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네덜란드 수교 54주년이 되는 올해, 양국은 수교 이후 가장 큰 정치적 성과를 거두었다. 양국 정상의 교환 방문이 처음으로 이뤄지기 때문이다. 지난 3월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핵안보 정상회담에 한국의 대통령이 처음으로 네덜란드를 공식 방문한 이후 대통령 초청으로 네덜란드 국왕 내외가 한국을 방문한다. 공개된 네덜란드 왕가의 공식 일정표에는 한국 방문 일정이 11월 3~4일 이틀간 표시돼 있다. 수교 이후 양국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공통의 가치와 이익을 바탕으로 꾸준히 관계를 진전시켜왔다.

왕국인 네덜란드에서 국왕은 정치에 직접적으로 개입을 하지 않지만 국민들에게 상당한 지지를 받으며 인기를 누리고 있다. 3대째 여왕이 왕의 자리에 있으며, 이전 여왕이었던 베아트릭스 여왕 시절, 영국과 달리 왕이 살아 있을 때 왕위를 승계하는 전통을 확립했다. 2013년 여왕이었던 어머니 베아트릭스가 참석한 자리에서 즉위식을 치른 빌름 알렉산더는 40대의 젊고 스포츠를 좋아하는 열정적인 왕으로 알려져 있다. 아르헨티나인인 막시마 여왕과 함께 세계 평화와 네덜란드의 국익을  높이기 위해 꾸준히 노력하는 성실한 왕이라고 국민들에게 평가받고 있다. 특히 그녀에게 왕비가 아닌 여왕의 칭호를 부여하도록 의회에서 승인할 정도로 막시마 여왕은 많은 국민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 왕가 폐지론을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현재의 국왕 내외에 대한 국민의 지지는 그들의 주장을 무색하게 할 정도다. 이렇듯 전 국민의 사랑을 받고 있는 네덜란드 국왕 내외의 한국 방문은 자국민들이 한국에 대해 갖는 관심을 높이는 데 어떤 역할을 하게 될까.

- 네덜란드 젊은이들이 만든 한류재단인 ‘한류콘’이 이준 열사 기념관을 방문한 후 국제사법재판소가 자리 잡은 평화궁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네덜란드 젊은이들이 만든 한류재단인 ‘한류콘’이 이준 열사 기념관을 방문한 후 국제사법재판소가 자리 잡은 평화궁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급증하는 한·네덜란드 간 교류
정전 60주년을 맞아 네덜란드의 유명 언론매체인 <엘스피어르(Elsevier)>는 2012년 ‘우리들의 한국(Ons Korea. Speciale Editie 2012)’라는 이름의 특별판을 제작했다. 책 속의 내용을 종합하면 네덜란드 사람들에게 한국은 한국전쟁을 치른 나라, 남북한으로 나뉜 유일한 분단국가, 초고속 성장을 통해 경제적으로 새로운 발전 신화를 쓴 나라, 축구 감독 히딩크와의 인연으로 네덜란드를 더 구체적으로 알게 된 나라 등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최근 네덜란드 젊은이들에게 한국은 특별하고 새로운 이미지로 부각되고 있다. 한류가 그 원인이기도 하지만 한국과 네덜란드 청년의 서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 문화 교류의 속도가 빨라지는 주요 이유다.

2008년 200여 명이었던 네덜란드 내의 한국 유학생은 2014년 이미 800여 명을 넘어섰다. 네덜란드는 영어가 모국어가 아니지만 영어 사용자 비율이 90% 이상인 나라로, 세계에서 영어권인 국가를 제외하고는 영어 사용이 가장 자유롭다. 많은 대학들은 영어로 수업을 하고 있고 굳이 네덜란드어를 사용하지 않아도 생활에 전혀 지장이 없다는 것도 한국 학생들이 유학 대상 국가로 네덜란드를 선택하는 이유다. 급속히 늘어나는 한국 유학생에 대해 네덜란드 교육계는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들이지만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기 위한 프레젠테이션에는 다소 약한 점을 보인다. 하지만 수학 과목은 상당히 뛰어나며 진취적이고 노력하는 인재들이 많다”라고 평가하고 있다. 또 네덜란드 학생들과의 상호 보완할 수 있는 학습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평가는 이곳에서 한국 유학생들을 반기는 이유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또 네덜란드에 하나뿐이었던 레이던대학교의 한국학과는 학과 생존의 위험을 걱정할 만큼 어려운 시절이 있기나 했나 싶을 정도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한국학을 선택하는 학생이 크게 늘고 있는 추세이며, 그 힘을 바탕으로 한국과의 교류를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이 마련돼 네덜란드 학계에서 한국에 대한 관심을 높이는 역할을 하고 있다. 

더불어 한국어를 배우고자 하는 네덜란드인도 점점 늘고 있다. 네덜란드에 있는 한글학교의 학생 수는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특히 외국인 수강생들이 급격히 늘고 있는 상황이라서 교사와 제반 여건을 확대하기 위한 재원 마련이 시급하다.

