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고의 경제성장률을 구가해 오고 있는 중국에 ‘경제 애국주의(economic patriotism)’ 바람이 불고 있다. 외국 기업에 대한 노골적인 기술 이전 요구와 외국자본 진출과 인수합병(M&A)에 대한 규제 강화, 국내외 기업에 대한 단일 법인세 부과 같은 장벽 쌓기가 줄을 잇고 있다. 유럽, 미국에서 점화된 ‘경제 애국주의’가 이제는 중화권 심장부로까지 번지고 있는 것이다.

계 최고의 경제성장률을 구가해 오고 있는 중국에 ‘경제 애국주의(economic patriotism)’ 바람이 불고 있다. 외국 기업에 대한 노골적인 기술 이전 요구와 외국자본 진출과 인수합병(M&A)에 대한 규제 강화, 국내외 기업에 대한 단일 법인세 부과 같은 장벽 쌓기가 줄을 잇고 있다. 유럽, 미국에서 점화된 ‘경제 애국주의’가 이제는 중화권 심장부로까지 번지고 있는 것이다.

중국 정부의 고위 관료들은 외국 자본에 대한 반감(反感)을 노골적으로 쏟아내고 있다. 1979년 경제개혁·개방을 선언한 지 27여 년만의 ‘코페르니쿠스적 대반전’이나 마찬가지다. 지난 3월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에서 외국 기업을 맹비난한 리더수이(李德水) 당시 중국 국가통계국장이 대표적이다. 그의 발언을 몇 부분만 옮겨보면 이렇다.

“중국 시장을 독점하려는 악의적인 외국 기업 때문에 민족 공업의 기술혁신 능력이 점차 소멸되고 있으며 중국 선두기업이 다국적기업의 완전한 통제에 놓일 수 있다.”

“외국 기업들의 방종한 시장 행위는 중국 경제의 안전은 물론 주권마저 위협하게 될 것이다. 국가가 외국 기업의 투자를 환영만 하고 있다가는 중국의 발전과 경제적 안전은 더 이상 없을 것이다. 우리는 중국 시장에서 벌이는 외국 기업의 사악한 이윤 획득과 독점 행위를 결단코 막을 것이다.”

‘경제 대통령’격인 원자바오(溫家寶) 총리도 같은 달 정부 업무보고에서 “개방을 확대하되 국가경제의 안전을 지키는 일도 중시해야 한다”면서 경제 안보와 외국 기업 경계론을 설파해 반 외국 기업 정서가 중국 지도부의 공통 관심사임을 입증했다. 올해 전인대에서는 외국 기업이 중국 기업을 손쉽게 인수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경제안전기본법’을 속히 제정하라는 건의안까지 제출됐다.

일선 기업 현장에서는 노골적인 ‘중국 우선주의(China Firstism)’가 가시화하고 있다. 지난달 중국 정부가 베이징(北京)∼상하이(上海) 간 고속철도 건설을 독자기술로 추진하겠다고 선언한 게 단적인 예다. 수십조원의 자금이 투입되는 초대형 프로젝트를 놓고 치열한 경합을 벌여온 독일, 프랑스, 일본 기업 등은 중국의 독자 추진 방침에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격으로 허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중국에서 외국자본과 기업에 대한 규제 움직임이 크게 부각되는 것은, 중국 경제에서 외국인 투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절대적이기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2001년 세계무역기구(WTO) 가입과 동시에 자본 시장을 열어젖힌 중국은 2004년 한 해에만 2위 인도의 10배에 가까운 600억달러의 외국인 직접 투자(FDI)를 끌어들였다.

이에 힘입어 ‘세계의 공장’으로 부상한 중국이지만, ‘메이드 인 차이나’제로 잡힌 총수출액의 절반 이상은 외국인이 투자한 기업에서 창출되고 있다. 홍콩 경제지 <신보(信報)>에 따르면, 중국 상무부는 2005년 모두 50만 개에 이르는 외자기업이 중국 수출총액의 57.1%를 차지하고 있으며 세수 총액의 21%를 창출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더욱이 외자기업이 수출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01년 50.1%에서 2002년 52.2%, 2003년 55.6%, 2004년 57.8%로 계속 높아지고 있는 추세다. 2006년 2월 현재, 중국에 진출한 외자기업은 모두 55만8000여 개이며, 그동안 모두 6310억달러의 천문학적 금액을 쏟아 부은 것으로 집계됐다.

