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자 중엔 히트상품이 많다. 세대가 공유하며 즐기는 장수상품이 그렇다. 새우깡이 그중 하나다. 과자업계의 맏형답게 명성이 높다. 그런데 새우깡의 원조는 이웃나라 일본이다. ‘갓바에비센’으로 불리는 새우과자다. 맛과 모양이 흡사해 ‘벤치마킹’이라는 해명에도 불구, 표절논란은 계속된다. 거꾸로 그만큼 국경초월의 검증된 맛으로도 해석된다.

원조회사는 ‘가루비(Calbee)’다. 일본 과자업계의 왕좌타이틀을 굳건히 움켜쥔 회사다. 과자시장이 축소되고 있음에도 매출 신장세가 뚜렷한 기업이다. 과자부문 시장점유율 46%의 압도적인 1위다. 포테이토칩 하나만으로 연간 5억6000만봉지를 팔아치우는 거물이다. 사명은 칼슘(Calcium)과 비타민(B1)의 앞 글자로 만든 조어다. 대표적인 영양소를 강조해 건강에 좋은 상품을 만들겠다는 의지 표명이다. 출시제품은 속속 히트를 쳤다. 그냥 히트가 아니라 ‘메가히트’다. 처음 10년은 힘들었지만, 그러던 어느 날 소맥분과 새우를 합한 과자가 히트를 치면서 고비를 한방에 날렸다.

회사는 1949년 열도 변두리인 히로시마에서 설립됐다. 1964년 새우과자인 ‘갓바에비센’이 대히트를 치면서 전국브랜드로 안착했다. 이후 대형히트작을 정기적으로 탄생시키며 명실상부한 1위로 자리매김한 것. 2009년부터는 미국의 음식점사업에도 진출했다. 다만 여전히 해외시장 매출비중은 5%에 불과하다. 2011년엔 도쿄거래소 1부에 상장됐다. 취임 직후부터 해외진출을 염두에 둔 최고경영자의 노림수였다. 시장반응은 호의적이다. 2100엔으로 시작한 주가는 그해 대부분 기업이 주가 하락에 힘들어할 때 3600엔으로 마감했다. 전체 생산의 25%가 스톱됐던 지진피해 때 성적표다. 여세를 몰아 지난 3월 초 현재 주가는 8000엔대에 육박한다. 증권가는 회사의 실적 전망을 상향조정하며 매수 콜을 던진다. 해외사업 확대전망 등 매출호조가 그 이유다.

가루비 회사 홈페이지. 오른쪽은 새우깡의 원조 ‘갓바에비센’.
가루비 회사 홈페이지. 오른쪽은 새우깡의 원조 ‘갓바에비센’.

유통기한 하루만 넘겨도 전량 회수
회사명성을 떠받친 건 특유의 안전에 대한 고집경영 덕분이다. 먹을 것으로 장난치지 않는 회사라는 이미지가 뚜렷하다. 그래서 일본과자의 자존심으로 불리기도 한다. 저가경쟁에는 발조차 담그지 않는다. 명성을 지키고자 제품경쟁력을 내세워 도도하게 가격정책을 유지하고 있는 것. 대신 제품파워에 공을 들였다. 신선도 유지를 위해 매장방문을 전담하는 조직까지 가동했다.

유통기한을 하루라도 넘기면 전량회수다. 먹을거리의 안전에 유난히 신경을 곤두세우는 나라에서도 보기 드문 철저한 품질관리로 유명하다. 청결을 위해 현장은 우주복처럼 생긴 유니폼이 상징이 됐다. 유통기한과 제조날짜를 봉지 겉면에 최초로 기재한 회사도 이곳이다. 덕분에 품질에 대한 고집은 굳건한 기업문화로까지 안착됐다. 가령 회사의 효도상품인 포테이토칩을 보자. 회사는 일본산 감자의 10%를 책임진다. 일본 열도 곳곳의 2000여 계약농가로부터 구입하면서 일일이 품질을 확인한다. 안정적인 공급도 어려운 판에 품질부터 챙기는 꼼꼼함은 정평이 자자하다. 

