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공기서 내려다본 토론토의 중심가 풍경. 사진 블룸버그
항공기서 내려다본 토론토의 중심가 풍경. 사진 블룸버그

‘뉴욕의 그늘 벗어나 글로벌 AI 허브로’

인구 280만(광역 지역을 포함하면 약 600만) 명의 캐나다 최대 도시 토론토 이야기다. 세계적인 부동산 전문 기업 CBRE가 최근 발간한 보고서를 보면, 지난해 토론토에서 만들어진 첨단기술 관련 일자리는 총 2만8900개로 2016년 대비 14%가 증가했다. 5년 전과 비교하면 증가율은 52%에 달한다. 지난해 2위는 시애틀(8200개)이었고, 뉴욕(8100개)과 워싱턴DC(4800개)가 뒤를 이었다. 실리콘밸리의 핵심인 샌프란시스코와 인근 베이 지역은 같은 기간 1100개의 첨단기술 관련 일자리를 만드는 데 그쳤다.

질적인 성장도 놀랍다. 토론토는 같은 조사의 일부인 첨단기술 분야 인재 경쟁력 평가 순위에서 샌프란시스코와 시애틀, 워싱턴DC에 이어 4위에 이름을 올렸다. 뉴욕은 5위였다.

토론토는 인구 100만 명이 넘는 북미 대도시로는 드물게 주요 조사기관의 ‘살기 좋은 도시’ 평가 순위에서 단골로 최상위권에 이름을 올린다. 그런데도 글로벌 비즈니스에서 오랫동안 독자적인 정체성을 인정받지 못했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비행기로 2시간이 채 안 걸리는 뉴욕의 그늘이 너무 짙었다.

공교롭게도 토론토는 할리우드 영화 속 ‘짝퉁 뉴욕’으로 종종 등장한다. ‘인크레더블 헐크’ 등 액션 블록버스터는 물론 ‘세렌디피티’와 ‘10일 안에 남자친구에게 차이는 법’ 등 로맨틱 코미디에 이르기까지 뉴욕이 배경으로 등장하는 할리우드 영화의 단골 촬영지가 된 지 오래다. 실제로 고층건물이 즐비한 토론토의 금융 중심가 ‘베이스트리트(Bay Street)’를 걷다 보면 뉴욕 맨해튼 중심가에 온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캐나다 최대 도시라고 하지만 뉴욕 맨해튼에서 촬영하는 것보다는 비용(교통 혼잡으로 인한 기회비용 포함) 면에서 분명한 장점이 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1920년대 시카고를 배경으로 한 롭 마셜 감독의 뮤지컬 영화 ‘시카고’와 시카고가 배경으로 등장하는 또 다른 히트작인 ‘나의 그리스식 웨딩’ 촬영도 대부분 토론토에서 진행됐다. 토론토가 뉴욕의 그늘을 걷어내고 글로벌 스타트업 허브로 독자 노선을 걸을 수 있었던 원동력을 세 가지로 정리했다.


성장비결 1 | 국가 차원에서 AI 지원

캐나다 정부는 이미 수년 전부터 캐나다에서 인공지능(AI) 관련 연구를 하는 기업·연구소에 투자 비용의 15%를 세액공제 해주는 등 AI 거점 도시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인공지능 딥러닝 분야의 3대 석학으로 꼽히는 요슈아 벤지오 몬트리올대 교수와 얀 르쿤 페이스북 수석 AI 과학자, 제프리 힌튼 토론토대 명예교수가 모두 캐나다 출신이거나 캐나다에서 주요 연구를 진행(르쿤은 힌튼의 토론토대 박사과정 제자)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캐나다 정부는 얼마 전 향후 5년간 토론토와 몬트리올, 에드먼턴 등에 있는 주요 인공지능 연구소 간 협업을 국가 차원에서 지원하는 내용 등을 담은 AI 지원 정책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 같은 노력의 결과, 토론토는 글로벌 정보통신(ICT) 기업의 AI 연구 전진기지로 급성장하고 있다.

