넥서스 원 등 스마트폰 히트작 양산…

   

애플·삼성 위협하는 다크호스 부상

- 잭 통 HTC 북아시아 사장이 2011년 6월 서울 웨스틴조선호텔에서 KT 와이브로 4G망을 이용하는 4G 안드로이드폰 이보 4G+와 HTC 태블릿 플라이어 4G를 선보이고 있다.
- 잭 통 HTC 북아시아 사장이 2011년 6월 서울 웨스틴조선호텔에서 KT 와이브로 4G망을 이용하는 4G 안드로이드폰 이보 4G+와 HTC 태블릿 플라이어 4G를 선보이고 있다.

전 세계에서 0.8초마다 한 대의 자사 휴대폰이 팔린다. 2011년 3분기 미국 시장에서 삼성전자와 애플을 제치고 스마트폰을 가장 많이 팔았다. ‘넥서스 원’ ‘디자이어’ 등 히트작을 잇따라 내놓아 스마트폰 업계에서 세계 3위에 올랐다. 지난해 3분기 매출액 5조381억원, 순이익 6938억원으로 6분기 연속 사상 최대 매출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다. 지난해 3분기 영업이익률은 14.9%에 이른다.

이런 화려한 전적을 자랑하며 약진하는 곳이 대만 IT제조업체 HTC이다. 2008년 5조6200억원 정도이던 HTC의 매출액은 2년 만인 지난해 10조740억원으로 두 배 가량 성장했다. 미국 위클리 뉴스는 HTC를 ‘2010년 세계 10대 창조적 기업’으로 선정했다. 글로벌 IT업계에서 애플과 삼성전자를 강력하게 위협하는 ‘다크호스’다.

그러나 HTC는 5년 전만 해도 다른 많은 대만 업체들처럼 미국 PC업체에 주문자상표부착(OEM) 방식으로 제품을 납품하던 하청업체에 불과했다. 대만 북서부 타오위안시에 자리잡고 있는 HTC는 스마트폰만 생산한다. 일반 휴대폰은 관심권 밖이다. 대만 최대 재벌 중 하나인 포모사플라스틱그룹 창업주의 딸인 왕쉐훙 회장이 대만 국립해양대학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한 피터 초우 사장과 공동으로 1997년 세운 HTC의 출발은 OEM 방식이었다.

마이크로소프트(MS) 등으로부터 주문을 받아 스마트폰을 만들면서 기술력을 쌓았으며 2006년부터 자체 상표제품을 만들었다. 최초의 구글의 안드로이드폰(스마트폰)으로 꼽히는 ‘넥서스원’을 만들며 인기를 끈 HTC는 2010년부터 OEM을 완전 중단하며 자체 브랜드 경영의 길을 가속화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HTC 본사에 근무하는 전 직원의 30%인 3000여명이 기술개발자이며, 이들이 신제품개발에 집중한다는 점이다. 회사 설립 초기에는 전체 인력의 80% 이상이 연구개발 인력이었다. 지금도 1000명의 기술개발자들은 아시아 각국 및 유럽 등지에서 온 ‘외인부대’다. 피터 초우 사장은 “전 세계 개발자들이 모여 있기 때문에 세계의 문화와 기술이 하나로 섞여 있다. 덕분에 전 세계 어디서나 통용되는 스마트폰을 만들 수 있다”고 말한다.

HTC는 이런 막강한 R&D 인력과 개발역량을 바탕으로 시장 변화에 재빠르게 대응하는 차원을 넘어 선제적으로 앞서가고 있다. 예컨대 다른 업체들이 PC 및 노트북 생산에 매달리던 1990년대 말 PDA라는 새로운 시장에 발을 들여놓았고, 마이크로소프트(MS)와 손잡고 MS의 윈도 모바일을 탑재한 스마트폰을 출시했다. 그러다가 스마트폰 시장이 구글의 안드로이드 운영체제(OS)로 기울 것으로 예견한 뒤부터는 윈도폰 비중을 크게 줄이고 안드로이드 스마트폰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 HTC는 지난해 2월 클라우드 서비스를 지원하는 4세대 이동통신용 스마트폰 ‘썬더볼트’를 선보였다.
- HTC는 지난해 2월 클라우드 서비스를 지원하는 4세대 이동통신용 스마트폰 ‘썬더볼트’를 선보였다.

