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면1: 2월 1일 중국 역사상 최대 다단계 금융 사기 사건이 적발됐다. 중국 공안(경찰)은 P2P 대출업체 e주바오(e租寶)를 조사해 딩닝(丁寧) 위청(鈺誠)그룹 이사회 의장 등 21명을 체포했다고 신화통신 등이 전했다. e주바오는 위청그룹 자회사다. 이 회사는 2014년 7월부터 “매년 9~14.6%의 수익률을 보장한다”는 허위광고로 투자자를 모집했다. 공안은 지난해 12월 수사에 착수했고, 굴삭기 2대로 20시간에 걸쳐 6m 지하에 숨겨 놓은 1200개 이상의 장부를 파헤쳤다. e주바오 웹사이트를 통한 투자 프로젝트 중 95%가 허위로 드러났다. 최근 2년간 90만명을 상대로 500억위안(약 9조원)에 이르는 폰지 사기(Ponzi scheme)를 벌인 것으로 드러났다.

장면2: 2월 4일 한화그룹은 중국 P2P 대출업체 디앤룽왕(点融網)과 핀테크 합작사 설립 계약을 체결했다고 발표했다. 디앤룽왕은 2014년 뉴욕증시에 상장해 세계 1호 상장 P2P 대출업체가 된 미국의 렌딩클럽 (Lending Club) 창업자인 소울 타이트(Soul Htite)와 중국 변호사 궈위황(国宇航)이 2012년에 설립한 기업이다. 기업 가치가 10억달러(약 1조2000억원)에 달한다. 한화가 디앤룽왕과 손잡은 것은 급성장하는 중국 핀테크 시장에서 기회를 잡기 위한 행보다. 중상(中商)산업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중국 P2P 대출 사이트를 통한 거래액은 지난해 1조1806억위안(약 1416조7200억원)으로 전년보다 258% 증가했다. P2P 사이트를 통한 대출 잔액은 작년 말 현재 5800억위안(약 696조원)에 달했다.

중국 당국이 다단계 대출 사기극을 벌인 e주바오의 모기업 위청그룹의 회사 명패를 떼어내고 있다. 한 네티즌이 찍어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에 올렸다.
중국 당국이 다단계 대출 사기극을 벌인 e주바오의 모기업 위청그룹의 회사 명패를 떼어내고 있다. 한 네티즌이 찍어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에 올렸다.

e주바오 사기 사건과 한화의 중국 핀테크 시장 진출은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중국 핀테크 시장의 명암을 보여준다. 중국 핀테크를 대표하는 업종 중 하나인 P2P 대출업의 고향은 영국이지만 꽃을 피운 곳은 중국이다. 2005년 영국의 조파는 세계에서 가장 먼저 P2P 대출업을 시작했다. 음악 파일을 공유하는 서비스에서 이용됐던 인터넷 플랫폼이 영화 콘텐츠를 공유하는 무대가 된 데 이어 대출 자금 교류를 위한 신용정보 공유 장소로 활용되기 시작한 것이다. 2009년 9개에 머물던 중국의 P2P 대출업체는 작년 말 현재 4900개를 넘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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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P 대출업이 중국에서 급팽창한 이유는 많다. 우샤오치우(吳曉求) 인민대 금융증권연구소장은 “기존 금융권에서 소외받은 계층을 끌어안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금융의 낙후성이 오히려 선진 금융을 빨리 수용할 토양이 됐다는 얘기다. P2P 대출은 은행 문턱에도 가보지 못한 중소기업이나 자영업자에게 새 자금줄이 되고 있다. 중국 당국이 P2P 대출업에 대한 규제를 지난해부터 시작할 정도로 유연한 태도를 보인 것도 시장이 급팽창한 이유다. 1990년 상하이 증시 개장 이후 증시 도입을 놓고 논란이 다시 일었을 때 “일단 해보자. 잘못되면 그때 중단하면 된다”고 했던 덩샤오핑(鄧小平)식의 개혁 의지가 핀테크 성장에 기여했다는 것이다. 14억 인구와 인터넷의 궁합도 배경으로 꼽힌다. 아무리 많은 사람이라도 순식간에 연결해주는 게 인터넷의 강점이다. 거대 인구가 흩어져 있을 때는 존재하기 힘든 시장이 인터넷의 발달과 함께 블루오션으로 태어날 수 있게 된 것이다. 온라인 쇼핑 결제 계좌에 있던 자투리 돈을 받아서 출시 1년 만인 지난 2014년 자산규모 세계 4위의 MMF로 성장한 알리바바(阿里巴巴)의 위어바오(余額寶)가 대표적이다. 주식 투자붐이 일면서 P2P 대출사이트가 신용자금으로 주식을 투자하는 편법통로 역할을 한 것도 시장이 크게 성장한 배경으로 꼽힌다.

하지만 과도한 성장은 거품과 함께 도덕적 해이를 만들었다. 중국 은행감독관리위원회는 영업 중인 P2P 대출업체 중 1000개 이상이 대출 및 이자 지급 불이행 등 문제를 일으킬 소지가 많은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블룸버그통신이 최근 전했다. P2P 대출업체 가운데 20%에 해당한다. P2P 대출업 조사업체인 왕다이즈자(網貸之家) 발표에 따르면 2011년 이후 야반도주하거나 영업을 중단하는 식으로 문제를 일으킨 곳이 1370개사에 이른다. 올들어 2월 12일까지 107개사에서 제때 현금을 돌려주지 못하는 등 문제가 발생했다. e주바오 사건은 규모가 커서 이슈가 됐을 뿐 급증하는 P2P 대출 사기의 한 사례일 뿐이다.

P2P대출업의 문제는 일찌감치 감지됐다. 충칭(重慶)시가 2014년 말 P2P대출업 신규허가를 중단한 게 대표적이다. 금융통으로 알려진 황치판((黄奇帆) 충칭시장이 규제 강화를 주도했다. 그가 규제의 고삐를 죄면서 내놓은 설명은 이렇다. “미국이나 유럽의 P2P업체는 개인들의 신용상황을 투명하게 공개하지만 중국은 그렇지 못하다. 중국에서는 마치 도박과 같은 것이다. P2P 업체가 우후죽순 생기는 것을 방관하는 것은 인민에 대한 책임을 방기하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가 있다고 중국 P2P대출업의 성장 전망이 비관적인 것만은 아니다. 이런다이(宜人貸)가 중국 P2P 대출업체로는 최초로 작년 12월 뉴욕 증시에 상장하는 등 중국 P2P 대출업체들의 상장이 잇따를 전망이다. 지난 1월 중국의 P2P 대출업체 루진수오(陸金所)는 국내외 투자자들로부터 12억1700만달러(약 1조4600억원)의 투자를 유치했다. 이 과정에서 185억달러(약 22조2000억원)의 기업가치를 인정받았다. 중국 핑안(平安)보험그룹이 2011년 설립한 루진수오는 올 하반기 국내외 증시에 동시 상장하는 방안을 추진중이다.


▒ 오광진
고려대 심리학과, 중국 인민대 금융학 박사, 한국경제신문 베이징 특파원, 현 조선비즈 베이징 특파원.


용어설명
P2P(peer to peer)
개인과 개인 간 거래를 중개해 주는 인터넷 플랫폼. 처음엔 음악 파일 공유로 시작했지만 영상 콘텐츠에 이어 2005년부터는 대출 자금이 중개 대상으로 등장했다. 영국의 조파가 처음으로 P2P대출업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