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네덜란드 매거진에 실린 ‘여기요’의 간판 음식들.(파전과 갈비구이, 김치)
- 네덜란드 매거진에 실린 ‘여기요’의 간판 음식들.(파전과 갈비구이, 김치)

네덜란드의 수도 암스테르담. 이곳은 이미 17세기 자유무역도시로 세계 최대의 부를 누렸다. 인구 약 80만명이 살고 있고 해마다 전 세계에서 이곳을 찾는 관광객은 450만명이 넘는다. 160개의 운하, 길이로는 75km가 넘는 물길 사이사이로 240개의 다리로 연결돼 있는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수로 시스템을 갖고 있는 곳이다. 17세기 부유했던 시절 무역의 메카였던 이곳은 지금은 전 세계인들이 좋아하는 자유의 도시가 됐다. 

수많은 인종과 색다른 문화가 넘쳐나고 전 세계의 먹거리를 만날 수 있는 이곳 중심가에서 2년 전까지만 해도 한국 식당은 찾아 볼 수 없었다. 그런데 지난해 생긴 한국 식당이 요즈음 핫 스폿(Hot Spot)으로 뜨며 네덜란드의 다양한 미디어를 통해 소개되고 있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중심가 담광장에서 5분 거리, 정확히 말하면 암스테르담의 유명한 홍등가에 있는 ‘여기요(Yokiyo)가 바로 그곳이다.

“김치는 언제 처음 맛 보셨어요?”
“예…열여섯 살 때, 한국에서 이곳으로 이주해 오신 분이 암스테르담 외곽에 한국 식당을 여셨는데 그곳에서 처음 김치를 맛봤습니다. 김치라는 음식에 대해서는 들어왔지만 먹어보진 못했어요. 처음 먹었을 때 꼭 기억에 있는 음식 맛 같았어요. 그리곤 몇 해 전 처음으로 한국으로 가 낳아주신 아버지를 만났을 때 그 이유를 알게 됐지요. 어릴 때 흰 쌀밥에 김치을 얹어주면 잘 먹었다고 하시더라고요.” 여기요를 운영하는 팀 도르네바르드(Tim Doornewaard)와 첫 만남에서 김치에 대해 나눈 얘기다.

네덜란드에서도 한류의 인기는 실감할 수 있다. 케이팝(K-Pop)이 뜨고 한류 드라마가 인기를 끌면서 한국 음식에 대한 호기심이 점점 커져간다는 것을 이곳에서도 쉽게 느낄 수 있다. 그 덕분인지 지난해 문을 연 이 식당은 유명 일간지에 소개된 것은 물론, 요즈음 잘 나가는 요리 경연 프로그램에서 한국 요리를 소개하면서 이 식당에서 경연을 치르기도 했다.


- 1, 2, 5. ‘여기요’ 음식들- 3. ‘여기요’가 실린 신문.- 4. 지난 8월 여름 농장에서 열리는 바비큐 페스티벌에 참석한 여기요 식구들.- 5. 네덜란드 한식당 ‘여기요’ 앞에 선 팀 도르네바르드.
- 1, 2, 5. ‘여기요’ 음식들
- 3. ‘여기요’가 실린 신문.
- 4. 지난 8월 여름 농장에서 열리는 바비큐 페스티벌에 참석한 여기요 식구들.
- 5. 네덜란드 한식당 ‘여기요’ 앞에 선 팀 도르네바르드.

기억 속의 맛 더듬어 한식당 열어

“식당 이름이 왜 여기요인가요. 뜻은 정확히 아세요?”

“아…한국에 갔을 때 식당을 가면 손님들이 모두 ‘여기요’, ‘여기요’ 하고 종업원들을 부르더라고요. 참 독특하다고 생각해서 함께 일하는 친구들에게 얘길 해줬더니 식당 이름으로 너무 좋겠다고 해서 바로 ‘여기요’라고 이름을 지었어요.”

