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경제의 구조가 변하며 실용적 소비를 중시하는 중산층이 부상하고 있다. 사진은 인파로 붐비는 중국 베이징의 노천시장. <사진 : 블룸버그>
중국 경제의 구조가 변하며 실용적 소비를 중시하는 중산층이 부상하고 있다. 사진은 인파로 붐비는 중국 베이징의 노천시장. <사진 : 블룸버그>

지난 2월 말과 3월 초 중국 산시성(山西省) 타이위앤(太原)과 상하이(上海)에 있는 프랑스 명품 브랜드인 루이뷔통(Louisvuitton) 매장이 잇따라 폐점했다. 실적 부진이 이유라고 중국청년보 등 현지 언론들이 전했다.

반면 일본의 캐주얼 의류 유니클로(uniqlo)로 유명한 패스트리테일링(Fast Retailing)그룹 야나이 다다시(柳井正) 회장은 올해 초 미국 CNBC와의 인터뷰에서 중국에 매년 100여 개의 점포를 열어 궁극적으로 3000여 개로 늘리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유니클로는 지난해 말 기준 중국(대만 포함)에 400개가 넘는 매장을 운영 중이다.

상반된 두 장면을 만든 키워드는 ‘중산층’이다. 과시형 명품 소비의 ‘큰손’이었던 부패 계층이 시진핑(習近平) 정부의 반부패 철퇴를 맞는 대신 중국 경제의 구조 변화로 실용적 소비를 중시하는 중산층이 부상하고 있다. “중국이 수출 주도형 제조업 기반 경제에서 소비 주도형 경제로 탈바꿈하려면 중산층을 확대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중국의 13억 인구는 유럽과 미국을 합친 것과 비슷한데요. 이는 엄청난 기회입니다.”(야나이 회장)

야나이 회장의 전망은 지난 3일 개막한 중국 양회(兩會,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와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공개된 올해 정부 업무보고와 13차 5개년 규획(13∙5 規劃, 2016~2020년)안에 담긴 미래 모습과 다르지 않다. 전면적인 샤오캉(小康, 의식주를 걱정하지 않는 물질적으로 안락한) 사회 건설은 중산층을 두텁게 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리커창(李克强) 중국 총리는 지난 5일 정부 업무보고에서 처음으로 ‘신(新)경제’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16일 폐막하는 중국 양회는 향후 5년 중국의 신경제를 이끌 변화를 보여주는 창(窓)이다.


중산층 건설 중진국 함정 극복에 달려

양평섭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베이징사무소장은 “중국이 전면적인 샤오캉 사회를 건설하면 1인당 GDP가 1만달러(약 1200만원)에 이르는 중산층 사회가 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중국의 지난해 1인당 GDP는 8016달러(약 960만원)를 기록했다. 중국은 샤오캉 건설을 위해 오는 2020년 국내총생산(GDP)과 1인당 주민소득을 2010년의 2배로 끌어올린다는 목표를 제시하고 있다. 무역협회 최용민 베이징지부장은 “5년 뒤 베이징, 상하이, 톈진 등의 경우 1인당 GDP가 2만달러(약 2400만원)대 중반 수준에 달할 것”으로 내다봤다.

소득 수준의 향상은 소비 패턴을 바꾼다. 가오후청(高虎城) 상무부 부장(장관)은 지난 2월 28일 기자회견에서 “중국에 중, 고소득층이 형성되고 있다”며 “과시형 소비보다는 가성비(價性比, 가격 대비 성능의 비율)를 따지는 소비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중국의 중산층 사회 건설은 중진국 함정을 극복해야 달성할 수 있다. 리 총리는 정부 업무보고에서 이를 위해 농촌의 소비 잠재력을 키우고 공급 사이드 개혁에 박차를 가하겠다고 밝혔다. 현대적 서비스와 전략 신흥산업 및 선진 제조업을 신성장동력으로 키우겠다는 구상도 공개했다.


중국 양회가 열리는 인민대회당 밖 톈안먼 광장에 정협 위원과 전인대 대표들을 태운 차량들이 줄을 맞춰 주차해 있다. <사진 : 베이징=오광진 특파원>
중국 양회가 열리는 인민대회당 밖 톈안먼 광장에 정협 위원과 전인대 대표들을 태운 차량들이 줄을 맞춰 주차해 있다. <사진 : 베이징=오광진 특파원>

농촌 인터넷 ‘돼지도 날게 할 태풍의 입구’

중국은 농민과 도시에 있는 농민공(농촌 출신 도시 노동자)을 신소비층으로 키운다는 구상이다. 향후 5년간 5575만명을 빈곤층에서 탈출시키는 탈빈(脫貧) 프로젝트가 대표적이다. 중국에서 빈곤층 기준은 연간 소득 2300위안(약 41만원) 이하다.

