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몬은 일본이 자랑하는 사교육 기업이다. 국가의 경쟁력이 개인의 교육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이 일본 기업은 세계시장에서 여실히 증명하고 있다. 일본 구몬의 경쟁력을 살펴봤다.

우수한 인재는 탄탄한 교육에서 비롯된다. 그런데 교육 열기는 곧 돈이다. 적어도 아시아권에서 교육아이템은 훌륭한 사업모델이다. 블루오션답게 거액자금이 교육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시장선점만 잘하면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된다.

문제는 사업의 확장성이다. 잘해봐야 내수시장일 뿐 해외진출은 좀체 어렵다. 글로벌무대에서 통할 수 있는 보편성을 갖춘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한때 유행했던 스파르타식조차 단기생명을 구가했을 뿐이다. 보편적인 학습법이 존재하기 힘들다는 의미다. 단순한 나눗셈조차 계산법은 국가마다 차이가 있다. 서양과 동양의 사고체계가 기본적으로 달라서다.

그런데 예외가 있다. 바로 ‘구몬식(公文式)’ 교육시스템이다. 일본에서 일본인에게 개발된 교육시스템인데 지금은 해외에서 더 유명하다. 외국학생이 압도적으로 많다. 구몬식은 동양과 서양식이 절묘하게 결합된 것으로 평가된다. 이게 보편성을 갖고 세계적인 보급루트를 찾았으니 성공할 수밖에 없었다. 각국 커리큘럼과 무관하게 움직이는 구몬식이 되레 세계적 교육공유에 영향을 미친 셈이다. 특히 아시아에서의 활약이 눈부시다. 아시아엔 경제성장 중인 신흥국이 대거 몰렸다. 학력 향상이 대단한 지역이다. 소득에 여유가 생겨 자녀교육에 거금을 대려는 수요가 많고, 이게 경제성장과 자녀능력을 향상시키는 승수효과가 한창이다. 또 교육법 판단은 부모가 하는데, 30~40대 아시아권 부모면 ‘일본 No.1’을 기억하고 있어 구몬 브랜드의 영향력 확대로 연결된다. 일본 ‘公文’이 세계의 ‘Kumon’이 된 셈이다.

구몬(구몬교육위원회)은 일본의 대표적인 사교육기업이다. 구몬교육위원회를 지주회사로 산하에 일본을 포함해 6개 지역본사를 뒀다. 자회사로 출판·연구소를 비롯해 4개사도 운영 중이다. 일본 내에 86개 사무국을 보유했고, 모두 3417명(그룹전체)의 임직원이 근무 중이다. 매출은 최근 증가세다.

2010년 711억엔(연결회계 기준)에서 2011년엔 734억엔으로 늘었다. 곳곳에 있는 구몬 교실은 시장파워를 잘 보여준다. 일본 전역에 무려 1만6700개를 운영 중이다. 지난 3월 기준 교사 1만4600명이 근무하고, 학생은 149만명에 달한다. 해외진출도 왕성하다. 교실(8300개), 선생님(7600명), 학생(293만명) 등 일부는 국내 수준을 넘어섰다.

진출지역은 세계 47개국(지역)이다. 학생은 모두 443만명에 이른다. 비즈니스는 다양하다. 산수(수학), 영어, 국어, 프랑스어, 인도어 등 프로그램 연구개발·제작·지도법연구 등과 함께 교실설치·운영관리가 주력이다. 하위엔 물류사업과 교재제작·인쇄사업을 뒀다. 아동서와 그림책 출판과 교구, 지육(知育)완구 등의 교육상품 개발·판매에도 열심이다. 

원조는 1954년 한 고교교사로부터 비롯된다. 당시 구몬 토오루(公文公)라는 고교교사가 초등학교 2학년생을 위해 “제대로 된 학력을 키워주고 싶다”며 산수교재를 만든 게 계기다. 자습형태로 그날부터 매일 30분씩 공부했는데, 초등 6학년 즈음엔 고교과정의 미분·적분 문제까지 풀 정도가 됐다. 매일 무리하지 않고 착실히 단계를 올려나가도록 반복한 끝에 만든 독특한 교재가 일등공신이었다. 이게 구몬식 교육법의 시초다.

동시에 설립자는 수학이 약해 인생선택지가 한정된 숱한 제자를 봐왔다. 문과학생이면 더욱 그렇다. 수학이 안 돼 어쩔 수 없이 문과를 택하는 경우다. 반면 이과학생이면 이과·문과 중 골라 갈 수 있다. 그 원인이 수학의 이해 여부라면 너무 잔혹하다는 게 그의 판단이었다. 설립자는 이 경험들을 자학자습의 습관배양으로 사업화했다. 학교 커리큘럼에 의존하지 않는 스스로 학습법의 개발이다. 그러자면 계산력과 독해력이 필수라고 봤다.

