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독일 완성차 그룹 폴크스바겐(VW)의 헤르베르트 디스 회장, 한스 디터 푀치 최고경영위원회 의장, 마르틴 빈터코른 전 회장이 9월 24일(현지시각) 독일 검찰에 의해 모조리 기소됐다. 사진 EPA 연합
왼쪽부터 독일 완성차 그룹 폴크스바겐(VW)의 헤르베르트 디스 회장, 한스 디터 푀치 최고경영위원회 의장, 마르틴 빈터코른 전 회장이 9월 24일(현지시각) 독일 검찰에 의해 모조리 기소됐다. 사진 EPA 연합

지난 2015년 독일 완성차 그룹 폴크스바겐(이하 VW)이 촉발한 ‘디젤 게이트’가 끝날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디젤 게이트’란 VW가 그룹 차원에서 디젤차 배출가스 성분이 실제보다 덜 위해하다고 불법 공표한 사건이다. ‘디젤 게이트’ 후폭풍은 현(現) VW 그룹 경영진에까지 미쳤다. 전 고위직을 포함하면 ‘VW 트리오(3인)’가 현지 검찰에 기소됐다.

VW본사가 있는 독일 니더작센주 브라운슈바이크 지방검찰은 9월 24일(이하 현지시각) 배출가스 조작 사건 공개를 의도적으로 늦춘 혐의로 헤르베르트 디스(Herbert Diess) 현 VW 회장과 한스 디터 푀치(Hans Dieter Pötsch) VW 최고경영위원회 의장, 마르틴 빈터코른(Martin Winterkorn) 전 VW 회장을 ‘불법 시장조작’ 혐의로 기소했다.

2015년 ‘디젤 게이트’ 당시 재무적인 위험 상황이 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주주에게 제대로 공시하지 않아 주가에 영향을 미쳤다는 게 검찰 기소 내용이다.

미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독일 검찰은 공소장에서 “디스 회장과 푀치 의장이 ‘디젤 게이트’로 인한 재무 위험을 주주에게 적시에 공시하지 않아 주가에 영향을 미쳤다”고 적었다. 빈터코른 전 회장에 대해서도 “2015년 3월 당시 ‘디젤 게이트’로 인한 잠재적 금전 피해에 대해 충분히 알고 있었음에도 이를 공개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VW 측은 “지난 4년간 사내·외 전문가가 ‘디젤 게이트’와 후속 조치에 대한 검토를 모두 마쳤다”면서 “검찰의 공소사실은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했다.

앞서 2015년 VW는 디젤 차량 1070만 대의 소프트웨어를 조작해 배출가스를 낮춘 사실을 인정했다. 차량 리콜과 수리, 민형사상 벌금 등으로 300억달러(약 36조원)를 지불했고 주가는 40% 넘게 폭락했다. 이어 현 경영진까지 ‘디젤 게이트’의 형사 책임에 연루되면서 세계 최대 완성차 업체인 VW는 타격을 입게 됐다. 현 경영진이 ‘디젤 게이트’ 연루 혐의로 기소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독일 BMW그룹 연구·개발 총괄 부회장 출신인 디스 회장은 ‘디젤 게이트’ 수습을 위해 2015년 VW에 영입됐다. 푀치 의장은 VW 오너 가문 출신인 페르디난트 피에히 전 의장의 뒤를 이었다. 피에히 전 의장도 ‘디젤 게이트’에 연루됐을 것이라는 의혹을 받았지만 VW 경영에서 물러난 뒤 지난 8월 사망했다.

디스 회장은 지난해 회장 취임 이후 “VW의 명예를 회복하겠다”며 전기차로의 변화를 선포했다. 9월 12~22일 독일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서 VW의 첫 양산형 순수 전기차인 ‘ID.3’를 직접 선보였다. 그러나 ‘디젤 게이트’의 암운이 현 경영진에까지 드리우면서 VW의 미래가 불투명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연결 포인트 1
2015년 美 대학 연구에서 촉발
‘디젤 게이트’일파만파

‘디젤 게이트’는 앞서 2015년 미국 대학에서 처음으로 발견돼 게이트로 퍼졌다. 교통 문제를 연구하는 ‘ICCT’라는 미국 비정부기구(NGO)에서 한화 5000만원 정도의 연구비를 가지고 미국 웨스트버지니아대(WVU)에 시험을 의뢰했다.

VW 측은 상대적으로 유럽에 비해 엄격한 미국 배출가스 기준도 충족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하에 시험을 진행했다. 그런데 실제 데이터를 뽑아 보니 VW가 발표한 데이터와 다른 자료가 나왔다. VW 디젤차의 배출가스가 기준치를 초과했던 것이다.