중국은 특히 농촌에 전자상거래를 활성화해 농촌 소비와 농산품 판매를 촉진한다는 구상이다. 리 총리는 올해 5만 개 촌에 광대역통신망을 보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중국 최대 스마트폰 업체 샤오미(小米) 창업자이자 전인대 대표인 레이쥔(雷軍) 회장은 지난 7일 기자회견에서 “농촌 인터넷이 거대한 태풍의 입구를 만들고 있다”며 “중국이 향후 10년의 황금 창업 기회를 맞았다”고 말했다. 레이 회장은 돼지도 태풍의 입구에 있으면 날 수 있다는 말로 시장의 추세에 잘 올라타야 성공할 수 있음을 강조해왔다. 그는 “농촌이 인터넷 영역의 옥토가 될 것”이라며 “농촌 인터넷 발전과 현대 스마트 농촌 건설에 나서야 한다”고 건의했다.

중국은 중소득 인구 비중을 높이는 또 다른 방안으로 농민공의 도시민화를 추진하기로 했다. 후커우(戶口, 호적) 개혁 등을 통해 1억명에 달하는 농민공들이 도시에서 자녀교육이나 의료 등에서 도시민과 같은 복지를 누릴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중국이 5개년 규획에서 처음으로 ‘후커우 기준 도시화율’이라는 목표치를 제시한 이유다. 종전에는 상주인구 기준 도시화율로만 도시화 수준을 평가했다. 리 총리는 후커우 기준 도시화율을 2020년까지 45%로 끌어올리겠다고 밝혔다. 리 총리는 이를 신형 도시화로 명명했다.

신형 도시화를 위한 인프라 확충 계획도 밝혔다. 중국의 고속철도는 2015년 말 1만9000km로 전세계 고속철 운영거리의 60% 이상을 차지했다. 5년 내 이를 3만km 이상으로 늘린다는 계획이다.


서비스 소비 키워 내수 진작

중국 정부는 농촌관광, 생태관광, 양로, 헬스, 가사 관리, 교육, 문화 등 서비스 소비를 적극 육성하기로 했다. 소비구조를 업그레이드 하겠다는 것이다. 이미 중국 경제에서 서비스업을 축으로 한 3차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2012년 45.5%를 기록, 제조업 중심인 2차산업(45%)을 처음 추월했다. 중국 당국은 3차 산업 비중을 2015년 50.5%에서 5년 내 56%까지 높이기로 했다.

서비스산업 육성은 서비스무역 활성화로도 이어질 전망이다. 중국 국무원은 3월 초 서비스무역 발전을 위한 시범지역으로 상하이 하이난(海南) 항저우(杭州) 등 15개 지역을 지정했다.

서비스무역은 중국의 무역이 지난해 8% 감소할 만큼 위축세를 보이는 가운데 고성장을 지속하고 있다. 2013~2015년 중국의 서비스무역은 연평균 14.9% 증가했다. 중국은 올해 정부 업무보고에서 처음으로 무역 증가율 목표치를 제시하지 않을 만큼 무역 위축을 우려하고 있다. 서비스 무역의 성장은 이 같은 우려를 덜어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리 총리는 서비스업 발전을 가속화하기 위해 5월 1일부터 건축, 부동산, 금융, 생활서비스 등 4개 업종의 영업세를 부가가치세로 통일하는 세제 개혁을 전면 시행한다고 밝혔다. 해당 기업의 세 부담이 줄어든다.

중국이 서비스산업을 키우는 것은 일자리 창출 효과가 크기 때문이다. 중국의 일자리에서 서비스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2013년 38.5%에서 2015년 42.4%로 상승했다. 중국 서비스업의 성장 전망이 좋아지면서 외국자본의 진출도 속도를 내고 있다. 중국의 외자유치(FDI) 가운데 서비스업 비중은 2010년 47.3%에서 2014년 62.0%로 올랐다. 최용민 베이징지부장은 “지난해 1~9월 한국의 대(對) 중국 투자 가운데 서비스업 비중은 25.5%로 5년 전의 22.9%에 비해 큰 차이가 없다”며 “중국 산업구조 변화에 맞춰 대중 투자 전략도 바꿔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중국은 자국 관광산업을 키우는 등 해외 소비를 국내로 돌리는 정책도 적극 추진하기로 했다. 중국인 해외 관광객 소비를 기대하는 한국 관광업계로서는 위협적인 대목이다. 해외 여행을 떠나는 중국인은 2010년 5700만명에서 2015년 1억2000만명으로 급증했다. 중국은 자국 내 관광 소비를 진작시키기 위해 면세점을 증설하고 관광지 교통 등 인프라 확충에 나서기로 했다. 자동차 캠핑장 건설이 대표적이다.


