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맹주들

    

전국 브랜드화 총공세 나서

<일러두기>

1.
 현대 중국의 인명 및 지명, 중국의 고유명사는 중국어 발음대로 표기했다. 단,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고유명사는 한자 독음대로 표기하였다.

 <예> 毛澤洞 마오쩌둥 西安 시안 / 長江 장강 杏花村 행화촌

2. 술 이름의 경우에도 중국어 발음대로 표기해야 하나 우리에게 익숙한 술에 한해서만 그렇게 했다. 여타의 술은 발음이 어렵거나 의미 전달이 잘 되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에서 한자 독음으로 표기했다. <예> 茅台酒 마오타이주 五粮液 우량예 / 黃鶴樓酒 황학루주 劍南春 검남춘

3. 신 중국 수립(1949년)을 기준으로 그 이전의 인명 및 지명은 한자 독음대로 표기했다. <예> 李白 이백 杜甫 두보 南京 남경



중국 배갈 시장에서도 기업 간의 빈부 격차는 심하다. 한 해 100억위안(元)의 매출을 올리는 거대기업이 있는가 하면 100만위안의 매출액으로 만족해야 하는 영세기업도 허다하다. 통계에 따르면 2010년 현재 중국 전역의 배갈기업 숫자는 3만개가 넘는다. 이 중 최근 4년간 중국 배갈 시장에서 연간 1억위안 이상의 매출액을 기록한 배갈기업은 130여개에 불과하다. 연 매출액 500만위안을 넘긴 백주 회사도 1500여개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밝혀졌다.



거대기업은 거대기업대로 더 큰 시장을 확보하기 위해 막대한 물량을 쏟아붓는가 하면 중소기업들은 그들대로 더 나은 시장 조성과 생존을 위해 안간힘을 다해 싸우고 있는 것이 오늘날 중국 배갈 시장의 현실이다. 이 자리에서는 중국 배갈 시장의 대강 판도를 둘러보면서 특히 약진을 거듭하고 있는 중대형 배갈회사들의 형세를 살펴보고자 한다.

1. 형수노백간의 고가 브랜드인 18주방 2. 백운변주 3. 백운변주 포장 공정
1. 형수노백간의 고가 브랜드인 18주방
2. 백운변주
3. 백운변주 포장 공정

매출액 20억위안 브랜드의 기회와 좌절

일종의 코드에 지나지 않지만 오늘날 중국 배갈 시장에서는 연 매출액 20억위안을 하나의 분기점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즉 매출액이 20억위안에 달하면 비로소 전국 규모의 브랜드라고 할 수 있고 그렇지 못한 경우에는 지역에 한정된 브랜드로 평가하는 것이다. 그동안 이 지면에서 소개한 이른바 중국의 국가 명주들 가운데도 20억위안 매출액에 도달하지 못한 브랜드들이 여럿 있음은 물론이다.  



최근의 자료에 따르면 2010년 기준으로 연 매출액이 20억위안 안팎에 달하는 배갈 기업군은 다음과 같다. 산시성(陝西省)의 ‘서봉주(西鳳酒)’, 허베이성(河北省)의 ‘형수노백간(衡水老白干)’, 안후이성(安徽省)의 ‘고정공주(古井貢酒)’, 북경의 ‘우란산(牛欄山) 이과두주(二鍋頭酒)’와 ‘홍성(紅星) 이과두주’, 장시성(江西省)의 ‘사특주(四特酒)’, 허베이성의 ‘백운변주(白云酒)’ 등이다.



이들 중 서봉주, 고정공주는 국가 명주로 따로 소개한 바 있으며 우란산 및 홍성의 이과두주는 이과두주 부분에서 언급을 했다. 



‘형수노백간’은 허베이의 헝수이(衡水) 지역에서 생산되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이 중국 백주를 ‘배갈’이라고 부르게 된 연유가 바로 이 술에 있었다. 16세기 이곳의 노동자들이 지역 특산의 술이 지극히 맑고 자극적이라 해서 ‘백간(白干)’이라고 불렀고 이의 중국식 발음에서 배갈이라는 호칭이 나오게 됐던 것이다. 이 술은 한국전쟁 때 공식적으로 중공군에게 지급됐던 술로도 유명하다. 



