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 22일(현지 시각) 이탈리아 밀라노 엑스포장의 한국관 레스토랑에서 유럽인들이 한식을 맛보고 있다.
지난해 10월 22일(현지 시각) 이탈리아 밀라노 엑스포장의 한국관 레스토랑에서 유럽인들이 한식을 맛보고 있다.

식품산업은 10년 후 미래 지구촌의 핵심 산업이다. 이미 전 세계적인 고령화 추세, 건강한 먹거리의 급속한 확산, 도시화와 1인 가구의 급증 등 라이프스타일의 변화에 따라 편의식품 시장이 크게 성장하고 있다. 이와 함께 식품의 품질과 안전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고 고급화와 로컬푸드의 수요가 많아지면서 미래 성장 잠재력도 매우 크다.

실제로 2015년 세계 식품산업 시장 규모는 약 5조3000억달러에 달해 세계 자동차 시장(1조7000억달러), IT 시장(2조9000억달러), 철강 시장(1조달러)보다 각각 약 2배에서 5배 이상 크다. 또 식품산업은 가까운 미래인 2018년까지 6조3000억달러 수준으로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미래 핵심산업으로 자리매김할 전망이다.


초라한 수준의 한식 글로벌 경쟁력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식품산업은 갈 길이 멀다. 반도체, 철강, 화학, 전자, 자동차 등의 글로벌 경쟁력과 비교할 때 식품산업의 현실은 더욱 초라하다. 예컨대 식품산업의 수출액 규모나 전체 수출 대비 비중으로 보면 우리나라보다 1인당 국민소득 수준이 낮은 동남아와 남미 국가들에도 크게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CJ제일제당이나 농심 등 개별적인 식품기업의 매출 규모를 보더라도 네슬레, 코카콜라 등과 비교하면 10배에서 수십배 차이가 난다. 기업의 미래를 준비하는 지표로 연구개발(R&D) 투자를 보면 2014년 기준 네슬레, 유니레버 등 유럽의 선진기업이 2% 이상, 아지노모토 등 일본기업이 3% 이상인 반면, 국내 CJ제일제당의 경우 0.4% 수준에 불과하다.

점차 국내 농식품 후방산업의 기반이 약화됨과 동시에 몬산토, 카길, 번기 등 거대한 종자, 사료 공급 및 곡물트레이딩 업체가 과점한 상황에서 우리나라는 상대적으로 전방산업, 즉 외식 및 식품 가공, 제조, 유통업에 주력해야 하는 상황이다. 예컨대 2만원인 쌀 10㎏으로 각각 햇반, 떡, 술을 만들 경우 그 경제적 부가가치는 5배, 6배, 10배로 늘어난다.

우리나라 식품산업 내수규모는 전 세계 15위 수준이다. 일본이나 독일, 프랑스에 비해 각각 8배, 6배, 4배가량 차이가 날 정도로 내수 소비시장 규모가 작다. 식품 관련 기업의 면면을 봐도 매출 100억원 미만 기업들이 전체 기업의 75%를 차지하고, 직원 50명 미만 영세기업들이 전체의 80%를 넘는 전반적으로 영세한 산업 구조를 보이고 있다. 즉, 내수시장의 질적 확대만으로는 그 절대적인 규모가 작아서 글로벌 경쟁력 확보에 한계가 있는 실정이다.

아시아 최고 레스토랑으로 선정된 태국 방콕의 ‘남’의 요리.
아시아 최고 레스토랑으로 선정된 태국 방콕의 ‘남’의 요리.

이러한 내외부적인 환경을 고려할 때 글로벌 시장을 향한 농식품 가공, 제조산업의 수출지향적 산업육성 정책이 반드시 필요한 시점이다. K-푸드 육성을 통한 미래 식품산업의 글로벌 경쟁력 강화 기반을 확립할 필요가 있다.

민족음식의 세계화 단계를 보면 확산 수준을 기준으로 크게 성숙기, 성장기, 도입기의 3개 그룹으로 나눠 볼 수 있다. 먼저 이탈리아, 프랑스, 중국, 일본은 이민자뿐 아니라 각국 현지인에 의해 다수의 음식점이 운영돼 세계 각국에서 고르게 친숙해진 성숙기 단계로 분류된다. 그리고 많은 세계인들이 음식의 주요 메뉴를 인지하고 맛에 익숙해지면서 현지인들을 타깃으로 음식점들이 세계 각국에서 운영되는 성장기의 경우 일본, 인도, 태국, 멕시코, 베트남이 포함된다.

성숙기 단계의 가까운 예로 일본의 경우를 살펴보면 1960년대 도쿄올림픽이 그 기점이다. 사실 당시 대부분의 서구 사회에서는 날생선을 기피해왔기 때문에 미국 시사 주간지 <타임>은 ‘날생선을 먹는 야만스러운 일본에서 어떻게 올림픽을 치를 수 있겠나’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을 정도로 일본 음식에 대한 편견이 있었다. 이렇게 문화적 폄훼를 받던 스시를 세계적 명품 음식의 반열에 올려 놓은 건 바로 도쿄올림픽이라는 세계적 이벤트였다.

