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유가 폭등으로 에너지 기업들 관심

   

‘셰일’ 관련 기술 ∙ 기업 사들이기 ‘한창’

언제부터인가 우리 시대는 디지털의 시대로 규정되고 있다. 이 때문에 디지털이 아닌 것은 돈벌이도 안 되고 장래성도 없는 것으로 여겨진다. 온통 사람들의 관심은 디지털에 집중돼 있다. 최근 출시된 아이폰 4S가 연일 화제가 되는 것도 이런 경향과 다르지 않다.



그런데 이런 디지털 시대에 이전부터 있어왔던 한 분야가 최근에 와서야 각광을 받고 있다. 앞으로 장래성도 크다. 미래의 에너지원이라는 칭송까지 받는다.



바로 이판암을 다루는 기술이다. 이판암이란 수성암, 즉 물로 인해 퇴적되면서 오랜 세월이 지나 암석이 된 것으로 혈암(頁岩)이라고 불린다. 영어로는 ‘shale(셰일)’이라고 한다.



이런 셰일은 진흙, 즉 점토 외에 머금고 있는 물질이 다양하다. 가연성 물질을 머금은 경우 예전부터 연료로 사용하기도 했다. 우크라이나 등지에서는 셰일에 불을 붙여 마치 조개탄처럼 사용했다고 한다.



셰일에는 평균 10%의 원유가 포함돼 있는데 이를 ‘셰일오일’이라고 한다. 이 셰일오일은 전 세계적으로 약 2조5700억배럴이 존재한다. 매장 원유와 달리 별도의 추출·정제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생산단가가 비싸고, 부산물 처리 비용이 많이 들어 폭넓게 실용화되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기술 발달과 원유가격 폭등으로 셰일오일 산업이 각광을 받고 있다.

- 셰일에는 원유가 포함돼 있어 불이 붙는다.
- 셰일에는 원유가 포함돼 있어 불이 붙는다.

전 세계 약 2조5700억 배럴 존재

최근 선진 각국이 석유성분이 들어 있는 셰일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미국 내에서도 천연가스나 석유를 머금은 셰일에 대한 관심이 많고, 셰일에서 가스나 석유를 추출할 수 있는 기술은 엄청난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셰일오일 산업이 각광을 받으면서 거대 에너지기업들이 셰일 관련 기술을 가진 회사 자체를 거액에 사들이고 있다. 최근 셰일에서 연료성분을 뽑아내는 기술을 가진 브링햄 엑스플로레이션이라는 회사는 노르웨이의 스타토일 ASA에 무려 44억달러에 팔렸다.



미국이 이라크를 점령했을 당시 가장 먼저 들어가 에너지원 확보에 나섰던 헬리버튼도 셰일오일 분리기술로 지난 3분기에만 무려 65억달러를 벌어들였다. 이 회사는 딕 체니 전 부통령과 관련된 각종 특혜시비에 휩싸였으나 셰일오일 관련 기술로 돈벌이하는 발빠른 변신술을 과시하고 있다.



최근 콜로라도주 지역에서는 이른바 모래 가운데 석유성분을 포함한 ‘오일샌드(Oil Sand)’가 주목을 받고 있다.



셰일이나 모래에서 석유를 추출하는 비즈니스가 각광을 받고 있는 것은 최근에야 경제성을 확보했기 때문이다. 이전에는 유전을 제대로 개발하는 것이 더 경제적이었다. 유가는 배럴당 30~40달러에 불과했다. 그때는 모래나 셰일에서 석유나 천연가스를 뽑아내는 비용이 유전을 개발하는 것보다 더 비쌌다.



그러나 원유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으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오일샌드나 셰일은 원유가가 배럴당 60달러를 넘어서면 경제성이 있는 것으로 추산되는데, 현재 텍사스산 중질유 가격은 배럴당 80~100달러선이다. 이 때문에 셰일오일이 채산성을 가지게 됐다. 모래나 셰일에서 석유를 뽑아내기만 하면 돈이 된다는 얘기다.



현재 미국 내에서는 이같은 셰일 처리 기술로 석유산업과 가스생산 시설들이 다시 호황기를 맞고 있다. 이들에서 추출한 원유나 가스를 저장해 운송하고 이를 처리해 판매하는 모든 연관 산업들이 다시 부상하고 있다.