세계 최대 그래픽카드 생산 업체인 엔비디아는 지난 6월 토론토에 AI 연구소를 열었다. 앞으로 캐나다 내 연구인력을 세 배 이상 늘린다는 계획도 발표했다. 삼성전자는 비슷한 시기에 토론토 ‘AI 센터’를 열었다. 구글·마이크로소프트 등을 거친 세계적인 AI 석학 래리 헥이 조직을 이끌고 있다. LG전자도 이에 질세라 최근 토론토에 AI 전문 연구소를 개설해 다음 달부터 운영을 시작한다. LG전자가 해외에 AI 전문 연구소를 세운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구글의 모기업 알파벳은 자회사 사이드워크랩스를 통해 토론토에 스마트시티 건설을 추진 중이다. 자율주행 셔틀과 화물 수송용 AI 로봇, 친환경 첨단 주택 등을 결합, 온타리오 호수 인근 약 4만8000㎡를 우선 개발하고 이후 80배 크기로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성장비결 2 | 독특한 산학 협력 프로그램

삼성전자와 LG전자는 토론토에 AI 연구소를 세우면서 캐나다 최고 명문대학인 토론토대와의 산학협력 확대에 공을 들이고 있다.

토론토와 인근 지역에는 토론토대 외에도 명문대학이 즐비하다. 그중에는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회장이 극찬한 워털루대도 있다.

워털루대는 독특한 산학협력 프로그램인 ‘코업’과 높은 취업률로 ‘캐나다의 MIT’로 불린다. 게이츠가 MS 신입사원으로 워털루대 졸업생을 가장 많이 뽑는다고 언급해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워털루대의 코업 과정에서는 한 학기는 학교에서 수업을 듣고, 다음 학기는 기업체와 공공기관 등에서 실무 능력을 쌓는 과정을 6년간 반복한다.

이 밖에 토론토에서 멀지 않은 런던(영국 런던과 다른 캐나다 도시)에 있는 웨스턴대의 아이비(Ivey) 경영대학원은 토론토대 로트만 경영대학원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캐나다 최고의 명문 비즈니스스쿨이다.


성장비결 3 | 경쟁자의 빈틈을 공략

토론토는 인구 절반 이상이 비(非)캐나다 출신일 정도로 국제적인 도시다. 스타트업의 국적 구성이 다양하면 펀딩 채널을 다변화할 수 있는 것은 물론 다국적 인재 유치와 해외 시장 공략에도 유리한 점이 있다.

다양한 국적 구성은 실리콘밸리와 뉴욕에 본사를 둔 스타트업의 경쟁력이기도 하다. 그런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 이후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반이민 정책 탓에 비자 규제가 강화되면서 인도와 중국을 비롯한 해외 IT 인재들이 미국 대신 캐나다를 선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저스틴 트뤼도 캐나다 총리는 모처럼 찾아온 기회를 놓치지 않고 이민의 문을 활짝 열었다. 지난해 IT 업계 종사자를 위한 비자 신청 절차를 2주 만에 신속히 처리하는 ‘글로벌 스킬 전략’ 정책을 시행한 것이 대표적이다. 소프트웨어 개발이나 엔지니어링, 의료 등 분야에서 높은 수준의 전문성을 갖춘 인재는 ‘익스프레스 엔트리’ 프로그램을 통해 취업 여부와 관계없이 6개월 이내에 캐나다 영주권을 받을 수 있다. 익스프레스 엔트리는 교육 수준과 직장 경험, 영어나 불어 구사 능력 등을 평가해 점수를 매기는 시스템이기 때문에 미국에서 H1-B 비자를 받은 전문직 종사자에게 유리한 제도다. 신규 인력 유치는 물론 경쟁 관계에 있는 미국 실리콘밸리 인재까지 끌어들일 수 있는 일거양득의 전략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