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이 위기를 맞고 있다. 한때 높은 몸값을 자랑했던 미국 실리콘밸리 스타트업들이 자금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사진은 지난해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테크크런치 행사에서 참가자들이 스타트업 부스를 둘러보는 모습.
스타트업이 위기를 맞고 있다. 한때 높은 몸값을 자랑했던 미국 실리콘밸리 스타트업들이 자금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사진은 지난해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테크크런치 행사에서 참가자들이 스타트업 부스를 둘러보는 모습.

미국 실리콘밸리 벤처기업인 ‘포스퀘어(Foursquare)’는 지난달 예전에 평가받았던 기업가치보다 69%나 할인된 가격에 신규 자금을 유치했다. 위치기반 사회관계망(SNS) 서비스를 하는 포스퀘어는 2013년에 기업가치를 약 6억5000만달러(약 7800억원)로 평가받았다. 그러나 올 들어서는 기업가치 평가액을 2억달러(약 2000억원)로 낮춘 수준에서 간신히 투자를 유치할 수 있었다. 실리콘밸리의 음식배달 스타트업(초기 벤처)인 ‘도어대시(DoorDash)’ 역시 이달 초 기존 주식가격보다 16% 할인된 가격에 신규 투자를 유치해 체면을 구겼다.

호황을 구가하던 미국 실리콘밸리에 찬바람이 불고 있다. 2010년대 들어 미국 경제에 순풍이 불면서 실리콘밸리 스타트업에 투자자금이 몰려들고 기업 공개로 떼돈을 버는 창업자와 투자자가 넘쳐났지만 지난해 4분기부터 분위기가 급랭하고 있다. 작년까지만 해도 사업모델의 가능성을 인정받기만 하면 수십억달러 가치를 인정 받는 스타트업이 비일비재했다. 그러나 지금은 완전히 분위기가 바뀌었다. 벤처투자회사인 ‘스케일벤처파트너스’의 파트너인 로리 오드리스콜은 최근 월스트리트저널과의 인터뷰에서 현재 실리콘밸리의 분위기를 ‘빙하에 부딪친 타이타닉’에 비유했다. 그는 “똑똑한 회사들은 비용을 줄이고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최대한으로 자금 확보에 나서고 있다”며 “아무도 구명보트로 탈출하려 하지 않는데 지금 당장 결심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생존이 위태로워 구조조정을 단행하는 기업까지 나오고 있다. 샌프란시스코의 잘 나가던 전자 의료 기록 벤처기업인 ‘프랙티스 퓨전(Practice Fusion)’은 최근 창업자인 최고경영자(CEO)를 해임시키고 직원을 4분의 1이나 감원했다. 메신저 앱 서비스인 ‘탱고미(TangoMe)’의 에릭 세턴 공동설립자는 직원 20%를 감원했다고 최근 발표했다. 불과 2년 전 알리바바그룹 등으로부터 2억8000만달러를 유치하면서 10억달러 이상 가치를 평가받았던 우량 기업조차 추위를 타고 있는 것이다.

20억달러 이상 투자를 유치한 기업 중에서 작년 11월 이후 최소 12개가 구조조정을 했고 수백명을 해고했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이 최근 보도했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2014년 이후 증시에 상장돼 거래되고 있는 기업 48개 중 35개사 주가가 상장가격 밑으로 떨어졌다.

경영상태도 안 좋고 대박을 터뜨리는 스타트업이 줄어들면서 밀려들던 투자자금이 말라버리는 악순환이 나타나고 있다. 다우존스벤처소스가 지난 2월 21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작년 4분기 미국 스타트업의 기업가치는 평균 2750만달러로 전 분기에 비해 60%나 낮아졌다. 4분기 스타트업의 자금조달 규모는 171억3000만달러로 전 분기에 비해 6.6% 감소했다. 지난 4년을 통틀어 가장 적은 금액이었다. 벤처 캐피털들은 기술 기업 주가의 하락을 경계하면서 현금이 말라가는 벤처기업들로부터 돈을 거둬들이는 방식으로 포트폴리오를 재구성하고 있다. 한 번 어려워지면 헤어나오기 어려운 구렁텅이로 자꾸 밀려들게 되는 상황인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빚을 내는 방법을 택하는 벤처답지 않은 선택을 하는 기업들도 늘고 있다. 온라인가상스포츠 운영업체 드래프킹스는 작년 12월 금리를 연 5%나 제시하며 전환사채를 발행해 1억달러 정도를 조달했다. 작년 7월에는 기업가치를 21억달러로 평가받았던 우량 회사였는데 작년 4분기에 자금 유치를 하려고 뽑아본 몸값이 70%나 떨어진 것으로 나타나자 전환사채 발행을 택한 것이다.

당장 경영환경이 나빠지는 것도 문제지만 벤처의 가장 큰 자산인 직원들이 희망을 잃어가는 것을 벤처 투자회사들은 더 우려하고 있다. 이런 직원들이 회사의 가치가 떨어지는 것을 보면서 희망까지 잃으면 더 큰 위기를 불러올 것으로 우려하는 것이다.

프랙티스 퓨전의 프로그램 디렉터였다가 지난해 말 해고된 로렌 버리스는 “정말 나를 힘들게 한 것은 우리가 가진 비전이 무엇인지 더 이상 모르게 됐다는 것”이라고 월스트리트저널과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그러나 아직도 희망을 얘기하는 사람이 더 많다. 스타트업의 토양이 죽은 것은 아니고 늘 부침은 있기 마련이며 위기를 겪은 후에 더 강한 기업으로 거듭날 수 있다는 것이다. 스타트업들의 든든한 지원군이었던 벤처 캐피털 사람들은 “구조조정은 고통스런 과정이지만 어쩔 수 없고 필요한 것”이라며 “벤처 캐피털 역시 구조조정을 통해 또 다른 기회를 모색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 김덕한
서울대 국문학과, 동 대학원 석사, 조선일보 산업부·사회정책부, 현 조선일보 뉴욕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