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 가운데 가장 다양한 분야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사업을 전개하는 곳을 꼽는다면 CJ그룹을 빼놓을 수 없다. CJ그룹은 1990년대 초부터 중국 시장에 눈을 돌려 CJ 특유의 최초·최고·차별화를 추구하는 온리 원(Only One) 정신으로 13억 중국인들을 매료시키기 위한 사업을 전방위로 펼쳐왔다. CJ제일제당과 CJ푸드빌, CJ오쇼핑 CJ CGV, CJ E&M 등 주력 그룹사들이 다양한 제품과 비즈니스 모델, 콘텐츠 등으로 바이오와 식품&식품서비스, 엔터테인먼트&미디어, 신유통 등 4대 사업을 모두 중국에 진출시켜 ‘제2의 CJ 건설’에 나서고 있다.

- CJ그룹은 1990년대초 중국 시장에 진출해 CJ 특유의 최초·최고·차별화를 추구하는 온리 원(Only One) 정신으로 13억 중국인들을 매료시키기 위한 사업을 전방위로 펼쳐왔다.
- CJ그룹은 1990년대초 중국 시장에 진출해 CJ 특유의 최초·최고·차별화를 추구하는 온리 원(Only One) 정신으로 13억 중국인들을 매료시키기 위한 사업을 전방위로 펼쳐왔다.

CJ의 중국 사업은 1992년 한·중 수교 후 1990년대 말까지의 대중 수출과 원료 확보 차원의 투자 단계를 거쳐 2000년대 초 그룹의 주요 사업을 모두 진출시키는 포트폴리오를 구축한 2단계에 이어 중국 본사를 설립한 2006년 이후 제2의 CJ건설이란 3단계에 와 있다. 진출 초기엔 육가공 사업을 철수하는 시련도 겪었다. 한국인 입맛에 맞게 개발된 설비를 그대로 중국에 가져온 데다, 생산 규모가 적어 경쟁력이 떨어진 탓이다. 당시 중국 경쟁사는 오히려 CJ설비를 벤치마킹한 뒤 이를 중국인 입맛에 맞게 고치고 사료부터 축산 농가까지 일관 라인을 갖추면서 생산 규모가 CJ 중국 공장의 300배에 달했다. 이때 깨달은  ‘규모의 경제’의 중요성은 산둥성에 3억달러를 투자해 라이신과 핵산 생산으로 이어졌고 완공 2년 만인 2007년 흑자를 내는 밑바탕이 됐다.

CJ는 최근 제품 수출을 넘어서 한식과 한류 콘텐츠, 한국 문화를 무기로 중국인의 입맛과 눈길을 사로잡아 중국 시장을 ‘2013년 글로벌 CJ, 2020년 그레이트(Great) CJ’ 달성의 초석으로 삼겠다는 각오다. 구체적으로 조미료나 두부, 양념장, 김 같은 식품들이 중국인의 입맛 공략을 위한 전초전이라면, 이를 넘어 비비고(비빔밥)와 VIPS(패밀리레스토랑), 투썸플레이스(커피전문점) 등은 외식 문화 분야로 범위를 확장하고 있다.

비비고, VIPS 등으로 중국인 입맛 본격 공략

실제로 중국 베이징 시내 동북쪽의 차오양(朝陽)구 주센차오루(酒仙橋路)에 있는 이디강 복합쇼핑몰. 이 건물 1층에 들어서면 실내 중앙광장 건너편 정중앙으로 CJ비비고(bibigo·중국 2호점) 간판이 보인다. 110석 규모의 비비고는 주방이 손님들에게 공개되는 오픈 키친 형태로 베이지색 실내가 깔끔하면서도 고급스러운 분위기가 물씬 풍겨난다. 이 쇼핑몰 4층에는 CJ CGV 멀티플렉스 영화관 7개관이 입점해 있다. 매표소 오른쪽으로 투썸(Twosome·중국 1호점)이 간판을 내걸고 영업 중이다. 투썸은 주문대 뒤쪽으로 330㎡(약 100평)가 넘는 발코니를 끼고 있어 이디강 쇼핑몰에서 가장 전망이 좋다. 이는 엔터테인먼트와 외식 서비스를 접목해 동반진출시키는 전략이다.