일본 정부는 일찌감치 음식산업의 성장력을 크게 보고 국가 차원의 사업으로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였다. 특히 ‘일본의 좋은 음식 맛보세요(Try Japan’s Good Food)’ 프로젝트에서 재외공관을 전진기지로 삼아 각국의 정관계 요인들은 물론 분야별 오피니언 리더들을 타깃으로 공략하고, 신흥 성장국의 상류층을 핵심 타깃으로 삼아 확산을 가속화했다. 요컨대 일본 음식이 국제 경쟁력을 갖게 된 것은 음식산업을 하나의 중요한 문화산업으로 보고 관광산업과 조직적으로 연계해 지속적으로 세계화를 추진한 결과다.

이탈리아 음식은 가장 단기간에 세계화를 이뤘다. 20세기 초 세계대전 등으로 불안한 국내 정세에 수많은 이탈리아 국민들이 미국 등 세계 각지로 흩어지면서 피자 등 이탈리아 음식이 빠른 시간에 확산됐던 것이다. 정부 차원에서 1991년 세계 3대 요리학교로 불리는 ICIF(Italian Culinary Institute for Foreigners)를 설립, 본격적으로 셰프를 육성하는 동시에 2002년 리스토란테 이탈리아노 인증제를 실시, 세계적으로 6만여개의 이탈리아 식당에 조사원을 파견해 지속적인 품질관리에 노력을 기울여왔다.


태국 음식 세계화를 위해 추진된 ‘키친 오브 더 월드’ 로젝트.
태국 음식 세계화를 위해 추진된 ‘키친 오브 더 월드’ 로젝트.

정부 주도로 음식 세계화 성공한 태국

2000년대 이후 개발도상국 가운데 자국 음식 세계화에 가장 성공한 사례가 바로 태국이다. 태국은 정부 주도로 음식 세계화 사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식품 수출 규모는 물론 외식, 관광산업을 성공적으로 확대한 대표적 사례다.

태국은 1990년대 말 바트화 폭락과 더불어 시작된 동남아 경제위기 속에서 경제불황이 2000년대 초까지 지속되면서 경제부흥의 새로운 모멘텀이 절실히 필요했다. 이에 태국 정부는 경제부흥 5대 국가주력 산업으로 패션, 관광, 자동차, 소프트웨어와 함께 식품산업을 선정했다.

태국은 2001년 ‘글로벌 타이 레스토랑(Global Thai Restaurant)’ 프로젝트를 통해 태국 상무부 수출진흥국과 국립음식연구원을 중심으로 전담본부를 구성했다. 또 정부와 민간 공동 투자로 지주회사인 ‘글로벌 레스토랑’을 설립해 태국 식당 브랜드 수출과 고급화 관리 활동 등 태국 레스토랑의 해외 프랜차이즈화를 가속화했다.

2004년에는 ‘키친 오브 더 월드(Kitchen of the World)’ 프로젝트로 태국 요리의 표준화와 매뉴얼화를 추진했으며 상무성 산하에 같은 이름의 정부조직을 발족해 전체적인 실행을 전담시켰다. 당시 태국 음식의 세계적 대중화로 2000년을 목표로 해외 태국 레스토랑을 8000개로 증설하고 태국 음식 전문인력을 양성하고 관리하는 것이 핵심이었다. 이를 위해 태국 조리법 전파를 통해 원, 부 식자재 수출을 촉진시키고 해외 태국 레스토랑을 관광정보센터로 활용했다. 이뿐만 아니라 태국식 맛을 유지하고 세계적 기준의 서비스와 함께 태국 음식 사업을 확장했다. 당시 보라문 루앙아롬 키친 오브 더 월드 본부장은 “음식은 산업이자 문화라는 원칙을 갖고 사업을 계획했다”며 “태국 음식 확산을 통해 농수산식품산업, 외식산업, 문화관광산업 등 관련 산업을 발전시키고 국가 이미지를 증진시킬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한다”고 밝혔다. 태국국가차원의 식품산업에 대한 철학과 안목을 엿볼 수 있다.


태국 음식 세계화의 성공요인으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바로 ‘타이 셀렉트(Thai Select)’라는 인증제도다. 이 제도를 통해 태국 음식의 대중화, 품질관리, 표준화, 고용 창출, 수출 증진 등의 효과를 거둘 수 있었다. 타이 셀렉트는 해외 태국 레스토랑을 유형별로 세분화해 국가별, 계층별로 맞춤형 대중화를 하는 전략의 일환이었다. 그래서 전통방식의 정통 태국 레스토랑은 ‘트래디셔널 타이’, 외국 음식과 혼합된 퓨전 태국 레스토랑은 ‘모던 타이’, 그리고 한 가지 메뉴만 전문 취급하는 태국 레스토랑을 ‘스페셜 타이’로 구분, 관리했다. 이러한 인증 프로그램은 영구적인 것이 아니라 3년마다 정기적인 재평가를 통해 품질관리가 가능하도록 했다.

