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건설 솔루션 업체 존슨 컨트롤스가 아일랜드에 본사를 둔 타이코와 합병을 결정한 것에 대해 법인세를 줄이기 위한 ‘꼼수’라는 비난 여론이 일고 있다. 사진은 알렉스 모리나로리 존슨 컨트롤스 최고경영자(CEO).
미국 건설 솔루션 업체 존슨 컨트롤스가 아일랜드에 본사를 둔 타이코와 합병을 결정한 것에 대해 법인세를 줄이기 위한 ‘꼼수’라는 비난 여론이 일고 있다. 사진은 알렉스 모리나로리 존슨 컨트롤스 최고경영자(CEO).

지난 1월 25일 미국 건설 솔루션 업체 존슨 컨트롤스가 보안 시스템 업체 타이코 인터내셔널과 합병하기로 했다는 뉴스가 나오자 상당수 미국인들은 분노했다. 우선 합병 모양새부터가 그렇다. 미국 밀워키에 본사가 있는 존슨 컨트롤스가 아일랜드에 본사를 둔 타이코에 인수되는 형태다. 단순하게 말하면 미국 기업이 아일랜드 기업이 되는 셈이다.

그런데도 통합회사의 이름은 존슨 컨트롤스로 하기로 했고, 기존 영업 조직도 그대로 유지하기로 했다. 존슨 컨트롤스의 밀워키 본사가 통합회사의 영업본부로 명칭만 바뀔 뿐이다. 존슨 컨트롤스가 인수되는 형태지만 존슨 컨트롤스가 덩치가 훨씬 크고 통합회사의 지분도 존슨 컨트롤스의 주주들이 더 많이 갖게 된다. 존슨 컨트롤스 주주들은 통합회사의 지분 56%와 함께 현금 39억달러(약 4조7000억원)를 받게 되고, 타이코 주주들은 통합회사의 지분 44%만 갖는다.

이런 합병 구조를 보면 뭔가 ‘꼼수’가 있다는 것을 누구든 알 수 있다. 이런 구조를 통해 존슨 컨트롤스는 연간 1억5000만달러(약 1800억원)의 법인세를 절감할 수 있을 것으로 분석된다. 이유는 미국의 법인세율은 최고 35%인데 아일랜드의 법인세율은 이보다 훨씬 낮은 12.5%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 회사’가 ‘아일랜드 회사’로 바뀌면서 법인세가 크게 줄어드는 것이다. 이처럼 법인세율이 낮은 국가의 작은 기업이 미국의 큰 기업을 형식상 인수하는, 주객(主客)이 전도(顚倒)되는 합병을 ‘세금 도치(倒置·tax inversion)’라고 부른다. 세금 때문에 ‘새우가 고래를 삼키는’ 합병을 감행해 명목상 본사를 해외로 옮기고 절세를 하는 것이다. 세금 총액만 줄어들면 그 세금이 미국으로 가든 다른 나라로 가든 상관하지 않는다.

미국에서는 이 같은 합병이 유행이다. 해당 기업들은 동종 혹은 유사 업종 간 합병을 통해 시너지를 내기 위한 것이라고 우기지만 그보다 훨씬 큰 목적은 절세라는 걸 다 알고 있다. 지난해 11월 미국의 거대 제약사 화이자(Pfizer)와 보톡스 등을 생산하는 아일랜드의 제약사 엘러간(Allenrgan)의 190조원짜리 합병도 ‘세계 최대 제약사의 탄생’이라는 사실보다 ‘조세 회피’가 더 큰 뉴스가 됐다. 통합회사의 주식을 화이자 주주들은 1주당 11.3주를 받고 엘러간 주주들은 1주밖에 못받는 11.3 대 1 합병이었는데도 본사는 엘러간이 있는 아일랜드에 두기로 했기 때문이다.

기업 입장에서는 ‘절세’겠지만 미국 입장에서는 세금이 통째로 사라지는 ‘조세 회피’다. 미국 의회예산국(CBO)은 ‘세금 도치’형 합병이 활발해지면서 미국 정부 재정 수입에 큰 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1월 25일 발표된 CBO 보고서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법인세 수입 비율이 올해 1.8%에서 10년 뒤인 2026년에는 1.6%로 줄어들 것으로 예상했다.

미국의 재정수입을 그만큼 줄어들게 하고 조세 정의도 해친다는 비판이 일면서 이 같은 ‘꼼수 합병’을 금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 도널드 트럼프 등 미국 대선 유력 주자들은 이 ‘세금 도치’를 막을 대책을 세우겠다는 공약을 내걸고 있다. 클린턴은 이른바 ‘출국세’를 도입해 미국 기업들이 조세 회피를 위해 외국으로 본사를 옮길 경우 세금을 물리겠다고 했고, 트럼프는 법인세율을 15%로 낮춰 해외로 나갈 필요가 없게 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대선 국면에서는 당장 무슨 조치를 할 만한 세력이 없다. 대선을 앞두고 있는데 의회가 세제 개혁안을 마련할 턱이 없다. 기업들이 이런 기회를 놓치지 않고 세금 도치 합병을 감행하고 있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고속 성장을 계속하는 기업의 경우, 잠깐의 비판만 견뎌내면 매우 큰 과실을 얻게 된다.

지금까지 논의한 것은 ‘세금 도치’ 합병의 일반론이다. 이번 존슨 컨트롤스와 타이코 인터내셔널의 합병에는 이 일반론을 넘어서는 ‘내막’이 있다. 미국인들은 화이자와 엘러간의 합병보다 훨씬 더한 배신감을 느끼고 있다. 존슨 컨트롤스와 타이코의 합병은 국가와 기업의 상생 관계, 기업의 이윤과 애국심이라는 다소 감성적인 문제와 연관이 있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 대출) 여파로 미국 경제가 거덜이 나고 GM, 크라이슬러 등 거대 자동차 회사들이 백척간두의 위기에 몰렸던 2008년 가을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당시 존슨 컨트롤스의 키스 완델(Keith Wandell) 회장은 워싱턴DC로 날아가 GM과 크라이슬러에 대한 구제금융 지원을 논의하는 미 의회 청문회에서 증언을 했다. “이 중대한 시점에 완성차 회사에 대한 재정적 지원은 매우 중요하며, 두 회사 중 하나라도 부도가 난다면 부품회사 등 자동차 산업의 공급 체인이 무너지고 수많은 실업자가 생겨날 것입니다.” 당시 존슨 컨트롤스의 주요 사업부문은 자동차 부품이었고, 포천 100대 기업에 드는 부품회사 회장의 간청은 큰 효과를 발휘했다. 의회는 800억달러(약 96조원)에 달하는 엄청난 규모의 구제금융을 승인했고 이 덕분에 2010년까지 미국 자동차 산업은 정상화됐으며 존슨 컨트롤스를 비롯한 부품 업체들도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뉴욕타임스는 1월  26일자에서 “구제금융 덕분에 존슨 컨트롤스의 CEO 연봉은 2008년 이후 2010년까지 1500만달러(약 180억원)로 두 배 인상됐다”며 “연방정부의 구원(救援), 미시간·위스콘신 주정부의 지난 수십년에 걸친 수억달러의 세금 감면 혜택 등에도 불구하고 존슨 컨트롤스는 결국 미국 국적을 포기했다”고 썼다. 미국인들이 느끼는 진한 배신감을 대변하는 기사다.


▒ 김덕한
서울대 국문학과, 동 대학원 석사, 조선일보 산업부·사회정책부, 현 조선일보 뉴욕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