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경제의 무게 중심이 동에서 서로 이동하는 모습이다. 균형 발전을 최우선 경제 공약으로 내건 시진핑 정부 출범 이후 이 같은 조짐은 더욱 뚜렷하다. 우리 기업들의 움직임도 빨라졌다. 10년 만에 세계의 공장에서 세계 최대 소비시장으로 변신한 중국에서 차이나드림을 현실화시키기 위해 ‘중원’(서부내륙)을 놓고 우리 기업들과 세계 유수 기업 간 혈전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왼) 서부 신장위구르자치구 도시 우르무치 전경, (오) 서부 내륙 개발의 중심지인 시안시
(왼) 서부 신장위구르자치구 도시 우르무치 전경, (오) 서부 내륙 개발의 중심지인 시안시

지난 2012년 12월3일 중국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국무원이 최근 중원경제구계획을 승인하고 국가발전개발위원회가 이를 공표했다고 전했다. 여기서 중원경제구계획이란 허난(河南)성이 중심이 된 중국 내륙지역을 경제개발지구로 지정, 개발하는 것이 골자다. 여기에는 허난성 외에도 허베이(河北)성, 산시(山西)성, 안후이(安徽)성, 산둥(山東)성이 포함돼 있다. 중국정부가 중원(서부내륙)지역을 서둘러 개발하는 것은 동부 연안에 집중된 경제 쏠림을 이완시키기 위해서다.

시진핑 정부 출범 이후 중국정부가 가장 많이 내세우는 정책방향은 부의 균등한 분배와 부정부패 척결이다. 중국 정부는 막대한 수출로 벌어들이는 부가 상하이, 쑤저우, 항저우 등 동부 연안 도시에 집중돼 있으며 이에 따른 부정부패와 지역경제 불균형으로 지역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2012년 11월 출범한 시진핑 정부는 수출 중심의 경제 기조에서 내수로의 전환을 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역균형 발전이 필수적이다. 이런 이유로 중국 정부는 3~4년 전부터 서부 내륙 지역 인프라 확충에 사활을 걸어왔다. 대표적 서부 내륙 지역인 허난성은 인구만 1억명이 넘지만 생활수준은 동부 연안 지역에 비해 형편없이 뒤떨어진다.

현재까지 서부 내륙 지역 개발에 대한 중국정부의 의지는 강하다. 2012년 1월부터 10월까지 동부 연안지역 고정자산 투자는 전년 같은 기간에 비해 18.2% 늘어난 반면, 서부지역은 24.2% 증가했다. 경제성장률로도 대표적 도시인 충칭(重慶)의 경우 2012년 경제성장률이 14%에 달해 약 7.8%로 예상되는 중국 평균치의 두 배가 넘는다. 전체 규모로만 놓고 보면 서부 경제권 비중은 여전히 동부에 비해 작지만 개발 중심축이 동부에서 서부로 이전하고 있다는 것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글로벌 기업들의 서부 내륙 지역 쟁탈전은 이미 시작됐다. 지난 2012년 6월 대형 자동차 메이커 폭스바겐은 오는 2015년까지 중국 서부 내륙 지역에 자동차 조립공장을 지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시안(西安)은 중국의 실리콘밸리를 꿈꾸며 글로벌 정보기술(IT) 기업들의 진출이 활발하다. 동부 연안 도시들이 제조업을 기반으로 한 물류 중심의 산업부터 키워나갔다면 서부 내륙 지역은 물류비 부담이 상대적으로 적은 IT 산업이 주력 산업으로 부상하고 있다. 중국정부가 10개년 경제계획을 발표하면서 밝힌 친환경, 첨단기술 집약적 산업의 메카가 바로 서부 내륙 지역이다. 이에 따라 글로벌 IT기업들의 움직임도 활발해 IBM은 지난 2009년 3월 쓰촨(四川)성 청두(成都)가 중심이 된 ‘대서부 지역’ 계획을 발표했다. PC제조사인 델도 같은 지역에 3000여명이 근무하는 운영센터를 건립할 계획이다. 

중국정부는 서부 내륙 지역을 친환경 산업단지로 개발 중이다. 사진은 간쑤성 둔황에서 기술자들이 태양광 발전용 태양전지 패널을 설치하는 모습.
중국정부는 서부 내륙 지역을 친환경 산업단지로 개발 중이다. 사진은 간쑤성 둔황에서 기술자들이 태양광 발전용 태양전지 패널을 설치하는 모습.

서부지역 경제성장률 중국 평균 2배
충칭에는 연간 400만대 규모를 생산하는 HP의 생산공장이 들어서며 폭스콘, 에이서, 아수스 등 PC제조사, 부품사들이 앞 다투어 공장 설립을 발표했다. 관련업계에 따르면 오는 2016년이면 이들 서부 내륙 지역에서 생산되는 PC만 연간 1억대에 달할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우리기업인 삼성전자도 시안(西安)에 총 70억달러를 투자해 오는 2014년까지 10나노급 낸드플래시 생산시설을 지을 계획이다. 2012년 9월 착공된 이 생산시설은 2013년 말부터 시가동에 들어간다. 삼성전자는 당초 계획대로라면 이 공장에서 300㎜ 웨이퍼 투입기준 월 7만〜10만장을 생산한다. 삼성이 시안에 공장을 지음에 따라 우리 부품 기업들이 시안을 중심으로 협력 체제를 구축하는 것도 가능해졌다.

