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가르드 프랑스 재무장관이  유력

 

당선 시 사상 첫 여성 총재 ‘영예’




- IMF총재 출마를 선언한 크리스틴 라가르드 프랑스 재무장관. (조선일보 DB)
- IMF총재 출마를 선언한 크리스틴 라가르드 프랑스 재무장관. (조선일보 DB)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를 선출하기 위한 국제금융권의 발걸음이 빨라지고 있다. IMF는 지난 6월 13일 공식 성명을 통해 프랑스의 크리스틴 라가르드 재무장관과 아구스틴 카르스텐스 멕시코 중앙은행 총재 2명을  차기 총재 후보로 공식화했다. 그러나 당초 출마 의사를 밝혔던 IMF 부총재 출신의 스탠리 피셔 이스라엘 중앙은행 총재를 IMF 이사회가 연령 제한 초과를 이유로 배제함으로써 차기 총재는 사실상 프랑스의 라가르드 재무장관 쪽으로 기우는 분위기다. 현재까지의 대략적 판세로 보아 라가르드 장관이 유럽국가 전체의 지원을 등에 업고 있는 데다 미국 역시 멕시코의 카르스텐스 총재보다는 프랑스의 라가르드 장관 쪽으로 기울 가능성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IMF 총재 선출의 열쇠는 187개 회원국을 대표하는 집행이사회 멤버 24명이 쥐고 있다. 집행이사회 내에서 미국, 중국, 일본 등 주요 선진국은 독자적 의석을 갖고 있으나 나머지 의석은 지역별 대표성을 감안해 배분되어 있다. IMF의 의사 결정 방식은 1국가1표라는 다수결 방식이 아니고 각 국가의 출자 비율을 감안한 지분주의에 따르고 있다. 현재 유럽 국가들이 36%의 지분을 갖고 있고 미국이 17%대를 보유하고 있다. 이들 두 지역의 동의만 끌어내면 일단 과반수를 확보하는 셈이다.



라가르드 장관과 카르스텐스 총재는 현재 각 회원국을 돌며 막판 득표전을 벌이고 있다. 라가르드 장관 방문 이후 인도네시아, 이집트 등이 공개 지지 선언을 했고 중국 역시 호의적 반응을 보였다는 것이 라가르드 장관 측의 주장이다. 반면 카르스텐스 총재는 인도 정도의 지지를 확보하고 있다는 것이 대체적 분위기이다. 미국은 선후진국 간 막후 조정 역할을 자임하고 있기 때문에 라가르드 장관에 대한 공개 지지는 자제하고 있다. 그러나 분석가들은 이미 미국 역시 라가르드 후보 쪽으로 마음을 굳힌 것이나 다름없다고 지적하고 있다.



IMF 역사상 최초의 여성 총재로 유력시되는 크리스틴 라가르드는 프랑스 최초의 여성 재무장관이라는 타이틀 외에도 여러 가지 화려한 경력을 자랑한다. 라가르드 장관은 변호사 출신이다.  프랑스 정부 각료로 입각하기 전  25년 동안 미국 시카고에서 베이커 앤 맥킨지라는 로펌을 운영했다.  



덕분에 유럽 출신이지만 영어에 능통하고 월 스트리트에도 적잖은 인맥을 가진 것으로 알려진다. 이러한 그의 국제적 면모는 ‘유럽 대표’라는 좁은 이미지를  뛰어넘을 수 있는 자산이 되고 있다.



전임 스트로스 칸 총재가 성추행 사건으로 물러나고 후임 논의가 시작될 때부터 브릭스(BRICs) 국가를 중심으로 IMF 총재의 유럽 독식에 대한 불만이 고조되어왔다. 이들 브릭스4개국과 남아프리카공화국이 공동성명을 내고 차기 IMF 총재가 ‘능력’이 아닌 ‘국적’으로 결정되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기 때문이다. 



