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레이샤(高齡社)는 일본 은퇴 세대들이 천국으로 여기는 회사다. 사내 복지 시스템은 물론 기업 문화가 모두 그렇다. 물론 이들에게서 나오는 생산성도 웬만한 회사 이상이다. 고레이샤의 경쟁력을 살펴봤다.

일본은 장수사회다. 인구의 주축이 노인그룹으로 옮겨졌다. 현재 4명 중 1명(23%)이 65세 이상 노인이지만 2055년엔 거의 2명 중 1명(41%)까지 치솟는다. 50세까지 낮추면(액티브시니어) 2023년 인구 절반이 시니어로 채워진다. 700만 베이비부머(단카이 세대)의 은퇴로 노인 인구는 향후 3년간 폭발적으로 늘어난다. 그러니 고민도 많다. 당장은 노인 소비로 국가경제를 떠받치고 길게는 출산율을 높이면 된다.

문제는 노인 소비다. 돈이 있어도 불안해 저축에 치중하니 필수용도가 아니면 노인의 지갑은 열리지 않는다. 노인의 소비를 늘리려면 장기지속적인 소득확보가 필수다. 이런 저런 이유로 일본엔 고령 근로자를 위한 회사가 많다. 대부분은 퇴직사원의 일자리 마련을 위해 기존회사가 관계회사처럼 설립한 형태다. 가령 다이킨공업이 고령자 고용흡수와 근로자 복지향상을 위해 설립한 ㈜복지서비스가 대표적이다. 모회사와 임직원을 대상으로 물품판매·사택관리·서적보관·차량점검 등의 사업을 펼친다. 다만 이너서클을 위한 고령근로는 성공모델로 부족하다. 결국 외부시장에서 생존할 수 있는 제대로 된 고령근로를 실현해야 하는데, 그 중 하나가 고레이샤(高齡社)다. 정년퇴직자만으로 직원을 구성해 영리추구 사업모델을 성공시킨 덕분에 언론의 집중적인 관심을 받고 있다.

고령 인력을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는 일본 사회의 커다란 고민거리다.
고령 인력을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는 일본 사회의 커다란 고민거리다.

시니어가 시니어를 위해 만든 회사

고레이샤는 지난 2000년 설립됐다. 애초부터 시니어가 시니어를 위해 창설한 주식회사다. 체력과 경험을 지닌 고령자의 사회활동을 돕겠다는 취지로 설립된 인재파견회사로 일하려는 고령자가 소속돼 있다. 때문에 대놓고 고령근로는 최대가치의 수행미션이다. 고령직원을 위한 쉬운 기호문구가 곳곳에 배치됐을 정도다. 회사이름은 압권이다. 사명이 고령자(高齡者)의 일본어 발음과 똑같다. 로고도 고(高)를 옆으로 눕혀 상징했다. 기억하기 좋은 최적 회사명이란 평이다. 명성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각종 언론의 단골 취재거리다. NHK 등은 특집기획보도를 통해 회사이름만큼 직설적인 고령근로의 실현모델에 초점을 맞춘다.

설립자는 우에다 켄지(上田硏二) 회장이다. 도쿄가스 검침원으로 입사해 이사를 거쳐 자회사 최고경영자(CEO)를 역임한 베테랑 경영자다. 그가 도쿄가스 퇴직자(OB)를 모아 설립했다. 가스검침개폐관리 업무에 퇴직자를 파견한다는 점에서 노인 일자리로는 제격이다. 설립 이유는 주변에서 확인한 정년퇴직자의 안타까운 삶에 돌파구를 마련해 주고 싶어서다. 은퇴 이후 처음은 골프·마작 등 취미활동과 음주모임으로 여유를 즐기지만 6개월이면 질릴 수밖에 없고, 이후엔 가시방석인 가족 눈치 속에 집에서 빈둥대는 이들의 현실에 주목했다. 일하고 싶다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는 이들의 고민도 작용했다. 성적표는 좋다. 순조롭게 매출이 늘었다. 설립초기 2000만~3000만엔이던 매출이 지난 2010년에는 4억엔을 넘겼다. 등록 직원도 650명까지 불어났다. 고객회사는 100개사에 이른다.

