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의 중국 현지법인인 북경현대 전경
현대차의 중국 현지법인인 북경현대 전경

2002년 5월 현대차와 북경차 그룹이 50대 50 비율로 합작 계약을 맺고 출범한 북경현대는 그해 12월 곧바로 EF쏘나타를 생산해 ‘현대속도(現代速度)’라는 신조어를 만들었다. 이후 북경현대는 글로벌 경쟁사보다 늦은 출발에도 불구하고 파죽지세로 성장했다. 설립 2년 만에 14만대를 생산·판매해 중국 승용차 판매 10위권에 진입했고 2006년에는 29만대의 판매량으로 5위권에 진입할 정도로 상승했다.

하지만 미국발 금융위기가 불어닥치기 전인 2007년 북경현대차의 판매량은 20.3%나 급감했다. 이는 2006년 중국시장에 투입할 예정인 신차 출시가 지연된 데다, 그 전에 내놓은 NF쏘나타와 엑센트의 가격이 중국 내 인지도 대비 비쌌고, 당시 불어닥친 업체 간 가격 인하 경쟁에 빠르게 대응하지 못한 결과였다.

폴크스바겐·도요타 같은 글로벌 업체들이 고품질과 높은 브랜드력을 가진 경쟁차를 출시하고, 중국 업체들은 저가 공세를 펼침에 따라 북경현대차의 점유율은 더욱 낮아졌다. 단적으로 중국형 엑센트의 경우, 현지 고객 취향의 사양을 탑재하는 데 실패했고 경쟁 제품들에 비해 가격경쟁력이 열세였다. 중국형 NF쏘타나는 내외장 고급감(感) 부족으로 인해 타깃 고객들에게 어필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반면 도요타 캠리(해외모델 개조), 폴크스바겐 파사트(구형모델 개조) 등을 내세운 해외경쟁사는 중국 소비자 취향을 발 빠르게 반영하며 중국 시장을 장악해 갔다.

현지화 차량  ‘위에둥’, 북경현대의 베스트셀링카로

이런 상황에서 북경현대는 2007년 말 판매 하락세를 반전시킬 추가 상품 개발이 절실하다는 판단 아래 중국 시장 전략 재점검에 나섰다. 방향은 세 가지였다. 먼저 2005년부터 중국에서 연 1회 실시하던 ‘소비자 조사’를 더욱 더 정밀하게 했다. 시장점유율을 높일 수 있는 신상품 개발을 위해 ‘소비자 성향 조사’와 ‘신형 엘란트라 프로덕트 클리닉(product clinic)’을 추가 실시했다. 시장조사 결과는 제품 개선에 적극 반영했다. 둘째는 통합된 중국 시장 대응조직 없이 마케팅·재경·연구소·구매 등이 각 부문에 산재해 있어 업무 파트너의 혼선을 초래하던 업무 프로세서를 명확하게 했다. 태스크포스팀(TFT)을 신설하고 조직을 통합, 업무 분장을 명확하게 해 능동적인 시장 대응능력을 키운 것이다.

셋째는 마케팅 전략을 대폭 수정했다. 중국 시장의 경제발전 단계가 서로 다른 지역이 혼재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해 신형 엘란트라와 함께 구형 엘란트라를 단종하지 않고 계속 생산·판매하기로 했다. 신형 엘란트라는 유행과 스타일에 민감한 동남부 연안의 대도시를 주 타깃으로 했고, 구형 엘란트라는 지방 대도시와 중소도시를 겨냥했다.

이런 노력을 바탕으로 북경현대는 중국에서 통하는 제품이 되려면 중국인들의 입맛에 맞게 재설계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이에 따라 기존 한국 모델과는 다른 중국형 엘란트라 ‘위에둥’을 따로 기획했고 현지화를 진행했다. 그 결과 ‘엘란트라 위에둥’은 현지화한 디자인을 갖게 됐다. 스포티하고 개성 있는 스타일을 위해 전후면(前後面) 디자인을 변경했다. 차체 앞면의 라디에이터 부분과 헤드라이트 부분은 최대한 번쩍번쩍하고 화려하게 꾸몄다. 이는 중국인의 체면 중시 성향에 따른 과시 효과와 화려함을 좋아하는 국민성을 반영한 것이다. 위에둥은 비록 소형차지만 화려함을 갖추고 있다는 인식을 심어줘 ‘가격’과 ‘체면’이라는 중국인의 두 가지 소비성향을 모두 만족시켰다.

이렇게 해서 북경현대가 총 650억원의 개발비용을 들여 2008년 4월 북경현대차 2공장 준공과 더불어 출시한 위에둥은 북경현대의 사실상 첫 현지 전략형 모델이 됐다. 위에둥은 출시 후 올해 3월 말까지 총 79만4509대가 판매돼 출시 후 51개월간 월평균 1만5578대가 팔린 북경현대의 ‘베스트 셀링 모델’이 됐다. 위에둥은 올 1분기에도 4만4743대가 팔려 북경현대 판매 차종 가운데 2위를 기록했다. 현대차의 남양연구소와 중국 법인이 합심해 현지시장에 맞는 글로컬(glocal) 제품을 개발한 데다 전사적 판매 중심체제와 다양한 판촉 전략, 딜러 판매력 제고 같은 입체적인 노력이 합해진 결실이다.

