되겠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부수적인 효과일 뿐이다. 예술에 대한 열정은 가식할 수 없다.”

특별히 친분이 있는 한국 기업인은.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과 가깝다. 늘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넘친다.”


▒ 에이드리언 쳉(鄭志剛)
미국 하버드대 졸업(동아시아학), 골드만삭스 근무, 중국중앙미술원박물관 운영이사, 뉴욕현대미술관(MoMA)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