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란드 헬싱키의 부둣가를 한 노인이 걸어가고 있다. / 블룸버그

핀란드 정부의 기본소득 실험이 올해를 끝으로 막을 내리게 됐다. 4월 23일(현지시각) 영국 매체인 가디언과 BBC 등은 핀란드 정부가 기본소득 실험을 중단하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두 매체의 보도에 따르면 핀란드 정부는 기본소득 실험을 맡고 있던 사회보장국(KELA)의 예산 증액 요구를 거절했다.

핀란드 정부는 지난 2017년 1월 실업자 2000명을 무작위로 선정해서 아무 제한이나 조건 없이 매달 560유로(약 74만원)를 지급한다고 발표했다. 올 연말까지 2년 동안 실험을 진행하고 결과가 성공적이면 기본소득 지급 대상을 확대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핀란드 정부가 KELA의 예산 증액 요구를 거절하면서 내년 이후의 지급 대상 확대 계획은 사실상 무산됐다. 실험 자체도 실패로 끝났다는 반응이다.

이번 실험에 투입되는 예산만 2000만유로(약 260억원)에 달했다. 막대한 예산이 투입돼야 하는 기본소득 실험을 놓고 찬반 양론이 팽팽하게 맞섰지만, 핀란드 정부는 그대로 밀어붙였다. 핀란드 기본소득 실험은 정부 차원에서 한 첫 사례였다.

기본소득 실험을 시작한 2017년 1월 당시 핀란드는 실업률이 9.2%에 달할 정도로 고용 시장 상황이 좋지 않았다. 특히 실업자를 도와서 재취업을 유도해야 할 실업수당제도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있었다. 핀란드에서는 실업자가 적은 임금을 받는 임시직 일자리라도 구하면 실업급여가 대폭 삭감된다. 그렇다 보니 실업자들이 실업급여를 받는 동안 웬만해서는 일자리를 구하려고 하지 않았고, 장기 실업자가 양산되면서 실업률이 높아졌다.

기본소득 실험은 실업자가 일자리를 구해도 정해진 기간에 기본소득을 계속 지급하면 장기 실업자가 줄어드는지를 확인하기 위한 것이었다. 가디언과 BBC의 보도가 나온 이후 KELA는 “기본소득 실험을 계획대로 진행하고 있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기본소득 실험이 내년에도 지속될 것인지에 대해서는 다른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올리 캉가스 KELA 수석연구위원은 BBC와의 인터뷰에서 “기본소득에 대한 정부의 의지가 사라졌다”고 말했다.

아직 실험의 구체적인 결과는 나오지 않았지만 외부의 평가는 싸늘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지난 3월 핀란드의 기본소득제를 전 국민에게 확대하려면 소득세를 30% 높여야 한다는 연구 결과를 내놨다. 지난해에는 기본소득제를 확대하면 오히려 빈곤율이 증가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발표됐다.

핀란드 정부는 기본소득 대신 새로운 복지제도를 도입하는 방법을 검토하고 있다. 대안으로 떠오른 게 영국이 도입한 유니버설 크레디트(universal credit)다. 영국 정부가 2013년 도입한 유니버설 크레디트는 소득에 따라 복지 혜택을 차등 제공하는 제도로 ‘일하는 사람에게 더 유리한 복지제도’를 내세우고 있다. 페테리 오르포 핀란드 재무장관은 현지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기본소득 실험이 끝나면 유니버설 크레디트 같은 복지제도의 도입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