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속에서 나올 만한 중세 도시의 모습을 그대로 담은 프랑스 앙트르보.
- 영화 속에서 나올 만한 중세 도시의 모습을 그대로 담은 프랑스 앙트르보.

“사용하지 않는 방이 있나요? 그렇다면 손님방으로 만들어보세요.” 요즘 유럽에서 인기리에 방송되고 있는 프로그램 ‘베드 앤 블랙퍼스트(B&B)’의 광고 문구다. 집을 개조해 손님을 맞는다? 최근 유럽에서 불고 있는 하나의 숙박 문화다. 특히 프랑스에선 ‘샴브르 도드(Chambres d’hotes)’, 직역하면 ‘손님의 방’이라고 불리며 인기를 끌고 있다. 샴브르 도드는 집 주인의 삶 나아가 그 지방 고유한 문화를 느낄 수 있는 게 가장 큰 매력이다. 한 가정의 삶 속에 들어가 여행을 하는 것이다.

샴브르 도드 여행은 2년 전 시작됐다. “숙소를 예약하지 않고 여행을 하는 건 어떨까? 우리가 맘에 드는 마을을 골라 하루씩 머무는 것도 멋진 여행이 될 것 같은데.” 남편의 갑작스런 제안이었다.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그러나 샴브르 도드 여행은 현재 우리 부부가 가장 선호하는 여행 방식이 됐다.

샴브르 도드 여행은 그동안 우리에게 독특하고 색다른 경험을 안겨줬다. 그 중 기억에 남는 곳이 있다. 바로 ‘레 빠삐용’이라는 이름의 샴브르 도드다. 우리는 지난해 나폴레옹이 유럽을 정복할 당시의 루트를 따라 여행을 떠났다. 그러던 중 영화 속에서 나올 만한 중세 도시의 모습을 그대로 담은 프랑스의 앙트르보(Entrevaux)를 지나게 됐다. 우리는 당장 그 마을로 향했다. 앙트르보는 알프 드 오트 프로방스(Alpes-de-Haute Provence)주에 속한 도시로, 르 바르(Le Var) 강을 끼고 있는 요새 마을로 불린다. 프랑스와 이탈리아 국경에 근접해 있어 이 땅을 두고 전쟁도 많았을 거란 게 쉽게 예측된다.

- 영화 속에서 나올 만한 중세 도시의 모습을 그대로 담은 프랑스 앙트르보.
- 영화 속에서 나올 만한 중세 도시의 모습을 그대로 담은 프랑스 앙트르보.

과거와 현재가 어우러진 ‘샴브르 도드’
마을로 들어가는 어귀, 성문이 보이는 앞쪽 넓은 주차장에 자동차가 빈틈없이 세워져 있다. ‘성문과 자동차라… 과거와 현재가 어우러진 도시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좁은 다리로 성을 둘러싸고 있는 강을 건너 성문을 지나 마을로 들어섰다. 바로 앞 관광안내소에 들러 숙소 정보를 얻었다. 이후 숙소로 향한 한발 한발은 묘한 희열을 느끼게 해줬다. 마치 중세로 거슬러 올라가는 느낌이었다. 거대한 뱀의 비늘처럼 생긴 돌로 이뤄진 좁고 구불구불한 길을 마주쳤을 때는 중세 기사가 말을 타고 성주가 있는 꼭대기 성까지 올라가는 그림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한 골목 귀퉁이를 돌자 네덜란드 화가 반 고흐의 ‘밤의 카페테라스’와 같은 분위기를 지닌 레스토랑이 눈에 띄었다. 바로 옆 나비 문양이 박혀 있는 작은 문을 발견했다. 레 빠삐용이라는 이름의 샴브르 도드로 들어가는 문이었다. 문을 열자 긴 머리에 깡마른 여인이 반겨줬다. 가녀린 팔 위쪽으로 나비 모양의 문신이 눈에 띄었다. 빠삐용이 나비라는 뜻인 걸 보면 이 여인이 주인인 걸 짐작할 수 있었다. 그녀는 우리가 하루 묵을 숙소로 안내했다. 이 샴브르 도드는 중세에 지어진 건물 외형을 그대로 살린 채 내부 시설을 현대식으로 바꾼 건물이었는데, 돌로 만들어진 계단과 천장은 여전히 옛 것 그대로의 느낌을 줬다.

방으로 들어가니 마치 나비 날개가 연상되는 커튼이 쳐져 있었고, 그에 맞는 신비한 그림이 그려진 침대가 놓여 있었다. “아침은 몇 시에 드시겠어요? 특별히 좋아하는 음식이 있으면 준비해 드릴게요.” 여주인이 친절하게 물었다. 그리고 방 안에 비치돼 있는 물건을 하나하나 설명해줬다. 손님을 위해 마련된 이 방은 중세의 고풍스러움과 현대의 실용적인 기능이 묘하게 어우러져 있었다. 하루 사용료는 60유로(약 8만원). 비싸지도 그렇다고 싸지도 않은 가격이다. 

샴브르 도드는 호텔과 다르게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지 않기 때문에 번잡스러움이 없다. 또 집 주인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그 집의 가풍을 느낄 수 있다. 나아가 그 지방의 문화를 배울 수 있다. 따뜻한 인간미가 넘치는 여행. 바로 샴브르 도드의 매력이다.