이 식당의 주인은 한국에서 입양돼 온 두 명의 네덜란드인 팀 도르네바르드와 도밍고 아츠마, 그리고 한 사람은 뉴질랜드인인 제임스 풀이다. 한국말을 하지도 못할 뿐더러 한국 음식을 먹고 자라지도 않은 이들이 만든 한국 음식점은 과연 어떤 맛을 지니고 있을까.

팀과 도밍고는 한국에서 입양된 네덜란드인으로 살아가면서도 기억 속의 맛을 더듬고 있었던 것 같다. 두 사람은 네덜란드에 입양된 한국인 입양 단체인 아리랑을 통해 만났다. 6000명 가량의 한국 입양인들이 네덜란드에 살고 있는데 그 가운데 한국을 그리워하고 알고자 하는 사람들은 아리랑의 회원이 됐다. 모임을 통해 한국의 문화와 한글을 배우고 때로는  한국에 살고 있는 가족에 대한 소식을 알게 되는 데 도움을 받기도 한다. 아리랑을 찾는 사람들은 거의가 자신의 뿌리를 찾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라고 한다. 아리랑 회원들과 함께 연 가든 파티 때 한국의 바비큐를 맛보게 됐고 팀과 도밍고는 그 맛과 먹는 방식의 독특한 매력에 빠지게 됐다.

2010년 도밍고는 팀에게 한국의 맛과 야채로 쌈을 싸서 먹는 방식의 바비큐를 네덜란드에 알리자는 제안을 했다. 그 이후 두 사람은 행사나 특별한 축제가 있을 때마다 참석해 한국 바비큐 맛을 알렸다. 고추장과 쌈장, 그리고 바비큐를 야채와 함께 싸서 먹는 방식까지 홍보했다. 그리고 특별히 다양한 야채를 삼삼하게 간을 해서 먹는 나물과 한국 음식에서 뺄 수 없는 김치를 알리는 것에 주력했다. 행사를 치를 때마다 주변 친구들은 이들에게 암스테르담 중심가에 멋진 한국 식당을 오픈하는 것이 어떠냐는 제안을 했다. 팀이 아들 학교의 학부형인 제임스를 만나게 되면서 그들의 생각을 실현하게 된 것이다.

한국 음식을 제대로 알리자는 합의를 한 도밍고와 팀은 한국을 찾았다. 그때까지 낳아준 아버지를 만나지 못했던 팀은 입양 이후 한국으로의 첫 걸음이었다. 주변 사람들의 도움으로 낳아준 아버지를 만나고 다른 가족들도 만나게 됐다고 한다. 도밍고는 한국 음식에 대한 요리법을 지인들로부터 전수받아 한국 음식을 현지화하는 방식을 고민했다. 받은 레시피로 요리를 하며 한국 음식을 제대로 배웠던 그때가 가장 귀중한 시간이었다고 한다. 현재 여기요의 주방은 도밍고와 제임스가 맡아 운영하고 있다.


- 2층으로 이뤄진 식당은 세 가지 형태의 테이블이 있다. 사진은 바베큐 요리를 먹는 식탁으로, 이곳 일간지에는 우주선 모양의 특수한 장비라고 소개됐다.
- 2층으로 이뤄진 식당은 세 가지 형태의 테이블이 있다. 사진은 바베큐 요리를 먹는 식탁으로, 이곳 일간지에는 우주선 모양의 특수한 장비라고 소개됐다.



바비큐의 독특한 소스가 인기 비결
여름이면 암스테르담 외곽 농장에서 펼쳐지는 세계 바비큐 경연 대회가 있다. 2년 전 시작된 이 대회는 ‘여기요’ 식구들이 주축이 돼 만들어진 행사다. 이들이 진행하는 바비큐 경연 대회에는 세계 유명 바비큐 요리들이 소개된다.
맛난 음식과 농장에서 직접 만든 맥주, 게다가 김치까지 맛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하지만 참석한 모든 사람들에게 그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한정 수량, 한정 제작으로 행사에 빨리 참석하는 사람들에게만 더 다양하고 맛난 음식을 맛볼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된다.

