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 과기관(科技館). 영어로 사이언스 앤드 테크놀로지 뮤지엄(Science and Technology Museum)이니 우리말로는 ‘상하이 과학기술박물관’이 되겠다. 이곳은 앞선 과학과 기술을 바탕으로 먼저 산업화에 성공한 영국, 프랑스 등 유럽 제국주의 국가들의 희생물이 됐던 슬픈 중국 근대사의 한(恨)이 담긴 박물관이다. 사람, 과학기술, 자연에 관한 전시물들로 채워진 9만8000㎡의 넓은 면적의 박물관은 초·중·고·대학생은 물론 많은 중국인들에게 과학과 기술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곳은 중국의 빠른 경제 발전을 상징하는 상하이 황푸(黃浦)강 동쪽의 푸둥(浦東) 신 개발지역의 중심부에 자리 잡고 있으며, 덩샤오핑(鄧小平)이 주도한 개혁개방 정책시대를 이끈 상하이 출신 정치 지도자들의 염원을 담아 지난 2001년에 개관했다.

- 비밀의 문을 열고 들어가자 선반 가득히 전시된 짝퉁 명품들. (아래)중국 과학기술 부흥의 염원이 담긴 상하이 과학기술박물관.
- 비밀의 문을 열고 들어가자 선반 가득히 전시된 짝퉁 명품들.
(아래)중국 과학기술 부흥의 염원이 담긴 상하이 과학기술박물관.

중국 근대사 아픔 담긴 건축물
그런데 이 과기관 본관과 광장으로 연결된 보조관 지하 1층에 널찍한 짝퉁 시장이 있다는 것을 아는 중국 지도자들은 얼마나 될까. 루이비통, 샤넬, 구치, 프라다, 버버리, 에르메스, 지미 추를 비롯한 세계 유명 브랜드의 짝퉁 핸드백을 파는 가게와 까르티에, 롤렉스, 불가리, 티파니 등 난다 긴다 하는 명품 브랜드의 짝퉁 시계를 파는 점포들이 넓은 지하 1층 광장을 가득 메우고 있다. 진품 여부를 알 수 없는 중국 스마트폰 샤오미(小米)는 물론이고, 가짜 아이패드 케이스에서 세계 유명 브랜드의 어린이 장난감까지 없는 게 없다고 말하는 편이 나을 정도다.

웃기는 것은, 중국 경제 발전을 상징하는 푸둥 신개발지의 중심부에 선 상하이 과학기술박물관 지하에 있는 짝퉁시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가격 흥정’이다. 웬만한 한국인들은 가슴이 떨려서 가격 흥정에 성공하지 못한다. 가게마다 서로 다른 모양의 명품 핸드백 복제품을 전시해놓고 있지만 중국 상인(商人)들이 부르는 가격은 브랜드와 상관없이 대체로 2500위안(元·약 50만원)에서 시작된다. 2500위안이면 프랑스 파리에서 사는 진품 루이비통 핸드백 가격의 5분의 1에서 10분의 1 수준이지만, 웬만한 한국인 여행자가 사기에는 부담되는 가격이다. 간(肝)이 작은 한국인이라고 생각되면 500위안을 떼어내고 2000위안을 불러본다. 중국 상인은 그 핸드백이 얼마나 좋은 가죽과 부드럽게 여닫히는 지퍼로 만들었는지 설명하면서 2200위안은 받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면 실랑이 끝에 2100위안쯤에서 합의점이 만들어질 듯한 분위기가 조성된다. 그러나 만약 이 가격에 가짜 루이비통 가방을 샀다면 이 한국인은 크게 당한 셈이 된다. 옆 가게에서 흥정하는 중국인 손님이 부르는 가격은 순진한 한국인 관광객에게는 충격적이다.

“2500위안이면 싸다.”
“비싸다. 안 산다.”
“그러면 손님인 당신이 말해봐라. 얼마면 사겠느냐?”

