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병자’ 프랑스와 이탈리아가 개혁의 고삐를 죌 수 있을까. 최근 유럽에서는 CPE(최초고용계약) 위기를 겪은 프랑스, 그리고 총선을 치른 이탈리아, 두 나라가 뉴스의 초점이 됐다. 두 나라 모두 오랜 경기 침체에도 불구하고 개혁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데다, 정국 운영이 안개 속으로 진입하면서 개혁의 앞날이 불투명해졌기 때문.

프랑스의 경우, CPE 위기로 인해 ‘개혁이 불가능한 나라’ 프랑스의 부정적 면모가 다시 한 번 전 세계에 부각됐다.

지난 1월16일 도미니크 드 빌팽 프랑스 총리는 CPE(le Contrat premiere embauche·최초고용계약)라는 이름의 새 노동법을 제안했다. 기업들이 만 26세 미만의 청년층을 고용한 뒤 첫 2년 이내에는 특별한 사유 없이 자유롭게 해고할 수 있도록 허용한 법안이다.

지난해 프랑스 평균 실업률은 9.5%. 26세 미만 청년 실업률은 전국 평균의 2배도 넘는 23%에 달한다. 특히 파리 근교 저소득 이민자층이 많이 사는 지역은 청년 실업률이 40~50%가 넘는 곳도 있다.

연 2%도 안 되는 낮은 성장률 때문에 젊은이를 위한 새로운 일자리가 창출되지 못하자 빌팽 총리는 새로운 노동법으로 눈을 돌렸다. 기업들에게 “2년 이내에는 언제든 해고해도 좋으니 일단 젊은이를 한번 채용해보라”고 ‘쉬운 해고, 쉬운 고용’의 당근책을 준 것이다.

하지만 CGT 등 프랑스 노조들은 젊은이에 대한 CPE가 시행될 경우, ‘쉬운 해고, 쉬운 고용’의 원칙이 언젠가는 전체 노동시장으로 파급될 것으로 진단하고 대학생단체와 손잡고 즉각적인 ‘CPE 저지’ 연대 투쟁에 나섰다.

2월초부터 시작된 전국적 시위는 시간이 지날수록 숫자가 불어났다. 일부 학교는 문을 닫았고, 대학생과 고등학생들은 거리로 뛰쳐나와 “우리가 1회용이냐”며 CPE 반대목소리를 냈다. 수백만 명이 시위에 동참했다.

법안은 3월초 의회를 통과해 놓고도 결국 ‘거리의 정치’에 정부가 무릎을 꿇고 말았다. 사태가 악화되자 빌팽이 주도해온 CPE 사태에 자크 시라크 대통령이 나서 수정안을 제안했다. 하지만 노조와 학생들은 ‘CPE 완전 철회’를 요구하며 대통령의 타협안도 거부했다.

결국 시라크 대통령과 빌팽 총리는 ‘CPE 대신 다른 고용 촉진책을 내놓겠다’고 두 손들고 말았다. CPE를 대체한 새 법안은 지난 4월 중순 의회를 통과했다. 16~25세의 비숙련 청년이나 빈곤 지역 출신 청년을 고용하는 기업들에게는 보조금을 제공하는 방안으로 바뀌었다.

‘CPE 위기’는 프랑스 경제에 다시 한 번 어두운 그림자를 안겨다 주었다. 당장 지난 2월부터 격화된 시위로 기업의 생산 활동이 악영향을 받았다. 시위가 시작된 2월에 산업생산이 0.9% 하락했다.

더욱 심각한 것은 프랑스는 개혁이 불가능한 나라라는 이미지가 다시 한 번 전 세계에 낙인찍혔다는 점이다. CPE를 강행하려던 빌팽 총리는 인기가 급락했고, 정부의 리더십은 방향을 상실했다. 레임덕 현상이 가속되면서 내년 대통령 선거 전까지는 어떤 개혁도 힘들 것이라는 비관론이 지배적이다.

이탈리아 총선 후유증 심각

이탈리아의 경우, 4월9,10일에 치러진 총선이 이탈리아 경제에 새로운 희망을 안겨다 주기는커녕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던져주었다.

이번 총선에서 로마노 프로디 전 총리가 이끄는 중도좌파연합이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총리가 이끄는 중도우파연합을 이겼다. 문제는 지지율이다. 하원 선거에서 좌파연합은 49.8%를 얻어 이겼고 우파연합은 49.7%를 얻고도 졌다. 0.1% 차로 간신히 이긴 것이다. 상원에서도 좌파연합은 우파연합보다 겨우 2석 많은 158석으로 승리했다.

총선 결과에 이탈리아 언론들은 일제히 “이탈리아가 반으로 쪼개졌다”고 우려를 쏟아냈다. 표차가 워낙 적어 베를루스코니 총리는 총선에 져놓고도 패배를 인정하지 않고 재검표를 주장하면서 딴죽을 거는 등 심각한 ‘총선 후유증’도 겪었다.