이들 브릭스 국가들은 ‘IMF 총재는 유럽, 세계은행 총재는 미국’의 나눠먹기식 전통이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최근 유럽발 위기 등의 사례를 들어 서방 선진국의 독주에 제동을 걸었다. 개도국들의 이러한 우려에 대해 IMF 내부에서도 일정 수준 공감대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예를 들어 IMF 수석 이코노미스트를 지낸 케네스 로고프는 영국 공영방송 BBC와의 인터뷰에서 총재가 반드시 유럽에서 나와야 한다는 원칙에 얽매여서는 안 된다고 발표해 비유럽권 후보들의 입장에 힘을 실어주기도 했다. 게다가 신임 총재가 취임하더라도 유럽 각국의 부채 위기가 IMF가 맞닥뜨리게 될 최대 현안이 될 것이 분명한 상황에서 유럽의 위기를 그대로 유럽의 손에 맡겨야 하는가라는 의문이 제기될 수도 있다.

- 미국 워싱턴 DC에 있는 IMF본부 건물.
- 미국 워싱턴 DC에 있는 IMF본부 건물.

중남미 국가들이 비유럽 후보를 내세우는 주장 역시 유럽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보다 객관적이고 과감한 처방을 내놓을 수 있는 후보에게 IMF의 조타수 자리를 주어야 한다는 논리에 근거하고 있다.



당초 크리스틴 라가르드 장관이 IMF 총재 자리 도전 의사를 밝혔을 때만 해도 이런 목소리들이 터져나오면서 유럽 대 비유럽의 접전 구도가 예상됐었다. IMF를 지배해온 유럽 패권주의에  반대하는 신흥 개도국들의 목소리가 전에 없이 강경하게 터져 나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IMF 리더십에 대한 유럽의 독주에 반대한 이들 국가들이 자신들의 이해를 대변한 단일 후보를 내세우지 못함으로써 선거전은 의외로 싱겁게 끝날 전망이다.



아구스틴 카르스텐스 멕시코 중앙은행 총재가 출마를 선언했지만 중남미 일부 국가의 지원을 얻는 데 그칠 전망이다. 러시아는 초기 출마 의사를 밝혔던 카자흐스탄 중앙은행 총재를 지원하겠다는 뜻을 밝혔었고 브릭스 공동성명에 동참했던 남아공도 자국 재무장관 출신 인사의 출마에 힘을 보탤 것처럼 보였었다. 그러나 이들 군소후보들이 경선 레이스 완주를 포기했다. 별다른 승산이 없었기 때문이다.



라가르드 장관은 그동안 국제금융 시스템 개편을 둘러싼 각종 국제협상 무대에서 정치적 수완을 발휘해왔다. 유럽 부채위기 해결 과정에서 유로존 구제금융에 반대하는 독일의 반대를 누그러뜨렸고 G20 재무장관 무대에서도 각국의 인식 차를 중재하는 해결사 역할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 라가르드 프랑스 재무장관(가운데)이 참모들과 함께 5월 25일 IMF 총재 출마 선언을 위해 기자회견장에 들어서고 있다.
- 라가르드 프랑스 재무장관(가운데)이 참모들과 함께 5월 25일 IMF 총재 출마 선언을 위해 기자회견장에 들어서고 있다.

그러나 라가르드 장관의 경력이나 행보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우선 그는 국제금융 메커니즘에 정통한 경제학자라기보다는 변호사 출신이다. 게다가 그의 전공 분야는 국제금융이 아니라 반독점, 경쟁법과 고용 관련 법률 등에 걸쳐 있다. 일부에서는 라가르드가 역대 IMF 총재 중 경제정책에 관여한 경력이 가장 일천한 상태에서 총재를 맡게 될 것이라고 우려하기도 한다. 라가르드 장관이 정부 정책에 관여하기 시작한 것은 자크 시라크 전임 대통령 시절이던 지난 2005년부터다.



