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17일 미국 마운틴뷰에서 열린 구글 연례 개발자 대회에서 순다 피차이 최고경영자(CEO)가 인공지능(AI)을 적용한 최신 사진 서비스인 ‘구글 렌즈’ 를 설명하고 있다. <사진 : 블룸버그>
지난 5월 17일 미국 마운틴뷰에서 열린 구글 연례 개발자 대회에서 순다 피차이 최고경영자(CEO)가 인공지능(AI)을 적용한 최신 사진 서비스인 ‘구글 렌즈’ 를 설명하고 있다. <사진 : 블룸버그>

구글은 산만한 회사다. 사람들은 경영에서 성공하려면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구글은 이와 거리가 멀다. 구글이 제품을 발표하는 방식을 보자면 산만한 아이가 떠오른다.

구글의 산만함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는 메신저앱이다. 대부분 소프트웨어 회사는 메신저 서비스를 단 하나만 운영한다. 다음카카오가 카카오톡만 만들고, 라인이 라인만 만드는 식이다. 물론 예외도 있다. 페이스북은 페이스북 메신저와 왓츠앱(WhatsApp) 2가지 메신저를 갖고 있다. 하지만 이건 페이스북이 추후에 왓츠앱을 인수했기 때문이다.

반면, 구글은 무려 5가지나 되는 메신저 서비스를 운영 중이다. 2013년 발표한 ‘행아웃(Hangouts)’을 비롯해, 안드로이드용 단문메시지(SMS)앱 ‘메신저(Messenger)’, 인공지능비서 통합 메신저앱 ‘알로(Allo)’, 영상 통화앱 ‘듀오(Duo)’, 인터넷전화(VoIP) 및 메시지앱 ‘구글 보이스(Google Voice)’ 등이다. 이 중 외부 인수와 직접 연관된 것은 2014년 인수한 ‘이뮤(Emu)’와 관련된 알로뿐이다. 구글은 이처럼 조금씩 기능이 겹치는 앱을 회사 내부 여러 팀이 경쟁적으로 제작해왔다. 일반적인 회사라면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AI에 집중한 ‘구글 I/O 2017’

그러나 이런 구글을 두고 ‘산만하다’는 말만으로 표현하자면 부족하다. 이 회사를 제대로 묘사하려면 그 뒤에 ‘천재’ 혹은 ‘신동’이라는 단어를 붙여야 한다. 엇비슷한 메신저를 5개나 만들고 있지만, 모두가 수준급인 것처럼 말이다. 어린 신동이 여러 가지에 흥미를 보여 빠르게 성과를 내는 것 같은 게 구글이다. 그렇게 잘하다가도 금세 싫증을 내고 한편으로 치워버리는 것 같은 모습 역시 구글이다.

만약 산만한 천재가 뭔가 하나에 집중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구글 본사가 있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마운틴뷰의 주변 야외 공연장에서 지난 5월 17일부터 20일까지 구글 개발자 대회 ‘구글 I/O 2017’이 열렸다. 이 자리에서 구글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데이터를 다루는 1등 인터넷 서비스 기업이 단 한 가지 주제 ‘인공지능’에 천착하면 어떤 결과를 낼 수 있는지를 보여줬다.

구글은 올해 구글 I/O에서 총 3개 기조연설을 마련했다. 일반 기조연설, 개발자 대상 기조연설, 가상현실(VR) 분야 기조연설. 대다수 개발자 대회에서 기조연설은 단 한 번으로 끝나는 것에 비하면 이례적인 일이었다. 구글은 그만큼 할 말이 많아보였다. 이 모든 분야 기조연설에서 공통적으로 언급된 방식은 기계학습(machine learning)을 통한 인공지능이었다.