‘사특주’는 중국 술 문화의 한 발원지인 장시성 장수시(樟樹市)에 본사를 두고 있다. 청() 때 이곳의 한 양조장에서 오랜 기간에 걸쳐 향이 짙으면서도 깨끗한 술을 빚어냈는데 소비자에게 크게 환영받았다. 양조장에서는 유사품을 방지하기 위해 술항아리의 마개 부분과 바닥에 네 개의 ‘특(特)’자를 붙였다. 술 이름이 여기서 유래됐다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술의 몸체가 금강석처럼 빛나고, 향기가 사람을 매혹하며, 술맛이 부드럽고 달면서도 잡티가 없는 데다 술의 기운이 몸과 마음을 북돋운다고 해서 사특주라는 이름을 가졌다는 주장도 있다. 1959년 주은래(周恩) 당시 총리가 루산에서 이 술을 마셔보곤 “맑고(淸) 향기로우며(香) 진하고도(醇) 순수하다(). 그리고 감치는 맛이 무궁하다”고 칭찬했다는 일화도 가지고 있다.



후베이성 송즈시(松滋市)에서 생산되는 ‘백운변주’는 시선(詩仙) 이백의 시 한 편에서 술 이름이 유래되었다. 당 숙종(肅宗) 때(759년)이백의 먼 친척뻘인 형부시랑(刑部侍) 이엽(李曄)이 좌천을 당해 악주(岳州)를 지나다가 이백을 만났다. 때마침 이곳에는 이백의 친구인 가지(賈至)가 유배생활을 하고 있었다. 세 사람은 다 같이 하늘 끝에서 떠도는 처지들이었기에 만나자마자 의기투합하여 동정호로 단풍놀이를 갔다. 그날의 놀이에서 얻은 시가 천년을 두고 사람들 입에 회자되는 명편이 되었다.

남녘 가을 호수에 밤이 오니 물안개도 걷히네.

(南湖秋水夜無烟)

마음 같아서는 물결을 타고 곧장 하늘로 오를 것 같아

(耐可乘流直上天)

게다가 동정호가 달빛을 외상으로 얻었으니

(且就洞庭月色)

배를 부려 흰 구름 끝에 가서 술도 사야 하리.

(將船買酒白雲邊)

- 양하남색경전
- 양하남색경전

‘양하남색경전’과 ‘낭주’의 약진

2002년 이래 지금까지 중국 배갈계에서는 전국적인 시장을 가진 회사와 일정 지역을 고유 영역으로 확보한 유수한 술 회사들이 크게 두각을 나타냈다. 이들 회사는 체계적이고 단계적인 전략으로 시장에 접근했으며 사회 변동에서 오는 기회를 최대한 활용하는 한편 강력한 영업 능력으로 공격적인 마케팅을 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2008년에 이르러 중국 배갈 시장에서는 20개에 가까운 기업들이 무리를 지어 연 매출액 15억위안급 기업으로 성장했다. 이들에게도 하나의 공통점이 있는데 그것은 자기네 상품이 강세를 보이는 특정 영역을 집중적으로 공략하여 성공을 거두었다는 점이다. 물론 다른 많은 기업들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시장의 전국화 전략을 도입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특정의 소수 기업들만이 이 전국화 전략에서 효율적인 전과를 올렸다.‘양하남색경전(洋河藍色經典)’과 ‘낭주(郎酒)’가 바로 이 소수의 전형이며 대표가 된다. 장쑤성(江蘇省)을 대표하는 양하 술과 마오타이주의 사촌이라고 일컫는 쓰촨성(四川省)의 낭주는 일찌감치 국가 명주의 반열에 들었지만 10여년 전까지만 해도 자기 지역의 경계를 넘지 못하는 영세 브랜드에 지나지 않았다. 그렇지만 푸른 색깔의 날렵한 도자 술병의 양하 술이며 호리병 모양의 붉은 낭주의 술병은 어느새 우리나라 사람들에게까지 친숙한 것이 되었다.



‘양하남색경전’을 대표 브랜드로 했던 양하 술은 지난해부터 ‘몽지남(夢之藍)’ ‘천지남(天之藍)’ ‘해지남(海之藍)’ 등 개별 브랜드를 전면에 내세워 공격적인 마케팅을 하고 있으며 낭주 역시 고가의 ‘홍화랑(紅花郞)’을 선두에 세워 배갈 시장을 흔들고 있다.



