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나라가 자국 특정 기업의 상품에만 일정한 보조금을 지급한다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 시장에서 해당 상품이 유일하다면 소비자에게 혜택이 돌아가겠지만, 경쟁상품이 있다면 보조금을 지급받은 상품의 가격경쟁력이 높아져, 경쟁 상품 생산자에게는 불이익이 돌아간다. 이러한 상황이 불공정한 경쟁의 대표적 형태다.

정부가 기업이나 경제 전반에 효과적인 혜택을 주는 지원책이 ‘보조금’이다. 보조금이 특정 상황에서 국가경제를 조절하거나 국가정책을 강화하는 수단으로 사용되는 경우 합법적인 정부개입으로 이해되기도 한다. 정부가 시장에서의 상품부족 현상을 개선하거나, 국가의 경제적 복지를 끌어올리기 위해 보조금을 지급하는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그러나 보조금은 긍정적 효과만 발생시키는 것이 아니라, 부정적 결과를 초래하는 경우가 더 많다는 데 문제가 있다. 국제무역에서 한 국가가 자국 산업에만 보조금을 지급하면서 자유로운 경쟁관계를 왜곡하는 무역장벽을 만드는 경우가 그렇다. 보조금을 지급받아 생산된 상품이 싼 가격으로 수출됨으로써 무역상대국의 국내산업에 피해를 주는 경우나 보조금 지급으로 외국산 동종 상품의 수입이 감소하는 경우, 보조금 지급으로 제3국 시장에서 유리한 경쟁조건을 갖게 되는 경우도 있다. 특히 시장구조가 과점상태이거나 국가 간 경제규모, 상품가격이 차이가 날 때 특정 산업을 지원하는 보조금은 국가 간 분쟁으로 비화될 수 있다는 점에서 법적으로 면밀히 검토돼야 한다. 국제무역을 왜곡시키는 보조금은 다자간 무역협상에서 합의된 시장개방약속을 파괴하는 위협이 될 수 있으므로, 이에 대한 규제는 선의의 피해국을 보호하며 국제교역상의 형평성을 구하기 위한 것이다.

WTO보조금협정 제1조는 회원국의 영토 내에서 정부 또는 공공기관의 재정적 기여로 수혜자에게 혜택이 생기는 경우를 보조금으로 정의한다. 제2조는 보조금이 당국의 관할 내에 있는 특정 기업이나 산업 또는 기업군이나 산업군에 대해서만 특정돼 지급되는 경우 피해국은 이에 대한 상계관세 부과 등의 대응조치를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정부나 공공기관이 아닌 민간기관이 정부를 대신해 보조금을 지급하면 어떻게 될까. 프랑스곡물협회가 밀과 밀가루 생산자에게 보조금을 지급한 사건을 살펴보자. 밀 생산자는 민간기관인 프랑스곡물협회가 집행하는 가격안정제도에 따라 매년 일정한 수준의 밀 가격을 보장받을 수 있었다. 이에 따라 1965년 프랑스의 밀 작황이 좋지 않았음에도 싼 가격으로 밀과 밀가루를 수출해 타국의 수출물량이 잠식됐다. 피해를 입은 호주가 제소해 GATT(관세,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 분쟁해결패널에서 사건이 심의됐는데, 프랑스는 곡물협회의 지원금은 정부가 지급하는 것이 아니므로 보조금이 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패널은 자금의 전부 또는 일부가 정부에 의해 지원된 경우 보조금으로 보아야 한다고 결정해, 정부의 통제 하에 있는 민간기관의 지원도 정부의 지원과 동일하게 보아야 함을 분명히 했다. 우리나라에도 유사한 사례가 있다. 2002년 10월 유럽연합은 한국 조선사업의 구조 개선을 위한 채무감면이나 채권의 자산전환, 한국수출입은행(수출입은행)의 선적전 대출과 사전지불보증 등의 조치는 WTO보조금협정에 반하는 보조금이므로 철폐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패널은 유럽연합의 주장을 받아들여 수출입은행의 조치를 철폐하기로 결정했다. 수출입은행을 정부에 의해 통제되는 공공기관으로 본 것이다.

경제적 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각국이 사용할 수 있는 보조금의 형태는 매우 다양하다. 그중 현행 WTO 체제에서 규제대상이 되는 것은 특정성이 있는 보조금에 국한된다. 특정성이 있는 보조금은 보조금 지급 대상으로 선택된 기업의 생산비용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왜곡이 특히 심한 것으로 인정되기 때문이다. 특정성 명시는 선택적으로 특정산업 분야에 혜택을 줌으로써 정상적 경쟁조건에 영향을 끼치는 보조금을 제한하기 위한 것이다. WTO보조금협정은 지급당국 또는 지급당국이 따르는 법률이 보조금 지급 대상을 특정 기업으로 명백하게 한정하는 경우 특정성이 있다고 했다. 다만 지급당국 또는 지급당국이 따르는 법률이 보조금 수혜요건 및 금액을 규율하는 객관적 기준 또는 조건을 설정하고 이러한 기준과 조건이 엄격히 준수되는 경우, 특정성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규정했다. 결국 객관적 기준 없이 수혜자를 특정한 보조금은 철폐돼야 하고 그로 인한 피해는 규제대상이 되는 것이다.

보조금은 정부에 의한 불공정행위라는 점에서 대처가 어려운 법적 과제다. 그러나 어떠한 경우든 보조금이 지급되면 경쟁관계에 있는 기업이 피해를 입게 된다. 피해 기업이 초기단계에서부터 정부나 공공기관에 의해 특정기업에만 보조금이 지급되고 있다는 객관적 증거를 확보하는 것이 문제를 푸는 첩경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 성재호
성균관대 법학과, 국제법 박사, 현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세계국제법협회 한국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