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촨즈 레노버 명예회장 <사진 : 블룸버그>
류촨즈 레노버 명예회장 <사진 : 블룸버그>

“스마트폰 사업을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세계 최대 PC업체인 레노버(lenovo·聯想)의 양위안칭(楊元慶∙52)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가 5월 26일 홍콩에서 2015 회계연도(2015년 4월 1일~2016년 3월 31일) 실적을 발표하면서 힘주어 밝힌 대목이다. 스마트폰 사업 등의 부진으로 7년 만에 적자전환한 데 대한 답변 성격이 강했다. 레노버 이사회는 5월 31일 향후 2년간 모바일 사업의 이익을 포기하고 중국 스마트폰 시장에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승인했다. 하지만 상황은 녹록지 않다. 미국의 시장 조사기관 가트너에 따르면 레노버는 1분기 스마트폰 판매량이 전년 동기 대비 33% 급감하면서 글로벌 시장 5위권에도 들지 못했다. 2014년 구글로부터 모토롤라 모바일을 인수하자마자 세계 스마트폰업체 3강에 진입했던 레노버다.

2005년 IBM PC 사업을 인수한 레노버가 8년 만인 2013년 세계 1위 PC업체에 오른 ‘마법’이 이번엔 통하지 않는 듯한 모습이다.

중국 일각에선 “레노버의 모토롤라 모바일 인수는 최대 패착이 될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6월 1일엔 구글의 레노버 지분 3억7100만주 매각설이 흘러나와 이 같은 우려를 부추겼다. 레노버의 실적악화가 주목받는 것은 질주해온 과거 레노버와 대비되기 때문이다.


PC로 일군 세계 1위

레노버는 1984년 중국과학원 엔지니어 류촨즈(柳傳志∙72)가 중국과학원이 대준 20만위안(3600만원)을 종잣돈으로 10명의 동료들과 함께 세운 회사다.

당시 영문명은 레노버가 아닌 레전드(legend)였다. 1990년 자체 브랜드 컴퓨터 판매를 시작해 1996년 중국 1위가 되고, 1999년엔 아시아 1위 PC업체로 올라선다. 해외 증시 상장과 해외 기업 인수합병(M&A)을 기반으로 한 국제화 전략이 레노버의 부상을 이끌었다. 1994년 홍콩 증시에 상장한 레노버는 2004년 아테네 올림픽 때 중국 기업 처음으로 올림픽 후원사가 되고 2006년엔 미국 프로농구 NBA 후원도 시작했다.

레노버의 급부상을 도운 ‘일등공신’은 2005년의 IBM PC 사업부 인수다. 레노버가 17억5000만달러에 IBM PC 사업을 사들이자 사업 초기 아버지 양복을 빌려 입고 IBM PC 대리상 대회에 참석했던 창업자 류촨즈의 작품이라고 중국 언론들은 환호했다. ‘새우가 고래를 삼켰다’는 비유도 쏟아졌다. IBM 노트북PC ‘싱크패드’가 어려움에 처할 것이라는 부정적인 전망도 있었지만 레노버의 질주를 막지 못했다.

IBM PC 사업을 인수하자마자 세계 9위에서 3위 PC업체로 급부상한 레노버는 8.6%로 높인 세계 PC 시장점유율을 2013년 7월 16.7%로 끌어올리며 세계 1위 PC업체에 오른다.

PC 사업 연간 매출도 30억달러에서 10년 만에 13배 수준인 390억달러로 불어났다.

IBM PC 사업 인수 이후 줄이은 해외 M&A도 도움이 됐다. 2011년 일본 NEC와 합작법인을 만들고, 2012년엔 독일 PC업체 메디온(Medion), 미국 클라우드 소트프웨어업체 스톤웨어(Stoneware), 브라질 소비가전업체 CCE를 인수하며 글로벌 M&A 시장의 포식자로 부상했다. 레노버의 지난해 PC 출하량은 560만대로 전년 대비 6% 감소했지만 세계 PC 시장 하락폭(12%)을 감안하면 선전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세계 PC 시장점유율도 21%로 높아졌다. 3년 연속 세계 1위 PC업체 자리를 지킨 것이다. 양 회장은 3년 내 PC의 세계시장점유율을 30%까지 끌어올리겠다고 호언한다.