양하며 낭주 같은 회사가 얻은 결과는 우연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시장의 집중도에서 올린 필연적인 것이다. 그리고 20대80의 원리적인 규율성을 잘 소화한 결과이기도 하다. 여기서 말하는 20은 자기 영역 밖의 전국 시장에서 얻은 매출액이며 80은 자기 영역의 매출액이다. 이로써 소수 그룹에 드는 양하와 낭주가 쾌속으로 연 매출액 30억위안을 돌파하였으며 2010년에는 50억위안까지 근접하게 됐다. 벌써부터 양하와 낭주는 100억위안급의 최상위 그룹에 들겠다는 의욕을 보이며 가속도를 내고 있다.



그러나 20억위안 안팎에 있는 그 밖의 기업들은 발전 속도가 퍽 느린 편이다. 당초에 표방했던 전국화의 열의와 효과가 많이 꺾였을 뿐 아니라 발전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겪게 마련인 병목현상의 걸림돌을 맞이했기 때문이다. 이는 어느 한두 기업이 가지는 곤혹감이 아니라 20억위안급 기업들이 가지는 공통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중국 업계에서 제시하는 그 문제점들을 간추려 기술하면 다음과 같다. 1. 이미 얻었던 강세 지역의 시장을 계속 키워 나갈 힘이 달린다. 2. 열심히 소문내 끌어올렸던 브랜드가 이미 소비자들에게 익숙해져 버렸다. 가격도 투명해져서 새 판로를 열어나갈 적극성이 떨어진다. 3. 그 사이 영업 원가가 계속 올라갔다. 4. 다른 지역으로 시장을 확장하면 할수록 효과는 미미하다. 5. 영업 인력이 가졌던 참신한 능력이 떨어지고 긴장도가 덜해졌다. 6. 우수 영업점의 충성도가 부분적으로 동요하기 시작한다.

- 1. 지강주 2. 사특주 3. 총태주
- 1. 지강주 2. 사특주 3. 총태주

‘지강주’, ‘도화향주’의 눈부신 도전

2006년 이전까지만 해도 일류 브랜드를 칭하면서도 전국적인 브랜드 또는 시장의 전국화를 꾀한 브랜드는 그리 많지 않다. ‘마오타이주(茅台酒)’ ‘우량예(五粮液)’ ‘검남춘(劍南春)’ ‘루저오라오자오(蘆州老)’ 등 몇 개의 상품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이후 수년간의 치열한 경쟁을 거치면서 ‘낭주’와 ‘양하남색경전’ 등이 이들 금자탑 그룹에 소수로 끼어들었다.



이밖에 자신들의 고유 영역 밖으로 시장 확장을 꾀하여 톡톡히 재미를 보았던 일부 브랜드들이 전국화 그룹의 후발대를 형성했는데 ‘지강주(枝江酒)’ ‘도화향주(稻花香酒)’ 등이 그 대표다.



‘지강주’는 후베이성(湖北省) 즈장시(枝江市)에 본사를 두고 있는데 즈장은 양쯔강에 있는 산샤(三峽)의 동쪽 관문이 된다. 이 술은 형초(荊楚)의 술 문화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데 이는 곧 술이 품격에 닿아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는 또 곡식주의 다섯 가지 풍격, 즉 진하면서도 산뜻하고, 두터우면서도 강렬하지 않고, 감치는 맛이 길게 오래 가며, 세밀한 맛이 빼어나고, 뱃속 가득 향기를 채운다는 특색을 갖추고 있음을 의미한다.



‘도화향주’는 지강주와 지척의 거리를 두고 있다. 회사가 있는 허베이성 이창시(宜昌市) 롱췐진(龍泉鎭)은 중국이 국력을 기울여 건설하고 있는 산샤댐의 동쪽에 있으며 여기서 즈장까지는 100여리밖에 되지 않는다. 도화향 배갈들은 그 독특한 양조기술과 완전한 제품보증 체계로 넓은 소비층의 사랑을 받고 있다. 도화향주는 다섯 가지 곡식, 즉 붉은 수수와 밀, 쌀, 찹쌀, 옥수수 등을 원료로 하며 독특한 ‘포포곡(包包曲)’이란 누룩을 당화발효제로 쓴다. ‘용안(龍眼)’이라고 부르는 광천수를 사용하며 진흙 구덩이에서 발효과정을 거친다. 

