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일본에 정년제도란 없었다. 60세란 나이도 문제다. 일률퇴사는 비합리적이다.” 공작기계메이커 니시지마(西島)㈜의 3대 사장 니시지마 토쿠시(西島篤師)의 말이다. 그는 정년무용론으로 평생현역을 실천한 CEO 중 한 명이다. 기회 때마다 “인원정리와 정년은 없다”고 강조한다. 회사는 창업 이후 ‘정년 없는 근무환경’을 고수한 메이커로 유명하다. 이런 기업문화는 불황 때 빛나는 성과를 안겨줬다. 당연한 얘기지만 수주가 줄어들면 경영압박은 피할 수 없다. 그런데 니시지마는 끝내 인재중시의 경영철학을 지켜냈다. 그러기에 반복성장이 가능했다. “정년제는 숙련을 없애는 것으로 엄청난 손실”이란 게 공식입장이다.
- 니시지마 사장은 직원과의 소통을 중요시 한다.
- 니시지마 사장은 직원과의 소통을 중요시 한다.

니시지마는 1924년 창업했다. 거래처는 세계 수준의 자동차·전기·조선·건설기계메이커들이다. 회사명은 창업자 가문의 성씨를 그대로 썼다. 창업자 니시지마 키치사부로(西島吉三郞)가 1932년 개발한 발동기가 창업 계기다. 주로 농업과 토목공사 때 사용되던 것으로 간단사용과 중량경감·연료대응 등에서 획기적인 제품으로 인정받아 해외수출 개가까지 올렸다. 이후 선박·농업용 발동기로 생산기반을 확대했다. 지금은 NC제어(컴퓨터를 활용한 수치제어) 등 자동차 제조전용의 공작기계가 주력이다. 하청 없이 일관생산체제를 갖췄다. 즉 일관생산체제의 효율적 기능담보를 위해 소수정예의 다기능근로자를 육성함으로써 신속한 고객대응과 저렴한 비용구조를 완성했다. 전체 제조공정에 베테랑의 노하우가 집적돼 독자기술을 축적시킨 것이다. 다기능의 필수화다.

현재 사장(니시지마 토쿠시, 西島篤師)은 가업을 물려받은 3대 손자다. 1974년 입사 후 1995년 43세로 3대 사장이 됐다. 취임 당시는 버블붕괴기로 위기감이 상당했다. 하지만 위기는 명장을 낳았다. 우연찮게 찾은 참신한 아이디어가 회사를 구해냈다. 국화를 자동으로 묶어주는 기계개발이다. 국화 자동결속(結束)기는 회사전공과 맞지 않은 생소한 분야였다. 하지만 시작했다. 자동차부품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절박함이 컸다. 회사경험을 잘 응용하면 승산이 있을 것이란 자신감도 있었다. 임직원을 설득한 뒤 개발결의를 다졌다.

왜 하필 자동 결속기였을까. 회사가 위치한 아이치(愛知)현은 연간 5억 송이의 국화를 수확하는 일본 최대산지다. 국화는 출하 때 잎을 떼고 줄기를 묶어주는 게 필수다. 당시 이 공정은 거의 수작업이었다. 그만큼 품이 많이 들었다. 반면 농촌고령화로 일손은 줄어들었다. 기계도움이 절실했다. 아이디어를 모으고 시행착오를 반복했지만 성과는 별로였다. 국화란 게 생물로 송이마다 굵기와 딱딱함이 달랐기 때문이다. 이를 자동화한다는 건 애초 무리였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하지만 베테랑 기술자의 힌트가 상황을 반전시켰다. 잎을 잘라내는 기계의 파워조절과 관련된 것으로 시험결과 완벽에 가까웠다. 즉시 생산에 착수했는데 이는 애초 개발기간(1년)을 절반 가량 앞당긴 쾌거였다. 그해 100대나 팔았는데, 이는 연간매출액(30억 엔)의 절반 규모였다.

- 니시지마의 정년 철폐제 도입은 일본에서도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 니시지마의 정년 철폐제 도입은 일본에서도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81세 베테랑 고령자도 근무

이후 회사는 베테랑 근로자를 본격적으로 우대했다. 대표적인 게 정년폐지다. CEO는 정년무용론을 지론으로 삼는다. “고령근로자의 경험과 노하우야말로 회사의 큰 재산”이란 점에서 정년 자체를 공식적으로 없애버렸다. 물론 창업 당시부터 정년제도는 없었다. 그렇다고 정년 이후의 계속근무가 권유사항은 아니었다. 일하면 하고 말면 그걸로 끝이었다. 하지만 3대 사장은 관습사규였던 정년폐지를 확실히 선포했다. 선택은 실적으로 돌아왔다. 주요 언론은 “일을 통해 존재가치를 인정받는 최고회사”라고 호평했다. 이들의 업무는 회사의 핵심파트다. 베테랑답게 정밀가공과 베어링 조정 등의 주요공정에 배치된다. 숙련도가 약하면 커버할 수 없기에 자부심은 대단하다. 가령 공작기계 드릴은 1분에 1만회 고속회전하며 정확하게 구멍을 뚫는데, 베어링에 작은 문제라도 생기면 구멍위치는 달라진다. 정밀의 극치다. 이런 미세변화는 사람의 손끝만이 체크할 수 있다. 숙련의 힘이다.

