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비아 민주화 열풍 오판했다

   

부랴부랴 과도정부 승인 …

  

미·유럽과 ‘화평발전’ 모색 시급

- 리비아 반군이 트리폴리에 입성한 뒤 승리의 V자를 그려 보이고 있다.
- 리비아 반군이 트리폴리에 입성한 뒤 승리의 V자를 그려 보이고 있다.

한국이 추석 연휴로 쉬고 있을 때, 중국은 리비아 문제로 바빴다. 추석인 12일 마자오쉬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성명을 발표했다.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일주일에 두 번 정례브리핑을 갖고 각종 국제문제에 대한 중국 정부의 입장을 밝힌다. 하지만 중국의 이익이 걸린 중대한 문제에 대해서는 중국 외교부 웹페이지를 통해 긴급 성명을 발표하고, 신화통신을 비롯한 관영 매체들이 이를 보도해서 국제사회에 알리는 형식을 취한다.



“중국은 리비아 국가과도위원회를 승인하기로 결정했다. 중국은 리비아 인민들의 선택을 존중하고, 과도위원회의 지위와 역할이 중요하다는 점을 중시해서 앞으로 밀접한 접촉과 연락을 해나가기로 했다…. 이와 함께 리비아 과도위원회의 책임자가 중국의 과도위원회 승인에 대해 기쁨을 표시하고, 리비아와 중국이 이전에 체결한 각종 조약과 협의 사항들이 준수될 것이며, 중국의 리비아 재건 사업 참여를 환영한다는 입장을 표명했다는 점을 밝혀둔다.”



중국 정부가 이번에 하는 행동을 보면 “어지간히도 급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런 중국의 모습을 두고 우리나라 사람들은 “호떡집에 불났다”는 말을 해왔다. 지난 2월 중국의 춘절(우리의 설)을 전후해서 시작된 리비아 국민들의 카다피 독재에 대한 반발 움직임에 대해 중국 정부는 시종일관 “미국과 유럽 강대국들이 리비아 내정에 간섭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입장을 취해왔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5개 상임이사국 중의 일원이면서도, 카다피 정권이 리비아 국민들에 대한 학살을 자행하는 것을 비난하기로 한 유엔의 결정에 동참하는 것을 거부했으며, 지난 7월에는 캐나다 글로브 앤 메일지의 폭로로 중국이 카다피 정권 유지를 위해 알제리를 통해 은밀히 무기를 공급해주었다는 의심까지 받았다. 물론 중국 정부는 이에 대해 강력히 부인하고 있다.

- 반카다피 시위대 소속 전투원들이 8일 리비아 중부 해안 도시 라스라누프의 한 정유시설 앞에 배치된 대공포 옆에서 절을 하며 기도하고 있다(위). 리비아 한 소년이 자전거에 리비아국기를 단 채 왕궁 앞을 지나고 있다.
- 반카다피 시위대 소속 전투원들이 8일 리비아 중부 해안 도시 라스라누프의 한 정유시설 앞에 배치된 대공포 옆에서 절을 하며 기도하고 있다(위). 리비아 한 소년이 자전거에 리비아국기를 단 채 왕궁 앞을 지나고 있다.

후진타오 국가주석과 원자바오 총리를 비롯한 중국공산당과 정부의 지도자들은 리비아의 운명이 이리 될 줄 몰랐던 모양이다. 중국공산당이 중국 사회 각 부문을 리드하는 것을 명시한 헌법 전문을 갖고 있는 중국의 당정군 지도자들로서는 리비아 사태에 나타난 리비아 국민들의 반독재 열망을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다. 리비아 사태의 원인을, 지난 2008년 10월의 금융위기 이래 쇠약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미국과 유럽이 경제위기에서 빠져 나오기 위해 카다피의 리비아를 이용하려는 것으로만 생각했던 듯하다. 그런 미국과 유럽의 ‘음모’에 대항해서 카다피를 지켜줄 수 있는 것은 중국 자신뿐이라고만 생각했던 모양이다. 또 그런 ‘음모’를 실제로 미국과 유럽이 꾸몄을 수도 있지만, 미국과 유럽의 그런 음모에 따라 리비아의 카다피 정권이 무너지고, 새로운 리비아 정부를 구성하는 국면으로 사태가 발전할 줄은 몰랐던 모양이다.