고령근로 표방기업답게 회사엔 정년제도가 없으며 구조조정도 없다. 높은 취업률을 반영하듯 이직률은 거의 제로다. 입사조건은 60세부터다. 은퇴대국답게 수요는 넘쳐난다. 직원은 대부분 계약직이다. 이들에게 요구되는 건 3가지다. 주 30시간 이내의 근무시간과 근무일의 자율선택, 그리고 8만~10만엔의 월급수준(시급 1000엔)이다. 30시간 이내 근무는 사회보험 때문에 제한을 뒀고, 근무일 본인 선택은 건강취미 등을 고려한 조치다. 여기엔 기본적으로 ‘워크셰어링(Work Sharing)’의 발상이 반영됐다. 대개는 주 2~3일 근무다. 직원들은 “연금+α가 가능하고 삶의 보람을 느끼며 건강까지 덤으로 얻는다”며 대만족이다. 전업이 아니니 취미활동을 포기할 이유도 없다. 연령대는 65~74세가 대다수로 75세를 넘긴 고령직원도 있다. 평균연령은 67.5세다. 절대 다수가 ‘하루하루가 일요일’인 연금수급자로 휴일조차 수당증액 없이 기꺼이 일한다.

“잔업 장시간 근로 ‘No’ 취미삼아 일하자”

업무는 단순하다. 아직까지는 도시가스 관련업무가 압도적이다. 개별가구를 방문하거니와 주말 이사가 많아 노사 양측에 유리한 업무다. 가령 가스미터기의 코크 개폐 등 정기점검이 그렇다. 개별 가정을 방문하는 순회업무다. 신축주택이면 입주 전에 가스급탕기의 동작테스트 업무도 해당된다. 가스기기유지회사에서의 전화응대나 사무업무도 담당한다. 가스기기 판매회사의 창고관리업무도 있다. 천연가스주유소의 차량연료 충전업무도 최근 추가됐다. 올 4월부터는 노인여성을 위해 가사대행 서비스가 더해졌다. 시간당 1980원으로 청소·세탁·쇼핑·음식 등을 제공한다. 출발은 순조롭다. 동종 타사보다 낮은 비용 덕에 첫 달 매출만 400만엔을 기록했다.

중노동은 없다. 잔업 등 장시간 근로는 불허다. 기본방침이 근로분담 전제의 워크셰어링이다. 2인 1조로 1인분의 업무를 처리한다. 취업기회 제공차원이다. 덕분에 취업률은 최대 70%에 달한다. 일반 파견회사(10%)보다 월등히 높다. 직원도 짧게 일해 수입이 다소 줄지만 일거리가 자주 연결되는 것에 만족한다. 연금병용이라 소득에 큰 부담도 없다. 직원들은 최후 직장이라고 인식하며 애착을 갖고 최선을 다한다. 때문에 대개 평판 나쁜 파견회사 이미지와 거리가 멀다. 고객사와의 상생효과도 크다. 현역 파견사원을 쓰기엔 가벼운 일거리라도 부담 없이 맡길 수 있다. 휴일 대응을 비롯해 업무피크 때만 부를 수 있어 노동유연성이 보장된다. 시급도 낮다. 휴일에 붙는 할증수당을 없애 고객의 비용부담을 줄였다.

