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뉴욕 맨해튼 헤럴드 스퀘어에 위치한 메이시 백화점의 경우 새벽 5시부터 시작했던 예년에 비해 자정부터 시작한 2012년에는 약 2000여명 더 많은 쇼핑객들이 몰려 쇼핑을 즐겼다. 사진은 미시간주 플린트의 완구전문점 토이저러스 앞.
미국 뉴욕 맨해튼 헤럴드 스퀘어에 위치한 메이시 백화점의 경우 새벽 5시부터 시작했던 예년에 비해 자정부터 시작한 2012년에는 약 2000여명 더 많은 쇼핑객들이 몰려 쇼핑을 즐겼다. 사진은 미시간주 플린트의 완구전문점 토이저러스 앞.

추수감사절(Thanksgiving Day) 다음날인 블랙프라이데이(Black Friday Day)는 자본주의가 낳은 또 하나의 카니발이라고 불린다. 미국 전역의 유명 백화점들과 쇼핑몰들은 쇼윈도마다 대형 세일 팻말을 걸고 대대적인 바겐세일을 한다. 넘쳐나는 쇼핑객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휘황찬란하게 상점을 장식한다. 전문 DJ를 고용해서 상점 밖 거리를 지나가는 행인들까지 몸을 들썩이게 하는 신나는 음악을 틀어주고 쇼핑객들은 그 음악에 맞춰 춤을 추면서 쇼핑을 한다. 각종 이벤트들은 미국 전역을 거대한 축제의 장으로 만든다. 이들 이벤트 가운데 단연 독보적인 행사는 미국은 물론 전 세계에 방송되는 ‘메이시 쌩스기빙 퍼레이드’다. 이 퍼레이드는 맨해튼 헤럴드스퀘어에 위치한 메이시백화점이 주관한다.

전통적으로 추수감사절 다음날인 블랙프라이데이의 하루 매출은 1년 매출의 20~30%를 차지한다. 이 날의 매상은 크리스마스 이후 세일기간까지 나머지 연말 대목을 대비하는 기준이 된다. 이날 매출실적이 좋은 경우 세일 가격을 그대로 유지하거나 상향조정하고 상품생산을 더 늘리지만 실적이 예상보다 저조한 경우 이후 크리스마스 대목까지의 세일 가격을 더 낮추고 재고물량을 줄인다.

‘블랙프라이데이’의 여러 유래 중 가장 설득력 있는 것은 회계상의 용어에서 비롯됐다는 설이다. 미국인들이 1년 중 가장 많은 소비를 하는 시기가 추수감사절이기 때문에 그 다음날인 금요일은 각 매장마다 대대적으로 할인판매를 실시했고 그동안 적자였던 매장의 매출을 흑자로 전환시킨다는 의미에서 블랙프라이데이라는 용어가 생겨났다는 것. 또 다른 설은 금요일에 있었던 극심한 교통체증에서 유래됐다는 것이다. 지난 1965년 추수감사절 다음날인 금요일 필라델피아에서는 연말 선물을 구매하기 위해 집을 나선 사람들과 당시 큰 인기를 끌던 육·해·군 간의 정기전을 찾아 나선 인파로 거리는 극심한 교통체증을 빚었다. 이날 교통체증을 겪은 버스운전사와 택시운전사들이 짜증 섞인 말로 블랙프라이데이라고 불렀다는 것이다.

수년전 등장한 ‘사이버 먼데이’(연휴가 끝난 후 일상 생활에 복귀한 소비자들의 온라인 쇼핑이 급증하는 데서 유래)라는 신조어에 이어 올해는 ‘블랙 서스데이(Black Thursday)’라는 신조어까지 생겨났다.

그동안의 장기 불황과 ‘재정절벽’의 위기에 설상가상으로 허리케인 ‘샌디’의 여파까지 겹쳐 소비 위축을 우려한 메이시백화점 등 대형 유통업체들이 추수감사절 하루 전날인 목요일 저녁부터 세일에 돌입했다. 미국 전역에 200여개 백화점 매장을 갖고 있는 메이시백화점은 새벽 5시부터 블랙 프라이데이 세일을 시작하는 전통을 깨고 목요일 밤 자정부터 세일에 나섰다.

특히 전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뉴욕 맨해튼 헤럴드스퀘어에 위치한 메이시 백화점 본점의 경우 예년에는 새벽 5시부터 시작했던 세일행사에 약 7000여명의 쇼핑객들이 밤새 줄을 서서 입장했다.

블랙프라이데이를 맞아 미국의 백화점과 쇼핑몰이 손님들로 붐비고 있다.
블랙프라이데이를 맞아 미국의 백화점과 쇼핑몰이 손님들로 붐비고 있다.

