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뉴욕 맨해튼의 스카이라인. 일본계 자금의 해외 부동산 투자가 최근 급증하고 있다. 지난해 일본계 자금의 해외 부동산 투자 금액 중 77%는 미국에 투자됐다. <사진 : 블룸버그>
미국 뉴욕 맨해튼의 스카이라인. 일본계 자금의 해외 부동산 투자가 최근 급증하고 있다. 지난해 일본계 자금의 해외 부동산 투자 금액 중 77%는 미국에 투자됐다. <사진 : 블룸버그>

1980년대 세계 부동산 시장에서 일본의 존재감은 어마어마했다. 미국 록펠러센터,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등을 일본 투자자들이 매입해 세계에 충격을 안겼다. 그러나 버블 경제가 붕괴한 뒤 일본 자금의 해외 부동산 투자는 뚝 끊겼다.

그랬던 일본이 다시 해외 부동산에 투자하고 있다. 올해 일본 자금의 해외 부동산 투자 규모는 전년보다 배 가까이 증가해 역대 최고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됐다. 저금리가 지속되면서, 비교적 안정적이고 상대적으로 높은 수익을 낼 수 있는 해외 부동산에 투자자들이 눈을 돌렸기 때문이다.


일본 부동산 성과 낮아 해외로 눈 돌려

글로벌 종합 부동산 서비스 회사 존스랑라살(JLL)의 일본법인 글로벌 캐피털 마켓의 도마쓰 하나코(富松華子) 디렉터는 지난 7일 일본 언론 인터뷰에서 일본 부동산업자, 기관투자자, 상사 등이 올해 해외 부동산에 투자하는 금액이 “60억달러(약 6조3900억원)에 달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JLL에 따르면 일본 자금의 해외 부동산 투자 금액은 지난해 34억달러를 기록했다. 지난해 투자 금액도 2000년대에 가장 많았던 2006년의 24억달러보다 더 많다. 그런데도 1년 만에 76.5%나 증가할 것으로 예측한 것이다. JLL은 “국내에선 부동산 투자 기회가 제한돼 있는 가운데, 대형 디벨로퍼나 상사, 생명보험회사를 중심으로 해외에서 투자 기회를 찾는 움직임이 활발해졌다”라고 했다.

버블 경제 시기에도 일본 자금이 떠들썩하게 해외 부동산을 사들였다. 이때는 국내에 돈이 남아 돌아 해외 빌딩을 매입했다. 지금은 장기적인 사업 전략의 일환으로 일본 회사들이 국내보다 비교적 더 많은 이익을 얻을 수 있는 해외 부동산에 투자를 늘리고 있다. 도마쓰 디렉터는 “부동산 투자자들은 안정적인 수익을 원하는 경향이 높다. 분석을 많이 한 뒤에 전략적으로 투자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 자금의 해외 부동산 투자처는 미국이 77%로 가장 많고, 영국과 호주가 각각 5%로 그다음이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호텔 사업을 하고 있는 유니조홀딩스는 미국 사업 확대를 위해 뉴욕 맨해튼 미드타운의 오피스 빌딩을 지난해 9월 4억6750만달러(약 4980억원)에 매입했다. 같은 해 12월엔 다케나카고무텐(竹中工務店)이 시애틀에 위치한 지하 5층, 지상 11층의 신축 오피스 빌딩을 2억6850만달러(약 2860억원)에 사들였다. 이 건물은 아마존이 전체를 임대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부동산 회사 모리트러스트는 지난해 1월 미국 보스턴의 오피스 빌딩 2개동을 매입했고, 미쓰비시지쇼는 6월에 독일 뮌헨의 오피스 빌딩에 투자했다.

일본의 자산가와 고소득자 등 개인 투자자들도 해외 부동산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일본에선 도쿄 도심을 중심으로 최근 가격이 많이 올랐지만, 2020년 도쿄 올림픽 이후 부동산 시장이 침체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일본의 이름난 개인 투자자인 나헨 다쿠미(奈邊卓美)는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미국 부동산에 투자해 리스크를 분산하고 표면 수익률 7~8%를 달성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2015년 부동산에서 나오는 소득이 연봉의 두 배가 되자 회사를 관뒀다. 해외 부동산은 주로 미국 캘리포니아와 텍사스의 공동주택, 단독주택에 투자하고 있다. 총자산은 30억엔(약 300억원)이고, 이 중 30%가 미국에 투자돼 있다. 그는 ‘일본의 인구는 감소하고 땅값도 떨어질 것이 명백하기 때문에 분산투자해야 한다’라는 생각에서 미국 부동산에 투자했다.


동남아시아보다 미국이 투자에 유리

미국의 부동산을 일본 투자자에게 중개하는 회사 ‘리반스 코퍼레이션’의 닉 이치마루 회장은 ‘포브스 재팬’에 기고한 글에서 동남아시아 신흥국보다 미국 부동산 투자가 더 낫다고 했다. 그는 “동남아시아 국가의 부동산은 현지 통화 폭락이나 외환 규제 등의 리스크가 있다”며 “미국은 국가 리스크가 낮은 선진국이면서 매년 4%쯤 주택 가격이 상승하고 공실률도 5~8%로 낮다. 출산율이 높고 세계를 석권하는 기업이 속속 탄생하고 있어 주택 시장의 장기적인 성장이 전망된다”라고 했다.

일본의 경우 초고소득자는 해외 부동산에 투자하면 절세 효과가 있다. 일본 세무사 히로타 류스케(廣田龍介)가 마이니치신문에 기고한 글에 따르면 해외 부동산도 건물 감가상각 비용을 경비로 반영할 수 있어 소득액이 줄고 내야 할 세금을 줄일 수 있다.


Plus Point

한국도 해외 부동산 투자 증가
성장성 큰 베트남 주목

지난 1월 베트남 호찌민에서 신축 아파트 앞에 새로운 건물을 짓고 있다. 최근 한국 개인 투자자들이 베트남 부동산에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사진 : 블룸버그>
지난 1월 베트남 호찌민에서 신축 아파트 앞에 새로운 건물을 짓고 있다. 최근 한국 개인 투자자들이 베트남 부동산에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사진 : 블룸버그>

한국도 지난 몇 년간 해외 금융자산과 부동산에 직접투자가 증가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전체 해외 직접투자 중 금융·부동산업 비율은 2011년 13%에 불과했지만 2016년 37%로 크게 늘었고, 금액 기준으로도 같은 기간 37억달러에서 130억달러로 251% 증가했다.

이용대 한국은행 과장은 “저금리 기조 장기화로 미국을 중심으로 글로벌 자산가격 상승 기대가 확산되면서 국내 연기금, 금융기관 등의 해외 자산 투자 유인이 높아졌다”고 했다.

한국의 개인 부동산 투자자들은 해외 시장 중 베트남에 주목하고 있다. 베트남은 2015년 7월부터 외국인이 부동산을 매입할 수 있도록 허용하면서 2~3년 전부터 외국인의 부동산 투자가 활발해졌다.

베트남은 도시화 정책으로 아파트 신축이 급증해 2015~2017년에 수도 하노이와 상업 도시 호찌민에 14만가구가 넘는 아파트가 공급됐다. 베트남의 도시화율은 주변 국가보다 낮아 성장성도 크다.

다만 부동산 보유와 처분 단계에서 발생하는 세금과 비용이 많고, 임대수익률도 국내보다 그리 높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