중국 서부 내륙 지역이 글로벌 기업들에 주목받는 이유는 동부 연안 대도시들보다 인건비가 싸기 때문이다. 지난 2011년 상하이 노동자의 평균 1년 임금은 7만5482위안인 데 비해 쓰촨성은 3만7330위안에 불과했다. 세계적 IT기업 인텔이 2009년 상하이 푸둥 공장을 쓰촨성 청두 공장과 합치기로 했는데 이유 역시 값싼 노동력과 중앙정부 차원의 전폭적인 지원 때문이었다. 인텔은 이미 지난 2003년 10년간 법인세를 25%에서 15%로 낮춰주는 인센티브 제안을 받아들여 청두에 공장을 세운 바 있다.

지역 개발의 발목을 잡아오던 물류 문제도 빠르게 개선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지난 2011년 6월 충칭과 유럽을 잇는 국제 화물철도 노선이 개설되면서 서부 내륙 지역의 물량 문제는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머스크, 후지쯔 등 물류 기업들이 등한시해오던 이들 지역에 속속 진출하고 있는 것도 비슷하다.

1. 대만 ODM 노트북 업체 위스트론 청두 공장. 2. 지난 2012년 9월 시안시 하이테크산업단지에서 열린 삼성전자 메모리 반도체 공장 기공식.
1. 대만 ODM 노트북 업체 위스트론 청두 공장. 2. 지난 2012년 9월 시안시 하이테크산업단지에서 열린 삼성전자 메모리 반도체 공장 기공식.

중국 내수·유럽 수출 위한 교두보  
서부 내륙 지역이 주목받는 또 다른 이유는 중국 경제체제가 세계의 공장에서 세계의 시장으로 변모하기 때문이다. 연안 1급 도시들이 성장하면서 이들 지역을 공략하기 위한 생산시설로 서부 내륙 지역 도시들이 각광을 받고 있다. 현대차는 쓰촨성 쯔양시에 공장을 짓기로 하고 지난 2012년 8월 공장 착공식을 열었다. 쯔양시는 충칭과 청두 중간지점에 위치한 도시다. 현대차와 중국 내 파트너인 쓰촨난쥔기차유한공사가 36억여위안을 들여 설립하는 쓰촨현대는 연간 트럭 15만대, 버스 1만대를 생산한다. 오는 2014년 완공되는 이 공장에서는 프레스와 차체, 도장, 의장, 엔진 등 자동차 생산에 필요한 풀 라인업을 갖춘다. 현대차는 이 공장을 통해 중국 내 내수시장을 확충하는 한편 유럽형 신형 트럭도 여기서 만든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이 밖에도 우리 기업 중에는 충칭에 포스코강판이 자동차 강판을 납품하고 있으며 금호석유화학 합성고무 생산시설도 충칭에 있다. 또 SK는 충칭에 약 1100억원을 투자해 리튬이온 2차전지용 양극재 공장을 건설하며 GS칼텍스도 서부지역 진출을 조심스럽게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유통업체들의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중국에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는 롯데마트는 상하이, 항저우 등 1급 도시의 경우 해외 유명 대형 유통사 내지는 중국계 업체들과의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 영업이익이 낮다고 판단, 서부 내륙 지역 2, 3급 도시를 적극 공략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그 일환으로 지난 2012년 10월 롯데마트는 ‘롯데마트 충칭 유한회사’를 설립한 데 이어 충칭 시내 신도심지역인 다핑(大坪)에 2013년 초 1호점을 출점한다는 계획이다. 2013년 말에는 2호점 오픈도 준비하고 있다. 롯데백화점도 청두에 1호점 개점을 준비 중이다.

종합식품기업인 풀무원도 중국 시장을 본격적으로 공략하기 위해 현지 공장을 지었는데 그 대상지가 바로 수도인 베이징과 충칭이었다. 자회사 풀무원건강생활이 설립한 푸메이뚜어유한공사는 현재 충칭에서 건강기능식품과 스킨케어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정민영 KOTRA 충칭무역관장은 “충칭시에 호적을 둔 인구가 3300만명인데 상주인구는 2900만명으로 약 400만명은 일자리를 찾아 동부 연안 대도시로 이주한 농민공”이라면서 “최근 이들이 고향으로 돌아오면서 지역 내 수요가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서부 내륙 지역은 아직까지 위험 요소가 산재하고 있다. 무엇보다 성마다 지방자치방식으로 운영되지만 중앙정부의 입김이 여전히 강하다. 지역 성 서기가 자신의 임기 내 치적을 위해 다양한 형태의 지원을 약속했다가 나중에 유야무야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임금은 동부 대도시에 비해 확실히 싸지만 질적 수준까지 담보할 수는 없다는 것도 진출 기업들의 고민을 깊게 만든다. 전병서 경희대 교수는 “전문대 이상 졸업한 고급인력이 전체 8%에 불과한 상황에서 높은 기술력을 요하는 산업이 진출하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전 교수는 그러면서 “중국은 성마다 지역 문화가 제각각이기 때문에 현지 파트너를 어떻게 정하느냐가 사업 성패의 열쇠”라고 지적했다. 또 중국정부가 유해물질 배출에 대해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고 있다는 점도 기업 진출 검토 시 철저하게 따져봐야 할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