사업화는 1955년 구몬식 교재를 사용한 산수교실이 최초다. 동네의 작은 학원에서 출발했지만 입소문은 순식간에 퍼졌다. 1958년 드디어 창업했다. 여세를 몰아 1962년 도쿄에 교실을 열었고 이듬해엔 도쿄사무소를 개설했다. 구몬식 교육은 이후 태평양을 건너 일본이민자가 많던 뉴욕에까지 퍼졌다. 그리고 1974년 뉴욕교실이 열렸다. 런던·대만도 줄줄이 개설됐다. 하지만 이때만 해도 해외주재 일본 학생에 한정됐다. 일본인 이외의 수강생에게 가르치기 시작한 건 1980년대부터다. 본격적인 국제교육법으로서의 공인단계다. 이후 2000년대는 그룹경영체제로 재편됐다. 연령·과목 등 교육대상을 확대하며 현재에 이르렀다.

구몬의 해외진출에선 배울 게 많다. 가령 영국의 경우 교실개설의 95%가 교회입지다. 영국에선 경관문제로 간판을 달기가 어렵다. 그래서 교실이 열릴 때 입구에 작은 안내판만 허용된다. 그런데 영국교회란 대부분 인근지역의 랜드마크다. 이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목격하면 그 소문은 삽시간에 퍼질 수밖에 없다.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 교육아이템의 해외진출은 아주 어려운 일이다. 교육법이란 게 단번에 이해되지 못할뿐더러 성과조차 확인에 상당시간이 소요된다. 어지간해선 시장흥미를 자극하기가 어렵다. 그런데 영국사례는 절묘했다. 해당국가의 사정을 십분 활용한 대응으로 현지화에 성공했다. 물론 일부지만 교재도 현지화로 변용된다. 수학의 경우를 보자. 당연하지만 기술언어는 각국마다 다르고 표기만 같다. 이때 일부표시를 해당언어로 바꿨다.

국어도 거론되는 문학작품을 국가마다 배려한다. 포르투갈 교재에 브라질 작품을 싣는 식이다. 다만, 구몬식 성공은 단순한 언어수정에 있지 않다. 기본문제 자체에 합리성이 풍부하고 보편적으로 통하는 설득력을 가졌다. 즉 구몬식은 교육철학의 가치보급을 우선해 해외용이라고 근본적으로 뜯어고치는 일은 없다(TIP기사 참조).

일본 구몬은 연령, 학년과 무관하게 순전히 학생의 수준을 평가해 교재를 제공한다.
일본 구몬은 연령, 학년과 무관하게 순전히 학생의 수준을 평가해 교재를 제공한다.

직원 아닌 파트너제로 운영되는 구몬 교사들

구몬의 중심은 교사다. 그런데 이게 좀 독특하다. 구몬 교사는 직원이 아니다. 회사와 프랜차이즈 계약을 맺어 학습을 지도하는 파트너다. 자격조건은 없지만 50세까지 여성이면 충분하다. 50세까지 시작했다면 이후 연령제한은 없다. 충실한 연수·지원제도를 갖춰 교육 미경험자에게도 접근성을 높였다. 교실개설 전에 회사노하우·교재사용법·선배와의 교류·모의연습 등을 제공한다. 중심업무는 학생지도·교실운영이다. 재미난 건 교실운영이다. 1주일에 2일만 문을 여는데 교재준비·자습지원(교습 및 채점)·학습관리의 3단계를 돕는 구조다. 개별학생에게 맞춤숙제를 낸 후 이를 채점하며 짧지만 일대일 수업을 진행한다. 학생은 수업하는 날 교실로 찾아가면 수업흐름에 따라 자습한다. 오후 2~5시가 기본으로 편한 시간에 찾아가는 구조다. 교사사정에 따라 시간조정은 가능하다. 개별가정의 방문지도인 한국 구몬과도 다르다. 교실은 빌려도 되지만 자택에서도 무방하다. 어떤 식이든 회사가 지원한다. 자녀양육 등 라이프스테이지에 맞춰 일할 수 있어 30~40대 주부에게 인기다.

이쯤 되면 수입체계가 궁금해진다. 회사·교사의 계약형태가 워낙 다양해 일률적인 추정은 불가능하지만 홈페이지에 게재된 몇몇 사례를 보면 교사 수입의 대략적인 추정은 가능하다. 자택 일부를 교실로 쓰는 절감형 계약의 경우 학생 35명(교과목 50~60개) 정도면 월 5만~7만엔 가량 번다. 50명을 넘기면 10만엔에 육박한다. 과목회비는 연령별로 달라진다. 초등학생(6300엔), 중학생(7350엔), 고교생 이상(8400엔) 등이다. 지출은 교실스텝의 인건비, 홍보비 등 제반경비가 해당된다. 다만 이는 자녀양육 등 무리하지 않는 범위에서 운영하는 경우다. 교실운영을 주업으로 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학생이 100명 미만일 경우 월 20만엔은 가능하다. 학생수에 따라 비례해 수입은 증가한다.   

