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조사 ‘샅샅히’ 전문가 양성 ‘치밀하게’…

   

8년만에 중국 베이커리 시장 평정

1. 난징 1호점  / 2. 상하이 창더루점 / 3. 베이징 케이크 만들기 교실
1. 난징 1호점  / 2. 상하이 창더루점 / 3. 베이징 케이크 만들기 교실

2004년 9월 중국 상하이 구베이에 1호점을 열며 중국 비즈니스에 뛰어든 파리바게뜨는 우리나라 식음료 회사를 통틀어 중국 내수 시장에 가장 성공적으로 진입한 기업으로 꼽힌다. 이미 상하이와 베이징에 각각 38개, 34개의 직영점을 운영 중이며 작년 11월에는 한국 베이커리 업계 최초로 난징에 진출했다. 2008년 32개이던 중국 점포수는 올 2월 현재 74개로 만 3년여 만에 두 배 이상 급증했다. 올해에는 다롄, 충칭 같은 동북3성과 쓰촨성 일대 중서부까지 확대해 파리바게뜨 열풍을 일으킨다는 목표다.

실제로 베이징 왕푸징을 비롯한 주요 대도시 쇼핑센터 등을 가보면 화려한 인테리어를 한 파리바게뜨 매장이 ‘약방의 감초’처럼 등장한다. 더 중요한 것은 파리바게뜨가 유명 외국 경쟁사들을 차례로 물리치고 실력으로 ‘독주’ 채비를 굳혀가고 있다는 점이다. 베이징의 경우, 2007년 거의 같은 시기에 프랑스계 최고급 베이커리 브랜드인 푸숑과 파리바게뜨가 20미터 거리를 사이에 두고 대만계 신광천지 백화점 주변에 오픈했다. 초기에 엇비슷하던 두 점포의 매출은 점점 격차가 벌어져 결국 푸숑은 2010년 매장을 완전 폐쇄하고 사업을 접었다.

 파리바게뜨가 2007년 2월 바로 맞은 편에 점포를 열기 전까지 왕푸징 둥팡광장 일대 상권을 장악하고 있던 싱가포르의 브레드 토크(Bread Talk)도 패퇴했다. 당시 항상 점포 바깥까지 기다란 줄이 늘어진 상태에서 매일 3만위안(약 540만원)이 넘는 판매액을 올리던 브레드 토크의 매출은 현재 파리바게뜨의 절반 남짓하다. 파리바게뜨 관계자는 “제품력은 물론 다양성, 인테리어 환경 등 고급스러운 세련미 등에서 우리가 경쟁사들을 압도하고 있다” “우리가 하루 약 3만위안의 매출을 올리고 있는 반면, 브레드 토크는 1만5000위안에 그치고 있다”고 말했다.

 명품 베이커리 업체들의 격전지로 불리는 상하이 푸둥 지구의 쇼핑몰인 따무즐 광장에서도 파리바게뜨는 단연 돋보인다. 프랑스계 베이커리인 폴(Paul)은 이곳에서 사업을 철수했고, 브레드 토크 매장의 판매액은 파리바게뜨(일 평균 2만5000위안)의 절반 아래에 불과하다.

파리바게뜨의 모기업인 SPC그룹의 김범호 전무는 “2009년 톈진시내 하이신백화점은 파리바게뜨 점포 입점을 요청하면서 ‘임대료 2년간 100% 면제, 매장 인테리어 비용 제공’ 같은 파격 조건을 내걸었다”며 “중국의 고급 백화점들이 외국계 점포 입점 시 높은 임대료와 까다로운 조건을 내세우는 관행에 비춰볼 때 엄청난 특별 대우였다”고 말했다.

파리바게뜨는 정부 기관과 전문가, 소비자가 꼽는 일등 브랜드상도 휩쓸고 있다. 2005년과 2006년 2년 연속 중국 공상연합회 베이커리 공회(全國空想聯烘焙業公會)가 주관하는 최고 권위의 명성점(中華烘焙業明星餠屋)으로 선정됐고, 2010년에는 ‘중국 베이커리 및 당제품공업협회’ 주관으로 하남성 정저우에서 열린 ‘베이커리 총회’에서 ‘중국 10대 브랜드’로 뽑혔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당시에는 공식 공급업체로 지정됐다.

