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2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라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이 양국 관계 개선안을 발표하면서 미국과 쿠바 간 빗장이 풀렸다.
2014년 12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라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이 양국 관계 개선안을 발표하면서 미국과 쿠바 간 빗장이 풀렸다.

1959년 쿠바혁명 후 구 소련의 막대한 물질적 지원을 받은 쿠바는 1980년대까지 교육, 보건 등 사회복지 분야에서 라틴아메리카 국가 중 가장 앞서가는 나라였다.

그러나 소련과 동구사회주의 국가의 붕괴로 갑자기 물질적 지원을 받지 못하게 된 쿠바는 1990년대 초 심각한 경제위기에 직면했다. 소위 ‘특별시기’의 어려움을 겪으면서 쿠바는 살아남기 위해 개방과 개혁을 추진해야 했다.

그들은 살 길을 관광업에서 찾았다. 호텔업에 외국인 투자를 유치하고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쿠바를 개방함으로써 돌파구를 찾았다. 내부적으로는 숙박업, 음식점, 택시영업 등 관광업과 관련된 분야에서 개인 자영업도 허용했다.

그로 인해 몰아닥치는 자본주의 물결에 불안감을 느낀 혁명세대 지도자들이 잠시 개혁에 제동을 걸기도 했지만, 이제 생존의 문제를 넘어 쿠바 사회주의 경제의 비효율성과 낮은 생산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개혁은 불가피한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형인 피델 카스트로(Fidel Castro)와 달리 실용주의자로 알려진 동생 라울 카스트로(Raul Castro)가 2008년 국가평의회 의장직을 물려받자 개혁은 다시 탄력을 받기 시작했다. 라울은 생산성 증대를 위해 시장 메커니즘 도입이 필수적임을 강조했다. 14년 만에 개최된 2011년 제6차 쿠바공산당대회에서는 수많은 논의를 통해 당과 혁명이 나아가야 할 경제적 사회적 가이드라인 291개가 제안됐다.


2%대 성장률 지난해 4.4%로 급상승

여기에는 국가 역할 축소, 시장 메커니즘 도입, 외국인 기업과 국내 민간 기업 역할 강화 등의 내용이 담겨있었다. 그로 인해 개혁 이전 15%였던 비국영 부문 종사자 수가 2012년 23%로 증가했으며 올해 40% 수준에 이를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교육과 보건 분야를 제외한 모든 분야에서 국가 보조금 삭감 혹은 중단이 결정됐다.

개혁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국가평의회 부의장을 책임자로 하는 ‘발전과 개혁 실행을 위한 상임위원회(CPID)’도 설립됐다. 2008년에는 컴퓨터와 휴대전화 구입이 합법화됐으며 쿠바인의 호텔 출입과 렌터카 승차가 허용됐다. 2011년에는 부동산과 자동차의 개인적 매매가 허용됐으며 2013년에는 쿠바인의 해외 출국허가제가 폐지됐다.

2014년에는 마리엘 경제특별개발지구(특구)를 지정하면서 200개 이상의 프로젝트가 외국인 투자를 기다리고 있음을 보여줬다. 마리엘 특구는 카스트로 체제가 제한적 경제 개방을 위해 만든 항만이다.

2014년 12월 16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라울이 양국 관계 개선을 발표하면서 미국은 쿠바에 경제적 선물을 안겨줬다. 미국은 단순 관광 목적을 제외한 미국인의 쿠바 여행을 모두 자유화했으며 미국에 정착한 쿠바계 미국인이 쿠바에 있는 친지에게 보내는 송금액 한도를 3개월 500달러에서 2000달러로 확대했다.

그리고 지난해 7월에는 미국과 쿠바가 국교를 정상화했으며 올해 3월에는 오바마가 역사적인 쿠바 방문을 했다. 이런 상황에서 2015년 한 해에만 쿠바를 방문한 미국인 수가 80% 증가했다. 쿠바 관광객 수는 현 350만명 수준에서 곧 1000만명 수준까지 증가할 것으로 기대된다.

