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운전자가 중국 푸젠성 닝더의 전기차 충전소에서 전기차를 충전하고 있다. 사진 블룸버그
한 운전자가 중국 푸젠성 닝더의 전기차 충전소에서 전기차를 충전하고 있다. 사진 블룸버그

중국 정부가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을 비롯한 외국 기업이 생산한 전기차 배터리에 대한 규제를 전격적으로 풀었다. 내년 말 자국 내 전기차 보조금 전면 철폐를 앞두고 침체한 전기차 시장을 활성화하겠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중국 공업정보화부는 12월 6일 ‘2019년 제11차 신재생에너지차 보급응용 추천 목록’을 발표했다. 추천 목록에 포함된 전기차는 중국 정부로부터 보조금을 받을 수 있다. 이번 목록에 오른 차종은 61개 기업의 146개 모델이다. 이 목록에는 LG화학(상하이 테슬라)과 SK이노베이션(베이징 메르세데스-벤츠)의 배터리를 탑재한 전기차도 포함됐다. 11월 중국 공업정보화부가 발표한 ‘제10차 신재생에너지 차 보급응용 추천 목록’에서 한국을 포함한 외국산 배터리가 포함된 전기차를 완전히 배제했던 것과는 확 달라진 모습이다.

지금까지 중국 정부는 기술력에서 앞서는 한국 배터리 기업(LG화학·SK이노베이션·삼성SDI)이 제조한 전기차 배터리를 차별했다. 중국 정부는 2016년 12월부터 한국산 배터리를 장착한 전기차에 보조금 지급을 중단했었다. 이번 조치에 대해 중국 자동차 전문지 ‘가스구(Gasgoo)’는 “한국산을 포함한 외국산 배터리가 장착된 전기차 모델이 보조금 목록에 들어간 것은 상징하는 바가 크다”라고 밝혔다.

그간 중국 정부는 CATL·BYD 등 자국 전기차 배터리 업체를 키우기 위해 외국산 배터리를 장착한 전기차에 보조금을 주지 않았다. 중국 시판 전기차 가격에서 보조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절반가량으로 보조금을 받지 못한 전기차는 소비자가격이 너무 비싸서 사실상 전기차를 팔 수 없는 구조다. 현지 언론은 “중국 전기차 배터리 시장이 해외 기업에 전면 개방된 것을 의미한다”라고 보도했다.

이는 중국 전기차 판매량이 올해 하반기 들어 큰 폭으로 줄자, 중국 정부가 시장 활성화 차원에서 한국 배터리를 탑재한 전기차를 보조금 대상에 포함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배터리 시장조사 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중국 내 전기차 배터리 판매량은 올해 7월부터 10월까지 4개월 연속 감소했다. SNE 관계자는 “중국 정부의 전기차 보조금 축소 움직임과 경기 침체 등 시장 위협 요인이 해소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중국 언론도 중국 정부가 해외 기업에 시장을 개방한 이유로 침체한 전기차 시장 활성화와 국내외 경기 침체에 따른 시장 개방 필요성 등을 꼽았다.

‘가스구’는 “최근 몇 년간 중국에서 수많은 강력한 전기차 배터리 회사가 성장했기 때문에 이번 시장 개방 조치는 중국 배터리 산업에 과도한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SK이노베이션은 12월 5일 중국 진탄경제개발구에서 배터리 셀 공장 준공식을 했다. 사진 SK이노베이션
SK이노베이션은 12월 5일 중국 진탄경제개발구에서 배터리 셀 공장 준공식을 했다. 사진 SK이노베이션

연결 포인트 1
LG화학·SK이노 韓 기업에 호재

중국 정부가 외국산 배터리를 탑재한 전기차에 보조금을 주기로 하면서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 등 한국 기업의 현지 배터리 판매가 탄력받을 전망이다.

중국에서 판매하는 테슬라 모델 3에 들어가는 전기차 배터리 일부를 LG화학이 제조하고 있다. 또 중국에서 판매하는 메르세데스-벤츠 E 클래스는 SK이노베이션이 서산공장에서 생산한 배터리를 사용한다.