같은 해 미국 환경보호청은 전례 없던 조치를 취했다. VW가 미국에서 판매하는 디젤 차량에 불법 데이터 조작 장치 소프트웨어를 장착했다고 확인한 후 VW를 고발했다.

이 소프트웨어는 차가 테스트 기계 위에 올라가 있을 때는 인체에 유해한 산화질소 배출을 줄여주지만, 실제로 운행하고 있는 동안에는 연비 향상과 엔진 보호 등을 이유로 산화질소를 공기 중으로 과다하게 배출했다. 도로에 올라가면 이 차들은 산화질소를 허용치보다 최고 40배까지 뿜어냈던 것이다.

2015년 9월 VW는 1070만 대의 디젤 차량에 유해가스 배출량을 조작하는 소프트웨어가 설치됐음을 인정했다. 이후 파문이 커졌다.


연결 포인트 2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전쟁’ 가속화
유럽,‘에어버스 배터리’결성

앞서 이산화탄소(CO2) 감축을 위해 유럽 완성차 업체들은 이른바 ‘클린 디젤’을 강조하면서 디젤차를 적극적으로 개발해왔다. 일본 완성차 업체들은 전기차와 내연기관차의 장점을 모은 하이브리드카 개발에 주력했다. 하이브리드카는 내연기관차와 동일하게 연료를 주유하면 되지만, 차량의 엔진과 모터가 함께 움직이며 연료를 아끼고 유해가스 배출을 줄여준다. 2015년 ‘디젤 게이트’ 후 유럽 완성차 업체들은 기술 축적이 어려운 하이브리드를 건너뛰어 전기차 보급에 적극 뛰어들고 있다. 전기차는 배터리, 모터, 플랫폼(차체)이 핵심이다. 내연기관차에 비해 구조가 단순하다. ‘디젤 게이트’의 후폭풍이 이어지면서 글로벌 ‘배터리 전쟁’이 가속화할 가능성이 커졌다. 전기차 배터리는 전기차 부품 가격의 40% 내외를 차지하는 핵심 부품이다. 전기차 배터리 시장은 한·중·일이 주도하고 있다. 글로벌 배터리 시장조사기관 GGI에 따르면 지난해 말 출하량 기준 ‘톱10’ 업체는 모두 한·중·일 기업이었다.

프랑스와 독일은 전기차 배터리 분야에서 항공기 제조사 ‘에어버스’ 성공신화의 재현을 노리고 있다. 양국은 전기차용 차세대 배터리 개발을 위해 손을 잡았다. 양국 공동으로 50억~60억유로(약 6조5300억~7조8400억원)를 투자할 계획이다. 해당 프로젝트 명칭은 ‘에어버스 배터리’로 명명했다.


연결 포인트 3
여전히 디젤차 많은 한국 시장
33.8%인 디젤차 비중 낮아질 듯

9월 24일 일본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은 자국 완성차 업체 ‘혼다’가 디젤엔진 신규 개발을 중단하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혼다’는 유럽에서 주력 차종인 ‘시빅’과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HR-V’ 등 2개 모델의 디젤차를 판매하고 있다.

현재 영국과 일본에서 이들을 생산하지만 영국 공장을 폐쇄하는 2021년까지 유럽 판매를 차례로 종료키로 했다는 것이다. ‘혼다’는 2030년까지 세계 판매량의 65% 정도를 하이브리드카와 전기차로 전환할 계획이라는 게 니혼게이자이 신문 보도다. 유럽에서는 2025년까지 전 모델을 전동차(하이브리드카, 플러그인하이브리드, 전기차)로 전환한다. 한국 완성차 업체도 ‘혼다’와 비슷한 길을 갈 것이라고 보는 의견도 있다. 문제는 아직 한국 내 디젤차의 비중이 높다는 점이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현대·기아차는 국내 시장에서 34만2941대의 디젤 엔진 차량(트럭·버스 제외)을 팔았다. 현대·기아차가 판매한 전체 승용차 및 레저용 차량(RV) 101만3259대 중 디젤차가 차지하는 비중은 33.8%로 집계됐다.

다만 일각에서는 산업적 측면에서 디젤차 ‘퇴출’이 과연 옳은 방향이냐는 지적도 나온다. 무조건 전기차 같은 친환경차 확산만 강조할 것이 아니라 내연기관차 생산을 중심으로 하는 국내 자동차 산업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