그에 따라 쿠바 정부도 앞으로 15년 동안 현재 5만개 수준인 호텔 객실 수를 11만개 수준으로 늘릴 계획이다.

외국인 관광객 증가로 쿠바인 자영업자들이 운영하는 식당과 바가 300여개 새로 문을 열었다. 민간 자영업자로 등록한 사람 수도 50만명에 이르렀다. 서비스업이 전체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77%(제조업 12.5%·건설업 5.5%·농림축산업 4.3%·광업 0.6%)를 뛰어넘는다. 관광객 증가와 국내 자영업 확대로 2014년까지 2%대에 머물렀던 쿠바의 경제성장률이 지난해 4.4%로 급상승했다.

앞으로도 당분간 그 수준을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만약 미국의 경제제재 조치가 폐지된다면 쿠바의 경제성장률은 7% 이상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럼에도 우리는 쿠바와의 경제 교류, 특히 투자에 있어 신중한 자세를 취할 필요가 있다. 쿠바 정부는 최근 2014년에 공표한 246개 외국인 투자 프로젝트 가운데 36개는 계약을 체결했고 40개는 협상 중이라고 발표했다. 하지만 실제로 2014년부터 지금까지 성사된 프로젝트는 8개, 약 2억달러 규모에 불과한 것으로 추정된다. 올해도 단지 10여개의 투자 프로젝트만 실현될 것으로 예상된다. 쿠바 정부는 보건, 관광, 건설, 농업, 재생에너지, 전자 등의 분야에서 연평균 약 20억달러 수준의 외국인 투자를 유치할 계획이지만 이러한 목표가 쉽게 달성될 것 같지는 않다.


혁명세대 지도자들, 자본주의에 회의적

투자 신청이 수백건에 달함에도 외국인 투자가 적극적으로 이뤄지지 않는 것은 쿠바가 진정으로 개방되는 것을 원치 않는, 즉 자본주의가 급속히 확산되는 것에 여전히 회의적 시각을 가진 혁명세대 지도자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또 자칫 일을 잘못 추진했다 부패혐의 등으로 숙청될 것을 두려워해 적극적으로 사업을 추진하지 않는 관료들의 행태도 문제다. 투자가 실현되더라도 낮은 수익성, 엄격한 노동조건, 계약 불이행, 대금 지불 연기, 정부 관료들의 예상할 수 없는 행동들, 국가 기관의 감시 등으로 외국 기업들은 많은 어려움을 겪어야 한다. 이미 진출한 기업들 중 쿠바에서 손을 털고 빠져나오려는 기업들도 있다. 4월 19일 개최된 제7차 쿠바공산당대회도 개혁의 진전이라는 시각에서 볼 때 실망스러운 결과를 보였다.

심지어 당대회가 개회되기 며칠 전 라울의 개혁 자문위원으로 급속한 개혁을 주장하던 아바나대학 교수 오마르 에브레니 페레스가 파면되기도 했다. 급속한 개혁에 대한 경계심 때문이었다. 미국과의 관계 개선으로 달러 유입이 증가하면서 오히려 개혁이 늦춰질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지금 우리가 쿠바 투자를 생각하는 것은 이른 감이 있다. 제3국 중개를 통한 쿠바와의 교역 규모도 아직 1억달러를 넘지 않는다. 쿠바 민주화가 이뤄지고 그에 따라 미국의 대 쿠바 경제제재조치가 폐지되기 전까지 교역이나 투자를 통해 큰 경제적 이익을 얻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지금은 쿠바의 가치와 잠재력을 인식하고 다양한 교류, 나아가 수교 추진을 통해 미래를 차분히 준비해야 할 때다.


▒ 김기현
한국외대 서반아어학과, 멕시코국립대 중남미지역학 박사, 한국외대 중남미연구소 책임연구원, 현 선문대 스페인어중남미학과 교수, 중남미연구소 소장, 한국라틴아메리카학회 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