정년은 없지만 은퇴는 있다. 전적으로 개인의 결정영역이다. 은퇴사유는 상관없다. 반면 고령근로자가 남겠다면 언제든 ‘웰컴’이다. 기술직 등 특정직원만 정년이 없는 것은 아니다. 영업직이든 업무직이든 전원 적용된다. 어떤 업무든 특수경험과 노하우는 반드시 지녔다고 봐서다. 회사의 140명 근로자는 대부분 정규직이다. 평균연령은 37세로 60세 이상이 22명에 달한다. 70세 이상 근로자도 7명이다. 최고령자는 81세까지 일했다(2007년). 근속 50~60년은 매년 배출된다. 회사는 “하루 8시간에 주 5일 근무만 가능하면 죽을 때까지 정규직이 될 수 있다”고 했다. 평생현역이다.

베테랑을 위해 회사는 다양하게 준비했다. 현장근무는 물론 스스로 기술유지·향상을 반복하도록 근무환경을 업그레이드시켰다. 일정 연령에 달한 기능공은 ‘기술고문’으로 처우한다. 후진지도다. 중요한 건 현장 참가의 독려다. 현장을 이탈하면 기술이란 진부해질 수밖에 없어서다. 기술 전승을 위해 경험의 수치화도 시도했다. 암묵적인 지식을 형식적인 지식으로 전환시켜 전승효율을 높이기 위함이다. 가령 절삭정도의 변화를 그래프로 기록해 공유하도록 했다. 고령근로자를 위해 식당메뉴까지 손질했다. 야채를 많이 넣거나 염분을 줄인 식사제공이다. 평생현역을 떠받치는 상징제도는 근속표창제도다. 5~25년의 장기근속 표창을 비롯해 기간을 30년까지 늘린 특별표창도 있다. 2007년엔 ‘근속 50년 표창제도’까지 신설했다. 50년 표창자 중 한 사람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숨 쉬는 한 일해 달라는 회사가 있어 무척 행복하다”고 했다.

회사가 고령근로자만의 천국은 아니다. 인재중시는 전체직원이 대상이다. 즉 고령근로자를 위한 차별대우도 없지만 특별대우도 없다. 근무형태와 근로시간 등은 모두가 똑같다. 나이가 많다고 근무시간을 줄여주지도 않는다. 하루 8시간 근무는 원칙이다. 임금제도도 마찬가지다. 입사 후 5~10년은 연공이 중심이지만 이후엔 기능레벨과 회사공헌 등에 따른 임금격차가 존재한다. 능력급이다. 공헌도가 높으면 고령자라도 최고보수가 가능하다. 다만 연금수급 근로자의 경우 수급액이 줄지 않도록 임금을 조정해준다. 이는 개혁지향적인 기업문화 덕분이다. 기술개혁은 물론 중소기업인데도 외국기업과의 적극적인 업무제휴를 주저하지 않는다. 업계 최초로 연공서열을 완화하고 능력주의를 도입한 것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개혁은 감동을 낳았다. 또 베테랑의 기술·노하우를 챙기되 젊은 층의 발탁인사도 많다. 실제 관리직은 대부분 젊은 사원이다. 젊은 관리직은 책임과 권한을 부여받는다. 불황일 때 수주가 없으면 젊은 관리직이 시장개척에 나서고 나이든 기술자가 기술개발로 이를 떠받친다. 위기극복을 위한 2인3각 시스템이다. 그 결과가 ‘노(老)·장(壯)·청(靑)’의 밸런스다.

- 니시지마에서 생산되는 연삭기와 절삭기
- 니시지마에서 생산되는 연삭기와 절삭기

‘노·장·청’ 밸런스로 기술경쟁력 향상

회사는 불황을 인정하지 않는다. 능동적 변화로 위기를 기회로 변신시킨 역사 때문이다. 때문에 지금이야말로 100년에 한 번 올까말까 한 진화기회다. CEO의 말이다.

“위기를 피하고자 사람을 슬프게 하는 행위는 바람직하지 않다. 이 선택은 잠깐 편한 후 망하는 지름길이다. 시장변화를 읽는 호기로 삼는 게 더 좋다. 불황 때 좀더 땀을 흘려 새로운 수익구조를 갖추는 것이다.” ‘불황→도전→변화’의 연결고리가 늘 적용되지는 않는다. 꼭 지켜내야 할 창업자정신과 사풍이 그렇다. 회사의 창업자정신은 ‘품질·성능 제일주의’다. 문제는 품질·성능이란 게 늘 업그레이드된다는 사실이다. 창업자 시절만 해도 오차는 1/10㎜면 좋은 평가를 받았지만 2대 사장 때는 그게 1/100㎜로, 지금은 1/1000㎜로까지 정밀성이 강화됐다. 이를 위한 기술개발은 숙명이다. 즉 품질·성능향상을 위해 변화란 화두는 필수불가결하다. 창업자정신을 지키고자 ‘변화’하되 이를 실현하는 사풍은 ‘변화’하지 않는다는 게 기본입장이다.