같은 차오양구에 있는 최고급 음식점이 밀집해 있는 장타이시루(將台西路). 이 곳 교차로에 있는 노른자위 건물에는 VIPS가 최근 입점했다. 중국내 1호점으로 300평이 넘는 대형 매장이다. 이처럼 CJ의 중국 진출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식품 사업부문이다. 뚜레쥬르, 비비고, 투썸플레이스 등 낯익은 브랜드들이 베이징 시내 곳곳에 자리 잡고 있다. 지난 6월말 기준 중국 내 CJ푸드빌 매장은 뚜레쥬르 12개, 비비고 2개, 투썸플레이스 2개 등 16곳이며 올 연말까지 총 30개로 늘어날 전망이다.

CJ가 올 9월 베이징 시내 리두 지역에 복합외식문화공간으로 문을 연 CJ푸드월드 1호점이 그런 예이다. 서울 쌍림동 CJ제일제당 사옥 내 푸드월드처럼 외식 브랜드를 한데 모은 신개념 문화공간을 표방하는 공간으로 2층 규모의 단독 건물 1층에는 뚜레쥬르와 투썸커피, 비비고가, 2층에는 VIPS가 각각 입점해 한 공간에서 4개 브랜드를 즐길 수 있다. CJ차이나 관계자는 “중국 내 한류 열풍이 음악과 드라마의 인기를 넘어 한식을 비롯한 전반적인 한국 문화로 확대되고 있는 만큼 ‘CJ푸드월드’ 베이징 리두점은 K-FOOD의 메카로 자리 잡을 것”이라고 말했다.

CJ는 ‘한식 세계화’의 첨병 역할을 하겠다는 목표달성 노력을 구체화하고 있다. 베이징 서우두 국제공항의 한식당 ‘사랑채’와 5년 내 300개 프랜차이즈 개설을 목표로 내건 ‘비비고’가 전면에 섰다. 또 베이징 최대 식품 기업인 얼상그룹과 2007년 합작해 출시한 ‘바이위(白玉) 두부’는 2년여 만에 베이징에서 점유율 70%를 기록했다. 합작법인인 얼상CJ는 중국의 식품 안전 문제가 불거지는 데 맞춰 한국처럼 콩나물 등을 포장상품으로 처음 팔기 시작해 히트를 쳤다. 중국 최고의 파트너와 한국에서의 차별화된 노하우로 중국 최초의 상품을 만들어 성공을 거둔 것이다.

CJ의 중국 사업에서 핵심 캐시카우(이익 창출원)는 주력기업인 CJ제일제당이 맡고 있다. 제일제당은 바이오사업을 필두로 사료, 두부, 조미료 등 식자재 시장에서 강한 경쟁력을 갖고 있다. 1996년 산둥성 칭다오(靑島)에 육가공 공장을 지은 후 2002년 조미료 공장을 세웠고 2003년 쓰촨성 청두(成都)에 첫 사료용 아미노산 공장을 지은 후 선양, 정저우, 난징, 톈진, 하얼빈, 랴오청, 창사 등 중국 내 10곳에 공장을 가지고 있다. 특히 올 9월에 중국 선양 공장 오픈은 CJ의 바이오 사업 성장에 대전환점으로 기대된다. 2010년부터 4억달러를 투입해 지은 이 공장의 완공으로 연간 30억달러 규모의 세계 라이신(사료첨가용 필수아미노산) 시장에서 CJ의 점유율이 25%로 올라가 1위인 중국 GBT사를 추월하는 게 확실하기 때문이다. 이 공장은 식품 첨가제인 핵산 세계시장에서 CJ의 1위 자리를 더욱 굳히는 역할도 하게 된다. 이미 세계 시장 점유율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식품첨가제인 핵산은 중국 시장에서도 점유율 40%로 1위를 달리고 있고, 사료첨가제인 라이신은 중국에서 2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중국 선양에 라이신 공장 오픈…세계 시장점유율 25% 육박

