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럿이 들러붙어’. 이 말은 적잖이 부정적이다. ‘여럿이 들러붙어’ 괴롭히고 강요했다는 투의 의미로 연결되는 수가 많아서다. 반대로 ‘여럿이 들러붙어’ 칭찬하고 도와줬다는 수식관계는 좀체 듣기 힘든 말이다. 와중에 ‘여럿이 들러붙어’ 회사를 꽤 괜찮은 근무환경으로 변모시킨 회사가 있다. 오사카의 작은 제약회사 ‘마루호’가 오늘의 주인공이다.

‘1+1=3’ 참견경영으로 직원유대감 ‘UP’

    

직원 1명당 연 40만엔 교육비 지원

1. 마루호 직원 단합대회. 2. 다카키 고이치 사장. 3. 마루호 직원 강의 모습.
1. 마루호 직원 단합대회.
2. 다카키 고이치 사장.
3. 마루호 직원 강의 모습.

마루호는 피부관련 외용도포(바르는) 약품에서는 높은 점유율을 자랑하는 숨겨진 톱 기업이다. 회사덩치는 비교적 작다. 제약업계 랭킹 40~50위권이다. 업계리더인 다케다(武田)제약 매출액의 3~4%에 불과하다. 그래도 피부약에선 독보적이다. 국내 최대 매출과 함께 세계랭킹 10위권에 접한 실력파 회사다.

사업모델은 좀 특별하다. ‘피부과학 관련의약품의 부티크 컴퍼니’를 지향한다. 제약업체라면 사활을 거는 신약개발은 순위가 밀린다. 대신 선택한 게 기초효능의 응용확대를 통한 제품육성 전략이다. 회사능력에 맞춘 기발한 틈새전략은 회사를 강소기업으로 변신시켰다. 경쟁사가 가지 않은 길을 택한 만큼 마루호의 최대 강점은 라이벌이 없다는 점이다. 기술(외용제품)과 시장(피부영역)이라는 특화영역에 위치한 덕분이다. 회사는 “우리가 선점한 기술·시장영역에선 연구개발력·생산능력·정보제공력·네트워크 등에서 모두 톱 클래스 실력을 갖췄다”고 자부한다. 이들 4대 경쟁력은 핵심고객인 의사와의 신뢰관계가 기반이 됐다. 2002년부터 의료용 피부약 부문 시장점유율 1위를 유지 중이다. 2007년엔 포터 상을 수상했다. 미국의 경영학자인 마이클 포터가 제안, 독창적인 경영전략을 통해 고수익을 달성·유지한 기업에 주어지는 상이다.

피부약 부문 시장점유율 1위 기업

회사의 유명세를 완성하는 건 특유의 사업모델만이 아니다. 이보다 더 주목받는 회사명성의 근원파워는 높은 직원만족도다. 근무환경이 좋은 탁월한 직장이란 얘기다. 업계에서는 이미 ‘일할 맛’이 넘쳐나는 회사로 유명하다. 이를 뒷받침하는 단적인 사례가 취업시장에서의 높은 평판이다. 일종의 B2B 사업모델인 탓에 지명도가 낮고 회사규모도 크지 않지만 입사희망자는 끊이질 않는다. 취업사이트를 뒤져보면 “사원을 제일 먼저 생각해주는 따뜻한 회사”라든가 “결과만이 아닌 과정도 중시하는 사풍”, “밝고 즐거우며 힘찬 분위기를 갖춘 조직”이라는 평이 대부분이다. 일방적이지 않고 사원 개개인의 눈높이에 맞춘 교육시스템도 자주 거론된다. 회사비전·경영방침은 임직원의 ‘일할 맛’을 구체적으로 강조한다. CEO인 다카키 고이치(高木幸一) 사장은 “크고 싶고 행복해지고 싶으며 사회에 공헌하고 싶은 개인의 바람을 실현시켜주는 게 회사”라고 못 박는다. 실제 회사 임직원의 90%는 대졸신입으로 회사에 들어왔다. 신입사원이 커야 회사가 커진다는 일종의 운명공동체 사풍의 실현 덕분이다. 좋은 회사가 되자면 임직원이 맘 놓고 열심히 일하도록 응원할 수밖에 없다. 이를 위해 꾸준한 교육연수뿐 아니라 원활한 커뮤니케이션 및 도전기회를 제공한다. 이때 기본은 ‘와글와글·왁자지껄’이다. 커뮤니케이션이 활발해지고 정보가 투명해질 때 개인성장이 가능하다고 봐서다. 그 상징사례가 독특한 신입사원 교육방침이다. 한마디로 ‘잘 챙겨주기’다. ‘여럿이 들러붙어’ 잘 챙겨주니 직원 사이의 연대감은 꽤 파워풀하다. 동시에 커뮤니케이션은 빠르고 짧다. 경영진과의 거리가 짧고 누구든 속내를 드러내 공유할 수 있는 소통환경을 구축했다. 