그런 중국의 오판은 리비아에서 생산되는 질 좋은 원유의 공급권 확보와 26개의 중국 기업이 리비아에 투자한 200억 달러라는 투자금을 지키기 위한 것이라는 점 때문에 내려진 것일까. 그런 이유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중국공산당이 모든 정치 분야를 리드하고, 중국 경제의 운명마저 후진타오와 원자바오를 비롯한 중국공산당과 정부가 쥐고 있는 지휘봉의 움직임에 달려 있는 중국 체제의 속성상, 페이스북과 트위터 등 새로운 소셜 미디어가 주도하는, 이집트에서 시작해서 리비아까지 열풍처럼 번진 민주화의 열병을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을 갖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따라서 중국공산당과 정부 지도자들의 구수회의에서 “리비아 사태의 원인은 미국과 유럽의 음모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리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중국은 이번 리비아에 대한 오판에 앞서 남사군도와 남중국해를 놓고 베트남, 필리핀과 갈등을 빚고 있었다. 남사군도 역시 해저 가스유전을 생각하면 베트남, 필리핀과 전쟁을 해서라도 지켜야 하는 중국의 중요한 이익이기 때문에 중국은 베트남, 필리핀과 마찰을 감수하고라도 ‘남사군도 주변의 남중국해는 우리의 영해’라는 주장을 관철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중국의 입장인 것이다. 남사군도 문제와 리비아 사태를 처리하는 중국의 외교솜씨는 미국과 유럽의 표현대로 ‘네이슨트(nascent·초보적이고 미숙한)’하다고 판단하지 않을 수 없다. 한창 미국과 유럽으로부터 G2라는 말을 들으면서 국력이 뻗어간다는 칭찬에 취했는지, 남사군도 해저의 천연가스와 리비아의 원유 공급선 확보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그리고 거기에 비민주적 정치시스템을 갖고 있는 체제의 결함까지 작용해서, 남사군도에서 마찰을 빚고, 리비아의 민주화 흐름을 간과하는 오판을 한 결과, 중국은 갑자기 국제사회에서 입지가 옹색해지는, 바둑으로 치면 모양이 나빠지는 국면을 맞게 된 것이다.

- 중국 외교부 마자오쉬 대변인.
- 중국 외교부 마자오쉬 대변인.

중국은 지난 6일 국무원이 주관해서 만든 ‘중국의 화평발전(中國的和平發展)’이라는 중국의 국가목표에 관한 백서를 발표했다. 중국 정부는 이 백서에서 중국이 지켜야 하는 ‘핵심이익(核心利益)’이 다음의 여섯 가지라고 밝혔다. 국가의 주권, 국가의 안전, 영토의 보존, 국가의 통일, 중국 헌법이 확립한 국가의 정치제도와 사회의 안정, 경제사회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확보하는 것이 중국의 핵심이익이라고 규정했다. 이 가운데 눈에 띄는 것은 다섯 번째의 ‘중국 헌법이 확립한 국가의 정치제도와 사회의 안정’이라는 부분이다. 다시 말해 외국이 중국 헌법이 확립한 중국공산당을 중심으로 한 현행 중국의 정치제도와 사회의 안정을 흔들지 말라는 것이며, 중국 관영매체들은 ‘만약 이들 중국의 핵심이익을 건드릴 경우 그 결과는 건드린 쪽이 책임져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중국 정부가 ‘핵심이익’이라는 말을 쓰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에 들어와서부터다. 이전에는 ‘근본이익(根本利益)’이라는 말을 주로 사용했고, ‘중대한 관심사(重大關切)’라는 말로도 표현됐다. 미국 스탠포드대학 후버연구소 마이클 스웨인(Michael Swaine) 교수의 조사에 따르면, 중국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이 ‘핵심이익’이라는 용어를 2001년에 처음 사용한 이래 2005년에 55차례, 2009년에 260차례, 그리고 작년에는 325차례나 인용했다. 2009년 7월에는 다이빙궈 외교담당 국무위원이 미국과의 전략경제대화에 나와 중국의 핵심이익이 무엇인지를 설명했다.



중국의 핵심이익이란 개념을 남사군도와 리비아를 놓고 적용해보면 중국은 남사군도에 대해서는 영토의 보존이란 개념을 적용했을 가능성이 있고, 리비아 문제에 대해서는 경제사회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다는 명분을 적용했을 가능성이 있다. 특히 리비아 문제에 대해서는 “외국이 중국의 정치제도를 흔들어서도 안 되지만, 미국과 유럽이 리비아의 정치제도를 흔들어서도 안 된다”고 생각했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중국의 그런 판단은 현재 세계의 역사는 미국과 유럽 중심으로 흘러가고 있으며, 세계사를 만들어가는 가치판단은 미국과 유럽의 몫이라는 미국과 유럽의 생각을 제대로 읽지 못한 결과일 가능성이 있다. 무엇보다도 현재 중국의 GDP가 전 세계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8% 정도로, 미국의 23~24%와 유럽의 21~22%와 비하면, 더구나 그 합한 규모에 비하면 아직도 세계사를 만들어가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점을 잠시 잊은 결과일 가능성이 있다고 하겠다. 무엇보다도 현재 중국에게 필요한 것은 경제발전을 더 오래 지속적으로 해서 최소한 중국의 GDP가 전 세계 GDP의 30% 정도는 되는 날을 기다리는 것이고, 그 이전에는 주변국은 물론 미국 유럽 등 강대국들과 진실로 ‘화평발전’하는 관계를 설정해 나가는 일일 것이다. 중국의 핵심이익은 바로 그쪽에 있다는 점을 놓쳐서는 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