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통계는 체감과 다르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물가가 떨어질수록 실질성장률이 체감보다 ‘뻥튀기’돼 왔다. 새로 도입한 성장률 계산법대로 하면 2005년은 ‘0%’ 성장이 유력하다.
 일본 정부는 2004년 12월8일 개정 GDP 성장률을 발표했다. 이날 발표한 2003년도(2003년 4월~2004년 3월) 일본의 GDP 성장률은 1.9%였다. 우리나라처럼 1월부터 12월로 계산할 경우 1.3%다. “아니, 일본의 2003년 경제 성장률은 3.2% 아니었나? 그래서 일본 경제가 10년 불황을 탈출했다는 얘기가 많이 나왔는데”라는 의문이 당연히 나올 것이다. 눈을 의심케 하는 수치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이날 함께 발표한 일본의 2003년 3분기 성장률은 전분기 대비 연율로 0.2%, 2분기 성장률은 같은 방식으로 마이너스 0.6%를 기록했다. “아니, 일본 경제는 10분기니 11분기니 연속 플러스 성장을 기록했다고 그러지 않았나? 일본 경제가 10년 불황에서 회복했다는 게 정말 맞는 말이야?”라는 의문이 당연히 나올 만하다.

 ‘눈을 의심한다’는 말이 있다. 그래도 “설마 자신의 눈을 의심하랴”로 생각해 왔는데, 2004년 들어서는 정말 한두 달에 한 번씩 눈을 의심한다. 일본의 분기별 GDP 성장률 발표와 한 달 정도 후의 수정치 발표를 볼 때마다 그렇다.

 2004년 2월에 발표된 일본의 2003년 4분기 경제 성장률은 무려 연율 7%였다. 아침부터 발표를 기다리다가 7%라는 속보를 보고 눈을 의심했다. 그리고 속보를 띄운 기자가 계산을 잘못한 게 아닌가 의심했다. 경제가 좋아진다고 수치는 나오고 있었지만 일상생활에서 일본의 경제 회복이라는 것은 거의 느낄 수 없는 상황이었다. 실제로 당시 일본 국민들을 대상으로 한 여론 조사에서 ‘경제 회복을 실감하지 못한다’는 대답이 85%에 달했다.

 6개월 만인 올 8월에 발표된 일본의 2004년 2분기 경제 성장률은 연율 1.7%였다. 또 눈을 의심했고, 그 다음에는 “연율을 계산하려면 분기 성장률 곱하기 4를 해야 하는데, ‘곱하기 4’를 잊은 게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경제 싱크탱크 애널리스트들이 예상한 성장률은 4%가 넘었기 때문이다. 1개월 후에 수정치가 나오면 최소한 3~4%는 될 것으로 애널리스트들은 분석했는데, 이번엔 오히려 1.3이었다. 이 수치는 12월이 되면 마이너스 0.6으로 변한다.

 사실 ‘눈을 의심케 하는’ 통계가 좋은 통계일 수는 없다. 그런 점에서 보면 일본의 통계는 그 어느 나라의 통계보다도 ‘마술’이 심한 통계다. 그리고 12월의 일본 GDP 수정 발표는 통계가 나라 경제의 실상을 정부의 본의와는 상관없이도 어떻게 왜곡하는가를 볼 수 있는 가장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일본의 경제 성장률이 12월 초에 대폭적으로 하향 조정된 것은 일본이 GDP 산정 방식을 바꿨기 때문이다. 일본이 산정 방식을 바꾸게 된 계기는 앞서 적었던 2003년 4분기와 그 이전 2분기(당시 4% 성장 발표)의 ‘납득할 수 없는’ 고성장 때문이었다. 7%의 성장이라면 말 그대로 개발도상국을 연상케 하는 엄청난 성장이다. 세계 경제 2위의 일본이 7% 성장을 1년 반 정도에 하면 한국만한 경제가 하나 생긴다. 그러나 누가 봐도 그런 체감은 없었다. 이 때문에 “통계가 잘못된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결국 문제는 ‘디플레이터’에 있다는 해답이 나왔다. 일본은 특정 연도의 물가를 기준으로 물가 상승률을 산정해 왔다. 보통 한 나라의 GDP는 물가 변동을 감안하지 않은 명목 GDP와 변동을 감안한 실질 GDP로 나뉜다. 보통 물가가 오르는 것이 상식인 우리나라에서는 명목 GDP만 가지고 성장률을 보면 너무 과대평가가 돼서 의미가 없고, 물가가 오른 만큼 이를 빼는 실질 성장률이 중요하다고 한다.