평판 TV 불과 4분의 1 가격에 구입
이에 비해 추수감사절 당일 자정부터 시작한 2012년에는 약 9000여명이 줄을 서서 대기해 심야 쇼핑을 즐겼다. 밤늦게까지 데이트와 파티를 즐기던 젊은 쇼핑객들과 낮에는 전 세계에서 몰려든 관광객들의 행렬과 바쁜 스케줄로 쇼핑할 시간을 내기 어려웠던 뉴요커들은 비교적 여유롭게 저렴한 가격으로 가족·친지들을 위한 크리스마스 선물을 구입할 수 있었다며 만족해했다. 다른 유통업체들은 세일 물품의 수량과 종류를 시간대별로 나눠서 판매해 쇼핑객들을 분산시키는 전략을 구사했다.

그런데 왜 미국인들은 다른 나라 소비자들은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블랙프라이데이에 열광하는 것일까. 무엇보다도 4분의 1의 파격적인 가격에 꼭 필요한 물건을 구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많은 쇼핑객들이 몰리는 만큼 사고가 일어날 가능성도 크다. 지난 2008년 블랙프라이데이에는 뉴욕의 롱아일랜드 지역에 있는 월마트 백화점 입구에서 매장 종업원이 몰려든 쇼핑객들에 압사 당하는 사고가 발생한 바 있다.
많은 쇼핑객들이 몰리는 만큼 사고가 일어날 가능성도 크다. 지난 2008년 블랙프라이데이에는 뉴욕의 롱아일랜드 지역에 있는 월마트 백화점 입구에서 매장 종업원이 몰려든 쇼핑객들에 압사 당하는 사고가 발생한 바 있다.

수많은 미국인,특히 남성들은 이 기간에 슈퍼볼 경기를 보기 위한 수천달러대의 대형 평판TV를 구입하려고 1년 내내 이날을 벼르고 기다린다. 기타 생활 용품과 의류의 할인폭도 정가의 50~75%나 된다. 업스테이트 뉴욕에 위치한 우드베리 아웃렛의 경우 추수감사절마다 인근 뉴욕 뉴저지주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5~6시간의 밤샘 드라이브를 마다하지 않고 몰려들어 인근 고속도로는 교통체증으로 몸살을 앓는다. 해마다 재미교포들과 한국에서 온 관광객들이 아예 관광버스를 대절해 이날 이른 오전부터 매장을 싹쓸이 하는 광경을 볼 수 있다.

2012년 블랙프라이데이 역시 미국 전역의 유통 매장들은 광적인 쇼핑객들로 북새통을 이뤘고 이에 따라 크고 작은 사건 사고가 줄을 이었다. 이렇게 도소매업자들에게는 연중 최고치의 매출을 이끌어냄으로써 각자 사업을 반전시키는 전기가 되며, 향후 미국 경제를 가늠해볼 수 있는 중요한 척도이면서 소비자들에겐 좋은 물건을 싼 값에 구입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반면 부정적인 측면도 크게 드러나는 행사이기도 하다.

지난 2008년 블랙프라이데이 사고는 아직도 많은 사람들의 기억에 남아 있다. 세일이 시작된 그해 11월28일, 뉴욕의 롱아일랜드지역에 있는 월마트 백화점 입구에서 이 매장 종업원이 몰려든 쇼핑객들에 압사당하는 사고가 발생한 것. 당시 월마트에서 일하던 이 30대 종업원은 개점시간인 오전 5시 한꺼번에 밀려든 인파들에 떠밀려 바닥에 넘어져 밟혔다. 이후 급히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사망했다. 이날 사고 현장에서는 임신한  28세 여성과 손님 3명도 부상당했다.

어쨌거나 미국 유통업체는 블랙프라이데이를 기점으로 시작되는 연말 쇼핑 시즌의 매출이 1년 매출의 20〜30%를 차지하기 때문에 이처럼 사활을 걸며 판매 경쟁을 펼친다. 연말 휴일 쇼핑 시즌의 출발을 알리는 중요한 날이기 때문에 대대적인 마케팅으로 손님들을 끌어 모은다.

블랙프라이데이의 혜택을 누리는 사람들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매장들이 크게 홍보하는 것과는 달리 세일제품의 수량이 극히 적은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블랙프라이데이의 혜택을 누리는 사람들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매장들이 크게 홍보하는 것과는 달리 세일제품의 수량이 극히 적은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블랙프라이데이 매출로 크리스마스 시즌까지의 매출이 윤곽이 잡히기 때문에 블랙프라이데이 다음주 월요일 증시에서는 각 업체들의 주가가 요동친다. 한 달 반 사이 반짝 매출을 위해 유통업체들은 파트타임 직원들을 대거 고용해 이 기간 동안 비정규직 고용이 수십만명 이상 증가하는 현상도 나타난다.

