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리 하메네이(오른쪽) 이란 최고지도자가 거셈 솔레이마니 쿠드스군 사령관의 유족을 만나고 있다. 사진 AP연합
알리 하메네이(오른쪽) 이란 최고지도자가 거셈 솔레이마니 쿠드스군 사령관의 유족을 만나고 있다. 사진 AP연합

미국 국방부가 1월 3일(현지시각) 이라크 바그다드를 폭격해 이란 군부 실세 거셈 솔레이마니 쿠드스군(이란 혁명수비대의 특수부대) 사령관을 암살했다. 솔레이마니 사령관은 20여 년간 쿠드스군을 이끌며 시리아 내전 등에 참여한 군부 실세로, 이란에서는 영웅 대접을 받았던 인물이다. 그러나 미국은 2019년 4월 이란 혁명수비대와 산하 부대 쿠드스군을 중동 지역 테러 관련 단체로 지정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솔레이마니 사령관 암살 작전을 직접 결단하고 지휘했다. 지난해 12월 27일 이라크 키르쿠크 미군 주둔 기지가 로켓포 공격을 받아 미국인 1명이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고, 12월 31일에는 이라크 내 친이란 시위대가 미군의 이라크 시아파 민병대 공습에 항의하며 바그다드 주재 미국 대사관을 공격했다.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이러한 공격의 배후에 솔레이마니 사령관이 있는 것으로 보고 추가 공격 예방 및 보복 차원에서 암살을 전격 지시했다.

이란은 전면적인 보복 공격으로 맞섰다. 이란 정규군 혁명수비대는 1월 8일 새벽 이라크 내 미군 주둔 기지 2곳에 미사일 공격을 했다. 작전명은 ‘순교자 솔레이마니’로 명명됐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는 1월 6일 국가안전보장회의에 참석해 “이란군이 자체적이고 공개적이며 직접적이고 비례적인 공격을 수행해야 한다”고 지시했다. 그동안 이란은 레바논의 헤즈볼라 등 친이란 대리 세력을 내세워 미국과 그 동맹국을 공격하는 방식을 취해왔다.

이란 정부는 1월 5일 성명을 내고 핵합의(JCPOA·포괄적공동행동계획)에 대한 사실상 탈퇴 의사도 밝혔다. 핵합의는 주요 6개국(유엔 안전보장이사회 5개 상임이사국 + 독일)과 이란이 2015년 7월 타결한 협상으로 핵무기 제조에 필요한 고농축 우라늄 생산을 제한하는 내용이다. 미국은 앞서 2018년 5월 핵합의를 일방적으로 탈퇴했다.

이란발(發) 리스크에 세계 경제는 잠시 요동쳤다. 이란의 보복 미사일 공격 소식이 전해진 1월 7일 오후 뉴욕상업거래소(NYMEX) 전자거래에서 서부텍사스산원유(WTI) 2월물 선물 가격은 배럴당 65.21달러로 전일보다 4% 급등했다. 지난해 4월 기록한 배럴당 65.48달러 이후 최고치였다. 안전자산인 금값도 10거래일 동안 계속 올랐다.

트럼프 대통령이 1월 8일 기자회견에서 “이란의 미사일 공격에서 사상자는 없었다”며 군사적 보복 대신 경제 제재로 대응하겠다는 방침을 밝히자 유가는 다시 큰 폭으로 떨어졌다. 금값도 약세를 보였다. 미국과 이란의 극한 갈등이 전면전으로 확대될 가능성은 작은 것으로 전망된다. 인남식 국립외교원 교수는 “미군 사망자가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도 유화적 메시지를 던질 수 있었던 것 같다”며 “우회적·국지적 도발은 계속되겠지만, 이번처럼 이란 정부가 전면에 나서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1월 7일 이란 남동부 케르만주(州)에서 열린 솔레이마니 사령관의 장례식. 사진 AP연합
1월 7일 이란 남동부 케르만주(州)에서 열린 솔레이마니 사령관의 장례식. 사진 AP연합

