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의 푸단(復旦)대 방문교수로 서울과 상하이를 오가며 생활한 지 4개월째. 푸단대는 중국 4대 명문대학의 하나다. 푸단대 교수들 몇 명과 금요일 저녁에 대학 캠퍼스 부근 공원 호숫가에 자리 잡은 호텔로 가서 저녁 식사를 함께 할 기회가 있었다. 푸단대 교수들 가운데 1명이 나에게 고마움을 표시할 일이 있다면서, 자신의 부인이 그 호텔 고위 경영자로 일하기 때문에 직원 할인을 받을 수 있다고 해서 만찬 초정을 한 것이었다. 호텔 룸은 땅 넓은 중국이라 그런지 높직한 천장에 커다란 초대형 식탁이 방의 한쪽에 놓여있고 나머지는 빈 공간으로 처리해 여유의 미학을 잘 살려놨다. 초청한 교수는 담근 지 30년이 넘는다는 황주(黃酒) 한 항아리를 내놓았다. 황주는 쌀로 빚어 알코올 도수가 13도 정도 되는 발효 저도주(低度酒)로, 부잣집에서 딸을 낳으면 담가서 땅에 파묻어 두었다가, 시집 보낼 때 하객(賀客)들에게 대접한다는 술이다. 북방의 중국인들은 추운 날씨 때문인지 알코올 도수가 53도에 이르는 백주(白酒)를 즐겨 마시지만, 여름이면 섭씨 38도까지 쉽게 올라가는 아열대 기후의 상하이에서는 황주를 즐긴다.

상하이 요리를 안주로 황주잔을 부딪치며 푸단대 교수들이 겪은 문화혁명 시절의 어려웠던 이야기를 유머러스하게 풀어놓아 웃음이 넘치는 즐거운 자리였다. 놀라운 목격담은 만찬이 끝난 후 호텔 여기저기를 구경하는 과정에서 빚어졌다. 3층 대연회장에 들어서자 다음날인 토요일에 열릴 결혼식 연회 준비가 한창인 광경이었다. 대연회장에는 10명이 함께 앉을 수 있는 식탁이 눈으로 세어 100석은 족히 되는 어마어마한 혼례식 준비가 완료된 광경이 펼쳐졌다. 천장에서는 최종 점검을 위해 켜놓은 초대형 샹들리에 불빛이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좌) 요즘 상하이 고급호텔에서는 비용만 수억원이 넘는 초호화결혼식이 성행하고 있다. (우) 마천루와 빈민가가 공존하는 중국 상하이는 극단적인 양상을 보이고 있는 중국 경제의 한 단면이다.
(좌) 요즘 상하이 고급호텔에서는 비용만 수억원이 넘는 초호화결혼식이 성행하고 있다.
(우) 마천루와 빈민가가 공존하는 중국 상하이는 극단적인 양상을 보이고 있는 중국 경제의 한 단면이다.

결혼식 가려면 축의금 32만원 가량 내야
“여기가 상하이뿐만 아니라, 요즘 중국 대륙 전역에서 한창 유행하는 호화결혼식이 내일 벌어질 연회장입니다. 한 테이블에 10명이 앉으면, 테이블 당 가격이 7000위안(약 120만 원)이 넘는 풀코스 상하이 요리가 제공됩니다. 하객 한 사람에게 우리 돈으로 12만원짜리 풀코스 중국 요리가 제공되는 셈이죠. 하객들은 이런 경우 대체로 2000위안(약 32만원) 정도의 축의금을 내야 합니다. 우리 교수들로서는 도저히 낼 수 없는 금액입니다.”

그래서 푸단대 교수들은 가능한 한 결혼식 참석을 피한다. 어떤 교수들은 혼주인 친구에게 “절대로 결혼식 초청장은 보내지 말아 달라”고 애걸하는 전화를 미리 걸어두기도 한다. 중국의 결혼식 초청장은 우리처럼 웬만한 지인들에게 다 보내는 것이 아니라, 꼭 참석할 것이라고 판단되는 친구들에게만 보낸다. 청첩장을 받은 사람들은 반드시 참석해야 하는 것이 중국의 결혼식 예절이다. 중국의 결혼식은 우리와는 달리 결혼식 당일 신랑이 신부의 집으로 가, 신부와 하객들을 모시고 결혼식장으로 가서 진행된다. 1978년 개혁개방이 시작돼 36년이 지났고 부자들은 이 과정에서 벤츠나 벤틀리, 링컨컨티넨탈 등 고가  외국산 승용차를 수십 대씩 준비해서 하객들을 태우고 결혼식장으로 가는 차량행렬, 즉 호화 ‘처뚜이(車隊)’를 경쟁적으로 과시하는 풍조를 요즘 보여주고 있다. 신랑과 신부는 포르쉐, 페라리, 아우디, 캐딜락 등 외제 스포츠카의 행렬을 지어 가기도 한다.