북경현대는 2010년에는 위에둥의 후속작품으로 중국 전략형 소형차로 국내 ‘엑센트’를 현지화한 베르나(프로젝트명 RBc)를 출시했다. 베르나는 올 1분기 북경현대의 최다 판매(4만8488대) 차종으로 2010년 7월 첫 판매 후 올 3월 말까지 20개월 동안 월평균 1만1569대가 팔리며 북경현대의 새로운 대표 모델이 됐다. 특히 베르나는 미국 제이디 파워(JD Power)가 2010년 10월부터 지난해 6월까지 중국 내 33개 주요 도시에서 신차를 구매한 고객을 대상으로 실시한 ‘2011년 중국 자동차 상품성 평가’에서 소형차 부문 1위를 차지하며 우수한 상품성을 입증했다.

2011년 4월부터 북경현대는 신형 쏘나타(YF)를 베이징 2공장에서 현지 생산·판매하고 있다. 신형 쏘나타는 작년 9월부터 12월까지 4개월 연속 1만대 이상 판매되고 있으며 올해 1월 중국 CCTV가 선정한 ‘2011년 올해의 차’에서 디자인, 동력성능, 연비, 안전성 등 평가항목 전 부문에서 골고루 높은 점수를 받으며 전체 평가 대상 차종 1위, 중형차 부문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치밀한 3단계 시장조사 등으로 전략차종 연이어 히트

이런 성과는 하루아침에 또는 우연히 얻어진 게 아니다. 연태경 현대차 이사는 북경현대가 중국에서 단행한 시장 조사와 자문 노력이 3단계로 이뤄진다고 말했다.

“첫 번째는 초기 기획 단계로 ‘프로덕트 클리닉(product clinic)’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제작한 고정 모델을 갖고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시장 의견을 청취하며, 소비자들이 선호하는 부문과 비선호하는 부문으로 나눠 의견을 듣고 차량 개발에 반영합니다. 두 번째로 양산 준비 단계인 양산 6~7개월 이전에는 ‘론칭(launching) 클리닉’을 합니다. 이를 통해 목표 시장, 소비자, 포지셔닝, 적정 가격대, 상품 특장점이 뭔지 파악하고 이를 통해 광고, 홍보, 마케팅, 대 소비자 활동 등을 어떤 방향으로 할지 결정합니다. 마지막으로 양산 이후 단계로 양산 6개월 후에 ‘초기 소비자 반응조사’를 합니다. 이를 통해 실제 사용한 소비자들로부터 당사 차에 대한 강점과 약점을 파악하고, 향후 개조차나 후속차에 상품 개발을 반영합니다.”

중국 내 판매망(딜러) 운영과 확보에도 각별한 노력을 쏟고 있다. 북경현대의 대리점은 2011년 말 현재 4S서비스를 갖춘 535개 매장과 단순 판매를 위한 위성딜러 185곳을 포함해 720개다. 현대차 관계자는 “매년 우수 딜러 수백명을 선정해 현대차 그룹 본사 방문을 통해 그룹 문화와 자부심을 고취시키고 있으며 한국 방문 기간에 여러 체험을 통해 한국의 사회와 문화를 깊이 있게 체험하도록 하고 있다”고 말했다. 고객이 기대하는 것 이상의 경험과 가치를 현대차만의 혁신을 통해 더 많은 고객에게 전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리브 브릴리언트(Live Brilliant)’ 글로벌 브랜드 전략에 맞춰 ‘찾아가는 비포 서비스’ 같은 소비자 만족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다.

이런 노력에 힘입어 북경현대는 내로라하는 자동차 메이커들이 각축하는 세계 최대 자동차 시장인 중국에서 폴크스바겐과 GM에 이어 3위(동풍열달기아차 합산한 것임)에 올라 있다. 특히 북경현대는 진출 1년5개월 만인 2003년 5월 중국내 자동차 회사 중 최단 기간 10만대 생산을 돌파했고, 지난해 8월에는 중국 진출 9년 만에 중국 내 자동차 업체 가운데 최초로 최단기간 300만대 생산이라는 또 하나의 업적을 달성했다. 2010년 11월 기공식을 갖고 올 여름 제3공장이 완공되면 현대차는 중국 진출 10년 만에 100만대 생산체제를 갖추게 된다. 제3공장이 예정대로 정상 가동되면 북경현대차는 18개월 만에 황량한 대지를 첨단 장비와 시설이 가득한 연산 40만대 규모의 현대식 공장으로 탈바꿈시키는 신기록을 세우게 된다.