한국 본사의 기술력을 바탕으로 중국에 대규모 투자를 단행해 현지 거대 시장을 효과적으로 공략하고 있다는 게 관련 업계의 평가다. 라이신의 중국 수요는 연간 52만t으로 세계에서 가장 많다. CJ제일제당 관계자는 “바이오 사업 부문의 중기 목표인 2015년 매출 3조원, 영업이익률 20% 달성에 중국 생산기지가 중추 역할을 수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CJ의 극장사업부문인 CGV는 2006년 상하이에 1호점을 오픈한 후 베이징·우한·톈진 등에 11개점을 운영 중이다. 올해도 하얼빈·선양 등 주요 거점에 6개를 추가하는 것을 비롯해 2015년까지 100개의 네트워크를 확보한다는 목표이다. 2010년에는 베이징에 중국 최초로 진동의자, 물 분사 등의 기능을 갖춘 4DX 영화관을 개설하는 등 고급화·차별화 전략을 통해 중국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CJ의 엔터테인먼트 부문인 CJ E&M의 김성훈 상무는 “중국 정부가 12차 5개년 경제개발계획(2011~2015년)에서 국가 소프트파워 확대를 위해 문화산업을 지주산업이자 대표적 신성장동력 산업으로 규정해 관련 산업에 엄청난 돈을 쏟아붓고 있다”며 “철저한 중국 문화의 이해를 바탕으로 한류를 접목할 경우 문화시장에서의 사업 기회는 무궁무진하다”고 말했다.

CJ가 2004년 중국 SMG그룹과 손잡고 상하이에 세운 홈쇼핑 합작법인 ‘동방 CJ’는 지난해 매출 60억위안으로 중국 최대 홈쇼핑업체로 성장했다. CJ가 한국에서 쌓아온 홈쇼핑 노하우와 고속 경제성장에 따라 급신장하는 중국 인민의 구매력이 맞물린 성과다.

CJ는 중국인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현지화와 발로 뛰는 현장 마케팅에 사활을 걸고 애쓰고 있다. 먼저 ‘비비고’의 경우, 중국인들이 닭요리를 좋아하다는 점에 착안해 ‘삼계탕’을 새로 선보이고 있으며 소고기보다 돼지고기를 선호하는 중국인들의 입맛을 고려해 기존 숯불고기, 두부, 닭가슴살 등의 토핑에 돼지불고기를 추가했다. 중국인들이 막걸리를 부담 없이 접해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딸기나 망고 등 과일과 함께 즐길 수 있는 막걸리 칵테일도 새롭게 선보였다. 이런 현지화 전략으로 2010년 베이징 제1상권인 왕푸징 지역 동방광장점 1호점에 이어 최근 2호점인 인디고(INDIGO)점을 추가 오픈했다.

현장 마케팅이 돋보이는 분야는 다시다(중국 명칭은 大喜大) 판매다. 현장 영업 직원들이 수년 전부터 우리나라의 남대문시장 격인 베이징시내 따양루(大洋路) 도매시장 등을 누비며 맨투맨 영업을 벌이고 있다.

CJ 차이나 관계자는 “2007년부터 따양루시장을 뚫기 위해 직원들이 5〜6명씩 조를 나누어 매일 새벽 6시면 시장을 찾았다”며 “점포 청소도 해주고, 물건도 날라주며 상인들에게 다시다를 알렸다”고 말했다. 상인들은 낯선 한국인들이 얼마나 버틸까 하며 반신반의했지만, 매일 새벽부터 오후 늦게까지 시장 곳곳을 누비며 궂은 일을 마다 않는 CJ 직원들에게 서서히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한두 점포에서 CJ 다시다를 주문하기 시작했고 제품 품질을 인정받으며, 소매상들이 찾기 시작하자 순식간에 따양루시장의 대부분 상인들이 다시다를 취급했다.

CJ 직원들은 지금도 조를 나눠 한 달에 3〜4번씩 이 시장에서 제품 홍보를 계속하고 있다. CJ차이나 관계자는 “중국 동북지방에서는 CJ 다시다를 비슷하게 흉내낸 짝퉁 다시다가 20여종이나 된다”며 “CJ 브랜드를 중국인들이 그만큼 믿으니까 짝퉁이 생기는 것 아니겠는가”라고 되물었다. CJ는 전 세계에서 쇠고기 다시다를 생산하는 유일한 기업체다. 따라서 중국인들이 CJ의 쇠고기 다시다에 빠져든다면 엄청난 매출이 가능할 수도 있다는 게 CJ 측의 판단이다.

