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잉원 대만 총통이 5월 20일 취임식에서 취임사를 하고 있다. <사진 : 블룸버그>
차이잉원 대만 총통이 5월 20일 취임식에서 취임사를 하고 있다. <사진 : 블룸버그>

5월 20일 대만 수도 타이베이(臺北)에서 차이잉원(蔡英文) 총통이 취임했다. 총통 취임식은 상징적이었다.

차이 총통이 타이베이 둔화(敦化)초등학교 합창단, 국립실험 합창단과 함께 한때 금지곡이었던 ‘메이리다오’를 불렀고, 취임식장을 가득 메운 2만6000여명의 참석자도 함께 노래를 불렀다. 취임식장 뒤편에선 시민 300여명이 모여 ‘대만 독립’ ‘대만은 중국의 일부가 아니다’라는 문구가 적힌 현수막을 들고 시위를 벌였다.

차이 총통은 침체된 대만 경제에 불만을 가진 젊은층이 집결하면서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 지난해 대만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0.8%로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가장 낮았다. 분기별로는 더 심각한데 대만은 올해 1분기까지 3분기 연속 마이너스 경제성장률을 기록 중이다. 대만 수출은 지난 10개월간 감소세를 이어가고 있다.

20대 청년 실업률은 12%에 달한다. 차이 총통은 그래서 취임 연설의 많은 부분을 경제 살리기에 할애했다. 경제 활성화 방안에 대해 그는 “기존의 단일 시장에 의존하는 현상과 작별을 고하겠다”며 중국과 거리를 두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러나 차이 총통의 이런 행보를 놓고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대만 독립을 추구하면서 대중관계가 악화되면 중국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대만 경제가 더 큰 타격을 입을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대만 전체 수출의 26%를 차지한다. 대부분 최종 도착지가 중국 본토인 홍콩 수출 물량을 포함하면 이 수치는 40%까지 올라간다.

대만 공산협진회 린보펑(林伯豊) 회장은 “대만 문제는 결국 양안(兩岸)관계로 귀결된다. 차이 총통의 취임사가 대만 경제 발전에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는데 취임사부터 양안관계가 악화될 빌미를 제공한 것이다.

차이잉원 대만 총통이 취임식에서 손을 흔들고 있다. <사진 : 블룸버그>
차이잉원 대만 총통이 취임식에서 손을 흔들고 있다. <사진 : 블룸버그>

중국 공산당중앙위원회는 취임식 후 “양안관계의 평화적 발전에 관한 구체적인 방법도 제시하지 않은 미완성 답안”이라고 비판했다.

중국 국무원 대만사무판공실 마샤오광(馬曉光) 대변인은 차이 총통 취임 후 처음 열린 정례 기자회견에서 “민진당의 ‘대만 독립’ 주장은 중국과 관계 발전의 걸림돌”이라면서 “양안관계가 평화와 발전의 길을 계속 걸을지 아니면 대만해협을 재차 긴장으로 몰아갈지, 선택에 따라 앞날이 달라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양안관계가 경색되면 중국인 관광객의 대만 방문도 감소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미 지난 3월 대만을 찾은 중국인 관광객은 전달보다 10%쯤 줄었다. 중국에선 대만 단체관광 축소 움직임이 계속되고 있다.

인민망에 따르면 중국 당국은 최근 대만산 감귤류에 대해 1년간 검역을 강화했다. 차이 총통에 대한 경고로 풀이된다.

그러나 경제를 이유로 정책 방향을 바꿀 수도 없다. 우선 민진당이 대만 독립을 주장하고 있고, 차이 총통에게 지지를 보내준 대만 청년들(딸기세대) 사이에선 반중(反中) 정서도 높다. 딸기세대는 2014년 3월 중국과 서비스 무역협정에 반발해 입법원을 점거하고 시위를 벌였다. 청년 실업률이 높은 것은 기업 투자가 대만이 아닌 중국으로 향하면서 생산 라인이 이전하는 데 한 원인이 있고, 반중 감정의 배경이 되고 있다.


아이폰에 달린 대만 경제

그런데 의외로 대만 경제의 해법은 양안관계가 아닌 다른 곳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분석이 나왔다. 바로 애플이다.

블룸버그는 5월 19일 “타이완 증시 투자자에겐 팀 쿡 애플 CEO가 차이 총통보다 더 중요하다”고 분석했다. 차이 총통 취임으로 대중관계가 악화되면 대만 경제에 악영향이 우려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세계 스마트폰 시장과 애플 실적이라는 것이다. 애플이 살아나야 대만 경제가 침체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주장이다.

JP모간자산운용 하워드 왕 매니저는 “대만 증시는 수출 수요를 반영하며 지배적인 수출 수요는 전자업체와 특히 애플에서 온다”며 “차이 총통이 끼칠 부정적인 요소는 (하반기에 출시될) 아이폰7이 잘 팔리면 쉽게 씻겨나갈 것”이라고 했다.

실제로 13년 만에 처음으로 애플의 1분기 매출이 감소했는데 대만 거대 기업 훙하이(鴻海)정밀공업도 이익이 줄었다고 발표했다.

훙하이는 애플 아이폰을 위탁생산하는 폭스콘을 자회사로 두고 있다. 또 대만 증시 가권지수와 애플 주가는 비슷한 흐름을 보이는 경향이 있다.

차이 총통이 중국을 화나게 하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도 나왔다.

캐나다에 본사가 있는 맨유라이프자산운용 대만 법인의 스티비 저우는 블룸버그 인터뷰에서 “대만이 중국과 통일에 관심이 없는 정부를 가지는 것은 새로울 게 없다”며 두 전 대통령이 대만 독립 쪽에 치우쳤던 것을 거론했다. 국민당 소속이던 리덩휘(李登輝) 전 총통과 민진당 소속 천수이볜(陳水扁) 전 총통의 정권을 가리킨다.

그는 “차이 총통은 중국을 자극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독립보다) 경제적·사회적 문제에 집중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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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리다오(美麗島) ‘아름다운 섬’이라는 뜻이다.
‘대만’이라고 불리는 중화민국(中華民國)의 영토 대부분을 차지하는 대만섬을 가리킨다. 대항해시대에 대만섬을 지나던 포르투갈인들이 풍광을 보고 ‘아름답다’는 뜻인 ‘포모사(Formosa)’라는 이름을 붙였는데, 메이리다오는 ‘포모사’의 번역이다.
노래 ‘메이리다오’는 대만 민요를 1970년대에 시인 천슈시(陳秀喜)가 개사한 것이다.
이 노래는 국민당 계엄 치하에서 대만 민주화와 독립의 상징이 됐고, 금지곡으로 지정됐다.
대만판 ‘아침이슬’이라고 할 수 있다.
1979년에는 ‘메이리다오 사건’이 발생한다.
이 노래 제목을 따서 창간된 잡지 <메이리다오>가 대만 남부 가오슝(高雄)에서 주최한 집회에서 시위대와 진압 병력 간 물리적 충돌이 있었고, <메이리다오>의 핵심 인사들이 투옥됐다.
천수이볜 전 총통은 이 사건 변호인으로 활동한 것을 계기로 정계에 입문했다. 이 사건은 한국의 부마항쟁이나 5·18 민주화운동과 비슷하다고 평가된다.
대만의 별칭(別稱)인 ‘포모사’는 정치적 색채와 무관하게 대만에서 흔하게 사용된다. 대만 대기업 중 ‘포모사그룹’도 있다. 대만 금융시장에서 대만달러가 아닌 다른 통화로 발행된 채권을 ‘포모사본드’라고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