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사모펀드의 불법 주식 거래 문제가 끊이지 않고 있다.
중국 사모펀드의 불법 주식 거래 문제가 끊이지 않고 있다.

4월 29일 중국에서 ‘사모펀드의 왕(王)’으로 불리던 쉬샹(徐翔)이 시세 조종과 내부자 거래 혐의로 체포됐다고 중국 관영 신화통신이 보도했다. 쉬샹 쩌시(澤熙)투자관리유한공사 대표가 작년 11월 공안(경찰)에 붙잡힌 사실이 공개된 지 6개월 만에 공식 체포 승인이 발표된 것이다. 같은 날 중국증권투자기금업협회(기금협회)는 새로운 등록 요건에 따라 등록 취소될 예정인 사모펀드 회사가 2000여곳에 이른다고 발표했다.

중국 사모펀드에 규제 강풍이 몰려오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규제 강풍의 진원지는 크게 세 개다. 우선 지난해 여름(6~8월) 중국 증시에서 5조달러(약 6000조원)의 시가총액이 날아가면서 사모펀드에 의한 불법 주식 거래 폐해가 불거졌다. 사모펀드를 비롯 P2P(Peer to Peer·개인 간) 대출의 급성장이 불법 자금 모집으로 이어져 사회 불안을 키운 사례가 잇따른 것도 사모펀드 규제 강화의 배경이다. 사모펀드는 태자당(太子黨·당 고위 간부 자녀)의 돈 놀이터로 전락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기도 하다.

중국에서 지난해 수익률 상위 10개 사모펀드 중 4개는 쉬샹의 쩌시투자회사가 운용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전했다. 쉬샹은 고등학생이던 17세 때 부모에게 빌린 3만위안(약 540만원)으로 처음 주식투자를 시작했다. 고향 저장(浙江)성 닝보(寧波)의 인허(銀河)증권 객장이 그의 무대였다. 1995년 갱 두목들이 그를 자산관리인으로 데려가려고 생긴 분쟁이 유명 폭력조직인 트라이어드의 두목에 의해 조정된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쉬샹이 주식을 매집하면 ‘닝보 상한가 결사대’로 불리는 큰손들이 움직인다. 개미(개인투자자)들이 뒤따라가고 주가가 상한가를 치면 쉬샹은 빠지는 일이 반복됐고, 그의 부(富)는 쌓여갔다. 중국 부호 조사 기관인 후룬(胡润)에 따르면 2015년 쉬샹의 자산은 22억달러(약 2조6400억원)로 중국 부호 188위에 올랐다. 쉬샹은 2009년 마오쩌둥(毛澤東) 전 주석과 청나라 강희제(康熙帝)에서 한 글자씩을 따 쩌시투자회사를 만든 뒤 2010년 3월 10억위안(약 1800억원)의 사모펀드를 처음 조성했다.


사모펀드 투자귀재 체포돼

쩌시투자회사가 운영하는 사모펀드는 매년 중국 사모펀드 3위권에 들 정도의 수익률을 냈다. 쉬샹의 투자 패턴이 시세 조종이라는 지적은 오래전부터 있었지만 규제 당국이 칼을 뺀 건 지난해 중국 증시가 급락한 와중에도 높은 수익률을 냈기 때문이다. 지난해 1~9월 쩌시투자회사 사모펀드 수익률은 249%에 달했다. 증시 혼란을 부추긴 세력을 찾아야 하는 규제 당국에 쉬샹은 최적의 ‘희생양’이었다. 쉬샹의 체포 공식 승인이 발표된 날 중국 최대 증권사 중신(中信)증권의 임원 3명이 불법 주식 거래 혐의로 체포된 사실도 발표됐다.