CJ차이나 관계자는 “중국 사업 중 식품부문은 매출 비중이 적은 편이지만 중국인들에게 CJ 브랜드를 알리는 무형의 효과는 ‘다시다’ 만한 것이 없다”고 했다. CJ 중국 사업을 위한 브랜드 해결사로서 다시다의 역할이 그만큼 크다는 방증이다. 사실 CJ 다시다는 중국 진출 초기에 쓴맛을 봤다. 한국에서 조미료 하면 최고로 인정받았기 때문에 중국에서도 한순간에 시장을 휘어잡을 것으로 만만하게 현지 시장을 가볍게 본 탓이었다. 중국인들은 닭고기 베이스 조미료인 ‘지징’(鷄精)을 음식에 가장 많이 쓴다. 그런데 CJ는 한국에서처럼 쇠고기 다시다로 승부를 걸었으니 시작부터 번지수가 틀렸던 것이다. 뒤늦게 사태 파악을 한 뒤 계정을 출시했지만 소비자 반응은 시큰둥했다.

이재현 회장, “시작했으면 끝장 보자” 역설

2007년 중국 소비자를 상대로 한 CJ 다시다의 인지도 조사에서 ‘CJ 다시다를 안다’고 응답한 사람들은 11%에 그쳤다. 그러나 지난해 9월 다시 실시한 조사에서 CJ 다시다 인지도는 60%로 뛰었다. 시장점유율도 조미료 업체 중 2위인 22%로 올랐다. 여기에는 발로 뛰는 영업은 물론 중국인의 입맛에 특화한 쇠고기 다시다를 내놓기 위해 중국 내 전용 R&D센터를 가동하는 등 품질 강화 노력이 한몫했다는 지적이다. 중국의 토종 대형 슈퍼마켓 체인점 징커롱(京客隆) 같은 곳에서는 CJ 다시다가 조미료 코너의 70% 정도를 차지할 정도로 잘 나가고 있다.

CJ는 한·중 간 문화교류 증진 프로그램을 통한 양국 간 소통 확대와 기업의 사회적 책임활동(CSR) 수행에도 힘쓰고 있다. 한·중 수교 20주년을 맞아 올해 8월 중순에 한·중 청소년 40명에게 영화 창작교육 실시 및 직접 영화 제작 경험의 기회를 제공하는 ‘베이징 토토의 작업실’ 행사를 개최한 게 대표적이다. 지난해에는 중국 공산주의청년단과 손을 잡고 가수 ‘레인’의 공익 환경 보호 콘서트를 기획했다. 또 한·중 합작 영화인 ‘소피의 연애 매뉴얼(非常完美)’을 만들어 중국 영화계에 로맨틱 코미디 장르 제작의 열풍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하지만 CJ그룹의 중국 사업이 장밋빛 일색인 것만은 아니다. 이재현 CJ그룹 회장이 최근 베이징에서 열린 ‘CJ글로벌 콘퍼런스’ 자리에서 전 계열사 최고 경영진을 상대로 “보고서만 화려했지 성과가 없었다”고 공개 질타한 데서 드러나듯, 중국 사업 성장세가 바이오 사업 부문을 제외하면 기대했던 것보다 부진하다는 게 그룹 안팎의 냉정한 평가이다. 이재현 회장은 “중국 사업을 시작한 지 17년이 지났지만 당초 기대만큼의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며 “이왕 시작했으면 끝장을 봐야 한다”고 ‘끝장 정신’을 역설했다. 중국 인민의 음식·문화·물류·유통 등 진정한 현지인의 삶 속으로 파고 들어 또 하나의 CJ그룹을 중국 대륙에 건설하겠다는 청사진이 어떤 결실을 맺을지 주목된다. 그런 점에서 올해가 CJ 중국 비즈니스의 진짜 원년(元年)이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