 그러나 일본의 경우는 다르다. 일본은 벌써 7~8년 동안 만성적인 디플레이션(물가 하락)이 벌어지고 있었다. 문제는 물가 하락과 동시에 손에 쥐는 현실적인 임금도 하락하고 있다는 것이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실제 물가와 관계없이 실수령액이 줄어들면 허리띠를 조르게 된다. 그래서 일본에서는 우리나라와는 정반대로 ‘실질 GDP 성장률’보다 ‘명목 GDP 성장률’이 체감에 가깝다고 한다. 이 명목 GDP 성장률의 경우 일본은 아직 디플레가 문제가 되기 전인 1996년(2.8%)을 제외하면 최고 1.2%를 넘긴 일이 없고, 그래서 장기 불황이라고 한다.

 말하자면 일본은 우리와 달리, 물가가 떨어지면 떨어질수록 실질 성장률이 체감보다 뻥튀기 된다는 것이다. 게다가 특정 연도 물가와 비교하면 첫해는 그래도 체감에 가까운 하락률을 기준으로 할 수 있지만, 3년째가 되고 4년째가 되면 현실과의 갭은 훨씬 커진다. 물가가 오르고 내렸으면 그나마 낫지만, 일본은 물가가 거의 7~8년 사이 내리기만 했으므로 당연히 물가 하락률은 체감 하락률과 엄청나게 괴리가 커진다.

 게다가 물가 하락률을 계산할 때는 기계의 성능 진보를 물가 하락으로 간주한다. 예를 들어, 486 PC가 단종되고 펜티엄 PC가 주종이 되면 그만큼 가격이 하락한 것으로 한다는 얘기다. 그러나 실제로는 기종이 바뀐 것으로 일반인들 입장에서는 성능이 좋아진 물건을 쓰게 됐을망정 물가가 떨어졌다고는 하기 힘든데, 이런 장기간의 기술 축적이 그대로 디플레 수치를 과장하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게다가 1년 단위로도 크게 바뀌는 IT 업종의 가격을 몇 년 전과 비교한다는 것은 사실 무리다. 일본이 사용해 온 기준 연도는 1995년이다. 즉 무려 10년 전 기준으로 현재 ‘디플레가 계속되고 있다’고 말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었던 셈이다.

 일본이 이번에 도입한 것은 ‘연쇄법’이다. 한마디로 말해 1년 전을 기준으로 물가 하락률을 계산하는 것이다. 물론 이전부터도 연구는 해왔지만, 통계가 체감과 다르다는 지적이 잇따르자 도입을 결정한 것이다. 사실 분기별 성장률은 전분기와 비교하는 것이기 때문에 물가 하락률을 전년도와 비교하는 것도 완전히 바람직하지는 않은 것이다. 그러나 일단 이 방식은  구미 여러 나라가 채택하고 있어 일단 다른 나라들과 수평 비교는 된다는 분석이다.

이번의 GDP 개정을 바탕으로 일본은 한참 홍역을 겪을 예정이다. 이 분석대로라면 그동안 일본 경제를 눌러온 것이 과연 디플레였는가 하는 데 의심이 들 정도로 물가 하락률 자체는 크지 않다. 아예 잠재 성장률의 하락을 걱정하는 편이 옳을 정도다.

 일본이 10년 불황을 탈출했는지 여부도 제로부터 다시 시작하는 편이 옳을 듯싶다. 2003년에 기록한 1.9%의 성장률은 95년 2.5%, 96년 3.6%의 2년 연속 성장에 비하면 낮은 수준이고 2000년의 2.5% 성장과 비교해도 낮은 수준이다. 2004년 성장률 예측은 아직 나오지 않고 있으나 3%는 되지 않을 것 같고, 2005년 예측과 관련해서는 0% 성장이 유력하게 제기되고 있다. 일본 언론들은 “3%의 성장은 환상이었다는 말이냐”라고 허탈한 표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