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늦가을부터 초겨울까지 상하이 사람들이 즐겨 먹는 상하이 크랩.
- 늦가을부터 초겨울까지 상하이 사람들이 즐겨 먹는 상하이 크랩.

가을에서 초겨울에 이르는 계절이 되면 상하이(上海) 거리는 온통 ‘상하이 크랩(Shanghai crab)’ 사진과 그림으로 넘쳐난다. 발갛게 잘 익은 상하이 크랩의 등 부위와 배 속 노란 알 사진은 손님들을 유혹한다. 시장뿐만 아니라 편의점에 가도 중국어로 ‘따자시에(大閘蟹)’라고 부르는 게들이 새끼줄에 발이 묶인 얌전한 자세로 진열돼 있다. 상하이 가장(家長)들은 가을에 한 번은 가족들과 함께 상하이 크랩을 맛있게 삶는 식당에 가 뜯어먹는 즐거운 자리를 만들어야 가장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상하이 사람들뿐만 아니라 상하이를 찾아온 외국인들도 ‘가을에는 상하이 크랩 한 마리는 먹어야지…’라는 생각을 상식처럼 여기고 있다. 이래저래 상하이의 가을과 초겨울은 상하이 크랩을 먹으면서 주고받는 이야기와 웃음소리가 거리에 가득 찬다.

상하이는 쓰촨(四川)성 고원지대를 출발해 6300㎞를 동쪽으로 달려온 장강(長江)이 바다와 만나는 곳에 들어선 도시다. 중국에서 제일 길고, 세계에서 나일 강과 아마존 강 다음으로 세 번째로 긴 장강은 상하이 근방에 수많은 삼각주와 호수들을 만들어 놓았다. 서양 사람들은 장강을 ‘양쯔강(揚子江)’이라고 부르지만 장강의 일부 구간을 양쯔강이라고 부르는 중국 사람들에게는 정식 명칭이 ‘장강(長江)’일 뿐이다.

이른바 ‘상하이 크랩’으로 알려진 ‘따자시에(大閘蟹)’는 상하이 근방의 여러 호수에서 나는 민물털게를 가리킨다. 상하이 사람들은 그중에서도 ‘양청후(陽澄湖)’에서 나는 털게를 최고로 친다. 그래서 여러 호수에서 양식되는 게들이 가을이면 모두 ‘양청후 따자시에’로 둔갑한다. 양청후 따자시에는 가깝게는 홍콩으로, 멀리는 유럽의 파리와 미국의 워싱턴까지 날아가 ‘상하이 크랩’을 먹을 줄 아는 서양 사람들의 식탁에까지 오른다.

올해는 윤달이 끼어 추석이 9월27일이었기 때문에 상하이 크랩의 살이 제대로 차지 않았다. 게다가 생산량은 지난해에 비해 10% 이상 늘어 가격도 조금 떨어졌다. 물론 가격이 떨어졌다고 해도 4마리에 300~400위안(6만~8만원)은 줘야 육질이 단단하고 노란 알이 가득한 털게를 뜯으며 가족끼리 즐거운 저녁시간을 보낼 수 있기 때문에 호주머니가 얄팍한 상하이 가장들에게는 제법 부담이 된다.

상하이에 사는 한국인들은 상하이 사람들과 어울려 따자시에를 먹게 되는 일이 흔한데, 민물 게를 잘 먹지 않고 바닷게인 꽃게를 주로 먹어온 한국 사람들에게는 거리낌을 안겨주는 식탁이 되곤 한다. 꽃게 게딱지에 밥을 한 숟갈 넣어 비벼먹어야 직성이 풀리는 한국 사람들은 ‘과연 민물 털게를 그렇게 먹어도 되나’라고 생각해 따자시에 한 마리를 들고는 어쩔 줄 몰라 하다가 제대로 먹지 못하고 겨우 다리를 떼어 분리해놓고는 비싼 상하이 크랩 접시를 물리곤 한다. 그러면 상하이 사람들은 상하이 크랩을 먹을 때 지켜야 하는 여섯 가지 금기 사항과 몸체 가운데 먹지 말아야 할 네 가지 부위가 어디어디인지를 알려준다.