그렇다면 마루호의 임직원은 무엇 때문에 일하는 보람을 느끼는 것일까. 많은 직장인의 최고 관심사인 연봉을 비롯한 금전보상에 대한 만족과는 사실 거리가 멀다. 정답에 가까운 건 회사가 지닌 나름대로의 철학과 사고방식이다. 마루호의 높은 직원만족도에 주목한 <닛케이비즈니스>는 이를 ‘참견’으로 갈무리했다. ‘참견경영’의 재발견이다. 흔히 참견이란 대부분 쓸데 없는 참견을 뜻한다. 안 해도 될 것에 무리하게 개입해 문제를 악화시킨다는 의미다. 그런데 마루호의 참견은 좀 다르다. 굳이 풀어 설명하면 쓸데 ‘있는’ 참견이다. 그 쓸데란 바로 직원만족을 높이는 결과를 얘기한다. 이때 ‘참견’의 구체적인 방법이 앞서 언급한 ‘여럿이 들러붙어’의 형태다. 일례로 선배사원이 부하·신입사원을 가르칠 때 ‘여럿이 들러붙어’ 교육하는 문화가 정착됐다.

‘여럿이 들러붙어’ 참견하는 것도 대상과 정도가 문제다. 그렇다면 어떤 상황에 어느 정도 들러붙어야 바람직한 결과로 연결될까. 회사설명에 따르면 여기에 제한은 없다. 누구든 가능한 한 들러붙어 주변을 도와주는 게 마루호의 기업문화다. “곤란에 빠질 경우 ‘반드시’라고 할 정도로 주변동료가 관심을 갖는다”는 식이다. 경쟁업체에선 “이 정도일 줄 몰랐다”고 할 만큼 직장동료의 관심·지원이 광범위하다. 가령 영업에 필수인 프레젠테이션에 약한 후배사원이 있다면 주변에서 그를 위해 연습기회를 만들어준다. 월 1회 정기적인 교육기회를 자발적으로 만들어 약점을 강점으로 승화시킨다. 이는 회사제도나 명령 때문이 아니다. 주변 선배의 반강제적(?)인 자발성에 의한 참견이다. 안 가르쳐줘도 누구 하나 지적하지 않지만 하지 않고서는 못 배기는 장기간 축적된 마루호만의 DNA 때문이다. 그리고 그 DNA는 입사와 함께 자연스레 체득·전승된다.  

- 마루호에서 판매중인 특수 피부 의약품.
- 마루호에서 판매중인 특수 피부 의약품.

‘여럿이 들러붙어’ 등 독특한 사풍

당겨주고 밀어주는 선배사원의 집단적인 ‘들러붙기’는 이뿐만이 아니다. 공식적인 고민공유는 물론 개별적인 사적문제라도 언제든 따뜻하게 어깨를 감싸주는 동료사원이 수두룩하다. 삶을 조금 더 경험해본 선배답게 이런저런 다양한 관점의 선택지를 제공함으로써 후배의 앞날에 기여한다. 여기엔 독특한 사풍이 한몫했다. 영업, 특히 제약영업은 사실 각개전투가 태반이다. 1주일에 한두 번 미팅한 뒤 대부분 영업현장에 투입되니 동료얼굴을 볼 기회가 없다. 동료얼굴을 모르는 영업사원마저 있을 정도다. 그래서 회사는 이 관행을 깨트렸다. 마루호의 경우 전체 직원과의 커뮤니케이션을 위해 아무리 늦어도 회사에서의 퇴근을 원칙으로 삼았다. 영업소는 모두가 복귀할 때까지 전원 대기다. 밤 10시가 넘어 컴백해도 선배사원은 거의 대부분 후배를 챙기고자 남는다. 자칫 불합리할 수 있다. 회사인간을 강요하는 게 아닌지 우려스럽다. 그래서 회사는 영업조직을 7~10명 단위로 최소화했다. 영업조직이 이 인원을 넘어서면 영업소를 나누는 게 원칙이다. 준거집단을 최소화해 연좌피해 여지를 줄이는 대신 연대감을 높이도록 한 조치다.

뒤를 잘 챙겨주는, 즉 참견을 잘하는 기업사풍은 수십 년에 걸쳐 조금씩 기틀이 다져진 마루호의 독특한 전통이다. 지금의 선배사원도 모두 비슷한 참견세례를 톡톡히 받았다. 후배의 업무계획을 들으면 반드시 피드백을 해주는 오래된 전통으로 남았다. 거의 매일 근무종료 후 회식하며 돈독히 애정을 쌓는 것도 마찬가지다. 예전에는 더했다는 증언도 있다. 가령 차를 사는 후배를 따라가 교섭력을 높여주거나, 감기에 걸린 미혼 후배를 위해 직접 집에까지 찾아가 음식을 만들어주는 선배도 있었다고 한다. 지금 선배사원이 후배를 챙기는 데는 이런 학습효과가 컸다. “내가 받은 걸 후배에게도 돌려주고 싶다”는 발상이다.

