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신차등록대수는 2011년 이후 매년 증가하고 있으며, 자동차 생산량도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영국의 신차등록대수는 2011년 이후 매년 증가하고 있으며, 자동차 생산량도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영국이 유럽연합(EU)을 탈퇴하는 일이 일어난다 해도 도요타는 여전히 영국 중부 지역에 있는 공장에서 자동차를 만들어 낼 겁니다.”

도요다 아키오(豊田章男) 도요타 사장은 올해 초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영국에 어떤 정치적 격변이 일어나도 중부 내륙 더비 인근 버나스톤에 있는 조립 공장과 북웨일즈 디사이드에 있는 엔진 공장을 계속 운영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영국에선 지난해 총선 때 캐머런 총리가 2017년 말까지 EU 탈퇴를 묻는 국민투표를 실시하겠다는 공약을 내건 이후, ‘브렉시트(Brexit·영국의 EU 탈퇴)’가 최대 화두로 떠올라 있다. 캐머런 총리는 지난해 말 EU측에 4년간 이주민에 대한 각종 복지 혜택 제한 등을 담은 EU개혁안을 제시했고, 이 방안이 받아들여지면 그 결과를 바탕으로 국민투표를 실시해 브렉시트를 결정할 예정이라고 공언했다.

최근 영국과 EU 지도자들은 영국의 EU 잔류를 위한 협상을 벌인 끝에 초안을 만들고 EU 회원국에 회람하는 등 브렉시트 논의는 급물살을 타고 있다. 브렉시트는 영국 내 또는 영국과 관련된 경제·산업계에 커다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이는 까닭에 기업과 경영인들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사안이다.

이런 상황에서 도요다 사장이 영국 공장의 생산이 계속될 것이라고 밝힌 것은 그만큼 영국에서의 자동차 산업 전망이 탄탄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신호로 해석됐다. 도요다 사장은 “전임자들이 25년 전 버나스톤 공장에 타임캡슐을 묻었다. 2090년 그 캡슐을 열 때까지 공장은 그 곳에 그대로 있을 것”이라고 했다.

4년 연속 자동차 판매대수 세계 1위를 기록한 도요타는 영국 시장에서 어떤 긍정적 신호를 읽고 있는 것일까.

영국 국가통계청(ONS)의 최근 발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영국의 신차 등록 대수는 263만3503대로 전년보다 6.3% 증가했다. 전문가나 시장의 예상을 뛰어넘는 실적임은 물론, 2003년(257만9050대) 이후 만 12년 만에 역대 최고 기록을 갈아치웠다. ONS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먹구름이 걷히면서 2011년 이후 영국의 신차등록대수가 매년 증가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런 추세는 올 들어서도 계속되고 있다. 지난 1월 자동차 등록은 전년도에 비해 2.9% 늘어났다. 2005년 이후 1월 등록대수로는 11년 만에 최고 수준이었다. 제이스 힌드 ‘카와우’ 설립자는 “2015년은 자동차 등록에서 새로운 기록을 세웠지만 올해는 작년보다 더 나은 결과를 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영국의 자동차 시장은 생산과 소비에서 모두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생산은 글로벌 금융위기로 지난 2009년 99만9460대까지 추락했지만 지난해는 166만대 수준까지 확대됐다. 영국 자동차산업협회(SMMT) 관계자는 “영국의 자동차 생산은 올해 180만대까지 늘고 오는 2018년엔 210만대까지 증가할 전망”이라고 말했다.

소비자 수요도 계속 늘어나고 있다. 현대자동차 영국법인 관계자는 “지난해 영국 내 자동차 수요는 301만대를 기록해 이전 최고 기록인 2004년 290만대를 넘어섰다”고 말했다. 이러한 분위기를 타고 현대차 등 국산차의 순항도 이어지고 있다. 현대차 영국법인의 경우 2009년 판매대수는 5만6926대였지만, 2011년 6만4002대, 2013년 7만7215대, 지난해 8만8316대로 계속 호조세다.

영국 자동차 시장의 성장세는 당분간 계속될 것이란 전망이다. 영국 기업혁신기술부(BIS) 산하 자동차산업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영국의 자동차 시장 매출액은 600억파운드(약 104조원)로 추정됐는데, 오는 2020년엔 800억파운드(약 139조원)가 될 전망이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새 자동차 시장이 급격히 커져 올해는 약간의 조정 기간이 있을 수 있다는 예상도 있다.


인구 증가 그리고 중고차 보상 할부

영국의 인구 증가율은 2000년대 들어 확실한 상승곡선을 그렸다. 1980년대 전후로 마이너스(-0.01%)로 떨어졌던 증가율은 2008년 0.88%까지 치솟았다. 경제·사회적으로 성숙한 선진국에서 보기 드문 현상이다. 이에 따라 1980년 5622만명이었던 영국 인구는 올해 6511만명이 될 전망이다.

영국 인구 증가 요인 중 하나는 이민자·외국인 노동자의 대거 유입이다. 캐머런 총리는 “영국이 감당하지 못할 수준”이라고 토로했다. 정치·사회적으론 외국 이민자가 골칫거리지만 경제·산업적 측면, 특히 자동차 판매 시장에 관한 한 호재로 작용했다.

버스 등 대중 교통을 이용하는 사람이 줄고 자동차를 이용하는 사람이 늘어난 것도 한 요인이다. 교통 당국이 영국 의회에 보고한 통계에 따르면 영국의 버스 이용객은 지난 6년 동안 3분의 2 수준으로 급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자동차 업계에선 유로화 대비 파운드화의 강세와 중고차 보상할부 프로그램 활성화 등을 원인으로 꼽았다. 파운드화가 강세를 보이면서 유럽 지역 자동차 메이커들이 영국 판매에서 환차익을 남길 수 있게 되자 다양한 할인 전략을 구사했다. 신차 가격이 떨어지는 효과를 낳은 것이다. 또 글로벌 외환위기 이후 자동차 생산이 급감했는데 이는 중고차 물량 감소로 이어져 중고차 가격이 상승했다. 이런 상황에서 새차를 살 때 몇 년 후 중고차 시세를 빼고 남은 금액에 대해서만 할부로 내는 시스템, 즉 중고차 보상할부가 활성화되자 소비자들은 예전보다 적은 할부금으로 새차를 살 수 있게 됐다. 런던 금융권 관계자는 “2009년 이후 영국이 초저금리를 유지하고 있어 이 또한 할부금액을 낮추는 효과를 발휘했다”고 말했다.


▒ 장일현
서울대 경제학과, 행정대학원 석사, 조선일보 사회부·정치부·산업부 기자, 현 조선일보 유럽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