그러나 이렇게 파격적인 가격할인으로 매년 광적인 쇼핑 열기를 가져오는 블랙프라이데이가 실제로는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한 경우가 많다는 지적도 있다. 문을 열기 몇 시간 전부터 혹은 전날부터 밤을 새는 노력을 기울인 이른바 도어버스터(Door Buster)들 중 아주 적은 일부만이 혜택을 받을 뿐, 대부분은 고생한 보람을 느낄 만큼 실속 있는 제품 구입을 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속임수’는 매장들이 크게 홍보하는 것과는 달리 미끼용 세일제품의 수량이 극히 적은 경우다. 40인치 HD TV를 499달러에 판매한다는 광고를 보고 밤을 새는 수많은 고객 중 실제로 할인 제품을 사게 되는 경우는 4~5명에 불과하다. 월마트나 베스트바이 같은 대형 매장에도 이 같은 파격 할인 제품은 평균 4~6대밖에 없기 때문이다. 밤샘 수고를 하고 이미 매장에 들어온 사람들이 다른 물건이라도 구입할 것을 노린 전형적인 상술이다. 게다가 일반 신제품이 아닌 블랙프라이데이용 상품도 있다.

“유통업체들 미끼 상품으로 소비자 현혹”
CNN머니는 “블랙프라이데이 세일로 홍보된 일부 LCD 제품 모델명을 회사 웹사이트에서는 발견할 수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세일 기간 중 가장 인기있는 품목 가운데 하나인 보석류의 경우 금값 폭등시기에는 제조원가를 낮추기 위해 도금 제품을 마치 순금인 것처럼 허위 광고해 소비자를 현혹시킨 사례가 많이 적발됐다.

그래서 2012년 월마트 등은 이 같은 비난 여론에 대비해 일정 물량 이상을 보장하겠다며 미리 대대적인 광고를 내보내기도 했다. 이와 관련, <월스트리트저널>은 블랙프라이데이 등 연말 세일기간은 실제로 좋은 제품을 값싸게 구입하기에 가장 적합한 시기가 아닐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유명한 유통업체들이 각종 매체를 통해 광고하는 높은 할인율에 소비자들이 현혹되지만 실제 평균 가격을 따져보면 그다지 현명한 소비가 아니라는 지적이다. 2011년 월마트가 추수감사절 당일 저녁부터 세일을 시작한 이후 2012년 들어 메이시, 시어스, 타겟 토이저러스 등 대형 유통업체가 이에 동참한 데 대해 쌩스기빙 본래의 정신을 훼손한다는 비난의 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가족들이 함께 저녁식사 테이블에 둘러앉아 서로 사랑을 나누는 쌩스기빙 본래 정신을 훼손하고 가족들을 쇼핑몰로 내몰고 있다는 것이다.

1620년 메이플라워호(The Mayflower)를 타고 온 영국의 순례자 가운데 살아남은 생존자들이 인디언들의 도움으로 농사를 지어 첫해의 수확으로 1621년 인디언들과 함께 모여 감사하며 최초의 쌩스기빙 디너를 나눈 곳은 매사추세츠 플리머스다.

이 같은 순례자들의 개척정신과 감사의 마음을 나누는 쌩스기빙의 의미를 지키고 축하하자는 취지로 메사추세츠주를 비롯한 메인주 뉴잉글랜드주, 로드아일랜드주 등에선 금요일 자정 혹은 새벽 1시까지 모든 상점들이 문을 닫도록 하는 법(Blue Laws)을 적용해오고 있다.

물론 이들 지역에서도 저렴한 가격에 원하는 물건을 구입하고자 하는 소비자들은 인근의 다른 주로 쇼핑 여행을 떠난다.
이에 대해 업계는 손님을 다른 주에 뺏기므로 결과적으로 업계뿐 아니라 시정부나 주정부의 세금 수입에도 지장을 초래한다며 시정을 요청하고 있다.

그러나 상당수의 미국인들은 상술에 밀려 가족들이 쌩스기빙 디너 테이블이 아니라 쇼핑몰에서 명절을 보내게 된 오늘을 개탄한다. 장기적인 불황과 넘쳐나는 실업자 문제, 허리케인 샌디와 ‘재정 절벽’에 지친 미국민들 사이에서 추수감사절과 크리스마스만이라도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도록 하자는 목소리가 새삼 설득력 있게 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