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프랑스는 실업률이 치솟으면서 젊은 층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 사진은 프로축구구단 PSG가 우승하자 일부 20~30대 PSG팬들이 지난 5월13일 축하연을 벌인 뒤 소동을 부리는 장면.
최근 프랑스는 실업률이 치솟으면서 젊은 층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 사진은 프로축구구단 PSG가 우승하자 일부 20~30대 PSG팬들이 지난 5월13일 축하연을 벌인 뒤 소동을 부리는 장면.

지난 5월13일 저녁 프랑스 파리의 에펠탑 인근 트로카데로 광장은 무법천지로 변했다. 하루 전 파리를 연고로 하는 프로축구구단 PSG(파리 생제르맹)가 19년 만에 프랑스리그에서 우승을 차지하자, 팬들이 축하 파티를 열었다. 하지만 흥겨워야 할 파티는 곧 난장판으로 변했다. 젊은 팬들이 갑자기 상점으로 몰려가 물건을 약탈하고 주변 카페의 집기를 부수는 등 행패를 부렸기 때문이다. 다행히 심각한 인명 피해는 발생하지 않았고, 경찰이 출동하면서 소동은 짧게 끝났다. 자칫 2년 전 여름 영국 런던에서 발생한 청년 폭동이 파리에서도 재연될 뻔한 상황이었다.

이날의 짧은 소요사태는 현재 프랑스의 위기를 보여주는 한 단면이다. 특히 젊은 층의 불만은 건드리기만 하면 폭발할 것 같다. 이유는 높은 실업률과 희망이 보이지 않는 경제 상황 때문이다.

지난해 11월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의 표지를 본 프랑스인들은 발끈했다. 파랑·하양·빨강의 프랑스 국기로 묶인 바게트로 시한폭탄처럼 도화선이 타들어가는 그래픽이었다. ‘프랑스 스페셜 리포트’라는 부제가 붙은 이 기사의 제목은 ‘유럽 심장부의 시한폭탄(the time-bomb at the heart of Europe)’.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이 경제개혁을 미루면서 2013년에 프랑스가 유럽 경제위기의 진원지가 될 것이라는 분석이었다. 이 전망은 6개월이 지난 현 시점에서 족집게처럼 들어맞았다.

명품 기업 매출 느는 것은 관광객 때문
지난 5월15일 유럽통계청은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의 올해 1분기 실질 경제성장률이 전기 대비 0.2% 감소했다고 발표했다. 2011년 4분기 이후 6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이었지만, 전분기(-0.6%)보다 감소폭은 크게 줄었다. 키프로스를 제외하고는 스페인·이탈리아·포르투갈 등 남유럽 국가들도 비록 마이너스 성장률을 기록했지만 감소폭이 줄었고, 독일·벨기에는 플러스 성장으로 전환했다. 주요국 가운데 이런 경기 회복의 흐름에 동참하지 못한 유일한 국가가 프랑스였다. 프랑스는 1분기 성장률이 마이너스 0.2%를 기록했다. 지난해 4분기 성장률(-0.2%)에서 제자리걸음 한 것이었으며, 두 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률로 경기침체(recession)에 접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샹젤리제 거리와 몽테뉴 거리 등 명품점들이 몰려 있는 시내에선 이런 프랑스의 위기를 잘 느끼지 못할 수 있다. 여전히 쇼핑객이 많고, 명품 기업들의 매출도 해마다 늘고 있다. 하지만 이 ‘명품 경제’를 유지하는 건 중국인을 비롯한 관광객이다. 일반 프랑스인이 주로 찾는 쇼핑거리는 전혀 다른 풍경이다.

파리 15구 주택가의 쇼핑거리인 코메스의 상점 유리엔 요즘 ‘세일’ ‘떨이’ 같은 문구들이 붙어 있다. 원래 프랑스에선 여름 바캉스 직전과 겨울 크리스마스 직후에 대대적인 세일을 해왔지만, 최근에는 거의 상시로 세일을 한다. 그렇지 않으면 소비자들이 좀처럼 지갑을 열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해 프랑스의 국내 소비는 전년보다 0.9% 줄었다. 최근 30년 이래 최대 하락폭이다. 프랑스 통계청은 국내 소비지출 감소가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감소의 가장 큰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프랑스에서 당장 소비가 늘기는 어렵다. 높은 실업률 때문에 가처분 소득이 줄어들고, 이로 인해 경제가 축소되는 악순환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앞서 4월 말에 발표된 프랑스 평균 실업률은 10.6%를 기록하며 1999년 유로화 출범 후 최고치를 기록했고, 청년 실업률은 25%를 웃돈다. 

이런 심각성에 견주어 프랑스의 위기는 지금까지 큰 주목을 받지 않았다. 상대적으로 남유럽 경제위기가 워낙 급박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유럽연합(EU)은 프랑스 문제를 심각하게 다루기 시작했다. EU는 최근 스페인과 함께 프랑스의 재정적자 감축 목표 시한을 2년 연장해 주기로 결정했다. 프랑스는 원래 내년까지 GDP의 3% 이내로 재정적자를 감축하기로 했지만, 현 상황으로는 도저히 이를 달성할 수 없다고 EU가 판단한 것이다. 조제 마누엘 바호주 EU 집행위원장은 지난 5월15일 올랑드 대통령과의 회담 전 기자회견에서 “프랑스는 글로벌 경제와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며 “세계화에 반대하는 것은 자신을 스스로 파멸시키는 길”이라고 프랑스를 비판했다. 그는 또 “2년 동안 프랑스는 구조적 개혁을 가속화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프랑스 경제의 상황을 안이하게 판단하게 되는 또 다른 요인은 국채 이자율이다. 한 국가의 경제를 가장 잘 반영하는 지표 중 하나가 국채 이자율이다. 위기에 처하면 국채 이자율은 곧바로 올라가는 게 정상이다. 하지만 현재 프랑스 국채(10년 만기) 이자율은 1.8% 선으로 유로존 최우량 국가인 독일과 비교해 0.5% 정도밖에 높지 않다. 투자자들이 프랑스 경제의 미래를 낙관적으로 보고 있다고 착각하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경제위기로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한 투자자들이 일시적으로 프랑스 국채를 매입하기 때문이다.

경제전문 매체인 <블룸버그>는 “일본 투자자들이 0.58%에 불과한 자국 국채 대신 프랑스 국채를 사들이고 있다”고 분석했다. 영국의 ‘스탠더드 라이프 인베스트먼트’의 투자전략가인 프랜시스 허드슨은 “일부 투자자는 내키지 않지만 어쩔 수 없이 프랑스 국채를 산다”며 “지금 이자율은 시장에 의해 (정상적으로) 결정된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투자자들이 프랑스 경제의 취약성에 주목하기 시작하면 프랑스 국채를 대거 팔아치우면서 국채 이자율은 급등할 수 있다. 올랑드 대통령은 낮은 지지율 때문에 국민 정서에 반하는 경제개혁 조치를 밀어붙일 수 없는 상황이다. 정부 내에서도 올랑드 대통령의 개혁 프로그램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올 정도다. 결국 이코노미스트의 불길한 시나리오가 현실화할 가능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