지지율이 50%에도 미치지 못하는 ‘반쪽의 승리’로 과연 로마노 프로디 정부가 첩첩산중의 과제를 떠안고 있는 이탈리아 경제에 힘찬 개혁의 프로펠러를 돌릴 수 있을 것인가?

볼로냐 대학의 아우구스토 바르베라 교수는 “그것은 마치 자전거를 타는 것과 같다. 발판을 빨리 구르면 안정적으로 서 있을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하면 쓰러질 것”이라고 빗대어 표현했다. 이탈리아 총선 이후 주식시장은 이 부정적 전망을 반영해 주가지수가 하락했다.

사실 이번 이탈리아 총선에서 유권자들은 프로디에 기대를 걸어서가 아니라, 베를루스코니에 대한 염증으로 프로디에 표를 던진 것이나 다름없다.

베를루스코니 총리는 지난 2001년 집권해 2차 대전 이후 ‘이탈리아 최장수 총리’라는 기록까지 세웠다. 이탈리아 최대 갑부인 그가 경제를 되살릴 수 있을 것이라는 국민들 기대도 컸다. 하지만 결과는 너무나 실망스러웠다.

베를루스코니의 집권 5년간 이탈리아의 평균 경제성장률은 0.8%에 그쳤다. 지난해 성장률은 0.1%로, 거의 성장을 멈췄다. 정부 부채는 연간 GDP의 4.6%나 된다. 매년 450억유로(약55조원)가 순전히 이자로만 나간다. 이탈리아의 정부 부채는 세계에서 세 번째로 많다. 갑부 베를루스코니는 자기 재산을 불리는 데만 성공했지, 나라 경제는 이렇듯 망쳐놓았다.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좌파연합이 정권을 잡는데 성공한 것이다. 이번 총선으로 프로디는 2차 대전 이후 61번째 내각을 이끌게 된다. 지난 61년간 정권이 61번이나 바뀔 만큼 이탈리아 정치는 불안정한 ‘회전문 정치’로 통한다. 그래서 개혁의 앞날이 순탄치 않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프랑스와 이탈리아 경제의 심각성은 특히 두 나라의 높은 청년 실업률에서 그 정도를 짐작할 수 있다.

청년 실업문제는 한국에서도 날로 심각해지고 세계 각국이 공통으로 안고 있는 고민거리다. 영국과 미국의 경우, 각각 지난해 전체 실업률이 4.9%에 불과하지만 청년 실업률(14~24세 기준)은 이의 2배도 넘는 13.6%와 10.7%에 달했다. 만성적인 실업을 겪어온 독일과 스페인에서도 각각 전체 실업률은 9.5%와 8.5%인 반면, 청년 실업률은 2자리 숫자인 15.5%와 18.9%에 달한다.

하지만 프랑스와 이탈리아에서는 상황이 훨씬 심각하다. 청년 실업률이 20%가 넘는다. 이탈리아와 프랑스의 청년 실업률은 각각 24.1%, 23%나 된다.

기성세대는 갖가지 고용 보장 덕분에 불황에도 ‘철밥통’을 지키는 반면, 새로 노동시장에 진입하는 청년층은 몇 달짜리 임시직을 전전하면서 앞날이 불투명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실제로 프랑스 젊은이들은 ‘부모 세대가 누리던 평생고용을 우리에게서 뺏어가지 말라’며 정부의 CPE에 반대했지만, 평생고용은커녕 웬만한 직장을 구하는 것조차 힘들다. CPE가 적용되기 이전에도 프랑스에서는 취업자의 70%가 만 18개월 이내의 한시적 계약으로 간신히 일자리를 구하는 현실이었다. 다른 유럽 국가 젊은이들이 안정적 일자리를 구하는데 4~5년 걸리는 반면, 프랑스에서는 8~11년이나  걸린다.

이탈리아는 더 심각하다. IRES라는 경제사회 조사기관이 올 초 16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24세의 이탈리아 젊은이 중 87%가 단기 계약제로 일하고 있었다. 안정적 직장을 잡아야 할 나이인 25~32세도 53.5%가 단기 계약제로 일한다. 월소득도 낮다. 17~24세 젊은이 중 89.2%가 월 1000유로 이하를 벌고, 25~32세 연령층도 64.9%가 월 1000유로 이하를 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제자리걸음하는 경제, 높은 실업률은 진취적이어야 할 젊은이들을 소극적이고 비관적인 태도를 갖게 만든다. 이 우울한 현상에도 불구, ‘개혁의 지각생’ 프랑스와 이탈리아는 과감한 수술에 나서지도 못하고 시름시름 병이 더 깊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