물론 축제에서 가장 인기 있는 음식들은 순위가 매겨진다. 결승전까지 오른 멕시코와 한국의 바비큐 요리는 단연 인기가 있었다. 올해는 멕시코에 우승컵을 내주고 말았지만 해마다 기회는 있다. 하지만 축제 이름은 김치 페스티벌이다. 이 축제에 육고기를 이용한 다양한 음식이 소개된다. 여기요 셰프들은 여러 날을 고민하며 이날 선보일 요리의 새로운 레시피를 개발한다고 한다.

“내년에는 더 많은 사람들이 시식하고 즐길 수 있는 경연이 될 겁니다. 우리가 함께 노력하고 있으니까요.” 김치 축제에 대해 얘기하는 팀의 얼굴은 인터뷰 내내 싱글벙글이다. 불판에 고기가 익으면 어느 정도에서 뒤집어야 하는지, 어떻게 음식을 야채에 싸먹는지를 손님들에게 설명한다. 젓가락 쓰는 것이 서투른 이곳 손님들이 결코 젓가락을 포기하지 않고 배우고자 하는 모습이 우스꽝스럽기도 했다.

중학교 때였던가. 필자도 가정 시간에 서양 요리를 먹기 위해 포크와 나이프 쓰는 방법을 배웠던 기억을 떠올리며 이들도 젓가락 사용법을 학교에서 배워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슬그머니 웃음이 나왔다.

식당에 온 몇몇 손님들에게 이 식당의 특이한 점을 물었더니 단연 많은 답변으로 바비큐를 먹는 특별한 방식을 꼽는다. 바로 ‘쌈’이다. 보쌈, 오리쌈, 두부쌈 등 다양한 쌈을 개발한 것도 이곳 사람들이 좋아하는 인기 메뉴가 됐기 때문이란다. 

여기요의 주요리는 바비큐다. 한국 바비큐의 독특한 소스와 쌈을 먹는 방식이 이곳에서 인기를 끄는 비결인 듯 했다.

네덜란드 사람들의 특징 가운데 하나로 꼽을 수 있는 것이 바로 날씨만 좋으면 야외에서 햇볕을 즐기는 것이다. 날씨는 이곳 사람들에게는 가장 큰 얘기 거리다. 오늘 날씨가 어떤 지는 서로의 안부를 묻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화제다. 화창한 날이 되면 사람들은 밖으로 나와 햇빛을 즐긴다. 그러면서 함께 친구나 가족들과 함께 음식을 나눠먹거나 커피를 마시는 것이 이들의 일상이다. 특히 날씨가 좋은 여름이면 바비큐 파티를 하는 것이 거의 일상이다. 바비큐 파티는 네덜란드 사람들의 여름 일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새로운 음식을 알리기 위해서는 이곳 사람들이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음식을 어떤 방식으로 먹는지를 정확하게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 팀의 생각이다. 바비큐를 주메뉴로 정하고 김치와 나물, 파전과 쌈 등을 전채 요리로 정한 이유는 바로 현지화를 위한 전략이다.

팀과 도밍고가 여기요를 열기 전 가졌던 가장 큰 고민은 한국의 맵고 짠 맛을 과연 이곳 사람들이 쉽게 선택할 것인가라는 것이었다. 그때 제임스를 만났는데 그는 이미 프랑스, 이탈리아, 인도를 다니며 자신의 맛을 찾기 위해 노력해왔던 유명 셰프다.

제임스가 말했다. “뉴질랜드에는 한국 음식점이 아주 많습니다. 그곳에서 한국 음식을 알게 됐고 배우게 됐지요. 음식에 대해서는 열심히 공부했고 한국 음식에 대해서도 열정을 갖고 배웠습니다.”

제임스의 한국 음식에 대한 열정은 대단했다. “한국 음식은 일본 음식과 같은  기본 소스로 시작하지만 더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어요. 달고, 시고, 맵고, 짠 것들이 가미돼 독특한 음식의 맛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특유의 기본 소스의 맛은 잃지 않는다는 특별함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는 “이곳을 처음 찾는 손님들은 식당에 들어와 한국인들이 없다는 걸 알고 좀 의아해하고 놀라기도 한다”며 “하지만 음식 맛을 보곤 곧 단골이 되는 손님들이 점점 많아진다. 한국 말을 할 수 없어서 그렇지 한국 맛을 낼 줄 아는 사람들”이라고 말하며 웃었다.