이 회사는 수익에는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일은 생활(수입)보다 보람 중시에 포커스가 맞춰진다. 퇴직인생에게 절실한 건 돈보다 사회동료와의 연결고리라고 봐서다. 매출이 늘어나도 순익은 제자리걸음이다. 회사는 순환경영과 투명경영을 실천한다. 순환경영이란 경상이익의 30%를 직원에게 되돌려주는 것으로 상징되고, 투명경영은 회사실적의 전체 공개로 대변된다. 순환경영은 4가지 원리로 극대화된다. 고품질의 노동공급으로 높은 판매서비스를 실현해 결과적으로 흑자정착의 고수익기반을 다진다. 이를 통해 궁극적으로 급여휴가 등 직원 처우를 강화해 다시 고품질 일자리로 승화된다. ‘고품질→고판매→고수익→고처우’의 순환구조다. 고처우 핵심인 경상이익 30%의 직원 환원은 기말수당(20%)과 업적수당(10%)으로 시현된다. 인원정리는 없다. 만에 하나 그럴 경우가 생기면 CEO부터 해고하겠다는 의지다. 작지만 사회공헌에도 열심이다. 필리핀의 길거리 아이들을 원조하고 있으며 다큐멘터리 독립영화 제작에도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직원건강·업무영역 확대가 관건

이를 위해선 CEO의 역할자질이 결정적이다. 회장은 스스로 “바보 같은 장군은 적군보다 무섭다”는 속담을 반복하며 경계로 삼는다. CEO가 직원 중시를 고집하는 건 어릴 적 경험 탓이다. 공장책임자였던 아버지가 실직한 후 가정위기를 겪은 이후부터다. “직원을 곤란하게 해서는 안 된다”는 생생한 교훈이었다. 기업부활을 위한 구원투수로서의 경험도 한몫했다. 수억엔대 적자기업의 CEO로 스스로 살아 있는 기쁨과 남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해봤다. 취임 직후 “구조조정은 없다”고 선언한 후 “몇 년 후 일류호텔에서 1000만엔짜리 성대한 축하파티를 열 것”이라고까지 강조했다. 그리고 곧 실천됐다. 위기도 있었다. 창업 이후 대형거래사가 70명의 파견계약을 갱신하지 않은 것이다. 절체절명의 위기는 CEO만이 해결할 수 있다고 믿은 설립자는 스스로 영업현장에 나섰다.

\\설립자가 고령근로에 목을 매는 건 현대 일본의 노인빈곤과 일맥상통한다. 그에 따르면 고령자의 경제적 사정은 ‘2대 6대 2’로 요약된다. 앞의 ‘2’는 노후생활에 여유를 가진 그룹이다. 뒤의 ‘2’는 정반대의 빈곤그룹이다. 중간의 ‘6’은 이도저도 아닌 상황이다. 연금사정에 좌우되는 잠재적인 불안그룹이다. 결국 노인 중 80%가 빈곤 함정에 빠질 수 있다는 의미다. 연금마저 파탄일로니 더더욱 불안감은 높다. 그만큼 고령근로의 필요성은 절박해진다는 얘기다. 이들 노인빈곤을 받아줄 채널로서 일자리 제공이 결정적인 이유다. 회장은 “고령자에게도 반드시 일이 있다”며 “땀을 흘리는 양이 적기 때문에 찾기 힘들 뿐”이라는 입장이다.

향후 해결해야 할 과제도 있다. 특히 신경 쓰이는 건 직원의 건강문제다. 또 취업률을 60~70%로 유지하는 것도 어렵다. 그러자면 도시가스 관련업종을 벗어나 업무영역을 확장해야 하는데 이게 쉽지 않다. 특히 여성고령자의 일자리가 부족하다. 이를 위해 회사는 보유자격특수기능을 살릴 수 있는 고부가가치 업무를 확보하고자 노력 중이다. ‘고령자활약지원협의회’를 만든 건 이 때문이다.

회사의 꿈은 원대하다. 계획대로라면 은퇴대국의 장밋빛 전망을 실현할 수 있는 매력적인 비전을 제시한다. ‘고레이샤’의 뜻을 공유하는 회사들을 일본 전역으로 확대시킨다는 계획이다. 필요하면 노하우를 적극 전수할 예정이다.