그 결과 2008년 HTC가 내놓은 ‘넥서스 원’은 구글 안드로이드로 구동되는 세계 첫 스마트폰이 됐다. 삼성전자, LG전자 등이 여전히 윈도 모바일에 머물러 있을 동안 HTC는 경쟁사보다 1~2년 앞서 안드로이드 스마트폰 시장을 선점했다. 통신기술변화에 발빠르게 대응해 4세대 롱텀에볼루션(LTE)도 삼성전자나 LG전자보다 먼저 출시했다. ‘멀티OS’ 전략을 구사하는 ‘전천후 플레이어’로 시장을 선점하고 있는 것이다.

상품 모델을 빠르고 다양하게 내놓는 ‘스피드 경영’도 돋보인다. 단적으로 현재 미국시장에서 팔리고 있는 HTC의 스마트폰은 10종류가 넘는다. 고가·저가 제품만 있는 게 아니라 여성용 제품·음악 기능 강화 제품·3D(입체) 화면 제품에 페이스북·트위터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많이 쓰는 10~20대들을 겨냥해 키보드에 SNS 바로가기 키가 붙은 것도 있다.

삼성전자나 애플이 갤럭시S2, 아이폰4S 같은 최고급 제품 위주로 승부를 거는 것과 달리, HTC는 거의 모든 소비자를 겨냥해 제품을 쏟아내고 있는 셈이다. 캐널리스의 크리스 존스 부사장은 “HTC가 다양한 제품을 내놓으면서 몇 년 만에 프리미엄급 브랜드를 만들어냈다. 스마트폰 시장이 지금 가장 치열한 경쟁이 이뤄지는 시장인 점을 감안하면 매우 대단한 일”이라고 했다.

HTC는 지난해 7월 미국의 그래픽카드 전문업체인 S3그래픽스를 3억달러에 인수한 이후 3억9000만달러를 들여 프리미엄 헤드폰 ‘비츠바이 닥터드레’로 유명한 헤드폰 전문 업체 비츠일렉트로닉스의 지분 51%를 확보했다. 또 10월에는 1300만달러를 투자해 미국 어린이 전용 소프트웨어 공급업체 인퀴저티브 민즈를 인수하는 등 올 여름 이후에만 3건의 인수합병(M&A)을 단행했다. 한 관계자는 “최근 1년 동안 해외 기업 M&A에 7억달러를 투자했다”며 “휴대폰 사업과 연관된 실리콘밸리 소재 혁신적인 기업 인수에 계속 관심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 시장 공략도 강화하고 있다. 중국 내 최대 소셜미디어네트워크인 런런(人人)과 손잡고 개발한 안드로이드 운영체제(OS) 기반 스마트폰 ‘대런(Daren)’을 지난해 11월 공개했다. 이 제품은 3.2인치 디스플레이와 300만화소 후면카메라를 장착하고 있으며, 중국 판매가격은 2099위안(약 37만원, 330달러)이다.

앞서 지난해 초에는 페이스북에 특화된 스마트폰 ‘차차’와 ‘살사’를 선보였고 9월에는 중국 시나닷컴의 단문형 마이크로블로그 ‘웨이보’에 최적화된 스마트폰 ‘C510e’를 선보였다. HTC는 연말까지 중국 시장에서 센세이션XE와 이보3D 등 5종의 스마트폰을 추가로 출시할 계획이다. HTC의 올해 중국 판매량은 작년과 비교해 다섯 배 가량 성장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스피드 경영 왕 회장은 ‘여성 스티브 잡스’

HTC의 눈부신 약진에 빼놓을 수 없는 동력은 창업주인 왕쉐훙 회장의 역할이다. 그는 대만 최고 재벌 자녀이지만 스스로 기업을 일으키는 험한 길을 택했다. 그는 2000년대 초 OEM 방식으로 엄청난 흑자를 내고 있을 때, HTC는 과감하게 PDA시장을 포기하고 스마트폰시장으로 방향을 전환했다. 2006년 제조업자개발(ODM)과 OEM을 통해 전 세계 윈도 스마트폰의 70% 이상을 독점 공급하면서 HTC의 영업이익률은 업계 평균(5%)보다 5배 높은 경이로운 경쟁력을 유지했다.