이 대목에서 중국인 손님은 놀랍게도 100위안을 부른다. 상인이 2500위안을 불렀는데 100위안이라? 상인이 화를 낸다. “나하고 카이완샤오(開玩笑·농담)하는 거냐”고. 그러면 중국인 손님은 냉정하게 가게를 빠져 나가고, 상인이 뒤따라와 붙든다.

“1500위안 내라.”
“안 산다.”
“좋다. 1200위안.”
“안 산다니까.”

놀랍게도 상인이 부르는 가격은 400위안까지 내려간다. 그래도 중국인 손님은 단호하다. “아, 안 산다니까.”

마침내 프랑스제 명품과 비슷한 짝퉁 핸드백 가격은 150위안까지 내려왔다. 그래도 손님은 자신을 붙드는 상인의 손을 뿌리치면서 가게를 빠져나간다. 가게를 거의 다 빠져나간 손님에게 상인은 “120위안”이라는 외마디를 던진다. 그제야 손님은 몸을 돌려, “좋다. 120위안에 하자”고 하고, 그러면 거래가 성사된다.

아무리 짝퉁이지만 2500위안을 부른 명품 핸드백이 120위안에 판매되다니, 정말 ‘대륙적’인 가격 협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도 과학기술박물관 지하 쇼핑센터에서 벌어지는 가격 협상의 결과가 그렇다니, 한국인들의 상식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상하이에서 오래 산 한국인들은 중국 상인들이 돈을 받으면서 다소 불편한 표정을 짓는다면 그것이 올바른 가격 협상을 한 결과라고 말한다. 120~150위안 받으면 되는 짝퉁 핸드백 가격을 처음부터 2500위안이라고 부른 그 중국 상인의 배짱이 대단한 것일까.

신기술 실용화에는 한참 뒤진 중국
20세기 초반, 후반에 걸쳐 살면서 “왜 영국에서 일어난 산업혁명이 중국에서는 일어나지 않았을까”를 연구한 조지프 니담(Joseph Niedham)이라는 영국 경제학자가 있었다. 알려진 것처럼 증기기관을 발명한 제임스 와트(James Watt)는 주전자에 물을 끓일 때 뚜껑이 들썩들썩 하는 걸 보다가 힌트를 얻어 발명했다고 한다. 조지프 니담은 ‘그렇다면 주전자에 찻물을 끓이기로 말하면 중국인들은 영국인들보다 훨씬 먼저부터 차를 끓였는데 왜 중국에서는 증기기관이 발명되지 않고, 산업혁명도 일어나지 않았는가’에 의문을 가진 사람이었다. 

뜻있는 중국 지식인들의 가슴을 답답하게 만드는 것은 세계에서 가장 먼저 화약과 종이, 나침반, 인쇄술을 발명했다는 중국이 어째서 19세기 말에 영국과 프랑스의 얼마 안 되는 병력이 보유한 강력한 대포 앞에 무릎을 꿇었느냐는 화두(話頭)이다. 중국에서는 아직도 화약이 새해 첫날인 춘절(春節)이나 결혼식을 축하하는 폭죽으로 주로 쓰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답답한 의문을 가진 장쩌민(江澤民), 후진타오(胡錦濤), 상하이 출신 중국 정치 지도자들의 의지의 결실이 바로 상하이 과학기술박물관인데, 놀랍게도 상하이 과학기술박물관 지하 쇼핑센터에 세계 유명 브랜드의 짝퉁을 파는 가게가 가득 들어차 있는 이 아이러니를 중국 지도자들은 과연 알고나 있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뿐만 아니라 겉으로 보기에 어린이 장난감 가게로 보이는 숍 안에 비밀의 문이 있고, 비밀의 문을 열고 들어가면 선반 가득 짝퉁 명품 핸드백들이 가득하고, 거기서도 마음에 드는 물건이 없다는 표정을 지으면, 그 선반 한쪽이 열리면서 또 다른 비밀의 방이 나타나고, 심지어는 비밀의 문을 세 개나 열고 들어갈 수 있게 돼있다는 ‘상하이 과학기술박물관의 비밀’을 알게 되면 시진핑(習近平) 중국공산당 총서기는 과연 무슨 말을 할까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