장인정신 중시… 맞춤형 제조 뜬다

중국은 서비스산업과 함께 전략 신흥산업과 선진 제조업을 신성장동력으로 키우기로 했다. 13∙5 규획안에서는 전략 신흥산업으로 차세대 정보기술(인공지능, 5세대 이동통신, 스마트폰, 반도체 등), 바이오산업, 종자, 첨단 소재(형상기억합금 나노 소재), 신에너지 자동차 등을 꼽았다. 빅데이터, 클라우드컴퓨팅, 사물인터넷 등을 광범위하게 응용하는 방안도 추진하기로 했다. 중국이 지난해 발표한 인터넷플러스 정책이 속도를 내는 것이다. 중국은 오는 2025년까지 글로벌 제조 강국 대열에 진입한다는 ‘중국 제조 2025’ 정책도 마련했다. 2035년에는 세계 제조강국의 중간 수준에 오르고 중화인민공화국 설립 100주년이 되는 2049년을 전후해서는 글로벌 제조강국의 앞자리에 오르겠다는 3단계 전략 시행에 들어간 것이다.

중국은 산업 발전을 선도하는 제1동력으로 혁신을 꼽았다. 이를 위해 창업혁신 시범기지를 건설하기로 하는 등 대중창업과 혁신을 북돋우기 위한 정책을 확대해나가기로 했다. 지난해는 자본금 요건을 없애는 등 등록절차를 간소화한 덕에 매일 1만2000개 이상의 기업이 창업했다.

중국은 특히 대학과 출연연구소 등에 있는 연구인력의 창업과 혁신을 권장하기 위해 연구성과를 상용화하는 절차를 간소화하기로 했다. 독일과 일본 제조업의 경쟁력 원천으로 꼽히는 ‘장인(匠人)정신’도 적극 배양하기로 했다. 리 총리는 올해 정부 업무보고에서 처음으로 장인정신을 언급했다. 짝퉁과 품질 불량이라는 낙인이 찍힌 중국제품의 이미지를 씻기 위한 행보라는 평가를 받는다. 기술 혁신을 위한 연구비 투입도 확대하기로 했다. 완강(萬鋼) 중국 과학기술부 부장은 지난 10일 기자회견에서 “연구개발비가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2015년 2.1%에서 2020년 2.5%로 높이겠다”며 “과학기술의 진보가 중국 경제성장에 기여하는 비율도 55.3%에서 60%로 끌어올릴 것”이라고 밝혔다.


외자에도 국유기업 M&A 허용

중국은 국유기업이 독점해온 전력, 통신, 교통, 석유, 천연가스, 도시, 공공사업 등의 시장접근 기준을 크게 낮추기로 했다. 보이지 않는 각종 장벽도 제거해 민영기업이 국유기업의 개혁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선단양(沈丹陽) 중국 상무부 대변인은 최근 외국자본도 인수합병(M&A) 형태로 국유기업 개혁에 참여하는 것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지난해 M&A 방식으로 중국에 투자한 외자는 178억달러(약 21조 3600억원)로 중국의 전체 외자 유치액 가운데 14%에 불과했다. 국유기업에 투자하는 외자기업이 늘어날 전망이다.