Tip l  CEO 연구

파킨슨병과 싸우면서도 여유 잃지 않는 덕장

우에다 켄지 회장은 1938년 아이치(愛知)현에서 태어났다. 1956년 도쿄가스에 미터검침원으로 입사해 1991년부터는 자회사와 협력회사의 경영재건을 맡은 실력파 경영자다. 2003년 은퇴 후 2010년 회장에 올랐다. 직원제일주의를 강조하며 ‘사람은 재산이자 보물’이란 경영철학을 지녔다. 지금은 몸이 불편하다. 회사 설립과 동시에 파킨슨병이 발병했다. 운동능력이 저하돼 지금도 발성훈련 등을 받는 중이다. 그래도 여유는 넘친다. 인터뷰를 보면 불편한 몸에도 시의적절한 유머를 섞어가며 강인한 노장의 존재감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그의 오랜 꿈은 자신만의 회사 설립이었다. CEO로서 본인의 경영철학을 실천하고 싶었다. 기회는 우연히 다가왔다. 전무로 일하던 59세(1997년) 때 협력회사가 경영부진에 빠진 게 CEO로의 변신 계기다. 도산직전까지 몰린 협력회사 인수 후 자원해 사장에 취임했다. CEO 경험은 값졌다. 다행히 5년의 재건과정을 거쳐 회사는 정상화됐다. 고레이샤는 이때(2000년) 만들어졌다. 정년퇴직자의 ‘삶과 일의 보람’을 유지해주고 싶다는 꿈을 모회사주변지인이 이해해주고 협력해줘 세울 수 있었다. 다만 겸직 금지로 정년퇴직 때까지 CEO는 다른 이에게 부탁했다. 65세 때 퇴직 직후 고레이샤 사장에 올랐다. 직원협력회사 제일주의를 실천하는 회사설립과 CEO의 꿈이 이뤄진 것이다. 그의 우선순위는 ‘직원협력회사 > 고객 > 주주’다. 이때 직원은 고령자다. 지향점은 직원 개개인 삶의 향상이다. 퇴직 이후에도 계속해 일하는 공간제공이 회사임무다.

그 역시 정년 후의 생활고민을 55세 때부터 시작했다. 뾰족한 수는 없었지만 CEO로서 살고 싶은 꿈을 꿨다. 사업내용은 명확했다. 정년퇴직자의 삶의 질을 높이고 그들의 교제공간으로서 직장을 제공해주겠다는 포부였다. 전승돼야 할 중요기능이 퇴직이란 이름으로 묻히는 것도 싫었다. 먼저 퇴직한 선배직원의 은퇴생활에 대한 반성도 한몫했다. “주 2~3일 정도는 일하며 퇴직인생을 보내고 싶다”는 이들의 간절한 바람에 주목했다. 결과는 대환영이었다. 본인은 물론 특히 아내들의 만족 반응이 뜨거웠다. 덕분에 여전히 주변의 격려는 뜨겁다. 지금도 출자희망자는 수두룩하다.

\\그는 일벌레다. 현역시절부터 줄곧 그래왔다. 정년퇴직 후 CEO로서의 삶도 그랬다. 스스로 고난을 즐기는 스타일이다. 정년을 맞는 후배에게도 늘 “곤란에 패하지 말고 이를 친구와 스승으로 삼자”고 일갈한다. 그는 고졸이다. 하지만 패배의식은 없다. 대신 지닌 게 노력이다. “지식은 져도 지혜와 땀은 지지 않도록 온 힘을 다해왔다”고 밝힌다. 방향만 옳다면 반드시 땀은 지혜를 가져다준다는 게 좌우명이다. CEO로서의 명확한 입장도 강조된다. 그에 따르면 기업책임은 99% 사장에게 있다.

우에다 켄지 회장의 말이다. “퇴직생활은 가능한 사회와의 연결고리를 갖는 게 중요해요. 본인과 사회를 위해 일하는 게 중요한 까닭이죠. 요즘 젊은 친구들이 나빠졌다고 하는데 이것도 모두 선배인 우리 책임입니다. 사람은 선배 등을 쳐다보며 성장한다는 말도 있잖아요. 고령자의 역할이 제대로 성립 실천될 때 사회는 건강해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