개막 연사로 무대에 오른 순다 피차이 구글 최고경영자(CEO)는 “과거 우리는 이 자리에서 세계가 ‘모바일 우선(mobile first)’ 시대로 나아가고 있다고 밝혔다. 이제 우리는 모바일 우선 시대에서 ‘인공지능 우선(AI first)’ 시대로 가는 중대한 변화를 맞이하고 있다”며 “구글은 이미 가능한 거의 모든 제품에 인공지능을 탑재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진정한 인공지능 우선 세계로 진입하기에는 아직 갈 길이 멀다. 그러나 사람들이 활용할 수 있는 도구와 기술을 누구나 사용할 수 있도록 접근성을 높이도록 노력한다면 보다 빠른 시간 안에 누구나 인공지능의 혜택을 받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피차이 CEO 이후 무대에 오른 구글 임직원들 역시 입을 모아 인공지능을 적용해 제품을 편리하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지금은 스마트폰에서 복사할 문장을 고를 때 내가 원하는 부분을 시작에서 끝까지 꾹 눌러줘야 한다. 하지만 차세대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에서는 인공지능 기술을 이용해 스마트폰이 알아서 사용자가 원하는 부분을 한 번에 골라준다. 스마트폰이 문장의 시작과 끝을 인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진에서 없애고 싶은 부분도 알아서 사라진다. 예를 들어 철조망 너머에서 풍경 사진을 찍었다면, 인공지능이 철조망을 지워야 할 부분으로 인식하고 알아서 지워준다. 이 모든 것이 인공지능을 적용한 성과라고 구글 임직원들은 말했다.


AI기술이 적용된 구글 홈 스피커. <사진 : 블룸버그>
AI기술이 적용된 구글 홈 스피커. <사진 : 블룸버그>

2000년대 중반부터 AI 연구 본격화

구글은 어떻게 인공지능의 강자가 된 걸까. 지난해에도 구글 I/O에 참가한 한 한국인 개발자는 “작년에도 다양한 인공지능 기능을 보이긴 했지만, 올해처럼 전면적이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불과 1년 만에 일어난 변화일까. 구글 검색 부문에서 일하는 한국인 엔지니어링 매니저 이동휘씨는 고개를 저었다. 그는 “밖으로 드러나지 않았을 뿐, 구글은 아주 오래 전부터 인공지능에 힘을 쏟아왔다”고 했다. 이씨는 “내가 입사한 2006년 즈음에도 구글에는 강의 한 번에 2시간씩 하는 16주짜리 머신러닝 코스가 있었다”며 “머신러닝 관련 교과서를 쓴 사람들이 강사로 나서서, 웬만한 대학원 강의보다 수준이 높았다”고 했다. 인공지능 관련 분야 대가들이 10년 전부터 구글에 재직 중이었고, 그들이 사내 인력을 양성했다는 것이다.

구글 공동창업자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은 늘 컴퓨터의 미래로 미국의 SF 드라마 ‘스타트렉’에 나오는 컴퓨터를 꼽았다. 스타트렉은 우주선에 탄 승무원들이 은하계를 탐험하는 내용이다. 이 드라마에 나오는 컴퓨터는 승무원들이 궁금한 걸 말로 물어보면 말로 대답해준다. 대화의 맥락을 알고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다.

현재 구글, 구글벤처스, 웨이모(자율주행 자동차 기업) 등의 지주회사인 알파벳의 최고경영자(CEO)로 재직 중인 페이지는 2012년 구글 검색에 ‘지식 그래프’라는 인공지능 기능을 적용한다는 내용을 직접 발표했다. 그는 이 발표문에서 “어린 시절 흑백 TV로 스타트렉을 보며, 스타트렉에 나오는 스타십 컴퓨터가 내가 하는 모든 질문에 즉시 대답해 주는 미래를 상상했다”고 말했다. 그가 어린 시절부터 꿈꿔온 이상적인 컴퓨터를 만들기 위해 줄곧 노력해왔다는 것을 보여준다.