레노버가 2008년 <포천> 글로벌 500대 기업에 진입할 때 순위는 499위였지만 2015년엔 231위까지 올라섰다. 2014년 23억달러를 주고 IBM으로부터 인수한 중저가 x86 서버 사업도 효자가 됐다. 레노버 서버의 지난해 중국 내 매출이 전년 대비 76% 증가했다. 중국과학원의 경비초소 건물에서 시작한 벤처기업이 30여년 만에 전 세계 6만명 직원에 7개 국가의 12명 외국인이 경영층의 주요 축을 형성한 다국적기업이 됐다.


스마트폰에 발목 잡힌 글로벌 꿈

레노버가 2015 회계연도에 적자를 냈다고 발표한 하루 뒤인 5월 27일 홍콩 증시에서 레노버 주가는 3.82% 급락했다.

레노버 주가는 최근 1년 새 60% 가까이 하락하며 이미 2011년 이후 최저 수준으로 내려간 상태다. 레노버에 축복을 안긴 M&A가 오히려 재앙이 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2014년 구글로부터 인수한 모토롤라 모바일이 레노버 질주에 제동을 걸었다는 것이다. 2014년 5월 29억달러에 모토롤라 모바일을 인수한 레노버는 단숨에 세계 3위 스마트폰업체로 부상했다.

하지만 올 1분기 상위 5위권에도 들지 못하는 수모를 당했다. 2015년 회계연도 실적악화의 주범으로 모바일 사업이 꼽혔다. 모바일 사업에서 4억6900만달러 손실을 냈다. 전 회계연도의 1.6배 수준이다. 스마트폰 출하량이 지난해 6610만대로 전년 대비 13% 감소했고, 홈그라운드 중국 시장의 경우 올 1분기 출하량이 85% 급감했다.

가트너(Gartner Group)가 “레노버가 모토롤라 인수 이후 시너지 효과를 내지 못하고 어려움만 많아졌다”는 진단을 내놓는 이유다.

미국 증권사 제프리그룹(Jefferies Group)은 “스마트폰이 레노버의 최대 취약점”이라고 지적했다. 2010년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 CES(소비자가전쇼)에서 신제품을 발표하며 스마트폰 시장에 본격 진출했지만 고배를 마시고 있는 것이다.

레노버의 혁신 부족도 스마트폰 사업 부진 원인으로 꼽힌다고 중국 언론들은 전한다. 레노버는 2015년 1월 CES에서 77개 대상을 받아 사상 최대 수상 기록을 세웠다. 3월 MWC(모바일월드콩그레스)에서도 대상 33개를 받았다.

혁신기업으로 평가받을 만하지만 레노버의 과거 10년 연구개발 투자가 44억달러로 화웨이의 지난 한 해 연구개발비(92억달러)보다 적다고 중국 언론들은 지적한다.

화웨이는 지난해 중국 기업으로는 처음으로 연간 1억대 이상의 스마트폰을 출하하면서 세계 3위 스마트폰업체로 올라섰다. 모바일 사업의 명암이 엇갈리면서 화웨이와 레노버의 실적 격차도 갈수록 커지고 있다.

양 회장은 모토롤라 모바일 인수 직후 1년~1년 6개월 내에 적자를 흑자로 돌려놓겠다고 공언했다. 그러나 스마트폰 사업 부진은 레노버 전체 실적 악화로 이어졌다. PC시장이 포화상태에 달해 스마트폰을 쉽게 포기할 수도 없다.

레노버가 2015년 4월 로고를 바꾸면서 내건 구호가 ‘Never Stand Still(멈추지 말자)’이다. 레노버의 질주가 지속될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