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피린’으로 유명한 독일의 화학·제약 업체 바이엘은 5월 23일(현지시각) 세계 최대 종자회사인 미국의 몬산토를 현금 620억달러(약 73조원)에 인수하겠다고 제안했다. 몬산토는 인수 금액이 지나치게 저평가돼 있다며 이를 거절했다. 다만 바이엘 측이 인수가를 올릴 경우 재협상 여지를 열어놓은 상황이다.

바이엘이 몬산토에 제시한 인수 대금은 5월 9일 기준 몬산토 주가에 37%의 프리미엄을 얹어 1주당 122달러로 매긴 것이다. 이 금액으로만 딜이 이뤄지더라도 전액 현금 인수 조건 기준으로 볼 때 2008년 세계 최대 맥주회사 간 빅딜이었던 인베브의 안호이저부시 인수가(604억달러)를 넘어 사상 최대 규모가 된다. 독일 기업의 해외 인수합병(M&A) 규모로도 역대 최대다. 이에 대해 몬산토는 1주당 135달러 선에서 인수를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콩 종자시장을 사실상 독점하고 있는 몬산토의 GMO 콩 종자. 바이엘은 거액을 주고 몬산토의 종자시장 장악력을 흡수하려고 하고 있다. <사진 : 블룸버그>

농약 2등 업체와 종자 1등 업체의 만남

바이엘이 거액을 들여 몬산토를 인수하려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먼저 규모의 경제를 통해 시장지배력을 키우려는 것이다. 바이엘은 제약사업부 외에 작물보호제(농약) 제조를 주로 하는 작물과학사업부를 보유하고 있다. 지난해 기준 작물과학사업 부문의 매출액은 116억달러로 전체 매출액의 22%가량을 차지하고 있다. 바이엘은 글로벌 농약 시장에서 스위스의 농약·종자 기업 신젠타에 이어 시장점유율 2위다. 종자 부문에서 시장점유율 44%를 기록하고 있는 세계 최대 종자 업체 몬산토를 인수해 작물과학 사업부 역량을 키우려고 하는 것이다. 세계인들의 밥상에 오르는 곡물·농산물 품종 10개 중 4개 이상이 몬산토가 개발했거나 몬산토 소유일 정도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제약 기업이 (기존에 주로 하고 있는 농약 사업 외에) 종자 시장을 장악하게 되면 품종 수집·보존·유전자정보까지 모두 거머쥐게 된다”고 말했다. 바이엘이 이번 인수를 성공시킬 경우 두 회사가 농약·종자를 포함한 글로벌 농화학 시장에서 차지하는 연간 매출은 약 280억달러, 시장점유율 32%로 업계 1위로 뛰어오르게 된다. 베르너 바우만 바이엘 최고경영자(CEO)는 “몬산토의 유전자변형(GMO) 종자와 바이엘의 농약이 합쳐지면 중국의 화공집단공사(켐차이나)와 신젠타 간 합병법인의 매출(약 180억달러)을 능가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농화학 시장에서는 M&A를 통한 이 같은 몸집 불리기가 잇따르고 있다. 지난해 12월에는 미국 양대 화학 기업인 다우케미컬과 듀폰이 합병해 총매출액 880억달러, 농화학 부문 매출만 185억달러를 올리는 거대 공룡 화학 기업이 탄생했다. 올해 2월에는 켐차이나가 몬산토의 경쟁 회사이자 세계 2위 종자 업체인 신젠타를 430억달러에 사들였다.

최근 원자재값 하락과 함께 곡물 가격이 하락하면서 농화학 업체들의 실적이 쪼그라들고 있는 것도 업체 간 M&A 이유로 꼽힌다. 곡물 가격이 떨어지면서 농화학 업체들의 고객인 농가의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않아진 것이다. 미국 농무부에 따르면 올해 농가 소득은 548억달러로 2002년 이후 최저 수준에 그칠 전망이다. 농가 소득이 고점을 찍었던 3년 전(1233억달러)과 비교하면 50% 이상 급감한 것이다.

김용환 한국농약과학회장은 “곡물값 하락으로 농민들이 새로운 투자를 하지 않고 농약이나 종자도 적게 쓰다 보니 지난해 기준으로 농화학 업계 전체 매출이 8%가량 줄었다”며 “같은 업종의 두 회사가 합쳐질 경우, 중복 투자하는 연구개발(R&D) 등에서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농화학 업계에서는 M&A를 통한 절감 비용을 15억달러(약 1조7700억원) 수준으로 추산한다.


제안가 너무 높아 ‘승자의 저주’ 우려

바이엘이 몬산토 인수를 성사시키기까지는 넘어야 할 산이 남아 있다. 일단 바이엘이 무리하게 높은 인수가를 제시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이번 인수가는 몬산토의 지난 회계연도 EBITDA(법인세 및 이자, 감가상각비 차감 전 영업이익)의 15.8배에 달한다.

바이엘이 무리해서 몬산토를 인수하면 지나친 부채로 ‘승자의 저주’에 빠질 수 있다. 지난해 바이엘의 순부채는 195억달러(약 23조원) 수준이다. 이런 와중에 독일의 또 다른 화학 기업인 바스프(BASF)도 몬산토 인수를 검토하고 있다. 몬산토 역시 경영 건전성을 바탕으로 2011년 이후 세 차례에 걸쳐 신젠타 인수를 시도하는 등 인수 주체였던 이력이 있어 몸값을 높게 요구하고 있다.

바이엘이 몬산토를 인수한 뒤 제약보다 농화학 쪽으로 주력 사업을 집중할 경우에도 투자자들의 반발이 나올 수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주주들은 전반적인 농화학 기업들의 매출이 줄어들고 있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바이엘과 몬산토가 있는 미국과 유럽의 반독점 심의도 관건이다. 반독점 당국은 바이엘의 제초제인 ‘리버티링크’와 몬산토의 인기 살충제 ‘라운드업’이 정확하게 같은 기능의 제품이라는 데 주목하고 있다. 두 회사는 콩과 면화, 카놀라 등 종자 사업 상당 부분이 중복된다. 여기에 독일의 경우 GMO 종자에 대한 반대가 심한 점도 걸림돌이다. 몬산토는 20년 전부터 세계 최초로 GMO 종자를 개발해 판매하기 시작했으며, 현재 미국 옥수수와 콩 종자시장을 사실상 독점하고 있다. 농화학 업계 국내 관계자는 “현재 업황을 봤을 때 규모의 경제가 불가피하지만, 이로 인해 고객인 농업인들은 살 수 있는 농약이나 종자에 대한 선택의 폭이 좁아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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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MO(Genetically Modified Organism) 유전자재조합(변형) 생물체. 세균에서 해충을 죽이는 단백질 유전자를 분리해 옥수수에 삽입함으로써 해충에 저항성을 갖는 옥수수를 만드는 것처럼 유전자를 재조합해 새로운 특성의 생물체를 만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