구몬 교사가 되려면 일정과정을 거쳐야 한다. 개별상담 후 면접·시험을 받는 게 조건이다. 약 2시간의 사전설명회 이후 3단계의 추가과정이 필요하다. 면접·시험은 개별상담(1단계)에서 실시한다. 자학자습의 지원이 교육원칙인 까닭에 기초적인 학력 확인은 필수다. 산수(수학)·영어·국어(일본어)의 3과목이 검증대상이다. 이후 개설이전의 연수(2단계)다.

교재·지도법을 배우고 각종 역할과정과 교실견학이 실시된다. 3개월의 8회 과정이다. 이후 교실개설(3단계)이다. 교실의 입지결정 및 환경정비다. 교실공간으로의 정비에 필요한 비품·시설을 원조한다.

회사는 ‘교육이 세계를 바꾼다’는 신념을 강조한다. 교육으로 세계평화에 공헌하는 꿈의 실현이 회사의 공식이념이다. ‘인간에게 주어진 가능성을 발견해 그 능력을 최대한 펼치는 건전하고 유능한 인재를 육성해 지구사회에 공헌할 것’이란 의미다.
기초학력을 익히는 과정에서 자기긍정과 자학자습 능력·감각을 키우는 교육을 지향한다.

이것이야말로 시대·국가를 초월하는 ‘살아가는 힘’으로 확신한다. 현 CEO는 1979년 구몬에 입사한 츠노다 아키오(角田秋生) 사장이다. 아동사업부장, 사업개발실장을 거쳐 1998년 서사(書寫)교실 개설을 주도한 기획통 실력자다. 이후 자회사 사장을 거쳐 2005년 사장에 취임했다. 임직원 처우는 좋은 편이다. 대졸초임이 주택수당(3만엔)을 포함해 월 24만엔이다. 오전 9시20분부터 오후 5시45분까지 하루 7.5시간을 일하는 근무시스템이다. 주5일 근무와 유급(초년 10일)·안식휴가 등 연간 129일이 휴가다(2011년).

Tip | 구몬의 세계진출 전략

미국 공립초 구몬 배운 후 점수 향상 … 6가지 해외성공 노하우

일본 구몬 설립자 구몬 토오루, 구몬사 홈페이지 모습
일본 구몬 설립자 구몬 토오루, 구몬사 홈페이지 모습


구몬의 해외진출이 본격화된 계기는 1988년이다. 미국의 한 공립초등학교에서 구몬식 산수를 채용한 결과 전미 학력테스트에서 학교 평균점이 20점이나 올랐기 때문. 이는 곧 <타임>, <뉴스위크> 등 유력지에 실렸고 순식간에 ‘Kumon’은 세계적 관심사로 떠올랐다. 이후 세계 곳곳에서 교실을 열자는 제안이 쇄도했다.

이전까지 교실 개설자의 절대 다수는 현지 거주의 일본인이었다. 하지만 이때부터 현지인의 개설요청이 잇따랐다. 이때 지도·운영측면의 지원을 위해 사무국도 각국에 설립했다. 당시 지원인원은 일본인 파견사원으로 현지로 날아가 연수·개설지원을 담당했다. 해외진출이 목적이 아니라 현지요청에 호응하는 차원이었기에 인건비가 들어도 하나하나 철저히 안착할 수 있었다.

구몬의 해외진출 성공전략은 6가지로 분류된다. 먼저 △‘각국 사정에 의존하지 않는 교재’다. 애초 구몬 교재는 일본의 학습지도요령에 따르지 않고 고교상당 학습가능을 목표로 했다. 이를 위해 내용을 만들었기에 해외교재를 굳이 바꿀 필요는 없다. 불가피한 일부에 한정해 국가특성을 반영하면 족했다. △‘현지사정에 맞춘 교실운영법의 채용·회비설정’도 중요하다. 진출국의 교육사정·법률에 맞춘 유연한 대응이다. △‘현지파트너로서 현지직원 채용·육성’도 같은 맥락이다. 이때 현지직원은 현지화 성공열쇠를 쥔 파트너로 중시된다. △‘구몬식에 공감하는 교사채용·육성’은 회사이념·가치관을 공유하는 최대 관건이다. 수익성보다는 가치공유를 우선·고려한다. △‘업무프로세스 표준화와 본사·사무국 기능충실’은 노하우의 표준화와 현지특수성을 배려한 쌍방향 조치다. △‘글로벌차원의 학습하는 조직창조’도 구몬의 특징 중 하나다. 지도자연구대회, 세계지도자연구대회, 지구(地區)회, 자주연구 활동 등이 대표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