국유기업 개혁은 합병하거나 퇴출하거나 자체 혁신 발전의 길을 가도록 하는 쪽으로 이뤄질 예정이다. 리 총리는 좀비기업을 적극적으로 퇴출시키겠다고 공언해 적지 않은 좀비 국유기업들이 사라질 전망이다. 중국 정부는 국유기업 개혁 첫 타깃으로 과잉 공급 업종인 철강과 석탄을 잡았다. 공업정보화부는 철강과 석탄업종의 국유기업 개혁 과정에서 각각 50만명과 100만명이 감원될 것으로 내다봤다. 중국은 이들에게 교육을 시키는 등 새로운 일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적극 안배한다는 계획이다. 리 총리가 밝힌 1000억위안(약 18조원)의 실업대책 기금이 여기에 쓰일 전망이다. 이문형 산업연구원(KIET) 베이징지원장은 “중국은 3년 연속 적자를 내는 국유기업은 좀비기업으로 간주해 정리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며 “민간기업을 내세운 혁신정책과 국유기업 개혁이 성공하면 중국 경제가 크게 업그레이드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중국판 금감원 나오나

올해 정부 업무보고와 13∙5 규획 초안에는 현대 금융감독 관리체제를 개혁하겠다는 대목이 들어있다. 이를 두고 중국에선 은행감독관리위원회, 증권감독관리위원회, 보험감독관리위원회 등 감독기구를 통합한 중국판 금융감독원이 탄생할 것이라는 성급한 전망이 나온다.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 국정자문기구) 대표인 리다오쿠이(李稻葵) 칭화대 교수는 지난 10일 정협 전체회의에서 “은행 증권 보험 신탁 등 금융 업종 간 혼합경영이 추세”라며 “금융감독기구를 통합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중국 증시 개혁의 핵심으로 꼽히는 신규 기업공개(IPO) 등록제는 당초 예상과 달리 올해를 넘길 전망이다. 리 총리의 정부 업무보고에 IPO 등록제라는 문구가 빠졌기 때문이다. 2015년 정부 업무보고에 있던 ‘주식 발행 등록제 실시’라는 문구가 올해는 사라진 것이다. 그 대신 13∙5 규획 초안에 ‘주식 발행 등록제 시행을 위한 여건 만들기’가 들어갔다. 5년 내 시행하겠다는 의지만 확인한 셈이다. 블룸버그 등은 당초 올 상반기 중 IPO 등록제가 시행될 것으로 예상했다.

IPO 등록제 시행 연기는 최근 증권감독관리위원회 주석(장관)에 취임한 류스위(劉士余)가 개혁보다는 안정에 무게를 두는 행보를 보이는 것과 무관치 않다. 류스위는 지난 4일 중국 CCTV와의 인터뷰에서 증감위 주석으로서 가장 중요한 첫 번째 과제로 감독 관리를 꼽았다.

당초 지난해 시행할 예정이던 선강퉁(深港通, 선전과 홍콩 증시 교차 매매 허용)의 경우 리 총리는 정부 업무보고에서 “적절한 시기에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선전 증시에 상장된 중국 벤처기업들의 주식을 한국 투자자들도 투자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양평섭 KIEP 베이징사무소장은 “중국이 전통적인 성장동력으로 고성장할 때 한국 경제는 중간재 수출 등으로 수혜를 봤다”며 “중국 수입시장에서 10%가 넘는 점유율을 유지하려면 중국의 변화에 필요한 것을 우리가 줄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국의 변화가 빨라질 향후 5년이 한국 경제로서는 골든타임이라는 설명이다.


▒ 오광진
고려대 심리학과, 중국 인민대 금융학 박사, 한국경제신문 베이징 특파원, 현 조선비즈 베이징 특파원.


농민공(農民工)
농촌을 떠나 도시에서 일하는 중국의 빈곤층 노동자. 중국의 개혁개방 정책 실시 후 낙후한 농촌을 떠나 도시화된 지역으로 일자리를 찾아 이주한 사람들이다. 이들은 도시민과 농촌 주민을 엄격하게 구분한 중국의 주민등록제도 때문에 임금, 의료, 교육 등에서 차별대우를 받는다.

양회(兩會)
중국의 국정자문기구인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와 입법기구인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를 일컫는다. 매년 3월 전체회의를 열어 그해의 국정 운용방향을 결정한다. 총리가 전인대에서 발표하는 정부 업무보고가 핵심 안건이다. 바로 전해 가을과 연말에 열리는 공산당 대회와 중앙경제공작회의에서 논의한 내용을 구체화한다.

공급 사이드 개혁
2015년 11월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수요를 적절히 확대하는 동시에 공급 사이드의 구조 개혁을 강화해야 한다고 언급하면서 중국 경제의 화두로 등장했다. 철강 시멘트 등 과잉 생산되고 비효율적인 공급은 줄이고, 고품질의 유명 브랜드 제품 등 효율적인 공급은 늘리는 게 골자다. 이를 위해 기업 부채를 줄이고 세 부담을 덜어주는 정책 등을 추진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