샴브르 도드를 사업적으로 운영하는 경우, 집 주인과 아침 식사를 하지 못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자신의 집에서 남는 한 두 개의 방을 개조해 샴브르 도드를 운영하는 가정이 대부분이다. 때문에 하룻밤 묵는 손님과 아침 식사를 하는 게 보통이다. 레 빠삐용에서 아침 식사를 하며 주인 가족이 샴브르 도드를 시작하게 된 이유와 이곳에서 사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앙트르보의 삶이 이들 가족에게 주는 행복도 느낄 수 있었다. 여행을 마친 이후에도 나비 모양 문신을 한 주인과 여전히 소셜미디어를 하며 안부를 묻고 있다. 

숙소에서 나와 성 벽으로 둘러싸여 있는 마을을 구경하던 중 네덜란드인이 운영하는 상점에 들렀다. 젊은 시절 여행을 너무 좋아했던 상점 여주인이 프랑스의 프로방스 지방과 사랑에 빠져 앙트르보에 자리를 잡았다고 한다. 그는 이곳에서 수확한 허브와 열매, 다양한 음식을 판매하고 있다.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 가족이 여름휴가 때 이곳을 찾았어요. 제가 만든 허브를 사갔는데 무척 좋아하더라고요.” 세계 곳곳에서 이곳을 찾은 관광객을 만나 다양한 이야기를 듣는 게 즐겁다고 말한 그의 목소리가 아직도 생생하다.

여름 유럽 여행을 시작한 지 올해로 만 6년이 지났다. 샴브르 도드 여행은 2년째다. 생전 가본 적 없는 초행길에서 며칠 밤을 묵을 숙소를 찾아가 만나는 사람과 삶, 문화를 이야기하는 것은 색다른 경험이다. 진정 여행을 즐길 줄 아는 이에게는 행복일 수 있다.

특히 프랑스 시골 마을은 고유의 색깔을 지니고 있다. 21세기 초고속 시대와 비교하면 삶이 다소 느리지만 그들의 삶의 방향은 뚜렷하고 짙다. 사람들이 돈벌이와 출세를 위해 대도시로 몰려들 때, 고향을 묵묵히 지키며 자신의 역할을 했던 이들이 있었기에 가능했으리라.

1. 앙트르보에 있는 한 상점. 2~3. 포도밭과 와이너리가 가득한 코트도르 마을.
1. 앙트르보에 있는 한 상점.
2~3. 포도밭과 와이너리가 가득한 코트도르 마을.

인간미 넘치는 ‘손님의 방’ 여행
‘아!’ 라는 짧은 감탄을 자아내게 했던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지닌 샴브르 도드도 있다. 벨기에와 독일을 거쳐 이탈리아와 프랑스를 돌아 3주 동안의 자동차 여행을 끝내고 네덜란드로 돌아오는 길에 예정에 없는 하루를 더 묵게 됐다. 프랑스 부르고뉴 지방 코트도르 (Cote d’Or en Bourgogne)의 작은 마을 콩블랑세(Comblanchien)에서였다. 

프랑스의 샴브르 도드는 인터넷을 통해 미리 예약할 수 있지만 그 지역 안내소에 대부분 등록돼 있기 때문에 숙소를 정하지 않고 여행을 떠나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여행안내소에 들러 좋은 곳을 추천해달라고 하면 안내소 직원이 친절하게 안내해준다. 그렇게 소개받은 샴브르 도드에 도착했다. 정원을 낀 두 채의 집이 눈에 들어왔다. 그 중 별채를 샴브르 도드로 이용하고 있었다. 자녀들이 휴가를 오면 묵게 하려고 만들었다가 비어 있는 날이 많아져 손님이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고 한다.

안주인인 발레리는 남편이 교수직을 정년퇴직한 후 샴브르 도드 운영을 제대로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부부가 독서를 워낙 좋아해 별채에 상당히 많은 책이 있었다. 별채 앞쪽으로 한 낮 더위를 식혀줄 자그마한 풀장이 있었는데 손님이 없는 날에는 이웃이 와서 사용하기도 한다고 한다. 발레리의 샴브르 도드 이야기를 듣는 순간 우리 부부도 퇴직 후 프랑스 작은 시골 마을로 이주해 샴브르 도드를 운영하며 여생을 보내는 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프랑스 부르고뉴 지방의 코트도르는 화려하고 풍부한 먹거리 그리고 독특한 문화가 매력적이다. 이 지역은 포도주로 유명한 샤또(城)가 많다. 이곳 와인이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데는 이유가 있다. 과거 한 수도사가 있었는데, 어떻게 와인을 만들어야 깊고 진한 향을 유지할 수 있는 지 철저하게 검증하고 그 결과를 글로 남겨 제조 방법을 전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지역은 콜라 한 병 살 상점도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포도밭과 와이너리(포도주 양조장)는 주변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당시 뜨거운 햇빛 아래 포도가 탐스럽게 익어가는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사람들이 모인 곳이라면 지나온 세월만큼 이야기가 쌓인다. 특히 프랑스 샴브르 도드에는 사람 이야기가 있다. 그리고 프랑스 사람들이 사랑하는 문화가 존재한다. 따뜻한 아침을 함께하며 서로의 삶을 이야기하는 샴브르 도드 여행. 작은 스마트폰을 통해 온라인으로 사람을 만나고 어떤 정보든 끌어다 쓸 수 있는 요즘 세상에서 느낄 수 있는 여행의 참맛이 아닐까.

- 프랑스의 샴브르 도드 ‘레 빠삐용’
- 프랑스의 샴브르 도드 ‘레 빠삐용’