그러니 돈벌이가 잘 될 턱이 없다. 손해는 안 보지만 그렇다고 수익을 내기에도 어려움이 있다. 시장 상황마저 악화됐다. 건강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과자의 입지가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출산율이 낮아져 과자 시장의 주류고객인 아이들이 줄어든다는 점도 위기다. 그래서 회사는 달라지기로 결심했다. 체면보단 생존이 먼저란 판단에 수익성 향상에 초점을 맞추기 시작한 것. 그렇다고 품질을 포기하지는 않았다. 이 딜레마를 해결할 개혁적인 변신이 2009년부터 본격화됐다. 2008~2009년은 금융위기 직후로 기업들의 위기감이 극에 달한 시점이었다. 실제 당시 회사의 영업이익률은 1.4%에 불과했다(2008년 3월 기준). 경영진은 이마를 맞대고 난국타개에 아이디어를 모았다. 결과는 ‘마츠모토 아키라(松本晃)’라는 구원투수로 모아졌다.

가루비는 일본 과자부문 시장점유율 46%라는 압도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가루비는 일본 과자부문 시장점유율 46%라는 압도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변화 위해 가족 경영 과감히 포기
그는 외자계 출신의 전문경영인이다. 경영진의 외부수혈이라는 승부수는 당시 화제를 낳았다. 회사가 전통적으로 가족경영을 지향했기 때문이다. 마츠오(松尾) 가문이 오너로 장기간 회사를 지배해왔다. 마츠모토 회장의 영입으로 오너경영은 3대째에서 끊겼지만, 우량기업임에도 외부수혈을 결정했기에 주목을 받았다. 파격적이고 발 빠르다는 평가가 나왔던 이유다.

흔히 그렇듯 쇠퇴가 깊어진 이후 변화를 시도하기란 극히 어렵다. 반면 이 회사는 평상시부터 위기감을 느꼈고 이를 주도면밀하게 검토해 나빠지기 전에 개혁승부수를 띄웠던 것. 오너경영의 자리는 ‘전(全)직원경영’이라는 슬로건이 차지했다. 진두 지휘자가 마츠모토 회장이다. 2009년 회장 취임 후 회사는 달라지기 시작했다.

구원투수의 구체적인 특명은 ‘해외진출’이었다. 우선 지분매각을 단행했다. 회사는 국내점유율 1위지만 수출비중은 극히 미약하다. 그럼에도 펩시콜라에 지분 20%를 매각했다. 20%는 경영권이 흔들릴 수 있는 위험수위였다. 자칫 외국계에 흡수될 것이란 저항이 만만찮았고 매수주체가 거대한 다국적기업이란 점도 논란거리였다. 자본 조달이 간절했던 상황도 아닌데 다국적 기업에 지분을 매각한 것은 다름 아닌 해외공략을 염두에 둔 전략적 행보였다. 해외공략 차원에서 펩시콜라처럼 강력한 우군이 절실했던 것이다. 어지간한 지분으로는 협력이 힘들다는 판단에 20%로 결정됐고, 이 정도는 돼야 사활을 걸고 같은 배를 탈 수 있다는 계산이었던 셈이다. 파트너의 속셈(?)도 비슷했다. 3%에 머물던 일본시장에서 점유율을 높이자면 가루비와의 연대가 필수였다. 이해득실의 공유였다.  

취임 직후부터 그는 “글로벌 성장기업으로의 변신”을 입버릇처럼 강조해 왔다. 2011년 증시상장 때 조달된 55억엔을 해외진출을 위한 쌈짓돈으로 할당한 것도 그렇다. 해외시장 비중 목표는 전체매출의 30%였다. 1차 도전지역은 북미·중국·아시아이고, 아시아 중 우선순위는 한국·태국·홍콩 등이었다. △단독진출 △자본제휴 △현지합작 등을 주요 전략으로 내세웠다.

단독진출은 이미 현지생산·판매체제를 정비했기에 지금은 폭넓은 제휴와 합작에 공을 들이고 있고, 회사는 대신 상품개발력과 제조 기술에 주력하고 있다. 현지판매력과 마케팅은 솔직히 한계이기 때문. 그래서 중요한 게 파트너이다. 철저한 현지화 전략은 파트너를 잘 만나느냐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조달·경영은 현지에 맡겨 현지고객의 선호에 맞게 상품 스펙을 구성할 계획이라고 한다. 복제품을 막기 위해서도 해외진출에 시간을 끌 수는 없는 일이다. 가뜩이나 모방제품이 많아 유사품이 입맛을 장악하기 전에 서둘러야 하기 때문. 회사 측은 “과자를 안 먹는 나라는 없다. 1인당 GDP가 1만달러를 넘기면 과자시장은 급팽창한다는 가설을 증명할 것”이라며 낙관적 예측을 내놓고 있다.