네덜란드 미디어를 통해 한국을 만나는 일도 잦아졌다. 네덜란드에서는 한국이 시쳇말로 아주 ‘핫(hot)’한 나라로 느껴지고 있다. 

가수 싸이의 ‘강남스타일’과 함께 한국의 서울과 강남의 거리는 네덜란드 미디어에서도 다양한 모습으로 다뤄졌다. 가수 싸이는 명사들이 대학을 돌며 강연하는 방식의 ‘컬리지 투어’라는 공영방송 프로그램에 현재 네덜란드 국가 대표팀의 감독이 된 거스 히딩크가 출연했을 때 영상으로 감사 인사를 하며 등장하기도 했다. 대학생들이 일제히 영상을 통한 싸이의 등장에 환호했고 덕분에 공영방송 황금 시간대에 한국과 네덜란드의 축구 인연이 소개되며 한국 대사가 히딩크에게 감사패를 증정하는 깜짝 이벤트가 방영되기도 했다. 

한국과 네덜란드의 스포츠 교류는 지속되고 있다. 올 초 동계올림픽 때 유난히 오렌지 색깔이 두드러졌던 스피드 스케이트 종목 시상대는 많은 나라의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네덜란드는 스피드 스케이트의 초강국으로 떠올랐고 그들을 탄생시켰던 주역 가운데 한 사람이 지난 8월 한국의 스피드 스케이트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했다. 그는 바로 네덜란드 주니어 국가대표 감독이었던 에릭 바우만이다. 

- 네덜란드 국왕 내외가 11월 3~4일 이틀간 우리나라를 공식 방문한다.
- 네덜란드 국왕 내외가 11월 3~4일 이틀간 우리나라를 공식 방문한다.

네덜란드 청년들의 자발적 한류단체 생겨
스피드 스케이트는 한국과 인연이 깊은 스포츠다. 올 초 동계올림픽 경기 때 한국 스피드 스케이트 선수들에 대한 특집 편집이 이뤄져 방송된 적이 있다. 스피드 스케이트는 네덜란드 사람들에게는 자존심과 같은 스포츠 경기다. 스케이트와 자전거를 타는 DNA를 타고 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자신 있게 생각하는 운동이기도 하다. 전 국민의 관심을 받는 종목인 스피드 스케이트 최고 선수는 당연히 이곳에서는 영웅이다. 2010년 네덜란드 최고의 영웅은 스벤 크라머였다. 당시 1만m 종목의 확실한 금메달리스트 후보였기에 전 국민들은 그가 출전한 경기에 집중했다. 그러나 우승은 한국의 작고 잘 생긴 청년인 이승훈에게 돌아갔다. 그때의 안타까움은 4년이 지난 올해 올림픽 경기에도 화면으로 몇 차례 방송됐다. 스벤 크라머가 실격되면서 행운의 여신이 이승훈의 손을 잡았던 그때 이후 이승훈 선수는 스벤 크라머와 아주 절친한 친구가 됐다고 한다. 

올 동계 올림픽을 위한 전지훈련을 네덜란드의 히른페인에서 치른 한국 선수들을 네덜란드의 공영방송에서 집중 조명했고 이상화, 모태범, 이승훈, 이규혁 선수 등 많은 한국 선수들의 이름을 알고 응원하는 네덜란드인을 만나는 것은 이곳에서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이런 관심 덕분에 스벤 크라머는 한국 브랜드인 필라의 홍보 대사로 활동하게 됐고 며칠 전 그는 페이스북을 통해 한글로 팬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는 센스를 보이기도 했다. 스포츠를 통한 네덜란드와 한국의 인연이 지속될지, 에릭 바우만이 빙상의 히딩크가 될 수 있을지,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이 기대되는 것도 이러한 까닭이다.

인구는 적지만 전 세계 인류가 다양하게 분포돼 있는 네덜란드는 유럽 내에서 새로운 트렌드가 시작되거나 신제품이나 신규 방송 방식 등을 시험하기에 가장 적절한 곳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네덜란드는 변화에 대한 수용이 빠른 반면, 명분보다는 실리를 우선하는 실용주의적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 이 때문에 한류 문화가 제대로 전해지면 유럽의 타 지역보다 빠르게 한류가 전해지지 않을까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최근 필자와 비슷한 생각을 한 이곳 청년들이 등장했다. K-팝(pop)을 듣고 한국 드라마를 보고 한국 음식을 먹던 친구들이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의 교류를 위해 2013년에 만든 ‘한류콘’이라는 이름의 자발적 한류재단이 그것이다. 크고 작은 행사들을 진행하면서 한국을 사랑하는 친구들이 모이기 시작했고, 올해 뜨거웠던 여름에는 한국에 대해 알아가는 프로그램의 한류 캠프를 통해 우정을 다지는 행사까지 치렀다. 그들의 행사 가운데에는 헤이그에 위치한 이준 열사 기념관을 찾아 한국의 역사에 대해 듣고 배우며 한국을 느끼는 시간도 있었다.

