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령사회’ 일본에선 정년을 연장하는 기업이 속속 나타나고 있다. 미즈호은행, 혼다자동차, 산토리홀딩스가 정년을 65세로 연장했고, 도요타자동차는 정년(60세)의 처우를 그대로 유지한 채 5년간 더 일할 수 있게 했다.

일본은 법으로 정년 연장을 희망하는 근로자에게 65세까지 회사를 다닐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런데 대기업들은 앞장서서 근로자의 희망 여부를 묻지 않고 모든 직원의 정년을 65세로 연장한 것이다. 근로자가 5년 더 회사를 다니면 비용은 현재보다 조금 더 들지만, 회사에서 필요한 인재를 적소(適所)에 배치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고 이들 기업은 설명한다. 또 고령층의 정년 연장이 청년 취업을 어렵게 하지도 않는다고 일본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시니어 근로자 기술 전승 효과 커

일본 대형 은행인 미즈호은행이 속한 미즈호파이낸셜그룹은 현재 60세인 정년을 2018년까지 65세로 연장하기로 결정했다. 정년 연장은 일본 3대 대형은행 중 처음이다. 아사히신문은 미즈호그룹의 정년 연장에 대해 “자산운용 상담업무 등이 중요해지고 있다”며 “관련 업무 경험이 풍부한 베테랑 은행원을 계속 활용하고 고용 연장 흐름에 동참하기 위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미즈호은행의 정년 연장은 은행업계에서 이례적인 일로 받아들여졌다. 일본의 은행에선 일반적으로 50대 전반까지 임원이 되지 못하면 정년은 고사하고 거래처로 밀려나는 관습이 남아 있다고 한다.

사토 야스히로(佐藤康博) 미즈호그룹 사장은 “각 분야 전문가도 있는데 (조직에서 밀려나는 것은) 아깝다. 언젠가 은행업계는 전부 그렇게(정년 65세 연장) 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즈호그룹의 정년 연장은 중기(中期) 경영계획의 하나로 추진됐다. 이밖에 도입되고 있는 변화로는 장래성이 있다고 판단되는 30~40대 직원을 적극적으로 지점장으로 임명해 간부 후보로 키우는 계획이 있다. 이미 사내 공모 절차를 거쳐 35세의 지점장이 탄생했다. 또 그룹 내 각 부문에서 40대의 우수한 인재를 대상으로 철학이나 역사 등 금융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테마의 연구를 시작했다. 폭넓은 지식과 교양을 쌓게 하겠다는 것이다.

혼다는 올해부터 정년을 65세로 연장한다고 지난해 11월 밝혔다. 일본 대형 자동차 업체 중 최초다. 혼다는 과거에도 60세가 넘은 직원을 고용했지만 급여를 기존의 절반만 지급했다. 이번에 정년을 연장하면서는 급여를 기존의 80% 수준으로 지급하고 신흥국을 중심으로 해외에 파견해 경험을 살려서 근무할 수 있게 했다. 급여가 인상되지만 퇴직금 제도 개정, 업계 평균보다 많은 시간외수당 감액, 출장 일당 폐지 등으로 전체적인 인건비가 늘지 않도록 했다. 혼다의 정년 연장에 대해 경제전문 주간지 <도요게이자이>는 “오래된 기계나 노동집약적인 생산라인을 잘 아는 인재를 확보하고 기술 전승을 효과적으로 실현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일본에선 인건비가 올라 생산 현장에서 인력을 로봇이 대체했다. 반면 중국 등 신흥국에서는 로봇보다 인건비가 더 싸기 때문에 과거 일본처럼 노동집약적인 생산 라인을 갖추는 경우가 많은데, 일본에서 사용하지 않는 오래된 기계를 신흥국에서 가동하고 있다. 60세가 넘은 고령층 근로자가 과거의 경험을 살려 신흥국에서 생산성을 높이는 데 기여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정년 연장은 아니지만 도요타도 지난해 9월 노사 합의를 통해 올해 1월부터 65세까지 처우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정년이 지난 근로자를 재고용하기로 했다. 기존에는 정년이 지난 근로자를 재고용할 때는 임금이 줄어들었지만, 처우가 유지된다는 게 달라진 점이다. 대상은 공장에서 근무하는 생산직 약 4만명이다. 경험이 풍부한 시니어 인재의 기술 승계가 원활히 진행되도록 하겠다는 의도다. 산케이신문은 “도요타는 일본 내 자동차 생산 300만대를 유지하려고 하지만 단카이(團塊·베이비붐) 세대의 대량 퇴직과 젊은층 인구가 줄어드는 영향으로 인재 확보가 과제가 됐다”고 했다.

일본 주류업체 산토리홀딩스는 2013년 4월부터 65세 정년제를 도입했다. 신생아는 줄고 고령층은 늘어나는 일본의 ‘소자고령화(少子高齡化)’에 대응하기 위해서다. 산토리는 2006년부터 정년이 된 직원이 최장 5년간 더 일할 수 있게 했는데, 2011년에는 95명의 정년퇴직자 중 82명이 재고용을 희망했고 80명이 재고용됐다. 혜택을 늘려 2013년부터는 모든 직원이 65세까지 일하게 한 것이다. 산토리 측은 정년 연장 배경에 대해 “오랜 기간 쌓아온 경험과 높은 기술을 갖고 있는 시니어 세대가 더 활약할 수 있도록 하고 직원들의 60세 이후 취업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60세 이전 직원의 처우는 종전과 같고 60세 이후의 급여는 60세 때 받았던 것의 60~70% 정도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이 급여 수준은 기존 제도보다 많은 것으로 회사에 10억엔 정도의 비용 부담이 발생한다고 분석했다.


일본 도요타자동차 생산직 근로자들이 공장에서 수소 연료 전지차 ‘미라이’의 전면부 범퍼를 옮기고 있다. <사진 : 블룸버그>
일본 도요타자동차 생산직 근로자들이 공장에서 수소 연료 전지차 ‘미라이’의 전면부 범퍼를 옮기고 있다. <사진 : 블룸버그>

정년 연장, 다른 기업으로 확산될 듯

일본 기업이 정년 연장에 나선 것은 ‘고연령자 등의 고용의 안정 등에 관한 법률(고령자고용안정법)’이 2012년 개정된 것이 한 원인이다.

이 법에 따라 일본 기업은 2013년 4월부터 직원이 원할 경우 65세까지 의무적으로 고용해야 한다. 일본의 정년 연장은 우리나라의 국민연금에 해당하는 후생(厚生)연금 지급 시기와 연계돼 있다. 후생연금은 원래 60세부터 지급됐지만 2013년 4월부터 순차적으로 지급 시기가 늦어져 2025년 4월에는 65세가 돼야 받을 수 있다. 60세 정년퇴직한 사람이 몇년간 소득이 없어지는 사태를 막겠다는 게 법 개정의 취지다. 후생노동성은 고령자고용안정법이 개정된 것과 관련해 “(기존법에서는) 60세 정년 이후 고용이 계속되지 않고 연금도 받지 못해 수입이 없어지는 사람이 생길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일본 정부가 고령자 고용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추진하고 있어 정년을 연장하는 기업은 앞으로 더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후생노동성은 정년을 70세 이상으로 올리는 기업에 지급하던 지원금을 올해 4월부터 ‘66세 이상’으로 완화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도 지난해 9월 ‘1억 총활약사회’를 주장하며 정년연장 기업을 적극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후생노동성에 따르면 2015년 기준으로 70세 이상이 될 때까지 일하도록 하는 기업은 일본 전체 기업의 20% 수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