‘현장주의’로 전직원 경영 참여 유도
마츠모토 회장은 조직 내부에 활성인자를 투입했다. 전형적인 일본 기업답게 봉급·지위가 높음에도 권한이 없는 직원들에게 동기부여를 하기 위함이었다. ‘사람은 간단한 동기만으로 움직인다’는 다년간의 경험이 한몫했다. 이를 위해 ‘돈과 시간의 여유로움’, ‘떨리는 도전정신’, 그리고 ‘본인의 성장배양’을 새로운 경영방침으로 내세우고 권한이양에 나섰다. 회장인 그도 권한을 모두 사장에게 넘겼다. 남은 건 거부권뿐이었다. 대신 결과에 대한 책임은 온전히 그의 것이었다. 또한 정확·신속 대응은 현장만의 고유역할이란 이유에서 ‘현장주의’를 강조했고, 이는 전체 직원의 자연스런 경영 참가로 이어졌다.

일본기업 CEO들이 보이는 빈번한 약점 중 하나는 명확한 비전 설정에 서투르다는 점이다. ‘나를 따르라’까진 좋은데 무엇을 어떻게 할지에는 약한 경우가 많다. 이런 점에서 마츠모토 회장의 경영철학은 명확한 비전을 내세웠기에 더욱 눈에 띈다. 명확한 비전이란 ‘고품질의 흑자조직’이다. 그는 지는 게임은 하지 않는 걸로 유명하다. 그래서 승률이 높다. 품질만 챙기던 회사와 흑자구조를 아는 그의 합류가 상생효과를 내는 이유다. 또 미국기업 경험자로는 역설적이게도 주주는 우선순위가 밀린다. 고객·거래처를 챙기고 근로자·가족을 중시한 후 지역사회에 다가서면 주주가 원하는 건 자연스레 생겨난다는 쪽이다.

사회공헌활동(CSR)에 대한 신념도 명확하다. “기업책임자로서 최대의 CSR 활동은 성실한 납세”라고 공공연히 밝히며 보여주기식이 아닌 기본에 충실하고 있다. 

Tip | CEO연구 - 마츠모토 아키라(松本晃) 가루비 회장

“고객에게 자주 가고, 약속을 꼭 지켜라”

마츠모토 회장은 “1등일 때도 위기감을 가져라”는 말을 금과옥조처럼 여기며 직원들에게 끊임없이 배울 것을 강조한다.
마츠모토 회장은 “1등일 때도 위기감을 가져라”는 말을 금과옥조처럼 여기며 직원들에게 끊임없이 배울 것을 강조한다.

마츠모토 아키라(松本晃) 가루비 회장은 1947년 교토에서 출생했다. 명문 교토대에서 농학을 공부한 그는 엘리트라면 누구나 꿈꾸는 종합상사에 취직해 사회에 데뷔했다. 첫 직장은 이토추상사로 이후 관련회사에서 사장까지 지냈다. 1993년 다국적기업인 존슨앤존슨 일본법인의 영업본부장으로 스카우트돼 1999년엔 사장까지 올랐다.

그의 경영철학은 간단하다. 마케팅 전문가답게 세일즈의 핵심을 단 두 가지로 간략하게 요약한다. ‘자주 가는 것, 약속을 지키는 것’이다. 고객에게 자주 가야 주머니를 열고 또 약속을 지켜야 신뢰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마츠모토 회장은 “이는 비즈니스에만 먹히는 게 아니라 모든 삶의 진리”라고 말한다. 온화한 성격으로 털털한 아저씨 같은 인상을 가진 그는 늘 사람을 중시한다. “일이란 건 사람과의 연결고리, 그 자체”라는 생각에서다. 사람중시 경영철학의 반영인 셈이다. 이런 생각을 심어준 계기는 상사 근무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베트남 항만설비 입찰 때 사람의 중요성을 깨달은 이후부터라고. 한 인터뷰에서 그는 “이때 결국은 사람이 중요하단 걸 알았다. 가장 무언가를 사고 싶은 이에게 주머니를 여는 게 인지상정이기 때문”이라고 소회했다.

하지만 CEO로서 필요한 악역은 언제든 마다하지 않는다. 감언이설만 내세워 경영이 힘들어진 이후 두고두고 악담을 듣기보다 평소 싫어할 것도 해가며 체력을 다져두는 편이 서로를 위해 유리하기 때문이다. 마츠모토 회장은 “1등일 때도 위기감을 가져라”는 말을 금과옥조처럼 여기며 직원들에게 끊임없이 배울 것을 강조한다. 증권가는 그에게 발군의 구조개혁 지휘자라는 별칭을 안겨줬다. 그에게 만족은 없다. 개혁진척의 상황을 묻자 “100% 중 이제 4% 정도”라고 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