과거 제약업계는 의료보험 덕분에 정부보호를 받는 호송선단 방식으로 성장했다. 다들 큰 차이 없이 그만그만한 경영을 계속했다. 정부당국만 쳐다보는 경영방식은 마루호도 마찬가지였다. 1990년대는 업계의 이런 생존전략이 순식간에 뒤흔들렸다. 글로벌화 때문이었다. 세계적인 합종연횡으로 거대기업이 속속 생겨났다. 위기감은 극에 달했다. 1999년 사장에 취임한 다카키 고이치가 이 과정에서 승부수를 띄웠다. 경쟁력이 있었던 외용(外用)제에 경영자원을 집중시키는 대신 신약개발은 과감히 포기했다. 신약개발엔 천문학적인 자금이 필수다. 중소기업인 마루호로선 통제하기 힘든 요소다. 반면 연고·크림 등 외용제의 약품 종류를 늘리거나 기존의 유효성분을 새롭게 조합한 응용제품은 비교적 저가개발이 가능하다. 즉 ‘육약(育藥)’ 전략이다.

새로운 약제개발과 육성은 다르다. 약제개발을 뜻하는 신약은 제약업계라면 숙명으로 받아들이는 미션이지만 중소기업으로선 실천하기 힘든 숙제다. 반면 육성은 리스크를 줄이면서 약제로서의 공헌효과는 비슷하게 추구할 수 있다. 굳이 신제품일 필요가 없다는 얘기다. 마루호는 여기에 착안해 약제로서의 공헌 방법을 바꾼 것이다. 비유하면 상류인 유효성분 개발은 포기하고 하류인 약품 종류를 늘리는 방향으로 경영전략을 수정한 셈이다. 선택은 옳았다. 피부약을 가진 제약회사와 판매제휴·계승과정을 통해 매출이 2배 이상 늘었다. 업계에선 피부약 틈새시장을 정면으로 뚫었다고 평가한다. 피부과 의사가 회사약품에 찬사를 보낼 정도다. 대폭적인 방향전환 이후 회사는 제약업계에서 독자적인 존재감을 갖춘 ‘온리 원(Only One)' 기업으로 변신했다.

근로자의 일할 맛을 높이는 동기부여는 기업비전에 반영된다. 마루호의 사시는 ‘진실의 추구’다. 경영 기본방침은 ‘마루호’라는 공통의 장에서 개인·사원·사회인으로 진실을 추구하는 것이다. 이는 인류건강을 위해 양질제품으로 공헌한다는 사명을 실천하는 행동전략이다. 모든 걸 총괄하는 기업비전은 방침전환이 있기 1년 전인 2001년에 수립됐다. 당시만 해도 사람을 소중히 여긴다는 회사풍토가 회사 내부에서만 유통됐다. 한계였다. 즉 회사 내부를 뛰어넘는 보다 외향적인 책임감이 필요했다. 남들이 인식하는 직업 자부심을 키우자는 공감대가 힘을 얻은 건 물론이다. 출발은 임직원에 대한 교육투자 강화였다. 회사의 종업원 교육투자는 1인당 연간 40만엔에 달한다(제조부문 포함). 또 미국·유럽 등 유명 비즈니스스쿨 유학비용을 적극 제공한다. 덕분에 MBA 취득근로자는 매년 증가세다. 이런 입소문이 모여 종업원 배려가 최고라는 인식이 완성됐다.

마루호의 연수제도는 실제 굉장히 촘촘하고 반복적이다. 신입사원부터 간부사원에 이르기까지 성장에 맞춘 계층별 교육제도가 마련됐다. 신입사원부터 20대까지는 신입교육을 필두로 펠로 업·점프 업 연수가 실시된다. 30대부터는 매니지먼트와 커리어플랜 세미나를 받는다. 관리직인 매니저가 되면 리더모임부터 매니저 EQ연수·라이프플랜 세미나·인사고가 평가자 연수 등에 참가한다. 직급과 무관한 교육제도도 있는데 부서연수와 어학연수 및 사내외세미나 등이 그렇다. 근무의욕, 동기부여가 떨어질 수밖에 없는 비정규직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불가피한 일부 인력만 비정규직을 채용할 뿐 근로자 태반은 정규직이다. 종업원 1010명 중 정규직은 94.2%다. 여성비율은 28%로 이 중 2.4%가 관리직이다. 장애근로자도 12명이 근무 중이다. 이직률은 1.9%에 불과하다.