제임스는 독특한 레시피를 그의 머릿속에 넣고 있으며 전통의 맛을 기본으로 하지만 현지인들이 쉽게 한국 음식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현지화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말을 잊지 않는다.

여기요의 상차림은 한국식이 아니라 네덜란드식이다. 네덜란드의 여느 음식점들과 같이 기본적으로 전채요리, 주요리, 디저트로 나뉜다. 그렇다고 반드시 3단계로 선택할 필요는 없다. 스페인 요리의 타파스와 같이 작은 접시에 한입 먹을 수 있는 다양한 요리들을 부가 메뉴로 만들었다.

구운 굴 요리, 현지화된 부침개, 김치찌개, 된장찌개, 수육, 보쌈 등 한국 이름으로 불리는 음식들은 한국처럼 푸짐하게 나오지 않는다. 아기자기한 접시에 바비큐라는 주식을 먹기 전에 먹는 요리들로 잘 갖춰져 있다.

맛깔난 음식 색깔에 비해 그리 맵지 않으면서도 한국에서 먹어본 맛이 그대로 나오는 것이 이상했다. 메뉴 개발은 주방을 맡고 있는 도밍고와 제임스의 몫이다. 도밍고는 한국의 지인들을 통해 전통적 레시피를 전수받았다. 제임스는 세계 각국을 돌아다니며 터득한 자신만의 맛의 스타일과 적절히 융합을 했다고 한다.

여기요에서 맛 볼 수 있는 한국 음식은 전통 음식 맛에 이국(異國)의 향기를 소스로 첨가한 맛이라고 해야 할까.
나물이 종지에 조금씩 덜어져 나오는 것은 분명 한국의 정서에는 맞지 않는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특별한 음식 메뉴에 곁들여져 나오는 맛깔난 정성이라고 평가받는다.

하나 둘 단골이 늘어나고 젊은 사람들이 한국 바비큐와 사이드 요리를 먹겠다고 이곳을 찾는다. 상냥하고 다정한 팀을 보러 오는 손님도 늘고 있다. 팀과 함께 고객을 응대하는 5명의 스텝들도, 도밍고와 제임스의 주방에서 함께 일하는 사람들도 한솥밥을 먹는 식구다. 그리고 그들은 한국 음식을 알리기 위해서 요리를 개발하고 축제를 벌이기도 한다.

여기요의 세 주인들 중 팀과 가장 긴 인터뷰를 했다. 그에게 들은 한국에서 입양 와 네덜란드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며 한국 식당을 차리게 된 동기 그리고 자신의 삶에 대한 많은 얘기를 들으며 한국인임을 잊지 않고 있는 팀에게 미안함과 고마움이 한꺼번에 느껴졌다.

네덜란드의 정서와 문화 속에서 살아온 두 사람의 한국인 입양인들이 운영하는 한국 음식점이 한 해, 두 해를 지나면서 한국의 음식 문화를 알리는 핫 스폿이 되고 있다. 


아이들에게는 한국어 가르쳐
“아내는 네덜란드 분이세요?”
“그렇죠. 네덜란드 사람이죠. 저와 같은 한국인 입양인입니다. 아이가 둘인데 제가 한국말을 못해서 아이들은 한글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부부는 아이들에게 말하지요. 우린 암스테르담에 살고 있는 네덜란드인이고, 엄마 아빠는 한국인이기에 너희들 역시 한국인이라고 말이죠.”

처음 김치를 먹었을 때 기억 속에 있는 맛 같았다고 말했던 팀의 말을 떠올리며 식당을 나올 무렵 젓가락을 우스꽝스럽게 사용하는 손님들로 이미 80석의 식탁이 꽉 차 있었다. 식당을 떠나면서 필자의 머릿속에는 이 말이 뚜렷이 각인됐다. ‘기억 속의 맛, 유전자가 기억하는 맛은 분명히 있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