한류콘에서 기획되는 한국 관련 행사들은 예매가 시작되기 무섭게 매진될 만큼 인기가 높다. 창의적인 행사 기획을 통해 한국의 대중음악과 드라마에 나온 한국 음식 등 다양한 한국 문화 정보를 제공함은 물론이다. 한류콘 재단의 목표는 유럽에서 가장 체계적이며 한국에 대한 정보를 많이 갖춘 모임이 돼 유럽에서 한류를 전파하는 중심이 되는 것이라고 한다. 1000여 명의 회원들이 함께 할 한류 컨벤션을 준비하는 이들은 이미 한국 문화를 네덜란드에 알리는 문화 전령사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얼마 전 암스테르담의 한 대형서점에서 반가운 책을 만났다. <20인의 한국인이 만든 한국 음식>이라는 제목의 책이다. 이 책은 네덜란드로 입양 온 20명의 입양인이 자신들이 가장 좋아하고 잘 만들어 먹는 한국 음식을 네덜란드어로 소개하고 있다. 책은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제작됐으며 책의 기획자인 나탈리는 책을 통해, 한국 입양인들이 네덜란드인이지만 한국의 음식 맛에 대한 감각을 몸에 받아 태어났다며 그들의  이야기를 음식 소개와 함께 담담하게 전하고 있다. 입양인 사진 작가가 찍은 한국의 풍경을 통해 어머니의 나라에 대한 그들의 그리움까지 음식으로 소개하고 있는 아주 특별한 책이다. 나탈리는 “이 책을 계기로 한국에 대해 더욱 관심을 갖게 됐고 앞으로도 한국 음식과 문화를 소개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찾아 네덜란드에 한국 문화를 소개하는 일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 한국 전문 수업이 진행되고 있는 교실 모습.
- 한국 전문 수업이 진행되고 있는 교실 모습.

네덜란드 교과서에서 발견한 한국 역사
네덜란드 교과서 곳곳에서 한국을 발견할 수 있다. 그동안 세계 유수의 나라들이 특별히 많은 지면을 할애해 한국의 역사와 지리적 환경을 배우고 있지 않았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네덜란드의 다양한 교과서에서는 한국이 21세기 첨단을 체험할 수 있는 국가로, 젊은이들에게는 재미와 멋을 한꺼번에 줄 수 있는 나라로 소개되고 있다.

또 조선시대 우리 땅에 표류했던 네덜란드인 하멜의 고향 호르콤과 박연(네덜란드 이름은 벨테브레)의 고향 더 라입 시(市)에서는 초등학교 학생들이 한국 관련 수업을 들을 수 있는 시간이 마련돼 있다. 어릴 때부터 네덜란드와 멀리 떨어져 있는 한국을 이웃나라로 느끼게 할 한국 전문 수업을 위해 네덜란드 주재 한국 대사관은 여전히 분주하다.

네덜란드의 내로라하는 출판사의 편집부에서는 이곳에 나와 있는 한국 대사의 이름을 안다. 네덜란드 사람들이 한국을 만날 때 친근한 이야기로 만나기를 원했던 한국 대사는 많은 에너지를 교과서 사업에 투자했고 그 결실을 얻고 있다. 이러한 사례는 네덜란드에서는 처음이다.

자발적으로 한류에 젖어드는 네덜란드 청년들, 한국을 제대로 알리기 위한 우리 정부의 노력, 가난했던 국가가 버렸던 한국인 입양아들의 한국 사랑, 스포츠를 통한 인연 등 다양한 모습으로 한국은 네덜란드의 이곳저곳에서 등장한다. 한국은 네덜란드 청년들에게는 신비에 쌓인 아시아의 나라가 아닌 첨단 문화를 체험하고 즐길 수 있는 에너지 넘치고 흥미로운 나라로 알려지고 있다.

얼마 전 한국 정부 등이 외국인을 대상으로 ‘당신에게 한국은 어떤 나라입니까’를 주제로 주최한 3분짜리 동영상 콘테스트가 있었다. 흥미롭고 재미있는 많은 작품들 가운데 스토리가 유난히 돋보이는 네덜란드 청년 마토오 만데르스로트(19)가 만든 작품이 우수상을 수상했다.

어릴 적 시작한 태권도는 그에게 한국에 대한 동경과 사랑을 길러줬다. 마토오는 영재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후 대학 진학을 미루고 태권도 검은 띠를 따기 위해 한국으로 수련을 떠났다. 어릴 적 태권도 대회에 나갔던 모습, 그리고 그가 대학이 아닌 한국을 선택해 수련을 떠나게 된 동기들이 짧은 영상에 담겨 있다.

마토오에게 한국은 어떤  나라일까. “한국은 나에게 과일 맛에 들뜨게 되는 사탕 가게와도 같고, 지혜를 얻게 하는 평화를 담은 한 잔의 차 같기도 하고….” 그 무엇보다 한국은 애벌레로 갔다가 돌아올 때는 나비가 되게 하는 누에고치 같은 곳이라고 그는 말한다. 네덜란드의 누군가에게는 이토록 아름다운 나라가 한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