중국 당국이 사모펀드에 규제의 칼을 대는 것은 불법 자금 모집 창구로서의 폐해가 위험수위를 넘었다고 봤기 때문이다. “지난해 중국에서 문제가 된 불법 자금 모집은 1만여건으로 예년의 2000~3000건을 크게 웃돈다. 올 1분기에도 2300여건의 신고가 접수됐다(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

2003년 8월 조성된 윈난(雲南)신탁이 중국 1호 사모펀드다. 사모펀드의 불법 주식 거래 문제가 끊이지 않으면서 감독 당국의 규제를 받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2014년 2월 처음으로 기금협회가 사모펀드 등록을 받기 시작한 배경이다. 지난 3월 말 중국의 사모펀드회사는 2만5901개사로 늘어났다. 이번엔 소규모 사모펀드의 불법 자금 모집 문제가 불거졌다. 전체 운영자금이 20억위안(약 3600억원)이 안 되는 사모펀드회사가 전체의 98%에 달했다. 불법 자금 모집 피해자들은 거리로 나왔고 이는 사회 불안을 부추겼다. 안정을 최대 과제로 꼽는 공산당이 규제의 고삐를 죄게 된 배경이다. 중국 당국은 지난해 12월 사모펀드가 신3판(新三板)이라는 장외시장에 등록하는 것을 중단시킨 데 이어 올해 말까지 펀드매니저 자격시험을 통과시키지 못한 사모펀드의 경우 문을 닫도록 했다.


“사모펀드는 당간부 자녀 돈 놀이터”

NYT는 “붉은 자본가를 위한 펀드를 만들어 성공한 쉬샹이 체포된 것은 상하이 태자당에 대한 당국의 엄격한 법집행 의지를 보여준다”는 외국계 펀드매니저의 분석을 전했다. 2005년 닝보에서 상하이로 거주지를 옮긴 쉬샹은 태자당의 자금을 관리해주는 역할을 맡았다는 루머가 돌기도 했다. 닝보에 사는 할머니의 100세 생일축하연에 참석하던 중 ‘공안이 당신을 찾아가고 있다’는 문자를 받고 고속도로를 통해 도망치려다 붙잡힌 과정은 그의 뒤를 봐주는 비호세력이 있음을 보여준다.

“사모펀드는 불투명하기 때문에 태자당으로선 자금 굴리기가 안전한 천국(쿵가오펑 존스홉킨스대 교수)”이라는 지적을 받아왔다. 오래전부터 중국 사모펀드 업계에 태자당이 포진한 것으로 전해진다. 중국 최고지도부인 정치국 상무위원인 류윈산(劉雲山)의 아들 류러페이(劉樂飛)는 2010년 90억위안(약 1조800억원)의 사모펀드를 만들면서 ‘중국의 KKR’이 되겠다고 호언했다. KKR은 미국의 유명 사모펀드다. 원자바오(溫家寶) 전 총리의 아들, 허궈창(賀國强) 전 공산당 기율위원회 서기의 아들도 사모펀드에 몸을 담갔거나 종사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시진핑(習近平) 정부가 태자당의 사모펀드 커넥션에 주목한 것은 링지화(令計劃) 스캔들 때문이다. 후진타오(胡錦濤) 전 국가주석의 비서실장 출신인 링지화는 통일전선부장이던 2014년 12월 부패 혐의로 낙마했다. 미국으로 도피한 그의 동생 링완청(令完成)의 검은 커넥션은 중국 언론을 통해 공개됐다. 링완청이 만든 사모펀드 회사인 후이진리팡(匯金立方)자본관리유한공사는 기업공개(IPO)를 앞둔 기업에 투자해 큰돈을 벌었다. 투자기업이 무난하게 IPO 승인을 받을 수 있도록 증권 당국을 움직인 것으로 전해진다. ‘테슬라 킬러’로 주목받는 러스왕(樂視網)도 이 사모펀드의 투자를 받았다.

그렇다고 중국 사모펀드에 대한 투자 전망이 암울한 것만은 아니다. 상대적으로 낙후된 은행 중심 제도권 금융의 빈틈을 메울 수 있는 사모펀드의 수요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또 중국의 사모펀드는 해외 투자를 통해 중국 산업구조를 고도화하고 있다는 평가도 받는다. 중국의 사모펀드가 지난해 해외 인수합병(M&A)을 위해 투자한 규모는 16억달러(약 1조9200억원)로 2013년 1억달러(약 1200억원)에 비해 크게 늘었다고 21세기경제보도가 전했다.

한국의 우수 기업을 찾는 중국 사모펀드도 늘고 있다.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발효로 하나의 시장으로 통합이 빨라질 것이라는 기대가 커졌기 때문이다. 중국 사모펀드의 향방이 남의 얘기로만 들리지 않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