구글 인공지능 알파고와 중국의 커제 9단과의 대국장면. <사진 : 조선일보 DB>
구글 인공지능 알파고와 중국의 커제 9단과의 대국장면. <사진 : 조선일보 DB>

AI가 또 다른 AI 가르칠 수 있어

구글은 이제 인공지능을 통해 기계가 온 세상을 직접 공부하게 할 기세다. 구글은 지난해 컴퓨터에 귀를 달아줬다. 사용자가 음성으로 물어보면 음성으로 대답하는 대화형 비서 서비스 ‘구글 어시스턴트’가 그것이다. 올해는 여기에 눈을 추가했다. 영상 입력 서비스 ‘구글 렌즈’는 사용자가 사진을 찍으면 컴퓨터가 사진 내용을 알아보고 거기에 대한 내용을 알려준다. 구글은 기조연설에서 공연 안내 간판을 사진으로 찍는 모습을 시연했다. 간판을 사진으로 찍자, 이 간판에 걸린 공연이 무엇인지, 이 공연을 예약할 생각인지 물어본다. 예약하겠다고 대답하면 자기가 알아서 일정표에 추가해준다. 객석에서는 박수와 함께 ‘미쳤다’는 말이 터져 나왔다.

구글은 이 밖에도 거의 모든 곳에 인공지능을 장착했다. 대화형 비서 서비스 구글 어시스턴트는 이제 화면을 가리지 않고 어디서든 튀어나온다. 구글이 공개한 사례는 이렇다. 집에서 인공지능 스피커인 구글 홈에 “내 다음 일정이 뭐지?”라고 묻는다. 구글 홈이 사용자의 음성을 알아듣고, 캘린더에 저장된 일정의 시간과 장소를 알려준다. 이때 내가 아닌 다른 가족 구성원의 일정을 알려줄까 걱정할 필요는 없다. 사람 목소리를 구분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대고 “그래. 가자(let’s go)”고 말하면, 스마트폰 화면에 길 안내를 띄운다. 만약 다음 일정이 외출이 아니라 드라마 시청이었다면, TV 화면을 켜서 드라마를 보여준다. 이 모든 것이 인공지능을 통해 ‘알아서’ 이뤄진다. 마치 사람에게 말한 것처럼 ‘개떡같이 얘기해도 찰떡같이 알아듣는’ 모양새였다.

인공지능은 우리 삶을 어떻게 바꾸게 될까. 우리는 점점 더 컴퓨터를 사람처럼 대하게 될 것이다. 컴퓨터가 처음 나왔을 때, 사람은 컴퓨터에 의사를 전달하기 위해 종이 카드에 구멍을 뚫어 명령어를 입력했다. 이후, 컴퓨터가 알아들을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 언어’가 나왔다. 현대의 대다수 일반인은 키보드, 마우스, 터치 따위 수단을 배워 컴퓨터와 소통했다. 그러나 인공지능이 보편화되면, 인간은 다른 인간을 대하는 것처럼 컴퓨터를 대할 수 있다. 말로 설명하고, 그림을 보여줘서 답을 요구할 수 있다. 페이지 알파벳 CEO가 꿈꿔온 세상이 눈앞에 다가온 것이다.

하지만 이 인공지능은 어떻게 작동하는 것일까. 대중은 인공지능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이해할 수 있을까. 구글은 현재 인공지능 분야에서 가장 앞선 기업이다. 인공지능 기술의 최전선에서 기술 개발에 손을 보태고 있는 구글의 엔지니어조차 인공지능이 정확히 어떤 기준으로 어떻게 판단하는지 잘 모르는 눈치였다. 그에게 “구글 어시스턴트는 어떤 기준으로 정보를 표시할 화면을 결정하느냐”고 물었다. 그는 “매우 여러 가지 조건을 복합적으로 따져서 결정하기 때문에 어떤 상황에선 어떻다고 말할 수 없다”고 말했다. 마치 진짜 사람 마음처럼, 인공지능의 머릿속은 시커먼 블랙박스다.

일반인은커녕 기술에 밝다는 사람들도 대부분은 인공지능을 이해하지 못한다. 앞으로는 더욱 더 이해하기 어렵게 될 전망이다. 구글은 개발자대회를 앞두고 ‘오토ML(auto Machine Learning)’이라는 기술에 대한 논문을 발표했다.