연결 포인트 1
뿌리 깊은 악연

이란과 미국의 갈등은 그 뿌리가 수십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50년대 초 이란의 총리 모하마드 모사데크는 영국 자본이 좌지우지하던 석유 산업을 국유화하겠다는 계획을 추진했다. 이에 영국과 미국은 ‘왕정 쿠데타’를 사주해 팔레비 2세를 괴뢰 군주로 세웠다. 팔레비 2세의 폭정으로 이란 민중 사이에서는 반서방 정서가 싹텄다.

민중의 불만은 1979년 이란 혁명으로 이어졌다. 반미 기치를 세운 이슬람 지도자 아야톨라 호메이니는 군주정 대신 정교일치 체제인 이슬람 공화국을 세우고 종신 최고지도자가 됐다.

2002년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은 이란을 ‘악의 축’으로 규정했다. 미국은 이란 핵무기 개발에 대한 국제 사회의 제재를 끌어냈고, 석유 수출 비중이 높던 이란 경제는 큰 타격을 입었다. 2015년 7월 주요 6개국과 이란이 ‘핵기술의 평화적 사용’을 골자로 하는 핵합의를 타결하며 경제 제재가 일부 완화됐지만, 미국은 2018년 이란 핵합의를 일방적으로 탈퇴하면서 경제 제재를 부활시켰다.


이란 혁명수비대는 1월 8일 오전 이라크 미군 주둔 기지 두 곳을 미사일로 공격했다. 사진 EPA연합
이란 혁명수비대는 1월 8일 오전 이라크 미군 주둔 기지 두 곳을 미사일로 공격했다. 사진 EPA연합

연결 포인트 2
암살에 미사일로 보복

1월 7일 이란 남동부 케르만주(州)에서 열린 솔레이마니 사령관의 장례식에서 호세인 살라미 이란 혁명수비대 총사령관은 ‘거칠고 강력하며 단호한 복수’를 공언했다. 뉴욕타임스(NYT)는 그동안 이란에서는 집권 세력을 비판하는 반정부 시위가 이어졌지만, 솔레이마니 피살을 계기로 전 국민이 반미 정서로 돌아섰다고 보도했다.

이란 정규군 혁명수비대는 1월 8일 새벽 이라크 내 미군 주둔지인 아인 하사드 공군기지와 에르빌 기지에 지대지 미사일 수십 발을 발사했다. 작전명은 ‘순교자 솔레이마니’, 공격 시간은 새벽 1시 20분으로 닷새 전 솔레이마니 폭사 시간과 같았다.

이란 혁명수비대는 “미사일 공격으로 최소 80명의 미군이 사망했다”고 발표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사상자는 없었다”고 반박했다. CNN은 미국이 이라크를 통해 이란의 미사일 공격에 대한 사전 경고를 전달받았다고 보도했다. 전문가들은 “양국 정상이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각자 체면치레를 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연결 포인트 3
국제 경제 타격 불가피

이란과 미국의 강대강 대치로 세계 시장은 한때 출렁였다. 솔레이마니 피살과 이란의 미사일 보복이 발생한 1월 3일과 7일 뉴욕상업거래소 2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 원유(WTI) 가격이 각각 3%, 4%씩 급등하기도 했다. 반면 트럼프 대통령이 ‘사상자 0명’을 밝힌 8일에는 배럴당 3.09달러(4.9%) 하락해 59.61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금·미국 국채·달러화 등 안전자산 선호 심리도 나타나며 금값이 6년 9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하기도 했다. 반면 상대적으로 위험자산인 주식은 약세를 보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에 대한 ‘살인적인 경제 제재’를 예고했다. 최악의 전면전은 피했지만, 국제 경제에 타격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의 경우 이란산 원유를 수입하고 있진 않지만 갈등 심화로 기업의 중동 수출과 현지 사업 등이 위축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