2001년 처음 도입돼 10년마다 실시되는 ‘중국 10대 브랜드’ 선정은 중국 베이커리 업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상으로 꼽힌다. 외국 제빵회사가 10대 브랜드에 뽑힌 것은 최초다. 또 파리바게뜨 상하이 구베이점과 베이징 동방신천지점은 중국 내 15만개에 이르는 베이커리 점포 가운데 10여개 점포에만 수여하는 ‘오성(五星)급 점포’에 선정됐다. 파리바게뜨 측에 따르면 중국 점포 이용 고객 중 85%가 중국인이다. 8년 만에 중국을 사실상 평정한 명품 기업으로 우뚝 선 마케팅 노하우는 뭘까.

(위) 상하이 창더루점 (아래) 베이징 파리바게뜨 더플레이스점
(위) 상하이 창더루점
(아래) 베이징 파리바게뜨 더플레이스점

6년 넘게 철두철미한 시장 조사

파리바게뜨는 2003년 중국 법인 설립에 앞서 1996년부터 중국 진출을 겨냥한 면밀한 현지 조사와 인력 전문화에 나섰다. 상하이를 첫 진출 지역으로 정한 다음 총괄 임원 1명과 점포개발, 전략기획, 마케팅 등 각 파트별로 그룹 내 과장급 최고실무자 4명이 상하이 현지 리서치업체와 협력해 1개월 동안 상하이 상권을 바닥부터 샅샅이 뒤졌다. 구체적으로 상하이의 외식업체 현황, 각 베이커리별 SWOT 분석, 상권 맵핑(Mapping), 상하이인의 식문화, 외자 기업의 인허가 절차 등에 걸쳐 사업 분석을 마쳤다.

1997년에는 중국 전문가 양성을 위해 상하이 푸단대에 2명을 연수시키는 한편 국내에서도 5명(임원급, 부장급, 과장급)을 최고 대학 중국학 과정에 연수를 시켰다. 이들은 한국 내 중국 관련 강연과 세미나, 코트라 중국 비즈니스 교육 과정 등을 들으며 중국 알기에 총력을 쏟았다.

이런 연구와 경험을 바탕으로 파리바게뜨는 매장을 일반 베이커리에 카페를 접목시킨 ‘베이커리 카페’라는 첨단 인테리어 코드로 시장을 공략하기로 결정했다. 간판도 초창기에는 중문을 일절 넣지 않고 영어 간판만을 달아 현지인들에게 고급 브랜드 이미지를 심는 데 주력했다. 또 개장하는 점포마다 한국에서 판매되는 빵 제품을 그대로 재현함과 동시에 중국 토종 베이커리에서 맛볼 수 없는 서비스와 시스템으로 승부를 걸었다. 일례로 파리바게뜨는 매장 안에서 빵을 갓 구워 파는 ‘베이크 오프(bake-off) 시스템’을 도입했는데, 이는 공장에서 만든 제품을 가져와 매장에서 파는 단순 단계에 머물고 있는 중국 점포와는 큰 격차가 있는 방식이었다.

또 중국 기존 제과점들이 50~60종류의 빵을 파는 것과 대조적으로 파리바게뜨는 이를 200~300가지로 늘려 확연하게 차별화했다. 매장을 찾아오는 고객들에 대해서도 다섯 단계로 세분화하는 ‘직원 응대 서비스’ 시스템을 마련, 호감을 샀다. 과학적 마케팅 기법도 구사했다.

황희철 중국법인 상무는 “각 점포별로 시간대·제품별 매출량, 고객수 등을 실시간으로 체크해 데이터화한 다음 그에 맞는 점포별 운영 전략을 세워 매출을 극대화했다”며 “신상품을 출시할 때마다 중국인 패널을 모집해 시식회를 갖는 등 현지인의 입맛에 맞는 상품 개발에도 주력했다”고 말했다.

유연한 현지화 전략

현지인들의 마음을 완벽하게 사로잡기 위해 섬세한 노력도 기울였다. 고기를 좋아하는 중국인들의 식성을 반영해 빵 위에 쇠고기 가루를 가득 얹은 육송빵을 만들었다. 다른 제품들도 국내에서보다 기름진 내용물을 더 많이 넣는 식으로 현지인 입맛에 맞춘 메뉴를 내놓았다. 2005년부터는 브랜드 인지도 상승과 고객과의 친밀감을 높이기 위해 고객이 직접 참여하는 케이크 만들기 교실을 열어 지금까지 500회 넘게 진행했다. 케이크 교실 행사는 많은 경쟁업체들이 모방해 따라올 정도로 호평을 받았다.

