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종차별 논란 속에서도 자선 축제로 지속

1. 신터클라스저널 프로그램 웹사이트 2. 공식 행사가 진행된 하우다에서 기자회견 중인 신터클라스와 피터들. 3. 새롭게 등장한 피터들의 모습. 4. 선물과 함께 전해지는 시로 쓰인 메시지. 5. 신터클라스 배
1. 신터클라스저널 프로그램 웹사이트 
2. 공식 행사가 진행된 하우다에서 기자회견 중인 신터클라스와 피터들. 
3. 새롭게 등장한 피터들의 모습. 
4. 선물과 함께 전해지는 시로 쓰인 메시지. 
5. 신터클라스 배

아이들이 행복한 나라 네덜란드, 이곳에는 어린이날이 특별히 없다. 어린이날을 따로 정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어린이의 행복에 가치를 두는 나라이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여러 차례 유니세프를 통해 행복한 아이들이 사는 나라로 으뜸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아이들이 행복을 느낄 때가 언제일까. 네덜란드 아이들은 아마 ‘신터클라스(Sinter Klaas)날’을 꼽을 것이다.

아이들에게 행복을 느끼게 하는 많은 이유들 가운데 단단히 한몫을 하는 행사다. 아이들에게 1년 동안 행복했던 일들을 기억해 내 칭찬과 선물을 챙겨주는 하얀 수염의 신터클라스 할아버지와 검은 피터들은 전통적인 네덜란드의 그 무엇을 말할 때 빠지지 않는 독특한 이야기 거리다.


11월 중순부터 12월5일까지 축제 열려

네덜란드의 신터클라스는 루돌프 사슴이 이끄는 눈썰매를 타고 선물 보따리를 전해주러 오는 산타클로스 할아버지의 원조격이다. 11월 중순 큰 배에 수많은 검은 피터들과 백마 그리고 아이들에게 나눠줄 선물과 생강 과자, 사탕을 가득 싣고 스페인을 출발해 네덜란드의 항구에 도착, 성 니콜라스 축일인 12월5일 아이들에게 선물을 나눠주고는 12월6일 배를 타고 네덜란드를 떠난다.

축제의 시작을 알리는 신터클라스 배가 네덜란드에 정박한 후부터는 네덜란드 도시 어디서든 신터클라스와 피터들을 만날 수 있다. 11월 중순부터 12월5일까지는 아이들의 가슴을 두근거리고 설레게 하는 축제 기간이다.

신터클라스 축제를 위한 노래는 물론 행사 기간에만 파는 과자, 사탕, 초콜릿은 각각의 이름을 가지고 있다. 1년 중 아이들에게 가장 다양한 먹을거리가 제공되는 기간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이 축제 기간에 학교나 모임, 가정에서 치러지는 여러 행사는 구성원 각자가 지내온 1년을 차분히 돌아보는 기회이다. 지난 시간에 대한 반성과 더불어 새로운 시간을 계획하는 하는 때이기도 하다. 이것이 이 행사의 가장 독특한 매력이라 할 수 있다. 네덜란드에는 신터클라스는 있고 산타클로스는 없다.

네덜란드와 유사한 신터클라스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 나라는 벨기에와 독일, 프랑스를 꼽을 수 있다. 하지만 네덜란드처럼 온 나라의 축제로 즐기지는 않는다. 

그런데 왜 유독 네덜란드에서는 국가적인 큰 행사를 치르게 된 걸까. 해마다 겨울이면 신터클라스가 찾아와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에게 그 당시 귀족들이나 맛볼 수 있던 생강과자와 사탕을 나눠주며 사람들을 기쁘게 하는 이 행사는 15세기 후반부터 19세기까지 꾸준히 전해지며 전통이 됐다. 네덜란드의 유명 화가인 얀 스테인의 그림에서도 찾아 볼 수 있는 신터클라스 행사가 국가적인 축제로 즐기기 시작한 것은 1945년 2차대전이 끝난 후다. 폐허가 된 나라를 재건하고 새로운 희망을 기대하던 사람들에 의해 신터클라스는 행복의 대상으로 새롭게 등장했다. 미디어의 발달로 1952년 신터클라스와 검은 피터들이 스페인에서 배를 타고 네덜란드 항구로 들어오는 행사를 생방송으로 중계하기 시작했다. 그 이후 행사의 규모와 방법들이 변해가며 네덜란드 국민들의 사랑과 관심이 이어지고 있다.