신약 개발 대신 육약 제조로 승부수

회사와 가정을 둘 다 지킬 수 있는 관련제도도 만들었다. 이는 ‘차세대지원육성’으로 통일돼 관리·진화된다. 크게는 임신·휴직 등의 근로자에게 정보제공 및 상담기회를 제공하는 것과 일·가정 양립조화를 위한 근로형태의 다양화로 나뉜다. 2005년부터 아내출산휴가를 신설했고 보육소에 자녀를 맡기는 경우 출퇴근의 편의를 제공한다. 2008년부터는 출산준비휴가를 정비했다. 임신 중에 5일간 휴가를 제공받으며 최대 2시간까지 근무시간을 단축할 수 있다. 육아휴가는 최대 2년까지다. 초등학교 4학년 자녀까지 육아를 위한 단시간 근무를 적용받을 수 있다. 이밖에 유급휴가 취득촉진과 잔업삭감 캠페인 등을 일상적으로 펼친다.

 

  Tip. 참견문화의 뿌리 -  ‘직장인간 형성론’   

스파르타 합숙으로 연대감 강화 … 부티크컴퍼니 지향

‘여럿이 들러붙어’ 주변을 챙기는 참견문화의 뿌리는 ‘직장인간 형성론’이다. 이는 1951년 회사(마루호상점) 사장에 취임한 다카키 지로(高木二郞) 현 명예회장이 제안한 기업문화다. 인재육성을 위해 그가 내놓은 이념 중 하나다. 요컨대 ‘직장이란 사람이 성장하기 위한 장소로 일을 통해 사람으로, 사원으로, 사회인으로 성장해 가는 장소’다. 때문에 회사는 근로자 ‘상호’간의 ‘성장’을 가장 중시한다.

이를 실천하고자 회사는 신입사원 연수 때 늘 “당신은 목적이자 코스트”라고 일갈한다. 선배사원은 신입사원을 최고가치의 생명을 지닌 존재(목적)로 인식해 소중하고 엄격하게 대접한다는 것이다. 반면 막 입사한 신입사원은 코스트다. 사회진출 때까진 오직 소비만 해온 존재로 그대로라면 아무 것도 만들지 못하고 소비만으로 삶을 마친다. 소비해온 것만큼 가치를 창출하라는 메시지다. 이를 반복된 교육연수로 뼛속 깊이 각인시킨다.

선배로부터 후배로의 ‘참견경영’이 종적인 연결구조라면 신입사원 연수는 횡적인 연대를 강조하는 기능을 맡는다. 즉 이 회사의 신입연수는 지금은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엄격하다. 신입사원은 4월에 입사하면 지방공장에서 연수생활을 시작한다. 여기서 ‘직장인간 형성론’을 비롯해 회사역사와 연혁, 제약산업의 특징, 트렌드 등을 배운다. 이 정도면 평범하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다. 대다수의 영업사원은 12월의 인정시험에 통과하고자 4개월에 걸쳐 합숙연수에 돌입한다. 스케줄은 빡빡하다. 오전 6시50분에 일어나 밤 12시 소등 때까지 오직 공부만을 위한 집단생활이 펼쳐진다.

규칙도 빡빡하다. 휴일 이외에는 외출을 금하는게 원칙이다. 휴대전화나 컴퓨터도 일요일에만 쓸 수 있다. 일요일 아침에 회수한 휴대폰·컴퓨터를 되돌려준 뒤 밤 9시에 다시 거둬들인다. TV나 잡지도 휴일에만 볼 수 있다. 강사는 15년차 이상의 중견사원이 맡는다. 이들도 신입사원 스케줄에 따라 똑같이 움직이며 4개월 간 생활한다. 아침저녁에 빠지지 않고 늘 하는 좌선 때 어깨를 내려치는 것도 이들 선배역할이다. 합숙연수의 목적 중 하나는 상부상조의 교육이다. 한 사람 때문에 지각이라도 하면 벌칙은 연대책임이다. 가히 ‘감옥 같은 생활’이다.

과거엔 보다 ‘스파르타식’이었다. 예전의 합숙장소는 섬이었다. 배가 아니면 이동이 불가능해 물리적이든 심리적이든 고립감이 대단한 장소였다. 가족과의 연락은 편지뿐으로 전화도 불허됐다. 용돈은 적고 놀 장소도 없었다. 오직 할 수 있는 건 공부뿐이었다. 이렇게 100여일을 함께 고생하면 빛을 발하는 게 있다. 동기의식과 동료의식이다. 비슷한 합숙연수는 이후에도 몇 번씩 준비된다. 이런 합숙형식 연수가 연대감을 키운다는 건 불문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