북경현대는 올 여름 제3공장 준공을 통해 기아차와 더불어 중국시장에서 연간 143만대 생산 및 판매체제를 구축한다는 방침이다. 2014년에 기아차 제3공장이 완공되면 현대차는 100만대 생산체제를, 기아차는 74만대 체제를 각각 갖춤으로써 2014년에 174만대 생산체제가 가시화한다. 북경현대는 중국 시장에서 양적 판매를 넘어 최고급 프리미엄 메이커로 상승하기 위해 YF쏘나타와 제네시스, 에쿠스 등으로 고급차 전략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이를 위해 중국 100대 개인 기업 중 10개 자회사·지사를 소유하고 있는 기업을 ‘잠재적인 고급차 고객’으로 잡고 사전 검증을 통해 정한 30개 목표 기업을 적극 공략하며 지역별·기업별 구매 담당자와 딜러 개별 접촉을 통한 마케팅을 벌이고 있다. 또 전국적인 체인망을 갖춘 주요 고급 호텔 대상 마케팅도 강화하고 있다. 대상은 전국 총 311개 주요 고급 호텔이며, 호텔 공항 픽업 리무진 서비스와 행사용 차량 등에 집중하고 있다. 중고차 가치 증대를 위해 중고차 보증 수리기간 및 무상 점검을 늘리고 렌터카 업체 차량에 대한 본사 특별 관리 및 소모성 부품 무상 제공도 실시하고 있다.

‘고급차 전략’으로 업그레이드, 사회공헌활동도 적극 펼쳐

잘 나가는 북경현대의 양대 무기는 하드웨어 측면에서는 생산 공장이며, 소프트웨어 측면에서는 사회공헌 활동이다. 베이징시 순의구(順義區)에 있는 제2공장의 경우, 순의구 인구는 50만명인데 이 중 15만명이 북경현대차와 직·간접 연관을 맺고 있다. 여기에 제3공장까지 완공하면 순의구는 명실상부한 ‘북경현대차의 도시’가 된다. 2공장은 중국 내 자동차 공장 가운데 가장 빠른 생산 속도인 UPH 68(한 시간에 68대의 완성차를 만들어낸다는 의미)을 기록하고 있다. 1, 2공장 합쳐서 60만대를 생산할 수 있지만 지난해에는 잔업, 특근, 휴일근무를 통해 70만대를 생산했을 정도이다.

북경현대차 관계자는 “이런 초과생산은 젊고 열정적인 직원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말했다. 이 공장 근로자들의 평균 연령은 25세로 월급여가 5000위안(약 90만원)에 달한다. 베이징시 최저임금(1160위안)의 5배에 가까운 수치다. 다른 외자 기업들이 인력확보에 어려움을 겪는 것과 달리 양질의 우수 인력들이 몰려오고 있는 것도 고무적이다. 공장 내에서 웬만한 차종의 혼류(混流) 생산이 가능해 한 라인에서 정해진 모델만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여러 모델을 생산할 수 있다. 차량 수요에 맞춰 즉각적인 대처가 가능한 셈이다. 우리나라의 노조격인 공회는 직원 이익도 대변하지만 회사가 생산성을 높여야 할 때라고 판단되면 ‘열심히 하자’며 직원들을 독려해 생산성 향상에 큰 도움을 주는 견인차로 꼽힌다.

북경현대는 또 ‘중국 속의 중국 기업’을 목표로 사회공헌 활동에도 적극적이다. 2008년부터 매년 내몽고 사막화 방지 및 생태복원 활동을 벌이고 있으며 2011년에는 7월부터 8월까지 한 달간 중국의 대표적인 황사 발원지인 내몽고 쿤산다크 사막 내 차칸노르 지역을 대상으로 ‘현대 그린존’ 조성활동을 했다. 2008년부터 지난해까지 4년간 총 3800만㎡의 사막을 초지로 바꾸는 성과를 올렸다. 이런 노력을 인정받아 북경현대는 2010년 한국 기업으로는 최초로 ‘중국 사회공헌 활동 대상’을 받았다. 올해 2월에도 한국 기업으로는 유일하게 ‘2011 중국 사회 가장 책임감 있는 기업’에 선정됐다.

2010년 초 중국 사회단체인 중화자선총회와 손잡고 쓰촨 대지진 피해지역 등 중국 빈곤 소학교에 교육용 피아노 100대를 기증하는 등 지원활동을 펴기도 했다. 지난해에는 4월, 9월, 10월 3차례에 걸쳐 중국의 재난 빈곤지역 출신 대학생들에게 ‘에쿠스 장학금’을 수여했다. 2010년 기준으로 인구 1000명당 차량 보유대수는 미국이 961대, 일본이 523대, 한국이 355대인 반면, 중국은 아직 41대에 불과하다. 그만큼 중국 자동차 시장은 계속 팽창할 가능성이 높다. 중국인들의 소득 증가와 도시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와중에 북경현대가 어떻게 자동차 시장을 장악해 나갈 것인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