한국식 마케팅 공세도 입체적으로 펼쳤다. 예컨대 제품 다섯 개를 사면 한 개를 더 주는 ‘5+1’ 행사와 성탄절과 어린이 날 등에 장바구니와 컵, 가정용품 등을 나눠주는 행사를 벌였고 한국처럼 빵을 사면 일정금액을 적립해주는 해피 포인트 카드도 발행했다. 현재 해피 포인트 카드를 발급받은 중국 고객만 1만명이 넘는다. 생일 정도에만 케이크를 사는 현지인들을 상대로 다양한 프로모션을 진행해 케이크 판매율을 기존보다 3배 이상 높은 국내 수준(25%)으로 끌어올렸다. 여기에다 매장 내 점장부터 제빵사, 말단 직원까지 전원 아르바이트가 아닌 정식 직원으로 채용한 점도 현지에서 긍정적인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파리바게뜨 관계자는 “한국 제빵사들이 중국에 가서 현지 제빵사를 양성했고 매장 관리부터 직원 서비스 교육까지 매뉴얼화한 시스템을 적용했다”며 “현지 한국인 주재원은 직원 교육, 서비스 점검, 전략 수립 등 중국 본부로서의 업무에만 집중했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HSBC국제골프대회, F-1경기대회 등 대형 행사의 파트너로 참여해 지원하는 방식으로 사회공헌활동을 벌이고 있다. 또 2008년부터 매년 4~5회씩 중국베이커리공회와 중국베이커리협회 회원들이 아시아 최대 규모인 경기 평택 파리바게뜨 공장과 매장 등을 방문토록 해 양국 업체 간 공생발전에도 힘쓰고 있다.

 

 

  Mini Interview   황희철 파리바게뜨 중국 법인장(상무)

“중장기 전략 갖고 차근차근 접근해야 성공”

- 중국 진출 이후 어떤 어려움들을 겪었는가.

 “한국과 중국에서 상당한 준비를 했지만 정작 실무현장 상황은 상상 이상의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가장 힘들었던 부분은 현지 직원들과의 문화 차이에서 오는 갈등이었다. 자라온 생활환경과 교육환경이 다른 현지인들을 교육시키고 회사의 충성심을 갖게 해 관리자로 양성하는 것이 가장 큰 어려움이었고 가장 중요한 업무였다. 치열한 시장 경쟁도 쉽지 않았다. 상하이, 베이징 모두 2000만명의 인구를 가진 거대 도시이지만 정작 진입할 상권은 극히 제한적이다. 대형 쇼핑몰 위주로 상권 형성이 되다 보니 그 쇼핑몰에 입점하려는 수많은 브랜드들과 피말리는 입점 경쟁을 해야 한다. 파이는 한정돼 있는데, 경쟁자가 매우 많은 구조다.”

- 중국 시장에서 성공하려면 무엇이 가장 필요한가.

 “기업의 역량이 아무리 뛰어나더라도 이를 실행하는 ‘맨파워’가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소용이 없다. 시의적절한 인재 기용과 현지에 특화된 인재를 육성하는 게 중요하다. 동시에 투철한 정신무장과 일을 즐기는 열정이 필요하다. 척박한 중국 시장에서 살아남으려면 무엇보다 ‘파이오니어(개척자) 정신’이 필수적이다. 절박함을 갖고 그에 맞는 전투력을 갖춰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

- 파리바게뜨 중국 법인이 지향하는 목표는 무엇인가.

 “SPC그룹의 비전이 ‘행복한 세상을 만들어가는 기업’이다. 중국 법인 역시 구성원(내부 고객)과 파트너(가맹점, 협력업체)의 행복 지수를 높이고 사회에 공헌하는 모범적인 회사로 크는 게 목표다. 현지법과 규범을 철저히 준수하는 정도(正道) 경영과 내부 역량 강화를 통해 중국에서도 모범적인 1등 기업이 되고자 한다.”

- 다른 분야의 진출 기업들에 마케팅 조언을 한다면.

 “중국은 확실히 거대하고 충분히 매력적인 시장이지만 함정도 많다. 한국에서는 자기 분야에서 1등이고 120% 이상의 힘을 발휘할 수 있지만, 중국에서는 내가 가진 경쟁력의 50% 정도조차 써보지 못할 수도 있다. 한정된 인력 구성, 제한된 투자 금액, 밀어붙이기식 투자로는 중국 시장에서 제대로 된 비즈니스를 할 수 없다. 회사 내 최고의 인력 구성과 중국 전문가들로 구성된 TF팀을 만들고 충분한 시장조사 기간을 갖고 치밀한 진출 전략 수립을 세워야 한다. 자금 운영 계획도 예상보다 50% 이상 여유를 갖고 있어야 한다. 단기 성과보다 중장기적 플랜을 갖고 차근차근 해결해 가는 자세도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