이미 국내 전기차 배터리 업체는 중국 시장 확대를 목표로 중국에 합작법인과 공장 설립에 속도를 내고 있다. 중국은 세계 전기차 시장 점유율의 약 50%를 차지하는 거대한 시장이다. LG화학은 올해 6월 중국 지리자동차와 10(기가와트시) 규모 전기차 배터리 합작법인을 설립했고, SK이노베이션은 12월 5일 중국 베이징자동차 등과 합작해 설립한 장쑤성 창저우 진탄경제개발구의 배터리 셀 공장 준공식을 했다. 김준 SK이노베이션 총괄사장은 “중국의 전기차 관련 산업과 공동 발전을 위해 다양한 협력 관계를 구축하겠다”라고 했다.


한 국제 전시장에 마련된 중국 배터리 생산업체 CATL의 부스. 사진 블룸버그
한 국제 전시장에 마련된 중국 배터리 생산업체 CATL의 부스. 사진 블룸버그

연결 포인트 2
中 배터리 업계 구조조정 가능성

중국 정부는 한국 기업이 중국 전기차 시장에서 배터리를 공급하지 못하는 동안 중국 배터리 기업의 경쟁력이 상승했다고 판단한 것으로 분석된다. 세계 최대 전기차 배터리 제조사인 중국 CATL이 생산하는 배터리는 15분간 충전하면 300㎞를 주행할 수 있고, 15년 동안 1만5000번 충전할 수 있을 정도로 내구성이 향상됐다. 실제 최근 전기차 배터리 시장은 한국과 일본을 제치고 자국 보조금 지원에 힘입은 중국이 선도하고 있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GGI에 따르면 전력 생산량 기준, 올해 6월 말 현재 전기차 배터리 세계 10위 기업 중 7곳이 중국 업체다.

현지에서는 향후 중국 정부의 정책 우선순위가 난립하고 있는 자국 배터리 기업을 구조조정하는 방향으로 진행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현지 언론은 “중국 정부가 이미 경쟁력을 확보한 자국 주요 배터리 기업에 힘을 더 모아주는 방식의 정책을 펼칠 가능성이 크다”고 보도했다. 선택과 집중을 통한 글로벌 경쟁력 확보가 중요하다는 뜻이다.


연결 포인트 3
中 전기차 버블 붕괴 우려 꺼질까

가장 큰 관심이 쏠리는 부분은 그간 강력한 정부 보조금으로 성장해온 중국 전기차 시장의 버블 붕괴 우려가 꺼질 수 있을지 여부다. 버블이란 실제 가치보다 과장된 평가를 일컫는다. 지난해 말 현재 중국에 등록된 전기차 제조 업체는 486곳으로 2년 새 세 배 늘었다. 중국 스타트업들이 2011년부터 전기차 시장에 진출하며 총 180억달러(약 21조4000억원)의 자금을 조달했는데, 그중 니오(NIO), 웨이마(WM Motor), 헝다그룹의 NEVS 등 10개 중국 기업이 150억8000만달러(약 17조9300억원)로 83.7%를 차지했다. 나머지 476곳의 회사가 자금 규모 16.3%에 불과한 시장에서 경쟁하고 있었던 셈이다.

문제는 중국 내 전기차 수요가 기대만큼 늘지 않는다는 점이다. 중국은 2018년 한 해 동안 130만 대의 전기차를 팔아 처음으로 연간 판매 100만 대를 넘겼다. 그러나 자동차 판매량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4%에 불과했다. 올해 판매량은 지난해보다도 감소하고 있다. 최근에는 이마저도 정부가 전기차 한 대당 수천만원씩 지급하는 보조금에 힘입은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시장 개방을 천명한 이번 조치에도 중국 전기차 버블 붕괴 우려가 가시지 않으면, 버블 붕괴 파급력은 전 세계로 퍼질 수 있다. 중국승용차협회(CPCA)는 “경쟁력 있는 전기차 기업은 살아남겠지만, 그 외에는 모두 퇴출당할 수 있다”며 “전기차 버블 붕괴 시 파급력은 중국 내에만 그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