급속한 산업 성장 등에 따라 본질보다는 상업적인 형태로 변하고 있다는 비난이 일기도 했다. 그러나 여전히 오랫동안 네덜란드의 전통적인 행사로, 성 니콜라스 축일인 12월5일은 국경일로 지정되며 네덜란드를 가장 잘 표현하는 문화 행사의 하나로 자리 잡았다.


- 신터클라스 축제 시작 행사에서  실망한 아이들의 표정을 다룬 일간지 1면.
- 신터클라스 축제 시작 행사에서  실망한 아이들의 표정을 다룬 일간지 1면.

인종차별 지적되며 논쟁 뜨거워

신터클라스와 함께 아이들에게 선물과 과자를 나눠주는 피터들은 모두 검다. 검은 피터가 신터클라스를 모시는 노예들이었다는 역사적 근거 때문에 인종차별적인 행사라는 지적도 1980년부터 꾸준히 제기됐다. 지난해 한 유엔 대표가 네덜란드 방송에서 검은 피터가 인종차별적 행위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를 계기로 검은 피터에 대한 논쟁은 2014년 한 해 가장 뜨거운 논쟁거리가 되었다.

검은 피터 찬반론은 2014년 11월15일 네덜란드 하우다(Gouda)항을 통해 신터클라스의 배가 들어오는 축제의 시작을 알리는 행사에서 극에 달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온통 안개가 뒤덮인 하우다항의 행사에서는 검은 피터를 반대하는 시위대와 경찰들이 대치했다. 1년 동안 기다렸던 신터클라스와 피터들을 마중 나왔던 아이들의 얼굴에는 불안과 긴장이 감돌았다. 

“참, 실망이에요. 우리들 축제를 어른들이 망쳐놓았어요.”

“검은 피터가 흑인인가요? 저는 그렇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는데…오늘은 신터클라스가 오는 날인데 별로 기쁘지가 않네요.”

행사를 보러온 아이들은 시무룩했다.

소셜 미디어를 통해 뜨거운 토론이 이어졌다. 검은 피터를 옹호했던 몇몇 토종 회사들에 대해서는 검은 피터 반대파들이 주도하는 불매 운동이 전개됐다. 다양한 인종이 살고 있는 네덜란드에서 몇 해 전부터 논란이 되고 있는 국가와 인종 문제가 맞물려 정치적으로 여러 가지 잡음이 불거져 나왔다. 행사를 기획하고 진행한 각 지자체들은 검은 피터의 논쟁을 잠재울 수 있는 다양한 아이디어를 내놨다. 어떤 도시에서는 아예 신터클라스 행사를 치르지 말자는 논의가 일기도 했다.

공식적인 행사를 주최한 하우다시에서는 도시의 상징인 치즈와 스트롭 와플(시럽이 가운데 든 네덜란드 전통 와플)의 얼굴 색깔을 한 피터들을 등장시켰다. 각 도시에서 치러지는 신터클라스 행사에는 무지개 피터, 흰 피터, 반은 검고 반은 흰 피터 등 다양한 피터들이 출연했다. 낯선 피터의 얼굴을 보며 겁먹은 아이들의 우는 모습이 소셜 미디어를 통해 전해지며 이것이 다시 뜨거운 논쟁거리가 됐다.

2014년 네덜란드의 신터클라스 축제는 어른들의 수없이 다양한 생각을 쏟아놓은 해였고 아이들에게는 낯선 피터들의 만남과 분노를 느끼는 한 해였을 것이다. 어쩌면 아이들에게 가장 덜 행복한 신터클라스 축제였는지도 모른다.

축제 기간은 신터클라스날인 12월5일 3주 전부터 시작된다. 공영방송의 ‘신터클라스 저널’이 이를 가장 먼저 알린다. 신터클라스 저널은 스페인에서 네덜란드로 아이들에게 선물을 전해주러 신터클라스와 피터들이 들어오기 전인 11월 둘째 주부터 방송된다. 신터클라스가 사는 성에서의 준비 과정부터 시작해서 네덜란드에 도착한 신터클라스와 피터들의 활약상들을 12월5일 전날까지 방송한다.