사풍 중 최대매력은 ‘사람=재산’이다. 다 변해도 사람이 재산이란 점은 결코 변하지 않는다. “돈을 버는 건 직원들 덕분이다. 반면 무너지는 건 전적으로 경영자의 책임이다. 사람을 키워드로 회사든 국가든 운영되지 않으면 안 된다. 일본이 고도성장 후 선진국이 된 것도 선배세대의 근면과 향학심 덕분이다. 즉 사람이다.” CEO의 코멘트다. 후속세대에 회사를 물려줘도 ‘사람=재산’의 사시만큼은 절대 양보할 수 없는 최후보루다. CEO 스스로 부친에게서 물려받은 절대 불변의 존재가치이자 존속이유이면서 회사성장의 핵심경쟁력으로 이해해서다. 사람을 챙기는 정책은 다양하게 추진된다. 안정된 생활지원을 위해 재산축적을 지원하는 재형(財形)제도는 물론 커뮤니케이션 강화장치도 곳곳에 배치됐다. 직원과 함께하는 이벤트는 매년 변함없이 개최된다. 신년회, 가족회, 등산회, 운동회, 사원연수, 초청연회 등이 일상적으로 진행된다. 휴일·휴가는 연간 108일로 못박았다. 가능한한 주 5일제를 유지하며 연 3회 연휴를 제공한다. 복리후생은 중소기업치고는 최고다. 독신기숙사를 비롯해 사택을 마련·제공하는데, 이는 대세와 역행한다.

회식 때 노래는 합창만이 허용된다. 노래자랑보다는 단합계기가 중요해서다. 회식은 또 반드시 다다미방에서 전통음식으로 제공된다. 일본식 연회형태야말로 상대방과의 커뮤니케이션을 즐겁게 해주는 구조란 점에서다. 연수여행에서도 전통식 연회원칙은 꼭 고수된다. “거액경비가 들지만 신입사원을 비롯한 만족감은 돈으로 표현하기 힘들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그만큼 ‘사람냄새 가득한 직장’이다. 찬사도 끊이질 않는다. 2006년 정년연장·정년폐지·재고용 중 하나를 선택하게끔 한 고령자고용안정법(개정)이 시행될 때 <NHK>를 비롯한 많은 언론이 니시지마를 사례로 보도했다. 언론에선 금융위기 이후 극적인 부활스토리를 써낸 중소기업의 선두주자로 조명됐다. 2005년엔 독일 TV가 회사를 벤치마킹 사례로 소개해 화제를 모았다. 이 회사와 함께 일본 제조업의 대표주자로 꼽힌 회사는 도요타와 혼다 등이다. 2006년엔 <USA 투데이>가 집중적으로 탐방했다. 학계에선 정년적용, 학력차별, 기술한계가 없다는 의미로 회사의 3무(無) 경영에 주목한다.

 

   Tip. 니시지마 토쿠시 사장은 누구    

사람 냄새나는 회사 조성 앞장

현직 CEO인 니시지마 토쿠시(西島篤師) 사장은 조부·부친에 이어 3대 사장에 취임했다. 대학졸업 후 곧 가업에 합류하면서 경영권 승계는 자연스레 이뤄졌다. 1995년 부친 사망으로 CEO에 올랐다. 그는 센슈(專修)대에서 경제학을 공부했다. 학창시절 공수(空手)부에서 주장을 맡을 정도로 운동에 관심이 많았다. 스스로 가라데를 통해 “목표를 갖는 것과 단결의 중요함을 배웠다”고 밝힌다.

부친 회사에 입사하자마자 어학공부를 위해 독일유학을 떠났다. 원래 4개월 예정이었던 게 6년이란 긴 시간으로 늘어났다. 독일어가 유창해지면서 칼스루헤(Karlsruhe)공대에 입학, 문외한이었던 공작기계와 기계설계 등을 마스터했다. 한 번 내딛으면 다신 되돌릴 수 없다지만 그는 “젊은 시절 고생은 사서도 하는 게 옳다”는 걸 경험했다.

사람 냄새 나는 회사조성은 부친인 2대 사장 때부터 강조돼 온 기업문화다. “사람은 사람에게 의지하며 살 수밖에 없다”는 가르침이 대표적이다. 2대 사장은 특유의 리더십과 인격을 지닌 매력적인 선각자였다. 이를 고스란히 물려받은 게 3대 사장이다.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다. 아들이 떠올리는 아버지는 복잡한 사람이었다. 장례식 때 부친 친구가 “(2대 사장은) 멀리서 보면 도깨비 같지만 가까이서 보면 부처님”이라고 평가했는데 딱 그랬다. 본인이 생각한 건 그대로 밀어붙여 주변을 곤란하게 만들지만 한 꺼풀만 벗기면 인정 넘치는 캐릭터였다. 아들조차 “이런 성격을 지닌 사람은 만나본 적이 없다”고 할 정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