타이 셀렉트는 식당 경영주의 국적과 상관없이 영업 개시 6개월 이상의 해외 태국 레스토랑이 대상이었다. 식품위생, 태국인 셰프 고용여부, 태국 식자재 사용비율, 태국 요리 메뉴 구성비율 등의 기본 항목 이외에 인테리어, 서비스, 음식품질 등을 병행 평가했다.

특히 타이 셀렉트는 마케팅 지원, 자금조달, 인력운영 측면에서의 다양한 혜택을 통해 해외 태국 레스토랑 경영주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이끌어내는 데 성공을 거뒀다. 특히 오프라인과 온라인상에서 다양한 지원을 해오고 있는데 정기적으로 타이 셀렉트 레스토랑 대표자들을 초대해 네트워킹 기회를 제공했다. 나아가 지역별 공식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와 블로그 운영을 통해 홍보 이벤트를 진행하고 애호가들의 커뮤니티를 조성하고 있다.

이러한 10여년 이상의 지속적인 노력의 결과로 최근 태국 음식에 대한 해외 선호도가 한층 개선돼 세계 음식들 가운데 이탈리아, 프랑스, 중국에 이어서 4위에 랭크되기도 했다. 태국 소스류 수출규모는 한국 소스류 수출액의 10배가 넘고 편의식 수출규모도 1조원에 이르게 됐다.

또 태국 음식의 세계화는 유입 방문객 수와 1인당 지출액 중 식음료 비중의 지속적 증가를 유도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태국의 음식이 휴양 목적의 관광객 유치에 상당한 기여를 하는 것으로 보인다. 또 태국이 국가 브랜드 순위 관점에서 관광분야가 핵심적인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것도 태국 음식이 중추적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국내외 한식산업도 인프라 적극 구축해야

K-푸드 세계화의 지향점은 국내외 한식산업의 육성 및 진흥을 통해 고객기반을 확대하고, 생산경쟁력을 제고하는 데 있다. 따라서 K-푸드 세계화를 위해서는 명확한 사업 전략방향을 기반으로 정부와 기업 간 시너지를 창출해야 한다. 먼저 R&D 측면에서 한식의 표준화를 위한 메뉴와 조리법을 개발하고 한식의 우수성을 규명하는 부가가치 증대 노력이 수반돼야 한다. 그리고 국내외 한식당과 한식기업의 전반적 경쟁력 강화를 위한 지원이 병행돼야 한다. 또 국내외 한식산업의 기반 확충 및 시장 확대를 위해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 관광 및 서비스 산업과 손잡고 한식산업의 저변 확대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이처럼 K-푸드 세계화가 성공적으로 추진된다면 그 효과는 다양한 영역에서 기대할 수 있다.

먼저 태국의 사례처럼 농식품 수출 증대 효과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해외의 식품산업 오피니언 리더들에게 한식의 우수성을 알림으로써 한식의 수출 기회를 창출할 수 있다. 예컨대 마드리드 퓨전 2012에 주빈국으로 참가했거나 G20 총회 시 한식 홍보 행사를 개최한 것이 좋은 예다.

둘째, 관광객 유입으로 인한 관광산업 부양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한식 관광 상품을 개발하고 한식 관광 홍보 사업을 강화해 한식 관광 목적의 외국인 관광객 유입을 적극적으로 증가시켜야 한다. 예컨대 체류형 음식문화관광상품의 개발이나 외국인 한식 서포터즈 운영 등이다. AT커니의 분석 결과에 따르면 한식 관광객 유입으로 인한 한식 세계화의 경제적 파급효과는 약 1조6000억원에 이른다.

셋째, 포화된 식품 내수시장의 활로로 기업과 인력이 해외에 진출하고 특히 한식 관련 인력의 해외 진출에 도움을 줄 것이다. 한식 스타 셰프의 양성을 지원하고 해외 한식당 전문조리인력 채용 박람회와 같이 한식 전문인력의 해외 취업 제공은 물론 해외 한식당에 맞춤형 인재를 알선해줄 수 있는 기반이 더 확대돼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K-팝(POP)과 같이 K-푸드 세계화를 통해 한류를 확산하고 한국 기업의 제품 인지도와 이미지 상승 기여에 도움이 될 것이다. 경제, 과학, 인프라, 전통문화, 자연 등 8개 평가 항목으로 구성되는 국가 브랜드 순위 평가에서 우리나라는 전통문화, 자연 분야가 가장 취약한 것으로 평가됐다. 내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국가브랜드위원회 조사 결과에 따르면 한식, 한글, 한복, 국악 등 한국의 전통문화 가운데 세계화에 가장 적합한 후보로 단연 한식을 손꼽는다. 외국인에게는 한국의 전통문화는 한식이라는 인식이 지배적일 뿐 아니라 우리나라의 전통문화 가운데 상대적으로 경제적 상품성이 가장 큰 것으로 분석됐다.


▒ 심태호
연세대 경영학과 및 동대학원, 시카고대 경영대학원, 현 AT커니 서울오피스 파트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