논란의 중심에 선 검은 피터를 그대로 등장시키며 시작한 2014년 첫 방송은 수많은 비판을 받았다. 하지만 12월4일의 마지막 방송은 많은 사람들의 호응을 끌어냈다. 검은 피터들 가운데 가장 연륜과 경험이 많은 할아버지 피터가 신터클라스가 돼 백마에 오른 모습을 보여준 마지막 방송은 아이들에게 새로운 상상을 만들어 줬다는 평가를 받았다. 

2001년 프로그램 제작 당시부터 진행을 맡아왔던 디월쯔 블록의 말이다. “신터클라스 축제는 삶의 재미와 해학이 담겨 있는 네덜란드의 자랑스러운 축제다. 행사를 통해 아이와 어른 모두가 좋고 나쁜 습관들을 뒤돌아볼 수 있고 가족 서로 간의 관심과 사랑을 표현할 수 있다. 네덜란드 아이들에게는 더 할 나위 없이 중요하다.” 그는 14년 동안 진행하던 프로그램에서 하차하면서 검은 피터의 논란보다는 아이들의 행복이 중심에 서기를 바란다는 말을 남겼다.

네덜란드 방송인인 마이크 더 부우르는 신터클라스 축제의 검은 피터들의 논쟁을 부정적으로 보지 않았다. 그는 “그동안 끊임없이 얘기됐던 검은 피터에 대한 각자의 의견이 표출돼 마침내 행사에 대한 새로운 방식을 요구하게 된 것이다. 이 과정에서 대화와 타협을 통해 진화된 형태의 좋은 안들이 수용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신터클라스와 피터들은 네덜란드 가족들에게는 대단히 중요한 존재다. 그들은 모두가 함께 등장해 사람들을 향해 선물과 관심을 보이며 한 해를 잘 보내라는 메시지를 남긴다. 크리스마스와는 전혀 별개의 행사다. 아이들에게는 다른 것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두근거리는 행사”라고 덧붙였다.


- 17세기의 네덜란드 유명 화가인 얀 스테인이 그린 신터클라스 축제 그림.
- 17세기의 네덜란드 유명 화가인 얀 스테인이 그린 신터클라스 축제 그림.



선물에는 시로 쓰인 메시지 담겨

“피터들은 신발에 선물을 놓고 가요. 잠자리에 들기 전에 신터클라스와 피터를 위한 노래를 부르고 잠자리에 든답니다. 그러면 다음날 신발에 페퍼노튼(생강 맛의 과자)과 선물이 놓여 있답니다. 이번엔 다섯 가지 선물을 받았답니다. 다음엔 더 많이 받을 거예요.”

선물과 함께 시(詩)로 쓰인 메시지도 받는다.

선물은 이처럼 한 편의 시를 통해 전달된다. 왜 이런 선물을 준비했고 누가 이 선물을 주는지에 대해 얘기해준다. 아이들은 선물을 하나하나 열 때마다 1년 동안 지내온 생활들을 기억하게 된다. 또 선물을 받으며 내년엔 더 나은 생활을 할 것이라는 각오도 하게 된다.

신터클라스와 피터는 학교와 집 그리고 특별한 모임을 찾아다니며 사람들에게 메시지가 담긴 선물을 전달하고 페퍼노튼을 전해준다. 신터클라스의 선물을 열 때의 아이들의 기대와 긴장된 얼굴은 온 가족에게 행복을 안겨준다. 가족 간의 유대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네덜란드 문화를 그대로 느낄 수 있다.

2차대전을 겪은 후 피폐한 상처를 안고 있던 많은 사람들에게 기쁨과 꿈을 전해준 신터클라스 축제는 급변하는 세상에서 전통을 유지하며 진화하고 있다. 축제 기간 내내 끊이지 않았던 검은 피터 논란을 대하는 네덜란드 사람들의 모습에서 대화와 타협을 통한 문제 해결 방안을 찾아가는 방식들을 들여다 볼 수 있다.

어른들의 논쟁으로 성난 아이들은 성장하면서 새로운 신터클라스 이야기를 써나갈 것이다. 인종차별의 표상이 된 검은 피터들의 논쟁보다는 추운 겨울 어느 날 가난한 사람들을 찾아와 달콤함과 따뜻함을 선사했던 성 니콜라스의 자선의 의미를 기억하는 축제로 지속될 것이다.    


장혜경 
웨이포인트-홀랜드
뉴스 미디어&저널리즘 대표
nara0109@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