유가가 오른다며 걱정하고 이를 탓하기만 했던 미국 정부도 이러한 새로운 비즈니스가 반가울 수밖에 없다. 비록 다른 대체에너지 기술개발 노력이 분산되고, 기술과 인력이 흩어지는 영향을 받았지만 최대 현안인 고용과 세수를 발생시킨다는 이유에서다.



셰일 관련 기술은 해외로 수출까지 한다. 그저 땔감 정도로만 사용하던 폴란드나 아르헨티나 등에서도 새로운 비즈니스의 기반이 되고 있다. 지난 3년 동안 셰일 관련 기술을 연계시키는 계약을 성사, 무려 750억달러의 수익을 올린 제프리스 앤드 코의 랄프 에즈 부사장은 “셰일에서 석유와 가스를 추출하는 기술로 인해 미국 내에서는 셰일의 채광지 발굴과 채굴기술의 적용 등의 분야가 새로운 부의 원천으로 기록될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부의 원천이라는 지칭에 걸맞게 지난 2년 동안 이 부문에서 창출한 부의 규모는 무려 2920억달러에 달한다. 미국 기업들이 앞다퉈 이 시장에 뛰어드는 것도 이 때문이다.



최근 원유 파이프라인 거대기업인 킨더 모간(Kinder Morgan)은 셰일오일 기술 관련 업체인 엘 파소를 211억달러에 매입, 이 분야에 진출을 적극 모색하고 있다. 이 회사는 셰일오일 비즈니스가 단기간 내에 끝나는 사업이 아니며 앞으로 만들어진 원유나 가스의 분배사업까지도 연관되는 거대 산업군이라는 점을 인식한 것이다.



노르웨이의 스타토일ASA가 브링햄 익스플로레이션을 인수한 이유 역시 미국 내에 셰일오일 정제기술 사업에 진출하기 위한 사전포석이다. 이 회사는 노스다코타주 바켓 셰일 지역의 자산권을 취득했다.



에너지 관련 회사들 가운데 셰일오일 산업에 뛰어드느냐 혹은 이를 외면하느냐에 따라 운명이 달라질 정도로 셰일오일 산업의 영향력은 막강하다.



체사피크에너지의 경우 최근 54곳의 셰일층 개발지역을 탐사하면서 무려 128억달러의 수익을 올렸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던 중소기업인 체사피크는 셰일 덕분에 지금은 시장가격이 180억달러에 달하는 거대 회사가 됐다.



지난 2001년에 셰일오일 산업에 뛰어든 데본에너지는 최근 50층짜리 본사 건물을 짓고 있다. 이밖에도 베이커 휴지스, 슈럼버거 등은 최근 셰일오일 정제를 위한 수요를 충족시키면서 막대한 수익을 올리고 있다.



반면 오클라호마주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원유채취 전문기업이던 커 맥기(Kerr-McGee)는 셰일오일 산업을 외면하다 결국 아나다코정유(Anadarko Petroleum)에 인수·합병됐다.



이처럼 셰일오일 산업은 여기저기서 거대한 부자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마치 영화 <자이언트>에서 석유개발로 거대 갑부가 나왔듯이 말이다. 텍사스 레인저스의 새로운 구단주가 된 봅 심슨도 셰일오일 관련 회사인 XTO를 엑손모빌에 250만달러에 매각, 거대 갑부 반열에 올랐다.

- 불 붙고 있는 셰일.
- 불 붙고 있는 셰일.

환경오염 문제 논란일 듯

그러나 셰일오일 산업에도 한 가지 큰 제약이 있다. 셰일오일을 추출 ∙ 정제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공해물질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정부의 규제와 환경단체들의 반대여론, 그리고 실제 환경법규에 따른 대기환경과 토질·해양오염의 기준위반 논란 등이 앞으로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에너지 전문가인 존 올슨은 “셰일오일이 청정 에너지원인 것은 틀림없다”고 말하면서도 “그렇다고 이것이 100% 유익하다는 것은 아니며, 이에 따른 후유증은 아마도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 가려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