여태까지는 인공지능을 가르치기 위해 인간 선생님이 곁에 붙어 있어야 했다. 인간이 인공지능이 제대로 배우는지 아닌지 감시하고, 잘못된 학습을 고쳐 줬다. 인공지능 그 자체를 만들기 위해서는 인간이 필수적이었다. 하지만 오토ML 기술을 적용하면, 인공지능이 인공지능을 가르칠 수 있고 배울 수도 있다.

알파고 핵심 칩인 ‘TPU(텐서프로세서유닛)’ . <사진 : 구글>
알파고 핵심 칩인 ‘TPU(텐서프로세서유닛)’ . <사진 : 구글>

피차이 구글 CEO는 이 기술에 대해 설명하며 영화 ‘인셉션’을 예로 들어 농담했다. 인셉션에서 주인공은 타인의 꿈속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그 꿈속에서 다시 한 번 잠들어 꿈속의 꿈으로 들어가고, 거기서 또 잠들어 꿈속의 꿈속의 꿈으로 들어간다. 이처럼 인공지능이 인공지능을 가르치고, 인공지능으로부터 배운 인공지능이 또 인공지능을 가르칠 수 있다. 즉, 인공지능 여러 대가 서로를 스승과 제자로 삼아 학습해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인공지능은 이미 여러 부문에서 인간을 초월했다. 대표적인 분야가 바둑이다. 지난해 이세돌 9단이 알파고에 졌을 때만 해도, 전 세계 바둑 애호인들은 큰 충격을 받았다. 기계가 인간을 따라잡았다는 사실에 경악했다. 하지만 올해 알파고가 커제에게 3전 3승을 거둔 후, 인간은 인공지능의 속내를 파악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바둑계에서는 농담 섞어 알파고를 ‘알사범’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알파고가 두는 수를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알파고를 고수로 보고 하는 말이다. 바둑처럼 명확한 규칙이 있는 게임에서조차 인간은 기계를 이해하지 못한다. 앞으로 인공지능을 적용할 많은 다른 곳에서는 어떨까.

구글은 개발자 대회 기조연설에서 “기계의 통찰력으로 인간의 가능성을 증강한다(Augmenting human capabilities with machine insights)”는 말을 꺼냈다. 2011년 에릭 슈미트 당시 구글 회장이 일본 도쿄에서 열린 행사장에서 한 ‘증강 인류’란 단어가 떠올랐다. 당시 그는 “앞으로 인간은 스마트폰을 통해 인터넷상의 방대한 정보를 자신의 머릿속에 있는 것처럼 활용해 기존에 불가능했던 일을 간단히 할 수 있게 된다”며 이를 증강인류라 불렀다.


알파고 핵심 칩인 ‘TPU(텐서프로세서유닛)’ . <사진 : 구글>
알파고 핵심 칩인 ‘TPU(텐서프로세서유닛)’ . <사진 : 구글>

“AI의 통찰력이 인간의 가능성 키울 것”

모바일 우선 시대의 인간은 스스로 기계를 조작해 자신의 가능성을 키웠다면, 인공지능 우선 시대의 인간은 인공지능의 통찰력에 의존해 자신의 가능성을 키우게 된다는 얘기다. “인공지능이 충분히 교육된 모든 분야에서 인간은 기계에 패배할 것”이라는 예언을 듣는 듯했다.

현장에 참석한 개발자들 사이에서는 패배감을 느낄 수 없었다. 인간이 기계에 어떤 분야에서 졌다는 데 충격을 받기보다, 기계가 잘하는 건 기계에 맡기고 창의적인 일에 집중할 수 있겠다는 희망을 내보였다. 기계랑 싸워서 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없느냐고 묻자 한 개발자는 이렇게 답했다.

“사람이 차보다 잘 달려서 만물의 영장이 아니잖아요. 사람이 왜 기계랑 경쟁하나요. 기계가 사람과 경쟁할 수 없는 곳에서 기계와 싸우면 무조건 이기는데요.”


▒ 이인묵
연세대 공대 졸업, 조선일보 산업부 IT 담당 기자, 잡플래닛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