바로 그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 정상의 자리에서 왕 회장은 ODM·OEM사업을 포기한 대신 직접 유통망을 갖고 HTC 이름으로 판매하겠다고 선언했다. 그후 1년 만에 최초의 안드로이드폰을 시장에 선보였고 아이폰을 맹추격했다. HTC가 사업 방향을 전환할 때마다 주가가 폭락하며 회의적인 반응이 많았지만, HTC는 세간의 예상을 뒤엎으며 성장을 거듭했다.

왕쉐훙 회장은 HTC를 설립하기 훨씬 전 아버지 회사 계열사의 마더보드 OEM사업 영업을 맡아 전 세계를 돌며 보따리 장사를 했다. 당시 그는 수행원 하나 없이 10㎏짜리 컴퓨터를 끌며 홀로 열차를 타고 세계를 돌아다녔고 “언젠가 이 커다란 PC가 손안에 들어가는 기계가 돼 PC와 전화의 모든 기능을 다 해줄 것”이라는 비전을 전파했다. 그의 열정은 빌 게이츠 MS 회장을 감동시켰고 빌 게이츠와 맺은 교류 덕분에 MS의 윈도 CE를 공동 개발하는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창업 초기 자금 사정이 좋지 못할 때, 한 사업부 직원의 실수로 회사가 스페인 바이어 기업에 사기를 당해 70만위안(약 1억5000만원)을 회수하지 못하자, 왕 회장은 바로 스페인으로 가 소송을 걸었다. 언어가 통하지 않는 곳에서 그는 혼자 여기저기 다니며 소송 처리를 해야 했다. 그는 당시의 위기를 기회로 활용했다. 스페인에서 홀로 소송하며 고생하는 동안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 공급 업체를 찾아다니고 바이어를 쫓아다니며, 영업활동을 해 유럽시장을 개척한 것이다. 이때 알게 된 협력업체들은 아직도 왕 회장과 함께 하고 있다.

왕 회장은 “그 당시에는 세상이 나를 망하게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래도 포기하고 싶지 않아 마지막 한줄기 기회라면 모두 잡아보고 싶었다”고 고백했다.

지난해 3월 대만 부호 1위로 선정된 왕 회장에게 성공 비결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그는 각종 인터뷰에서 망설임 없이 ‘고도의 권한 위임’이라고 답했다. 대부분의 권한 위임이 형식상에 그쳐 제대로 성과를 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것과 달리 그는 전문 경영인에게 확실하게 권한을 넘겨 실질적인 성과를 내는 데 힘쓴다는 얘기다. 실제로 그는 16개 회사로 구성된 HTC의 회장을 맡고 있지만 그가 직접 경영을 관장하는 곳은 없으며 모두 전문 경영인에게 맡긴다. “(실력이) 의심되는 사람은 절대 안 쓰고, 일단 실력을 확인하고 모셔온 사람은 절대적으로 믿고 의심하지 않는다(疑人不用 用人不疑)”는 용병 철학을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2010년 HTC 송년 파티에서 왕쉐훙 회장은 “나의 다음 도전자는 스티브 잡스”라고 선언했다. 잡스가 세상을 떠난 지금, 삼성전자를 넘어 애플에까지 도전장을 던진 왕 회장의 꿈은 실현될 수 있을까? 

- HTC가 2011년 9월 서울 그랜드인터컨티넨탈호텔에서 LTE스마트폰 ‘레이더 4G’를 공개하고 있다.
- HTC가 2011년 9월 서울 그랜드인터컨티넨탈호텔에서 LTE스마트폰 ‘레이더 4G’를 공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