특히 2004년 중국의 하이테크 산업 분야 수출을 보면, 외자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87.3%에 달했다. 정보기술(IT) 산업에서도 중국 내 외자기업이 산업 전체 매출의 77.0%, 수출의 85.8%, 부가가치 생산의 74.4%를 차지할 정도로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문제는 지금까지는 외자기업의 중국 진출로 초보적인 산업화와 생활수준 향상의 기틀을 마련하는데 성공했지만 시장만 내주고 고급 기술은 얻지 못한 채 ‘만년 2~3류 국’에 머물 수 있다는 점이다.

“외자기업 중심의 발전이 계속되면 중국의 경제와 국내총생산(GDP)은 급성장하는 것으로 나타나겠지만 결국 그것은 ‘껍데기’에 불과하며 중국의 국익은 상처받고 절대다수 인민에게는 어떤 혜택도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는 비판론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궈궈칭(郭國慶) 인민대 상대 교수는 “외자가 중국 경제성장에 긍정적 작용을 하긴 했지만 외자기업의 수출액이 절반 이상을 넘는다는 것은 중국 경제가 외국자본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다는 점을 반영한다”고 지적했다. 즉 토종 기업들의 경쟁력은 향상되지 못한 채 일차적인 상품 생산과 소비 기지로 전락한 중남미 국가들의 실패 모델을 중국이 반복할 수 있다는 ‘남미화 위기론’이 엄습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 정부 딜레마에 빠져

이런 맥락에서 주목되는 부분은 중국 상공업계와 정부가 구체적인 행동으로 대응에 나서고 있다는 점이다. 중국상공업연합회는 최근 정부에 “경제안보를 위해 기간산업 분야에 대한 외국자본의 국내 진출 제한 규정을 확대해 달라”고 공식 요청했다.

또 중국 국가세무총국(한국의 국세청 격)은 현재 중국 기업의 절반 수준에 불과한 법인세를 내고 있는 외국 기업들에 대한 법인세 감면 혜택 폐지를 적극 추진하고 있다. 이르면 오는 2008년부터 중국 내 외국 기업들은 현행 법인세율(11%)의 2배 가까운 법인세 부담을 떠안아 상당한 타격을 입을 전망이다.

물론 중국 정부가 외국 자본과 기업에 대해 일방적으로 규제나 탄압을 하기는 힘든 구조이다. 수천만 명의 대졸자들에게 일자리를 마련해주기 위해서는 연간 7~9%의 경제성장이 필수적이며 이를 위해서는 외자를 지속적으로 유치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외자를 예전처럼 환영할 수만도 없는 ‘딜레마적 상황’에 빠져 있는 셈이다. 외국 기업 15%, 중국 기업 33%의 법인세율을 24%로 단일화하는 기업소득세법 개정안이 올해 전인대에서 본격 심의를 앞두고 있다가 8월로 전격 연기된 게 이런 고민의 한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중국이 외국 기업과 자본에 대해 벽을 쌓아 올리면 올릴수록 세계 경제에 엄청난 충격파를 몰고 올 뿐 아니라 중국 내 최대 투자 진출 국가인 한국이 휘청거릴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영국의 <이코노미스트>도 최근호에서 “1990년대 초 덩샤오핑(鄧小平) 당시 주석은 경제성장을 앞세워 시장개방에 반대하는 세력을 격파했으나, 지금은 국내 정치 불안정과 빈부 격차 심화로 외자 경계론을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중국이 내건 ‘카드’는 두 가지다. 자주창신(自主創新·외국 자본과 기술에 의존하지 않고 독자 기술로 혁신을 이룬다)과 자주상표(自主名牌) 전략으로 중국의 독자적인 기술력을 확보하는 한편, 막대한 외환보유고를 이용해 해외의 우수 기업들을 통째로 사버리는 양면 전략이다. 중국의 외환보유액은 올 2월 말 8537억달러로 지금까지 세계 1위였던 일본(8501억달러)을 추월했다. 지난해 중국의 비금융 부문 해외 직접투자는 69억2000만달러로 2004년에 비해 25.8% 늘어나 최고치를 경신했다.

상하이(上海) 푸단(復旦)대학 경영학과 쉐추즈 교수는 “5년 안에 중국 기업들의 연간 해외투자 규모가 적어도 100억달러에서 150억달러로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한다.

안으로는 외국 자본과 기업 활동에 대한 규제를 높이고, 밖으로는 알짜 해외 기업들을 대거 사들여 단기간에 최대한의 기술축적과 선진국 따라잡기(catch-up)라는 두 마리 토끼를 사로잡겠다는 복안이다. 중국의 맹추격에 맞설 한국 정부와 기업의 지혜로운 대응이 긴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