우선 상하이 크랩을 먹을 때 지켜야 하는 여섯 가지 금기(禁忌)는 다음과 같다. 첫째, 장강의 탁류(濁流) 속에서 자란 것이기 때문에 절대로 날 것으로는 먹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둘째는 죽은 따자시에 몸속에서는 빠른 속도로 세균이 번식하기 때문에 반드시 살아 있는 게를 찜 솥에 넣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는 점이다. 삶은 지 오래된 따자시에 역시 몸속에 세균이 빠르게 번식하기 때문에 절대로 먹어서는 안 된다. 이밖에도 따자시에는 기본적으로 찬 음식이어서 많이 먹으면 복통이 일어난다. 따자시에를 먹으면서 혹은 먹은 뒤 1시간 이내에는 차를 마시지 않는 것도 주의사항이다. 상하이 사람들은 차의 어떤 성분과 따자시에의 특정 성분이 만나면 응고되기 때문에 소화가 제대로 되지 않는다고 믿고 있다. 마지막으로 따자시에를 절대로 감과 함께 먹지 말라는 것으로, 감이 보유하고 있는 산(酸)이 따자시에의 단백질을 응고시켜 구토와 복통을 일으킬 수 있다고 한다.


(좌) 상하이 크랩은 장강 탁류 속에 살아 싱싱한 것을 반드시 삶아 먹어야 한다.(우) 상하이 가장들은 가족들에게 상하이 크랩을 사주는 게 로망이다.- 사진: 조선일보 DB
(좌) 상하이 크랩은 장강 탁류 속에 살아 싱싱한 것을 반드시 삶아 먹어야 한다.
(우) 상하이 가장들은 가족들에게 상하이 크랩을 사주는 게 로망이다.
- 사진: 조선일보 DB



상하이 주변 호수에서 자라 반드시 삶아 먹어야
따자시에를 먹을 때는 또 네 가지 부위도 절대 먹지 말아야 한다. 첫째는 ‘시에쓰(蟹 )’라는 부분으로 배 쪽 큰 껍질을 열면 보이는 허파처럼 생긴 부분이다. 이 부분은 장강의 탁류에서 더러운 함유물을 걸러내어 간직하고 있는 부분이므로 먹어서는 안 되는 부위이다. 다음은 ‘시에창(蟹腸)’, 다시 말해 껍질 안쪽 아래쪽에 있는 내장처럼 생긴 부위를 말한다. 또한 ‘시에웨이(蟹胃)’ 즉 위 부분과 ‘시에신(蟹心)’이라고 부르는 심장 부분 역시 상하이 사람들은 절대 먹지 않는다. 결국 따져보면 하얀 살과 노란 알만 잘 골라먹고 나머지는 버리는 것이 상하이 크랩을 제대로 먹는 방법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마치 독이 있는 복어를 한국과 일본 사람들이 즐겨 먹듯, 지켜야 할 금기가 많고 먹지 말아야 할 부위가 많은 상하이 크랩을 상하이 사람들이 즐겨 먹는 이유는 그만큼 제대로 알고 먹으면 맛이 뛰어나기 때문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마치 두리안(Durian)이라는 냄새 나는 과일을 먹는 이유가 과육이 맛있기 때문이라는 사실과 같은 이치일 것이다.

홍콩의 신문과 방송들은 상하이 크랩을 먹는 계절이 되면, ‘상하이 크랩에 관한 진실’ 같은 제목으로 “상하이 크랩이 비싼 이유는 운송 거리가 길기 때문일 뿐, 결코 비쌀 이유가 없다”는 분석 기사를 즐겨 싣는다. 그러나 문제는 그런데도 불구하고 해마다 겨울과 가을이 만나는 계절이 되면 상하이에서는 ‘따자시에의 계절’로 간주되고 있는 것이 대세다.   


박승준 
푸단(復旦)대 국제문제연구원
한반도연구소 방문교수
前 조선일보 홍콩·베이징 특파원
sjpark7749@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