- 낭주
- 낭주

궁지에 빠진 지역 브랜드들의 반격

이들 산샤의 술은 자기네 영역 밖에서 또래의 20억위안급 브랜드들을 강력하게 공격하면서 자신들의 세력을 확장해 나갔다. 일찌감치 허베이(河北) 시장을 석권해 이미 30억위안급으로 몸집을 키워놓고 있던 ‘형수노백간’의 시장을 일정 부분 제압하면서 쾌속으로 성장한 ‘우량예’ 계열의 ‘오량순(五粮醇)’, 그리고 ‘낭주’ ‘양하남색경전’ 등과 같은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생존의 위협이 증대되는 가운데 상당수의 지역 브랜드들은 남아 있는 모든 힘을 다해 험난한 반격을 하고 있다. 이들도 이미 자기 지역에서 위세를 떨치고 있는 20억위안급 브랜드들로부터 자기 신분을 한 단계 올리는 영업 전략을 학습한 바가 있었다. 브랜드 통합의 쌍품패(品牌) 전략과 같은 것이 대표적인데 이들 지역 기업들도 자원과 전략 운용상의 유리한 점은 모두 갖추고 있다.



허베이성 한단시(邯市)의 경우, ‘형수노백간(衡水老白干)’과 이 회사의 또 다른 고가 브랜드 ‘18주방(十八酒坊)’이 최근 몇 년 동안 시장에 돌풍을 일으키면서 확고한 우위를 확보하였다. 때문에 이곳의 터줏대감을 자처했던 지방 브랜드 ‘총태주(叢台酒)’는 날로 그 세가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한단과 헝수이(衡水)의 거리는 우리네 서울~대전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총태주’는 역사의 도시 한단에서 생산되는 술인데 술 회사가 전국시대 조(趙)나라 왕실 정원인 ‘총태(叢台)’ 부근에 있다고 해서 이런 술 이름을 가졌다.



송나라 사람 장능신(張能臣)이 쓴 ‘한단풍곡법주(邯風曲法酒)’는 고대 중국 증류주의 한 전형으로 일컬어진다. 명대(明代)에는 이곳 양조장 정원증소방(貞元增燒坊)이 이름을 날렸는데 청대(代)에 와서 이 술은 전국적인 명성을 얻었다.



청의 건륭 황제가 총대 행궁에서 술을 마시며 놀다가 즉흥으로 “좋은 술은 만 년을 취해도 괜찮다(美酒十千醉不)”는 시를 읊은 덕분이었다. 지금도 총태주는 ‘정원증(貞元增)’을 상표로 쓰는 등 유구한 향토 역사가 자기네 술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음을 최대한 선전하고 있다. 이 술은 화북 특산의 붉은 수수를 원료로 하며 밀로 누룩을 만든다. 쌀겨를 부재료로 쓴다.



총태주는 생존을 위해서 기존의 총태주계와 정원증계를 통합하는 쌍품패 전략을 도입하였다. 이것이 효과를 보아 최근 총태주와 정원증주는 활력을 되찾고 있다. 이는 형수노백간과 18주방이 한단 지역에 구축해 놓은 공간을 파고들면서 혈전을 벌인 결과이기도 하다.

 

최학 소설가 · 우송대 교수

필자 최학 교수는 1973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당선으로 등단했고, 1979년 한국일보 장편소설 공모에 역사소설 <서북풍>이 당선되면서 큰 주목을 받은 중견 소설가다. 대표작으로 <서북풍>, <미륵을 기다리며>, <화담명월> 등이 있으며, <배갈을 알아야 중국이 보인다>, <니하오 난징> 등 중국 관련 저서도 있다. 현재 우송대 한국어학과 교수로 많은 중국인 학생들을 가르치며 한·중 양국간 교류에 일조하고 있다. 네이버에 ‘배갈, 白酒의 향과 맛을 찾아 (
http://blog.naver.com/jegang5)’라는 블로그를 운영하며 배갈 대중화 작업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