개혁개방과 함께 엄격히 실시된 ‘한 자녀 갖기’ 가족계획 정책 덕분에 자라난 ‘소황제(小皇帝)’, ‘소황녀(小皇女)’를 장가보내고, 시집보내는 데 중국 부모들은 얼마만큼의 비용을 지불하게 될까. 푸단대 교수가 구경시켜준 그 호텔에서 결혼식을 치른다고 하면 최소한 100개 테이블의 식대만 70만위안(약 1억1500만원)이 든다. 2년 전인가 베이징(北京)시 교외의 한 촌(村) 간부는 아들을 장가보내면서 3일에 걸쳐 250석 정도의 연회장에 손님을 초청해  먹고 마시면서 혼례를 치른 결과 160만위안(약 2억6000만원)의 비용을 자신이 관리하는 촌정부 예산에서 빼내 지급했다가 체포돼 감옥에 가야 했다.

호화판 호텔 결혼식장의 번쩍이는 샹들리에를 구경하고 온 날 밤 숙소로 묵고 있던 호텔형 아파트에는 정전 사태가 벌어졌다. 하루 숙박비로 우리 돈 3만8000원을 지불하는 염가(廉價)의 레지던스형 호텔 22층에 묵고 있다가 서울로 가기 위해 커다란 트렁크를 들고 새벽 4시 호텔을 떠나야 하는데 호텔 엘리베이터는 정전으로 멈춰서 있었다. 비행시간에 맞추기 위해 할 수 없이 22층을 비상계단을 통해 커다란 트렁크를 들고 1층 로비로 내려가야 했다. “정전이면 호텔에 비상발전기도 없느냐”고 항의해 보았지만 프런트 직원은 벨보이들이 출근하기 전이라 도와줄 방법도 없다고 말했다. 결국 커다란 트렁크를 들고 22층에서 가까스로 1층 로비에 도착하자 프런트 직원은 미안했던지 “결국은 중국공산당이 책임져야 할 문제”라는 말을 했다. “정전 사태와 공산당이 무슨 관련이 있느냐, 당 이야기는 왜 꺼내느냐”고 했더니 “정전을 빚게 한 잘못은 전력공사에 있지만, 전력공사를 책임지고 있는 경영인이 당에서 파견한 사람이니 공산당이 책임져야 할 문제”라고 설명했다. 이 호텔의 프런트 직원처럼 중국 인민들은 잘못되면 모두가 중국공산당 탓이라고 하니, 중국공산당의 어깨가 너무 무겁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호텔 직원 정전 원인 “중국 공산당 탓”
한 쪽에서는 테이블당 130만원이나 하는 초호화판 식탁을 차려 대형 바닷가재에 진주전복, 각종 생선구이를 다 먹지 못해서 대부분 남기는가 하면, 기본이 2000위안인 결혼 축의금을 결혼식장에 파견된 은행 직원들이 자루에 쓸어 담아 바로 입금시키는 광경이 벌어진다. 반면, 같은 도시 내 다른 지역에 있는 아파트에서는 정전으로 새벽에 22층을 비상계단으로 내려가야 하는 웃지 못할 희비극이 지금 상하이에서 벌어지고 있다.   

 

[알림] <이코노미조선>은 이번 호부터 박승준 중국 푸단대 교수가 집필하는 ‘상하이별곡’을 연재합니다. 상하이는 G2로 떠오른 중국의 위상을 반영하듯 중국의 경제수도를 넘어 세계의 경제수도를 향해 질주하고 있습니다. 상하이별곡에서는 기존 매체에서는 볼 수 없었던 상하이와 중국의 생생한 현지 소식이 다뤄질 예정입니다. 박승준 교수는 굴지의 중국통입니다. 서울대 중문과를 졸업하고 조선일보 홍콩·베이징 특파원을 역임한 뒤, 현재는 중국 상하이 푸단대 국제문제연구원 한반도연구소 방문교수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