당시 그는 통상장관으로 임명되면서 사업 무대이던 미국을 떠나 프랑스로 돌아왔다. 이렇게 보면 공공정책을 다뤄본 경험이 10년도 채 되지 않는 것이다. 그 전까지만 해도 그는 글로벌 로펌인 베이커 앤 맥킨지의 회장이라는 직함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영어가 완벽한 프랑스 출신의 법조인이라는 경력, 그리고 커리어우먼의 이미지가 라가르드 변호사를 로펌 회장과 장관을 거쳐 IMF 총재 자리를 노리는 유력한 후보로까지 밀어준 원동력이 된 것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이와는 반대로 주로 민간 분야에서만 일해온 법조인이다 보니 라가르드 장관은 정부 각료로 들어온 후 잦은 말실수에 시달리기도 했다. 그의 트레이드 마크처럼 인식돼온 직설적 화법이 비즈니스 세계에서는 잘 통했지만 민감한 정책 이슈를 다루는 정부 시스템 내에서는 불협화음을 내온 것이다.  



특히 지분 구조와 투표권 개혁 등 각 회원국의 이해관계가 엇갈린 민감한 사안을 다뤄야 할 차기 IMF 총재 앞에 놓인 과제에 비춰볼 때 라가르드 장관의 신자유주의적 소신과 스타일을 놓고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특히 지분 구조와 투표권 개혁은 잠재적인 인화성 이슈다. 중국을 비롯한 신흥 경제강국들이 더욱 큰 목소리를 내고 나올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들 나라들은 IMF가 여전히 2차 대전 이후 브레튼우즈 체제 출범 당시의 구시대적 합의에 발목 잡혀 있다고 비판해왔다. 예를 들어 중국의 구매력평가 기준 국내총생산(GDP)이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13.6%에 이른다. 그러나 중국이 IMF 내에서 갖고 있는 투표권은 전체의 3.82%에 불과하다. 반면 영국과 프랑스는 GDP 기준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각각 2.9%에 불과한데도 IMF 내에서는 4.3%의 투표 지분율을 갖고 있다.

- 성추문으로 물러난 스트로스 칸 IMF총재.
- 성추문으로 물러난 스트로스 칸 IMF총재.
이러한 불균형 현상을 놓고 선진국과 후발 개도국 사이에 오랜 갈등이 잠재해온 것이 사실이다. 성추문으로 사퇴한 스트로스 칸 총재는 이러한 개혁 과제를 짊어지고 미국과 불편한 관계를 감수하면서까지 신흥국 지분을 늘이는 등 IMF의 변화를 추진해왔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유럽 국가들은 이사회 의석 2개를 잃었다. 당연히 유럽 내부에서도 불만 섞인 목소리가 나왔다. 라가르드 장관이 총재로 선출될 경우 유럽 국가들의 관계 설정에 관심이 모아지는 이유다. 그뿐만 아니라 미중 무역 불균형 해소와 글로벌 금융 규제 시스템 마련 등 굵직굵직한 과제도 IMF의 몫으로 남아 있다. 금융위기에 대한 조기 경보 장치를 마련하는 일도 IMF 업무와 무관하지 않다.



사실 IMF는 90년대 말 아시아 외환위기 이후 개도국에 대한 구제금융 조건으로 한결같은 초긴축 정책을 요구하면서 이들 나라들과 많은 갈등을 빚어왔다. ‘IMF 구제금융 = 주권 침해’로 인식되면서 자금이 필요한 개도국들조차 IMF행을 꺼리는 현상이 이어져왔다. 그러다가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금융 시스템 붕괴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IMF의 위상은 역설적으로 더욱 높아지고 있다. G20 서울 정상회의에서는 차기 IMF 총재를 개방적이고 투명한 방식으로 뽑는다는 데에 각국 정상들이 합의하기도 했다.



이러한 합의에 따라 라가르드 장관이 총재직에 오를 경우 전임자들보다 더 큰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영향력 약화를 우려하는 유럽과 지분 강화를 주장하는 신흥국들 사이에서 유럽 출신의 라가르드 장관이 어떤 묘안을 내놓을지는 아직 미지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